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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이 7일 오전 정부세종청사 국무총리실 브리핑룸에서 열린 정부의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대응 조치 발표 기자회견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왼쪽은 최경환 국무총리 직무대행.
▲ 답하는 문형표 장관, 머리 만지는 최경환 총리대행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이 7일 오전 정부세종청사 국무총리실 브리핑룸에서 열린 정부의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대응 조치 발표 기자회견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왼쪽은 최경환 국무총리 직무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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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전박살. 군대를 다녀온 사람이라면 너무나 자주 들었던 구호다. 전쟁 때 초전에 밀리면 사기가 꺾여 적에게 괴멸되거나 패퇴하기 십상이다. 그래서 이런 구호가 나온 것이다.

감염병(과거 전염병으로 오랫동안 말해왔으나 지금은 법적 이름이 감염병임) 대처도 마찬가지다. 흔히들 감염병 관리란 표현을 사용하기도 하지만 치명적인 감염병 유행을 막거나 치사율이 높은 새로운 감염병 유행을 막기 위해서는 '관리'라는 표현보다는 '전쟁'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린다.

이런 조건에 해당하는 메르스, 즉 중동호흡기증후군과 같은 신종 감염병 유행을 막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두말 할 것도 없이 초동 대응이다. 그런데 우리는 실패했다. 왜 그랬을까? 일반 국민뿐만 아니라 언론, 전문가, 세계보건기구 등 국제기구와 외국에서도 관심을 가지는 대목이다.

외국의 감염병 전문가와 세계적인 과학학술지인 <사이언스> 등은 감염병 관리 모범국가였던 한국에서 메르스가 확산된 이유로 최초 환자가 고농도의 바이러스를 뿜은 게 불량한 환기시설과 상승작용을 일으켰기 때문이라는 설명을 하고 있다. 여기에다 정부의 초동 대처 실패도 함께 거론됐다. 나도 이런 분석과 지적에 대해 같은 생각이다.

초동 대응 실패, 부실한 역학조사도 한몫

5일 오후 서울 강남구 삼성서울병원 폐쇄된 응급실 앞에 마련된 임시접수처에서 의료진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 전면 마스크 쓴 삼성병원 의료진 5일 오후 서울 강남구 삼성서울병원 폐쇄된 응급실 앞에 마련된 임시접수처에서 의료진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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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왜 초동 대처에 실패하였는가다(초동 대처에 이은 후속 대응도 실패했음). 여기에 대해서는 앞으로 정밀조사가 뒤따라야 하겠지만 현재로써는 부실한 역학조사, 특히 슈퍼전파자 구실을 했던 첫 환자 등에 대한 부실조사를 꼽을 수 있다.

첫 환자는 지난 5월 4일 카타르를 거쳐 인천공항으로 입국했으나 당시 별다른 증상이 없었다고 한다. 5월 11일쯤 열이 나자 12~15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아산서울의원을 찾아 외래 진료를 받았다. 그래도 증상이 잘 낫지 않자 5월15~17일 평택성모병원과 서울365열린의원, 삼성서울병원을 순서대로 찾아 입원 또는 외래 진료를 받았다. 이들 의원과 병원에서 그가 접촉했던 의료진과 같은 병원에 입원했던 환자와 그 가족들이 메르스에 감염됐다.

19일 삼성서울병원에서는 환자가 고열에다 중동을 다녀왔다는 사실을 알고 메르스를 의심해 검체를 확보해 질병관리본부 국립보건연구원에 보내 유전자 검사를 한 결과 20일 메르스로 판정 났다. 국내 메르스 상륙이 처음으로 확인된 것이다.

문제는 여기부터다. 그 전에 그가 들렀던 병의원에서 일어난 전파는 어쩔 수 없었다고 해도 메르스 확진 이후부터는 모든 상황이 달라진다. 더군다나 그가 이미 여러 병원을 거쳐 삼성서울병원에 왔고 그동안 접촉자들은 무방비 상태로 감염됐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철저한 역학조사로 첫 환자가 접촉한 사람들과 그 접촉자들이 다시 접촉한 사람들은 단 한명도 빠짐없이 파악해 격리조치를 해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역학조사요원, 사스나 신종플루 대응 경험 없어

지난 5일 오후 서울 양천구 서울메트로 신정차량기지에서 방역업체 직원들이 메르스 예방 대책의 하나로 살균소독 및 방역작업을 하고 있다.
▲ 방역 전쟁 지난 5일 오후 서울 양천구 서울메트로 신정차량기지에서 방역업체 직원들이 메르스 예방 대책의 하나로 살균소독 및 방역작업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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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미 대다수 국민이 아는 바대로 역학조사는 너무나 허술했다. 누구와 접촉했는지, 평택성모병원 병실 구조가 바이러스 확산을 막기에 적절한 환경이었는지, 병원감염 관리를 제대로 했는지 등에 대한 조사가 거의 맹탕 수준에 가깝게 이루어졌다. 누가 조사를 했기에 이렇게 허술했을까?

