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세희
▲ 세희 세희
ⓒ http://416family.org/reme

관련사진보기


나는 아빠입니다. 권리를 찾고 싶은 아빠입니다. 아빠로서 저는 딸 세희와 하고 싶은 일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세희가 대학에 들어가면 캠퍼스를 함께 걸어보고 싶었고, 강의도 같이 듣고 싶었습니다. 학교 주변 맛집도 함께 찾아다니고 싶었습니다. 영화도 같이 보고 싶었습니다. 가족들과 캠핑도 가고 싶어서 3년 전에 레저용 차로 바꾸었습니다.

하지만 4.16참사 이후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어버렸습니다.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을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주말이면 식사 후 맛있게 커피를 타주던 세희, 아빠의 흰머리를 항상 염색해주던 세희, 피부가 많이 상했다면서 아빠 얼굴에 팩을 해주던 세희, 손톱이 상했다면서 매니큐어를 발라주던 세희, 그 세희가 이제는 제 옆에 없습니다. 평범했던 일상들을 빼앗기면서 나의 권리도 빼앗겼습니다.

평범했던 우리의 일상은 참사 이후 사라지고 매일 낯선 일의 연속이었습니다. 특별법 제정을 위해 전국을 떠돈 끝에 6백만 명이나 되는 많은 국민들의 서명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가족이 원하는 특별법은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304명의 고귀한 희생과 온 국민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국가는 그 의무를 져버렸습니다.

제대로 된 국가라면 진실을 밝히기 위해 가족들이 요구하는 것보다 더 강력한 특별법과 시행령을 만들었어야 했습니다. 참사의 진실을 밝히는 것은 어린아이도 당연한 일이라 여깁니다. 이 얼마나 부끄러운 일입니까? 유가족이 원하는 특별법이 객관적이고도 타당한 근거 하에 만들어졌음에도 헌법체계를 뒤흔든다는 말도 안 되는 억지주장으로 제대로 된 특별법의 제정을 방해했습니다. 그나마 만들어진 반쪽짜리 특별법도 쓰레기 시행령으로 무력화하려 했습니다.

외국인들에게 허락되는 길, 왜 유족에게는...

가족들이 정부와 청와대에 이의를 제기하기 위해 찾아갔지만 그 과정에서 경찰로부터 말도 안 되는 인권침해를 받아야 했습니다. 누구에게나 평등해야하는 법은 어찌된 일인지 권력자들에게는 관대하고 힘없는 가족들에게는 엄격했습니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심지어 관광을 위해 찾아온 외국인이라면 당연하게 허락되는 길이, 유독 유가족들에게만 통행이 금지되었습니다. 유가족을 국민 취급도 안 하는 태도입니다. 아니 국민이 아닌 것을 넘어서 죄인 취급을 하는 것입니다.

416참사 당일 배안에 있는 이들이 살려달라고 소리칠 때 그들은 구조하려 애쓰지 않았습니다. 이미 참사 당일 가장 큰 인권침해가 먼저 간 304명에게 가해진 겁니다. 가족들은 팽목항에서 정부를 상대로 목 놓아 애원했습니다. 하지만 정부는 계속 거짓말만 했습니다. 구해주겠다고 말만 하고 구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구조를 막기까지 했습니다. 더군다나 진상규명은 국가의 의무인데 자꾸 축소은폐하려고만 합니다.

올바르게 법을 집행하고 국민을 보호해주어야 할 의무가 있는 경찰이 오히려 공권력을 남용하며 과잉진압을 하고 정부와 여당의 심복이 되어버렸습니다. 올바른 시위와 집회를 불법집회와 불법점거로 매도했으며 유가족들보다 수 백 배 많은 인원을 동원해서 교통을 마비시키고는 그 책임을 시위자들에게 넘겨버렸습니다.

하늘이 있다면 반드시 심판을 해주기를 바랍니다. 부모가 내 자식이 왜 주었는지 누가 죽였는지 알고 싶은 것이 죄인지, 유가족과 국민의 진실구명요구가 그렇게 부당한 건지, 정부와 여당이 완강하게 진실규명을 막고 은폐하는 것이 부당한지, 하늘이 분명하게 판가름해주었으면 합니다. 그래서 꼭 책임을 물어주기를 바랍니다.

국민들의 권리 깨닫고 되찾는 운동 시작합시다

세희아빠 임준호씨
▲ 세희아빠 임준호씨 세희아빠 임준호씨
ⓒ http://www.rights.or.kr/5

관련사진보기


저는 여전히 세희 아빠이지만 4.16참사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세희가 돌아올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빼앗긴 우리의 권리, 사람으로서 당연히 존중받아야 하는 권리는 찾고 싶습니다. 너무나도 당연한 권리, 그러나 잊고 살았던 권리, 때론 세상과 적당히 타협하면서 사느라 포기했던 권리, 1년이 지난 지금의 자리에서 다시 되찾고자 합니다.

권리를 찾는 방법으로 416 인권선언을 국민과 함께 만들려고 합니다. 탐욕과 위선에 찌들어 사리분별조차 잊은 지 오래고, 국민 위에 군림하는 것을 당연시 여기는 정부와 정치권을 근본부터 고치는 일은, 국민들이 자신의 권리를 깨닫고 되찾으려 하는 운동에서 시작될 수 있습니다.

제가 세희를 잃고서야 깨달은 인간존엄의 권리를, 국민들은 더 큰 것을 잃기 전에 함께 깨닫고 함께 지켜내기를 바랍니다. 자신의 권리는 자신이 자각하고 지켜낼 수밖에 없다는 못난 아빠의 뼈아픈 깨달음에 함께 해주시기 바랍니다.

○ 편집ㅣ최유진 기자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임종호님은 세월호 참사로 희생당한 고 유세희양의 아버지입니다.



태그:#세월호, #인권선언, #416, #세희아빠
댓글

4월16일의약속국민연대(약칭 4.16연대)는 세월호참사의 진실을 밝히고 생명이 존중받는 안전사회 건설을 위해 세월호 피해자와 시민들이 함께 만든 단체입니다. 홈페이지 : https://416act.net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