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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장에 무사히 들어가고도 도로 끌려나오지 않는 것이 관건이었다. 어마어마하게 중요한 회의기 때문에 '아무나' 회의장에 들어갈 수 없고, 회의 내용은 짧게 요약된 채로만 볼 수 있다. 그것도 모든 회의 일정이 끝나고 나서야 가능하다. 내가 말하는 회의가 뭐냐면, 메르스 감염 정보에 대한 회의도 아니고, 미군의 탄저균 실험에 대한 회의도 아니다. 바로 온 국민의 임금 하한선이 될 '최저임금위원회'이다.

지난 4일, 최저임금위원회 3차 전원회의가 있었다. 생계비조사와 현장방문 등의 일정 이후, 조사 자료를 바탕으로 최저임금을 본격적으로 심의하는 첫 회의기도 했다. 이날 노동계의 주 요구사항은 회의내용을 녹취록 수준으로 공개할 것과 배석자를 늘리는 것이다.

최저임금 심의에 앞서 최저임금위원회의 고질적인 문제인 '밀실 합의'를 넘어 최저임금이 갖는 사회적 의미에 걸맞게 책임성을 높일 수 있도록 회의내용을 공개하고 누구나 접근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원회의 시작 1시간 전 운영위원회에서 노동계는 이 내용을 전달했으나, 합의되지 않았다.

온 국민에게 영향 미치는 최저임금위원회

3시 정각에 전원회의가 시작되었다. 사무국의 성원보고와 박준성 최저임금위원회 위원장의 모두발언으로 회의가 열렸고, 동시에 모든 기자들이 회의장을 빠져나갔다. 그렇게 노동자위원, 사용자위원, 공익위원 22명(당시 성원)과 사무국 직원, 몇몇의 참관인이 전부인 상태에서 온 국민에게 영향을 미치는 최저임금위원회 전원회의가 시작되었다.

박준성 위원장은 "생계비 수준, 최저임금에 영향을 받는 노동자의 비율과 노동생산성, 소득분배율 이 4가지 기준으로 최저임금을 심의해야 한다"라며 "임금수준전문위원회의 생계비위원회에서 심도 깊은 논의가 있길 바랐으나, 잘 되지 않아 전원회의 몫으로 넘어왔다"고 했다.

곧바로 임금수준전문위원회의 전차 회의 보고로 이어졌다. 임금수준전문위원회는 적정 최저임금 수준을 결정하기 위해 임금실태를 조사하고 최저임금 수준을 사전 심사하는 등의 역할을 한다. 올해 고용노동부장관은 최저임금위원회에 특별히 '소득분배 상황이 단계적으로 개선될 것'을 주문했다. 최저임금으로 소득격차를 해소할 수 있어야 한다는 거다.

이러한 요청을 반영하여 지난 임금수준전문위원회에서는 현재의 최저임금 실태를 '중위소득의 50%'와 '평균소득의 50%', '중위소득의 2/3'을 모두 고려하여 판단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 우리나라처럼 소득격차가 큰 경우에는 중위소득보다 평균소득의 값이 더 크기 마련이다. 때문에 평균값을 쓰면 적나라한 소득격차 상황이 보이고, 최저임금수준을 높여야 할 동기를 강화할 수 있어 노동계는 매년 평균값을 쓸 것을 요구해왔다.

어쨌든 임금수준전문위원회에서 이러한 내용이 합의되었다는 것은 반가운 일이나, 문제가 있었다. 최저임금심의를 위한 임금실태자료에 합의된 내용이 반영되지 않은 것이다. 회의가 시작되자마자 논의에 불이 붙었다.

자료 공개 놓고 2시간 30분 동안 회의만...

노동자위원5 : "1인 이상 사업장의 중위임금만 기준으로 삼는 것은 일반 국민들에게 최저임금이 생각보다 낮지 않다는 착시효과를 줄 수 있다. 공정하게 볼 수 있도록 여타 다른 통계들도 제시되어야 한다. 이대로라면 평균임금의 절반이라는 최저임금 정책적 목표를 달성했다고 거짓말 할 수도 있다. 임금수준전문위원회에서 논의한 것처럼 자료를 여러 가지 제시해야 한다."

공익위원4 : "평균임금 대비 최저임금과 중위임금의 2/3는 자료에 나와 있는 지표를 갖고 계산하면 금방 알 수 있다."

공익위원5 : "공식지표로 채택하기엔 덜 성숙한 측면이 있어 지금은 기타자료에 넣었다."

사용자위원1 : "평균값은 소득편차가 크기 때문에 현실을 왜곡한다. 수용하기 어렵다."

