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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니 앨리스 극장이 문을 닫기 전 마지막으로 공연한 작품은 바로 극단 후암의 <흑백다방>이었다. 국가와 국가가 아닌 도시와 도시를 연극으로 네트워크화 해서 지난 30년 동안 아시아 여러 나라의 수많은 연극과 극작가 그리고 연출가와 배우를 발굴하는 데 힘쓴 유서 깊은 극장이 최종 낙점한 폐관작에 우리나라의 작품이 선정됐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단순한 우연의 일치라고 폄하할 수도 있지만, 그날 객석의 관객과 일본 연극 관계자들의 반응은 이러한 축소지향적 의미가 '불순'한 것이었음을 역설적으로 증명했다. 그 안목이 정확한 것이었음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흑백다방>은 귀국하자마자 제2회 서울연극인 대상에서 우수작품상과 연기상을 수상했다. 차현석 대표와의 만남은 일본 현지 취재를 통한 연극인 인터뷰의 마지막이다.

니시무라 히로코 선생님과 타이니 앨리스 극장
벽간판 앞에서 포즈를 취한 차대표
▲ 일본 타이니 앨리스 극장 앞에서 니시무라 히로코 선생님과 타이니 앨리스 극장 벽간판 앞에서 포즈를 취한 차대표
ⓒ 이형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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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차 대표님 안녕하세요? 우선 뒤늦게나마 <흑백다방>으로 우수작품상과 연기상 수상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차: 네. 고맙습니다. 주변에서 많은 분들이 도와주시고 관심 가져 주셔서 그렇게 된  것 같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모든 영광을 그분들한테 돌립니다.

나: 타이니 앨리스 페스티벌에서 마지막 공연을 하는 영광을 안으셨는데 연출자로서 일본 관객들한테 작품이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차: 아시다시피 <흑백다방>은 80년대의 한국을 소재와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군사  정권하에서 민주화 요구화가 드높던 시절의 가해자와 피해자를 다룬 것인데 세월이 흐른 후 그들의 변화를 추적하면서 드러나는 보편성이 국경을 넘어 공감대 형성을 한 것이 아닌가 합니다.

나: 영화화 하신다는 걸로 알고 있는데 연극과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차: 큰 틀은 변하지 않겠지만 우선 장르의 차이로 인해 문법이 달라지지 않을까 합니다. 설정은 같지만 사건 전개과정에서 다른 등장인물이 나올 겁니다. 그리고 시공간의 비약과 압축이 있을 겁니다. 아무래도 가공이 가능하기에 이야기를 다른 각도에서 풍성하게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나: 15년간 줄기차게 연극계에 몸담고 활동하신 걸로 아는데 <흑백다방>을 영화화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차: 작가마다 연출자마다 다르기는 하지만 두세 줄 정도의 메모가 작품으로 승화되기도 합니다. 주변에서 영화로 만들면 좋겠다는 반응이 많았고 상대적으로 소재 측면에서 사건 중심의 영화적인 소재가 많다는 생각이 들어서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나: 연출보다는 좋은 작품(희곡)에 대한 갈망 때문에 연극을 하신다고 하셨는데 연출보다 희곡에 대한 관심이 높은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차: 다음 세대에 대한 소명과 배려 그리고 관심입니다.

나: 다음 세대란?
차: 저의 손자와 손녀 뻘(웃음)이겠죠.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류가 지금처럼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기록 때문이 아닌가 하는데 유한한 삶을 사는 우리가 후세에게 물려줄 수 있는 가치 있는 것 중의 하나가 문학이 아닐까 합니다.

나: 연극을 하지 않았으면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 것 같으세요?
차: 작가는 평생 저의 로망입니다. 그렇지만 타고난 소질이 뛰어나지 못해요. (웃음) 제 스승이신 오태석, 이윤택 선생님은 말할 것도 없고 제 주변에는 글을 잘 쓰는 선후배와 동기들이 참 많습니다.

나: 그럼 차 대표님이 눈여겨보는 극작가와 연출가는 어떤 분들입니까?
차: 앞에서 잠깐 언급한 대로 오택석 선생님과 이윤택 선생님을 필두로 서울예대에서 사제간의 인연을 맺은 윤대성 선생님 등이십니다. 윤대성 선생님은 이번 밀양 연극제에서 뵈었는데 제가 졸업 당시 발표한 작품을 기억해 주셔서 고마움을 넘어서 너무나 황송했습니다.

