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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목) 오후 민통선평화교회 이적 목사(사진 앞줄 오른쪽), 기독교평화행동목자단 박병권 목사, 민통선평화교회 최민 성도(가운데 십자가 든 이)는 대사관 진입을 시도했다.
 25일(목) 오후 민통선평화교회 이적 목사(사진 앞줄 오른쪽), 기독교평화행동목자단 박병권 목사, 민통선평화교회 최민 성도(가운데 십자가 든 이)는 대사관 진입을 시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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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누가 가장 힘이 센 줄 아는가. 바로 한국 경찰이다. 왜냐면 세계 최강의 군인이라고 브리핑 때 설명했지만 그런 미군을 우리가 보호하지 않느냐?"

지난 2005년 경찰 총수로는 처음으로 한미연합사령부를 방문한 허준영 당시 경찰청장이 오찬에서 건넨 농담이다. 허준영 청장의 농담은 단순한 허언만은 아니다. 주한미군은 허 청장 방문 2년 전인 2003년 '좋은 이웃' 상을 제정하고 첫 수상단체로 한국 경찰을 선정했다. 47개 미군시설에 5000명 이상의 경력을 투입해 주한미군과 가족들을 지켜주고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강산이 변한다는 10년의 시간이 지났지만 한국 경찰은 그때나 지금이나 미군에겐 좋은 이웃이다.

한국전쟁 발발 65주년을 맞는 6월 25일(목) 오후 서울 광화문 주한미대사관 앞 KT본사에서는 기독교 사회단체가 주축이 돼 시국기도회를 열었다. 이날 기도회는 최근 논란을 일으킨 주한미군의 탄저균 반입, 그리고 고고도미사일방어체제(THAAD, 사드) 배치 시도를 규탄하기 위해 마련된 자리였다. 기도회는 교회에서 일상적으로 진행되는 예전에 따라 진행됐다. 다만, 시국기도회이니 만큼, 탄저균의 해악, 사드가 한반도 및 동북아 정세에 미치는 파장, 그리고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의 불평등을 지적하는 발언이 이어졌을 뿐이다.

그러나 경찰은 기도회 막바지에 이르러 방송을 통해 기도회를 빙자한 집회라며 해산할 것을 '명'했다. 또 기도회를 마친 목회자 및 일반 기독교인 참가자들이 항의서한을 전달하고자 주한미대사관으로 향하자 막아섰다.

이어 해산 명령 불응 시 "정밀채증 하겠다", "전원 연행하겠다"는 경고방송이 이어졌다. 한참을 대치하다가 급작스럽게 대사관 정문 앞에서 상황이 벌어졌다. 민통선평화교회 이적 목사, 이 교회 성도 최민씨, 그리고 기독교평화행동목자단 박병권 목사 등이 대사관 진입을 시도한 것이다. 박병권 목사와 이적 목사는 경찰이 행진단과 대치하는 사이 차량을 이용해 대사관 앞에 내린 뒤 대사관 진입을 시도했다.

경찰은 허를 찔린 듯 황급히 대사관 정문을 향해 이동했고, 이 목사, 박 목사, 최씨를 에워쌌다. 특히 이 목사와 최씨는 수 명의 경찰로부터 팔을 비틀리기도 했다. 이를 보던 주위 시민들이 공권력의 과도한 행사가 아니냐고 항의 했지만 경찰은 '공무집행'이라며 일축했다. 이들 3명은 곧장 체포돼 강동경찰서로 이송됐다.

한국 경찰은 미국에게만 '좋은 이웃'

25일(목) 오후 민통선평화교회 이적 목사, 기독교평화행동목자단 박병권 목사(사진 가운데 피켓 든 이), 민통선평화교회 최민 성도는 대사관 진입을 시도했다가 경찰에 의해 제지당했다.
 25일(목) 오후 민통선평화교회 이적 목사, 기독교평화행동목자단 박병권 목사(사진 가운데 피켓 든 이), 민통선평화교회 최민 성도는 대사관 진입을 시도했다가 경찰에 의해 제지당했다.
ⓒ 지유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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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목) 오후 민통선평화교회 이적 목사, 기독교평화행동목자단 박병권 목사, 민통선평화교회 최민 성도는 대사관 진입을 시도했다.
 25일(목) 오후 민통선평화교회 이적 목사, 기독교평화행동목자단 박병권 목사, 민통선평화교회 최민 성도는 대사관 진입을 시도했다.
ⓒ 지유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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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권국가로서 외국의 군대가 이 땅에 주둔해 있는 건 무척 기분 나쁜 일이다. 그나마 한국은 한국전쟁 때 미국이 도와줬다는 정서가 강해 미군 주둔에 일정 수준 호의적이다. 그럼에도 치명적인 생화학 무기인 탄저균을 들여와 실험하는가 하면, 실효성이 의문시되는 사드를 배치하라고 우리 정부에 압박하는 광경은 주권국가의 국민으로서 받아들이기 힘들고 분노가 치민다. 목회자들이 거리에서 시국기도회를 연 것도 바로 이런 울분을 참고만 있을 수 없어서였다.

