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고흥 포두마을 임영남 이장이 비닐하우스 안에서 오이를 따고 있다.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지난 5월 27일이었다.
 고흥 포두마을 임영남 이장이 비닐하우스 안에서 오이를 따고 있다.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지난 5월 27일이었다.
ⓒ 이돈삼

관련사진보기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지난 5월 27일이었다. 아직 오전인데도 햇살이 뜨겁다. 비닐하우스 안은 후끈후끈하다. 숨이 막힐 지경이다. 그 하우스 안에서 임영남(57·전남 고흥군 포두면)씨가 오이를 따고 있다. 오이를 몇 바구니 딴 임씨는 오토바이를 타고 장자마을 회관으로 향했다. 임씨는 장자마을의 이장을 맡고 있다.

마을회관에는 부녀회원들이 모여 점심식사를 준비하느라 부산하다. 나물을 무치고 회도 무치고 있다. 싱크대에서는 상추와 고추를 씻고 있다. 농번기 때 주민들이 한데 모여서 점심식사를 하는 마을 공동급식을 위해서다. 음식을 준비하는 주방이 오래전 마을잔치 때나 다름 없다.

"어르신! 이제 그만 하고 들어오시오. 점심 드시고 합시다."
"갠찮혀. 우리는. 이 몰골로 어디 들어 가겄는가? 어여 드셔."
"뭔 말씀이다요. 손만 씻고 얼른 오시오."

임영남 이장이 마을회관 앞 밭에서 마늘을 뽑고 있는 이재석(75) 할아버지를 불러들인다. 몇 차례 손사래를 치며 극구 사양하던 이 할아버지와 송금자(72) 할머니가 마지못해 회관으로 들어와 앉는다.

빈틈없이 가득한 상, 풍성한 식탁에 둘러앉다

고흥 장자마을에 사는 송금자 할머니가 지난 5월 27일 밭에서 마늘을 수확하고 있다. 밭이 장자마을회관 바로 앞에 자리하고 있다.
 고흥 장자마을에 사는 송금자 할머니가 지난 5월 27일 밭에서 마늘을 수확하고 있다. 밭이 장자마을회관 바로 앞에 자리하고 있다.
ⓒ 이돈삼

관련사진보기


고흥 장자마을에 사는 이재석 할아버지가 지난 5월 27일 밭에서 마늘단을 묶고 있다. 초여름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날이다.
 고흥 장자마을에 사는 이재석 할아버지가 지난 5월 27일 밭에서 마늘단을 묶고 있다. 초여름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날이다.
ⓒ 이돈삼

관련사진보기


회관에는 마을주민 스물 네댓 명이 모였다. 논밭에서 일을 하다가 온 사람도 있고, 집에 있다가 식사를 하러 나온 사람도 여럿이다. 다른 데 일보러 가거나 병원에 간 주민들 빼고는 다 모인 셈이다.

"배 고프요. 어여 듭시다."
"그럽시다."

누구랄 것도 없이 서로 청하며 식사를 시작한다. 상에는 맛깔스런 음식이 가득하다. 서대회무침과 돼지불고기가 눈에 띈다. 고사리와 취나물도 보인다. 오이냉채도 입맛을 돋운다. 오이고추와 된장, 상추도 올라와 있다. 큼지막한 상인데도 빈틈이 없을 정도다.

"마늘 뽑기 힘들제라?"
"영판 힘들그만. 비가 며칠째 안 왔능가 몰라. 땅이 너무 굳어 있어."
"작황도 많이 안 좋은 것 같습디다."
"올해는 다 그런 것 같어. 이집이나 저집이나 다. 근디 오이는 많이 땄는가?"
"인제 끝물이여라. 인건비라도 할라고 땄제라."

임 이장과 이 할아버지가 식사를 하면서 얘기를 나눈다. 그 옆의 다른 주민들도 모내기와 농산물 값에 대해 얘기하며 식사를 한다.

전라남도 고흥군 포두면 장자마을 전경. 벼농사를 지으면서 시설오이, 마늘을 주로 재배하는 전형적인 농촌마을이다.
 전라남도 고흥군 포두면 장자마을 전경. 벼농사를 지으면서 시설오이, 마늘을 주로 재배하는 전형적인 농촌마을이다.
ⓒ 이돈삼

관련사진보기


지난 5월 27일 장자마을 주민들이 마을회관에 모여서 점심 식사를 하고 있다. 들녘에서 일하다 들어온 이재석 할아버지가 가운데에 앉아 있다.
 지난 5월 27일 장자마을 주민들이 마을회관에 모여서 점심 식사를 하고 있다. 들녘에서 일하다 들어온 이재석 할아버지가 가운데에 앉아 있다.
ⓒ 이돈삼

관련사진보기


다른 쪽에 있는 방에선 할머니와 아주머니들이 모여 식사를 하고 있다. 남자들의 식사자리보다도 얘기가 소소하고 더 재밌다. 음식에 대한 맛과 평가도 잇따른다.