학문을 하면서 사제가 인연을 맺은 공간이 학교인데 제가 극단 창단한 지 올해로 만 14년차입니다. 그런데 제게 가르침을 주셨더 분들의 제자라는 것이 뿌듯하면서도 동시에 그로 인한 무게감도 만만치가 않습니다. 의무감과는 또 다른 책임감을 느끼는데 저도 비로소 이제야 세상을 조금 알 것 같습니다. (웃음)

타이니 앨리스 극장에서 공연 전 마지막 리허설하는
배우 정성호
▲ 공연전 마지막 리허설을 하는 정성호 타이니 앨리스 극장에서 공연 전 마지막 리허설하는 배우 정성호
ⓒ 이형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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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적 DNA를 바탕으로 사회기초 통념과 관념을 탐구하고 싶어

나: 이번 제 36회 서울연극제에서 연극인들의 위기감을 심화시킨 아르코 대관문제로 한국 연극의 위기감이 심화되는데 차 대표님은 우리나라 연극이 앞으로 나아갈 바를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차: 매체와 미디어의 발달이 연극 고유의 독자적 기능을 나누는 것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아시다시피 연극은 기초 예술과 학문으로서 기본적으로 이 시대의 거울입니다.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는 기능 담당이자 인간에 대한 다양한 사고의 보고인 셈이죠. 거기에는 인류의 보편적인 인간의 속성이 내재되어 있는데 바람이 있다면 인문학적 DNA를 바탕으로 사회기초 통념과 관념을 탐구해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것을 생각하는 국가와 민족은 위기와 시련에 대해 대처하는 자세와 방법이 다릅니다. 실제로 셰익스피어가 작품 활동을 하던 시절의 엘리자베스 여왕은 스페인의 무적함대를 격파했습니다. 이것은 곧 기초학문이 강한 나라는 부강해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죠. 저는 그것이 앞으로 우리나라와 사회를 견고함이 아닌 건강함으로 긍정적인 유도를 하리라 믿습니다.

나: 연출가이자 극작가로서 일본연극과 우리나라 연극의 서로의 장단점 비교를 부탁합니다.
차: 일본은 해양성 기후고 문관보다는 무관의 나라이며 기록과 역사에 관심이 많은 나라입니다. 거기에 비해 조선은 문약(文弱)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문관에 치우친 나라였습니다. 그런데 기록이라는 것은 권력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소통을 위한 일부 사람들만의 몫이었습니다. 정보통제를 통한 독점이라고나 할까요? 가치의 공유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이런 특성은 두 나라의 연극에 커다란 영향을 미칩니다.

우선 극을 하기 위해서는 일본은 비가 많이 오는 관계로 야외는 적합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실내에서 했는데 그러다보니 배우의 연희적 능력보다는 텍스트의 구성과 논리가 중요했죠. 바로 이 점이 우리나라보다 일본의 극작이 더 발달한 이유가 아닌가 합니다.

거기에 반해 우리나라는 야외에서 하다 보니 즉흥적으로 대사를 만들어 내는 융통성이 발달하면서 대본 없이 하는 연희능력의 DNA가 형성된 것이 아닌가 합니다. 니시무라 히로코 선생님이 자국 배우들한테 한국 배우들의 연기를 훔치라고 주문했다는 것이 저는 이런 의미가 아닌가 합니다.

확실히 우리나라 배우들의 연희 능력이 뛰어나기는 합니다. 융통성과 즉흥성, 순발력이라고 할 수 있는 장점들이 빛을 발휘하는 것이 기후와 기록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생각입니다. 물론 이것은 제 개인적인 견해입니다. 잘 좀 써 주세요. (웃음)

나: 한국 연극의 기원은 그 뿌리가 굿이라고 하는데 차 대표님은 거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차: 고대 그리스에서 제를 지내는 것이 연극의 기원인데 한국적 연극의 기원은 굿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전통을 복원하고 재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현대 공연 사회에서는 무대에서 그것을 보여주어야 하는 것이 중요한데 이 부분은 쉽지가 않습니다.

우선 굿 자체는 야외에서 하기 때문이고 아름답기는 하지만 소리가 너무 크지 않나 합니다. 실내의 원형무대도 있기는 하지만 마지막 부분에서 관객이 모두 객석에서 무대로 올라가는 것도 어려움이 있습니다. 굿 자체보다는 연극에서의 모든 실험이란 결국 정신이 살아있어야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연희단 거리패, 게릴라 극장에서 하는 공연들을 보면 배우들은 메소드를 끊임없이 전통에서 찾으려고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인지 30년 동안 그 역사를 들여다보면 독자적인 메소드와 만들어진 것 같아요. 그것은 이윤택 선생님이 후대의 저희에게 주는 선물이라고 생각합니다. 한 대가의 진가는 다음 생에 발휘를 하지 않을까요? 나무가 100년 후에 울창해지는 것처럼.

