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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치원 못 간다는 소리에 힘없는 아이
▲ 좌절한 까꿍이 유치원 못 간다는 소리에 힘없는 아이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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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까꿍이가 유치원에 가지 못한 지 일주일이 지났다. 지난 5일과 8일에는 까꿍이를 자체적으로 유치원에 보내지 않았지만, 지난 8일 유치원은 9일부터 이틀 휴원이라고 공문을 보내왔고, 10일에는 12일까지 휴원을 연장한다고 또다시 연락을 보내왔다.

까꿍이는 처음 유치원을 못 가게 했을 때만 해도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며 가겠노라고 떼쓰더니, 유치원 자체가 휴원이라는 말을 듣고 나서는 그제야 체념했는지 알겠다며 두 남동생들과 열심히 놀기 시작했다. 모든 친구들이 유치원에 오지 않는 이상 굳이 유치원을 가야 한다며 고집 피울 필요가 사라진 것이다.

그래도 현재 진행되고 있는 메르스 사태에 대해 궁금증은 여전한 까꿍이. 어디 작금의 상황이 7살 아이가 이해할 만한 수준이던가. 눈에 보이지도 않는 전염병이 돌고 있어서 유치원에 못 간다는데, 전염병이 뭔지도 모르겠고, 왜 그 병에 걸리면 치료가 안 되는지도 이해할 수 없으니 답답할 수밖에.

잠잠하던 까꿍이가 다시 질문을 한다.

"나, 오늘도 유치원 못 가? 가고 싶은데."
"아직 못 가. 어제 뉴스 봤지? 나쁜 병이 돌고 있어서 그래. 조금만 더 참자."
"아빠는 회사 가잖아. 엄마도 마트 다녀오고."
"엄마, 아빠는 너희들보다 면역력이 세잖아.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집에 들어오면 깨끗이 씻는 거구."
"힝. 또 못 가? 그럼 나, 유치원 언제 갈 수 있는 거야?"
"글쎄. 아빠도 잘 모르겠네. 약도 없다고 하고, 근데 지금은 어차피 네가 감기에 걸려서 기침도 하니까 사람들 많은 데는 안 가는 게 예의야."

다행히 아이는 엊그제 저녁에 같이 본 뉴스 때문에 현재 메르스 사태가 심각한지는 알고 있었다. 오죽하면 동생과 함께 엄마 심부름을 다녀온 뒤 집에 오자마자 손을 씻으며 "엄마, 우리 안 죽었어. 계속 메르스 얘기 하면서 다녀왔어"라고 말했겠는가.

그러나 막상 아이의 입을 통해 그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또 다른 걱정이 슬며시 들기 시작했다. 우리가 아이에게 너무 겁을 주고 있는 건 아닐까? 죽음의 의미도 잘 모르는 녀석들이 메르스와 죽음을 운운하는데 이것이 옳은 것일까?

무능한 정부에서 비롯된 메르스 호들갑

주위엔 온통 메르스 뿐이다
▲ 메르스 주의보 주위엔 온통 메르스 뿐이다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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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언론에서 이야기한 메르스에 대한 정보를 종합해 보면 메르스에 대한 위험은 일정부분 과장되어 있는 듯하다. 아직까지 메르스 바이러스가 변이되었다는 증거도 없고, 공기로 감염이 가능하다는 증거도 없는 만큼 지역사회로까지 메르스가 퍼졌다고 생각하는 것은 이르기 때문이다.

치사율 역시 마찬가지다. 비록 메르스의 치사율이 40%라고는 하나 국내에서는 지금까지의 사망자들 대부분이 기저질환이 있던 노년층인만큼 그 수치가 의미를 가지기는 어렵다. 물론 35번 삼성병원 의사와 같은, 특이한 기저질환이 없던 건강한 사람이 사망한다면 그 문제가 심각해질 수도 있겠으나 어쨌든 아직까지 메르스의 치사율을 건강한 사람에게 적용시키는 것은 분명 무리가 있어 보인다.