"이장이 갖고 온 오이고추가 맛나네."
"취나물은 누가 무쳤당가? 맛 있그만."

밥상에 올라온 남새와 나물 이야기에서부터 마을 어르신들의 건강과 안부, 자식과 손자 이야기, 마을의 대소사까지 화제가 더 푸짐하다. 한 입 가득 넣고 오물거리는 얼굴에서 맛있다는 걸 금세 읽을 수 있다.

"정말 좋은 사업이여. 들판에서 일하는 사람들 번거롭지 않아서 좋고. 혼자 사는 노인들도 많은디, 그분들 끼니 안 걸러서 좋고. 같이 모여서 식사항께 맛도 더 있고. 사는 맛이 이런 것 아니겄소?"

임영득(72) 할아버지의 얘기다. 임 할아버지는 "마을 공동급식이 농번기는 물론 농한기까지도 연중 이뤄졌으면 더없이 좋겄다"고 덧붙였다.

마을 공동체 끈끈하게 묶는 마을 '공동급식'

고흥 장자마을 주민들이 마을회관에 모여 점심 식사를 함께 하고 있다. 지난 5월 27일 고흥군 포두면 장자마을에서다.
 고흥 장자마을 주민들이 마을회관에 모여 점심 식사를 함께 하고 있다. 지난 5월 27일 고흥군 포두면 장자마을에서다.
ⓒ 이돈삼

관련사진보기


장자마을 주민들의 점심 식단. 오이고추와 상추 등 남새는 물론 서대회무침과 돼지불고기까지 푸짐하게 차려졌다.
 장자마을 주민들의 점심 식단. 오이고추와 상추 등 남새는 물론 서대회무침과 돼지불고기까지 푸짐하게 차려졌다.
ⓒ 이돈삼

관련사진보기


마을 공동급식은 농번기 때 마을주민들이 한데 모여 점심식사를 하는 사업이다. 전라남도가 농촌 부녀자들의 이중고와 부족한 일손을 덜어줄 목적으로 지난해 처음 도입했다. 시범사업을 해보고 올해부터 확대 시행하고 있다.

그동안 여성농업인들은 논밭에서 똑같이 일을 하고도 점심때 집에 들어가면 밥을 차려야 했다. 힘든 노동에다 집안일까지 하느라 잠시 쉴 틈이 없었다. 점심식사를 하고 설거지를 끝내면 다시 논밭으로 나가야했다. 혼자 사는 어르신들은 이조차 힘들어 끼니를 거르기 일쑤였다.

실제 마을 공동급식은 농사일로 바쁜 여성농업인들의 이중고와 부족한 일손을 덜어주었다. 마을주민들이 한데 모여 식사를 하면서 주민화합에도 도움을 주고 있다. 시나브로 공동체 복원에도 보탬이 된다.

고흥 장자마을 회관에서 공동급식을 하는 주민들이 식사를 함께 하며 얘기를 나누고 있다. 지난 5월 27일 장자마을 회관에서다.
 고흥 장자마을 회관에서 공동급식을 하는 주민들이 식사를 함께 하며 얘기를 나누고 있다. 지난 5월 27일 장자마을 회관에서다.
ⓒ 이돈삼

관련사진보기


"어르신들이랑 함께 식사하니까 좋죠. 솔직히 일이 바쁠 때는 점심 챙겨먹기 힘들죠. 어르신들 문안도 여쭙고요. 혼자 사는 어르신들한테도 좋은 것 같습니다. 이렇게 안부도 살피면서 같이 식사하니 밥맛도 더 좋고요."

귀농해서 오이 재배와 벼농사를 짓고 있다는 성창근(45)씨의 말이다.

마을 공동급식에 대한 만족도는 설문조사에서도 확인됐다. 전남도가 지난해 마을 공동급식을 시범 실시한 253개 마을의 대표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전체 응답자의 82%가 만족한다고 답했다. ▲ 주민유대 강화(43%) ▲ 취사부담 경감(30%) ▲ 농업생산성 향상(26%) 등에 큰 도움이 된다는 이유였다.

전남도는 올해 총 사업비 10억1200만 원을 지원, 고흥 등 전남도내 17개 시·군 506개 마을에서 봄과 가을 농번기 25일 동안 마을 공동급식 사업을 시행하고 있다.

마을회관에서 점심 식사를 한 이재석 할아버지가 수확한 마늘을 경운기에 싣고 있다. 왼쪽에 보이는 건물이 장자마을 회관이다.
 마을회관에서 점심 식사를 한 이재석 할아버지가 수확한 마늘을 경운기에 싣고 있다. 왼쪽에 보이는 건물이 장자마을 회관이다.
ⓒ 이돈삼

관련사진보기




태그:#장자마을, #공동급식, #마을급식, #포두면, #고흥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