감염병이 발생하면 질병관리본부와 시도에 있는 역학조사관들이 한다. 한데 이 역학조사관은 역학조사 전문가들도 아니고 감염병 전문가들도 아니다. 놀랍게도 의대를 갓 나온(극히 일부는 수련·전공의 과정을 거침) 공중보건의들이다.

공중보건 의사들은 병역의무를 대신해 주로 농어촌 등에 벽오지, 한지 의사로 배치되며 일부는 연구요원으로 차출돼 역학조사관이란 이름을 달고 감염병 환자가 생겨 조사할 일이 있을 때 현장조사를 하는 일 따위를 맡고 있다. 2009년 신종플루로 역학조사 손발이 모자랄 때 질병관리본부가 공중보건의 지원을 요청해 그 뒤부터 정착된 제도다. 현재 30명가량의 역학조사요원이 있으며 질병관리본부에 20명, 나머지는 시도에 분산돼 근무하고 있다.

이들은 병역의무 대신에 3년가량 임시로 근무하며 역학조사 업무를 맡고 있기 때문에 책임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과거 있었던 사스나 신종플루 대응 경험도 전혀 없다. 이들이 삼성서울병원, 평택성모병원 등에 나가 역학조사를 벌였겠지만 경험 등이 부족해, 특히 메르스와 같이 우리가 전혀 경험한 적이 없는 신종감염병 역학조사에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따라서 메르스 의심이 되거나 메르스 확진 환자가 나왔을 시점에는 질병관리본부의 연구관이나 과장급 베테랑 요원이 현장 조사를 벌였어야 했다. 정부는 초동 대응이 미숙했다는 점을 인정하고 있지만 구체적으로 누가, 언제, 어떤 부분에서 실수를 했는지, 태만했는지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고 있다. 8일 열리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와 우리나라를 찾은 세계보건기구(WHO) 조사단 조사에서 이런 부분이 구체적으로 드러나길 바란다.

메르스 대응 지침 있었는지, 실천 훈련은 했는지 묻고 따져야

5일 오후 메르스 환자 발생으로 인해 폐쇄 된 서울 강남구 삼성서울병원 응급실 앞에서 의료진과 대화를 하던 환자 보호자들이 근심 쌓인 모습으로 서있다.
▲ 메르스 임시 진료소 앞에 선 보호자 5일 오후 메르스 환자 발생으로 인해 폐쇄 된 서울 강남구 삼성서울병원 응급실 앞에서 의료진과 대화를 하던 환자 보호자들이 근심 쌓인 모습으로 서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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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메르스 사태를 계기로 관련 매뉴얼 등도 수정해 중요 감염병 발생의 경우 공중보건의사에게만 맡기지 말고 질병관리본부와 시도의 경험이 풍부한 감염병 관리 공무원들이 역학조사 현장 지휘를 맡도록 해야 한다.

또 질병관리본부의 초동 대응이 엉망이었다는 것은 메르스 국내 상륙 대응 매뉴얼이 있었는지를 의심케 한다. 그동안 사스, 신종플루 대응 지침 등은 만들어져 있었다. 메르스 대응 지침이 있었는지, 있었으면 왜 이번 메르스 확산을 막지 못했는지를 면밀하게 묻고 따져야 한다.

설혹 메르스 대응 지침이 있었더라도 공중보건의사 출신 역학조사관들을 대상으로 실전 같은 훈련을 정기적으로 해왔는지도 따져야 한다. 이번 사태를 보면 실전 같은 훈련을 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짙다. 2009년 신종플루 이후 몇 차례나 실전훈련을 벌였는지, 이와 관련한 교육은 했는지, 했으면 언제 어떻게 교육이 이루어졌는지도 국민에게 소상히 밝혀야 할 것이다. 정부가 스스로 이를 밝히지 않으면 언론과 국회가 그 일을 담담해야 할 것이다.

역사에서 가정이란 있을 수 없지만 메르스로 인해 사망자가 속출하고 8일 현재 87명의 환자가 나왔으며 격리관찰대상 연인원만 3천 명에 가까운 지경까지 이른 메르스 사태를 보면서 최초 역학조사를 제대로 된 전문인력이 왜 맡지 않았는가 하는 안타까움이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 이번을 계기로 제대로 된 역학조사 인력 확보와 훈련이 확실하게 이루어져 국민 불신과 불안이 더는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 편집ㅣ이준호 기자



태그:#메르스, #공중보건의, #초동대처, #삼성서울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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