이런 식의 논의가 오갔다. 노동자위원은 다양한 자료를 제시하여 최저임금의 상대적 수준을 판단하도록 해야 한다는 입장이고, 공익위원은 기타자료에 첨부한 것으로 갈음하자는 입장이고, 사용자위원은 평균값을 쓰지 말자는 입장이었다. 이 논의는 장장 3시간에 걸쳐 이루어졌다.

공익위원1 : "중재안으로 심의가 끝나고 홈페이지에 PDF파일을 공개할 때 '기타첨부자료'라는 제목을 본문에 해당하는 제목으로 바꾸는 것은 어떤가."

공익위원4 : "책을 다시 제본하려면 두 권이나 바꿔야한다. 예산도 드는데 우리 궁핍하다. 이해를 돕기 위해 참고자료로 넣은 건데, 제본은 안 하고 중재안처럼 제목만 바꿔서 PDF파일로 공개하는 것은 어떤가."

노동자위원2 : "자료를 풍부하게 하자는 거다. 최종본이 나오기 전에 확인과정도 거치지 않고 제본에 대한 실익이나 예산 궁핍을 얘기하는 것은 맞지 않다."

사용자위원1 : "경비가 문제가 아니다. 자료 사용에 대한 재의결을 해야 한다. 표결을 하자."

사용자위원5 : "2시간 30분 째 최저임금 심의는 못하고 있다. 한국은 최저임금 인상률이 높은 국가다. 표결에 동의한다."

노동자위원5 : "논의 후 표결해야한다고 생각한다. 표결 여부를 먼저 결졍하자."

공익위원5 : "표결하자고 하는데, 지금 표결안도 없는 상황이다. 표결하려면 운영위원회를 열어야 한다. 표결안을 만들고 운영위원회를 연 후 표결하자. 30분 후에 회의를 재개하겠다."

최저임금이 소득격차 완화할 수 있는 기반 마련

노동계는 평균값의 50%로 최저임금을 계산한 표를 산입할 것을 핵심으로 한 표결안을 만들었다. 사용계는 현상 유지를 안으로 했다. 잠시 후 운영위원회에서는 표결을 대신할 중재안을 내놓았다. 하지만 전원회의 결정사항을 자꾸 뒤집을 수 없다며 노동계는 표결할 것을 요구했고, 표결이 시작되었다. 예상치 못한 상황이라 투표를 위한 어떤 것도 준비되지 않았다. 사무국에선 재빠르게 투표용지와 투표함을 만들어왔다. 투표는 노동계안에 대한 찬성과 반대를 다투는 것으로 했다.

투표가 시작되었다. 당시 성원은 노동자위원 9명, 사용자위원 7명, 공익위원 6명으로 총 22명이 있었다. 노동자위원이 둘이나 많아 유리했다. 그리고 통계자료마다의 장단점이 있기 때문에 다양한 지표를 활용하자는 노동계의 요구는 연구를 업으로 하는 공익위원들에게도 충분히 받아들여질 만 했다.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찬성 13표, 반대 8표, 기권 1표로 노동계안이 받아들여졌다. 이제 최저임금의 상대적 수준을 볼 때 중위임금의 50%와 평균임금의 50%, 중위임금의 2/3을 모두 고려하여 판단할 수 있게 되었다. '소득분배상황을 개선하라'는 고용노동부장관의 말처럼, 최저임금이 소득격차를 완화하는 역할을 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 것이다. 이처럼 소득분배율 공식 기준 통계가 개선된 것은 무려 8년만의 일이다. 최저임금 심의 첫 회의부터 불꽃 튀는 논의가 오가고 표결까지 하는 치열한 상황은 처음이라고 한다.

표결이 끝나고 회의에 속도가 붙었다. 이미 가버린 위원들도 상당수 있었기 때문에 안건사항은 다루지 못했다. 그리고 또 한 번 불이 붙었다. 최저임금위원회 회의 내용 공개와 배석자를 늘리는 문제였다. 최저임금은 전 국민의 임금하한선이 되고, 최저임금이 곧 본인의 임금이 되는 노동자가 수백만 명이다. 대부분 비정규직, 여성, 청년 등이 최저임금을 받는다. 최저임금위원회는 그들을 포함한 모두에게 닫혀있다. 단지 최저임금위원으로 위촉된 27명만이 최저임금을 심의하고 결정할 뿐이다. 이에 대해 박준성 위원장은 "오랫동안 이 위원회가 유지되면서 이렇게 운영되고 있다"고 했다.