사실 현재 우리 사회에는 메르스보다 위험한 것들이 도처에 깔려있다.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미군의 탄저균은 치사율 95%로 그야말로 무서운 존재이며, 정부의 무책임한 태도로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는 가계부채는 나라의 경제를 언제 붕괴시킬지 모르는 시한폭탄이다. 또한 현재 그 끝을 알 수 없는 가뭄은 현재 많은 농민들의 생계 자체를 위협하고 있다. 우리가 그 심각성을 간과하고 있을 뿐, 그것들은 모두 메르스만큼이나 우리의 삶을 위협하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이들을 평소처럼 키우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메르스의 위험이 아무리 과장되었다고 하더라도 위험은 위험이었고, 메르스에 걸릴 가능성이 아무리 낮은 확률이라 할지라도 할 수 있는 조치는 다 해야만 했다. 어쨌든 우리 가족이 걸리고 나면 그 확률이라는 건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아이들을 유치원에, 학교에 보내지 않는 것은 지나친 처사라고? 천만의 말씀. 지금 같은 상황에서 혹여 라도 나의 자식이 메르스에 걸린다면 누가 책임질 것인가? 정부? 국가? 현재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일관된 무능함으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무책임한 국가의 모습 아닌가. 1년 전 세월호 구조 당시 손을 놓고 있을 때와 전혀 다를 바 없는 정부의 행태. 정부를 믿느니 각자도생이 최선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물론 아이들의 메르스에 대한 어처구니없는 편견이나, 과도한 공포심을 방지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쓸데없는 편견과 공포는 아이들의 합리적인 사고 발달을 방해할 것이고 이는 사회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기 때문이다. 과거 우리의 반공주의가 그랬듯 편견과 공포에 길들여진 사회는 부정한 권력의 온상이기도 하다.

그러나 지금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을 메르스로부터 보호할 때다. 뚜렷한 치료제도 없이 방역망이 숭숭 뚫려 있는 현재 상황. 메르스에 대해 가볍게 생각하기 보다는 차라리 호들갑을 떠는 것이 낫다. 그것이 바로 자식 키우는 부모 마음이다.

2003년 사스와 2015년 메르스

유치원에서 체조 대신 번개밴과 함께
▲ 아침체조 유치원에서 체조 대신 번개밴과 함께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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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스로부터 자식을 보호하기 위해 그 어떤 조치도 취할 수 있는 부모의 마음. 한낱 부모도 자신의 자식을 지키기 위해 이렇게 노력 중인데, 국민을 보호해야 할 의무를 가지고 있는 국가는 왜 이 모양일까?

이와 관련하여 메르스 사태 초기부터 개인적으로 가장 궁금한 것은 2003년 사스 때와 비교하여 너무 터무니없이 무너진 지금의 방역체계이다. 한때 사스 예방 모범국으로 중국에서 700여 명이 사망할 때에도 사망자 하나 없이 국민들을 지킨 방역체계이건만, 그것이 12년이 지난 지금 발전은커녕 오히려 붕괴된 것이다.

비록 10년이 넘게 흘렀지만 당시 사스를 막았던 경험을 축적하고 있고, 질병관리라는 것이 특수한 분야인 만큼 관련된 종사자들이나 관료 역시 하층 부분에서는 크게 바뀌지 않았을 텐데 왜 이와 같은 일이 벌어진 것일까? 사람들이 그만큼 나태해진 것일까? 아니다. 이것은 곧 시스템의 문제요, 책임의 문제이다.

생각해보자. 질병 방역은 촌각을 다투는 일이다. 이번 메르스 사태에서도 볼 수 있듯이 초기에 얼마나 대응을 잘 하느냐에 따라 질병의 전파 수준이 하늘과 땅 차이다. 문제는 그 방역을 하는데 있어서 나타나는 부작용인데 이것이 생각보다 큰 책임을 요한다. 공공의 이익을 위해 소수의 헌법적 권리마저도 침해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서울삼성병원에 금전적 피해를 입혀가며 정보를 공개하고, 영업을 정지시켜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방역체계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국정 최고 책임자의 확고한 의지가 매우 중요하다. 대통령이 나서서 선제적으로 심각성을 알려야 하고 무한 책임을 져야 한다. 그래야 관료들이 움직일 수 있다. 최근 2003년 사스와 관련하여 노무현 전 대통령의 연설과 고건 전 총리의 인터뷰가 회자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것은 그들의 의지가 시스템의 일부임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런데 현재 청와대의 모습을 보자. 많은 이들이 억울하게 죽어가고 있는데 뒷장 대응만 하고 있다. 시스템도 없을 뿐더러, 있어도 작동할 수 없다. 아무도 책임질 생각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 어찌 작년 세월호 사태를 떠올리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렇게 죽어간 생떼 같은 청춘들. 우리 사회는 아직도 그로부터 교훈을 얻지 못했다.

내일 15일이면 까꿍이는 다시 유치원에 나갈 것이다. 아직 메르스 때문에 세상은 뒤숭숭하지만, 그렇다고 아이를 계속 집에만 두고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부디 지금이라도 정부가 책임감을 가지고 제대로 된 대응을 하기 바란다.


태그:#육아일기, #메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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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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