경찰로서는 외국 공관 경비 임무라고 주장할지 모른다. 그러나 대사관 진입을 시도한 이들이 손에 쥔 것이라고는 십자가와 "탄저균 들여온 악의 무리 미군은 떠나라!", "NO 탄저균 NO 싸드 NO 소파협정"이라고 적힌 피켓, 현수막이 고작이었다. 그럼에도 경찰은 이들을 1개 소대 규모의 인원을 동원해 저지했다.

현수막에 적힌 '악의 무리'라는 글귀가 불편할 수 있겠다. 또 왜 과격시위를 하냐고 따질 수도 있다. 그러나 탄저균 반입과 사드는 한반도의 명운을 뒤바꿀지도 모를 중대한 사안이다. 탄저균 치사율은 95%로 40%에 불과한 메르스에 비교할 바 아니다. 이런 치명적인 생물무기를 한국 세관당국의 아무런 제지 없이 들여와 실험을 했다는 사실은 그야말로 경악스럽다. 또 세관당국의 검역이 미치지 못한 데에는 불평등한 SOFA에 원인이 있으니 탄저균은 다시금 SOFA 개정의 필요성을 일깨운다.

사드는 더하다. 미국은 표면적으로 사드를 북한의 스커드 미사일에 대응하기 위한 무기체계라고 선전하지만, 기실 북한 미사일은 명분일 뿐 미국 본토와 동맹국에 배치된 미군 보호가 주된 임무다. 더구나 사드가 배치되면 그 지역은 적의 집중 공격 목표가 될 것이고, 따라서 조상 대대로 그 땅에서 살았던 우리 국민은 생존권마저 위협 받게 된다. 게다가 북한은 물론 중국-러시아마저 자극해 군비경쟁을 부추길 위험성도 아주 높다. 이런 엄청난 일이 우리의 의지와는 전혀 무관하게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지금 온 국민이 들고 일어나도 부족할 지경인데, 그나마 목회자들이 분연히 일어나 체포를 무릅쓰고 행동에 나서주니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25일(목)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주한미군의 탄저균 반입-사드 배치 규탄 시국기도회 후 민통선평화교회 이적 목사, 이 교회 최민 성도, 기독교평화행동목자단 박병권 목사 등이 주한미대사관 기습 진입을 시도했다.
 25일(목)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주한미군의 탄저균 반입-사드 배치 규탄 시국기도회 후 민통선평화교회 이적 목사, 이 교회 최민 성도, 기독교평화행동목자단 박병권 목사 등이 주한미대사관 기습 진입을 시도했다.
ⓒ 지유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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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집회 현장에 나가보면 경찰은 위압적인 태도로 시민들을 대한다.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청와대로 향하는 세월호 유가족과 시민들에게 해산을 '명령'하고, 이에 응하지 않으면 캡사이신 같은 독성물질을 뿌려댄다. 시국을 위해 기도하는 목회자들에 대해서도 "기도회를 빙자한 시위"라며 역시 해산을 명령하고, 아무런 무장도 하지 않은 채 대사관에 항의서한을 전달하려는 목회자 일행을 무자비하게 연행한다.

경찰 공권력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줄 때만 존재의미가 생길 뿐이다. 특히 이 나라의 주권을 무시하는 미국을 향해 항의하는 목소리를 막는 경찰은 그 존재의미마저 되묻게 한다.

끝으로 강신명 경찰청장에게 묻고 싶다. 한국 경찰은 과연 누구에게 '좋은 이웃'이 되고 싶은가?

덧붙이는 글 | 어제(6/25) 주한미대사관 앞에서 벌어진 시위에 관해 취재한 기사입니다.



태그:#강신명, #탄저균, #사드,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SOF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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