최저임금위원회 공개 꺼리는 이유, 대체 뭘까

노동자위원1 : "최저임금 당사자들은 이런 내용을 잘 모른다. 어떤 얘기가 오가고 어떤 쟁점이 있는지 당사자에게 전혀 정보가 공유되지 않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이렇게 중요한 의제인데도 27명끼리만 공유하고 배석조차 한정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 정보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전달될 수 있도록 공익위원과 사용자위원은 협력해야 한다. 최소한 노사당사자로 참여한 조직에서의 참관은 마땅히 보장하고, 그 외에도 일정한 범위 내에서 문턱을 낮춰야 한다. 이건 국민의 알권리기도 하다."

공익위원4 : "지금 녹음은 하고 있고 녹취를 풀고 정리하는데 하루 종일 걸린다. 요약하고 정리하는데도 시간이 엄청 오래 걸린다. 사무국 직원들이 엄청 고생한다. 이건 어려운 일이다."

노동자위원1 : "최저임금이 갖는 사회적 의미를 너무 낮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공익위원 4의 발언은 '행정편의주의적'이다. 이렇게 중요한 사회적 임금교섭 내용이 속기사 하나 없이 상근하는 사무국에서 다 맡게 해서 노동 강도를 높이고 있다. 노동부의 안일한 의식이 반영되었다고 본다. 고용노동부니까 해야 한다. 회의내용 공개가 합리적인 심의를 방해할 것이라 얘기하는데, 그건 기우다. 최저임금노동자를 배제하는 것 같다. 이게 무슨 민주적 과정이냐. 최저임금위원회가 갖는 중요성에 대해 공감하는 만큼 공개와 배석문제에 대해 전향적으로 검토하라."

노동자위원4 : "최저임금이 내 월급이다. 당사자 입장에서 보면 최저임금위원회가 실무적, 물리적 여건을 먼저 얘기하는 것은 맞지 않다. 회사에서 하는 교섭도 교섭이 끝나면 조합원들과 나누는 게 아주 당연하다. 최저임금은 국민임금인데 논의과정이 그때그때 공개되지 않는다는 것은 납득이 어렵다. 공개에 동의한 후에 실무적이고 물리적인 방안은 나중 문제로 얘기해야 한다."

사용자위원9 : "공개는 중대한 사안이다. 공개토론을 나가보니 내 신상이 공개적으로 나가 항의전화를 많이 받았다. 자유로운 토론보다 떠밀려서 하는 논쟁이 되지 않겠냐는 부분에서 공개에 부정적이다. 위원에 대한 신상도 공개되다보니 위원들의 안전문제도 고려되어야 한다."

노동자위원1 : "아르바이트 노동자보다 더 못 버는 자영업주도 있다. 그들에게까지 투명하게 공개했을 때 오히려 합리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 녹취록 수준의 공개는 너무 당연한 것이다."

최저임금위원회의 폐쇄적인 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노동계는 녹취록 수준의 회의내용 공개와 배석자 증원, 회의 직후 언론브리핑을 요구하고 있다. 현재 최저임금위원회는 최저임금이 결정된 후 심의에 사용된 자료와 축약된 회의 내용을 홈페이지에 공개하고 있다. 이미 최저임금이 결정된 후라 자료의 시의성이 떨어지고, 굳이 찾아보지 않고는 자료가 존재하는지 여부도 모를 만큼 접근성도 떨어진다. 그래서 최저임금위원회를 '밀실합의'라 부르기도 한다.

회의에 배석하여 열심히 속기를 했다. 어떤 내용이 오갔는지 곱씹어보고 싶었다. 최저임금에 영향을 받는 나와 내 주위 수많은 비정규직, 여성, 청년들이 속기록을 보면 어떤 기분이 들지 상상해봤다. 가장 낮은 임금의 기준을 정하는 최저임금위원회가 고작 27명에 의해 운영되는 권위적이고 형식적인 구조라는데 헛헛한 웃음이 세어 나오진 않았을까.

어떤 공익위원이 가장 '공익'스러운지, 어떤 사용자위원이 가장 합리적인지, 어떤 노동자위원이 최저임금노동자를 제대로 대변하는지 눈 크게 뜨고 귀 크게 열고 지켜볼 계획이다. 수백만 최저임금노동자의 임금에 대한 칼자루를 최저임금위원회가 쥐고 있다는 점에서 위원들의 자리 그 자체는 거대한 권력이기도 하다. 감시하지 않는다면 권력은 부패하고 더 큰 권력과 타협하기 마련이다. 그런 면에서 당장 최저임금위원회의 회의 공개와 배석자 증원, 회의 직후 언론브리핑 모두 못할 이유가 없지 않는가.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정책부장입니다.



태그:#최저임금위원회, #최저임금, #메르스, #정보공개, #558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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