격동의 역사를 겪었던 우리나라는 분명 변화하면서 얻은 것 못지 않게 잃은 것도 있는데 문제는 잃어버려서는 안 되는 것을 잃어버린 것이 있다는 겁니다. 거기에 반해 일본은 옛것과 새것이 비교적 공존을 하는 것 같아요. 전통과 현대의 조화라고나 할까요? 교토에서 그런 걸 많이 느꼈습니다. 부러웠습니다.

타이니 앨리스 극장에서 흑백다방이 끝난 후 릴레이
토크쇼를 하는 한일 연극 관계자들과 차대표
▲ 릴레이 토크쇼 타이니 앨리스 극장에서 흑백다방이 끝난 후 릴레이 토크쇼를 하는 한일 연극 관계자들과 차대표
ⓒ 이형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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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풀과 같은 그런 무명의 존재가 오히려 꽃을 피운다!

나: 셰익스피어를 존경하신다고 하셨는데 연극인으로서 이것만큼은 성취해야 할 것이 있으신가요?
차: 저의 필모그래피에 셰익스피어가 많아요. 그것도 4대 비극을 다 했더라고요. 재연공연과 앵콜공연을 하면서 많은 사람을 죽였어요(웃음). 어느 날 문득 너무 죽음을 쉽게 정의하고 소환한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죽음은 살아있는 우리가 정의 내린 것인데 말입니다. 그래서 살아있는 사람들한테는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가 더 중요하다는 생각입니다. 흑백다방 보셔서 아시겠지만 앞으로 제 무대에서는 아무도 안 죽습니다. 죽었다 하더라도 죽는 사람이 주인공이 돼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해방 전후로 한국 전쟁, 산업화와 민주화 및 IMF, 그리고 여전한 남남갈등과 서브 프라임 사태 이후 다시 경제가 침체하면서 정치적으로 정서적으로 공황의 상태에서 방황하는 사람과 세상에 대해 눈치 보지 않고 떳떳하게 지난 한 세기에서 다양한 소재를 포착해 오늘, 지금과 일맥상통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이것이 연극이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권리혜택이 아닌가 합니다. 정치인이나 학자도 그렇게 말할 수 없지만 예술가는 꿈꿀 권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 꿈은 공동체가 이루어야할 꿈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 마지막으로 하실 말씀은?
차: 타이니 앨리스에 간 걸 궁금(의문을 제기하는)해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문 닫는 극장에 가서 명성을 얻기 위한 프로필이 필요해서 연극 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하고 말입니다. 그렇지만 그건 천만의 말씀입니다. 제가 현장에서 릴레이 토크할 때 '인간은 명분을 위해서 목적을 만들기도 하고 목적을 위해서 명분을 만들기도 한다. 무엇이 먼저인가는 자신에게 물어보면 정확히 알 수 있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리고 내가 거기에서 공연을 한 명분이 무엇인가? 목적이 무엇인가?

제가 타이니 앨리스를 만일 10년 전에 만났더라면 아마 극장을 만들지 않았을 겁니다. 극장 건물 형태나 객석수, 간판의 크기, 위치, 조명, 주차장 유무, 기타 등등. 다 이런 거 필요 없는 겁니다. 사람은 죽으면 이름이나 남지만 세속적 잣대에서 그런 것들은 세월 지나면 전부 폐기물이 되버립니다. 그런 외형보다는 주어진 기간 안에 무엇을 어떻게 했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꼭 역사에 남기지 않아도 됩니다. 다음 세대를 생각하면 됩니다. 다음 세대가 기리면 그게 역사가 되는 겁니다.

무명의 존재를 생각하는 마음! 니시무라 히로코 선생님이 있었기 때문에 한일 양국간에 연극 교류가 얼마나 활성화가 잘 되었던 것인가를 생각해보면 대통령이나 총리나 기업간의 관계에 의한 것보다도 민간의 이런 작은 활동이 이념과 언어를 떠나서 정작 많은 사람들이 가슴으로 만날 수 있음을 느낍니다.

제가 릴레이 콘서트 때 작은 콘센트 보여드렸잖아요? 220v 짜리의 한국 전자제품을 그 콘센트 없이는 일본에서 쓸 수 없었다고 말한 것 기억나시죠? 220v를 110v로 전환하는 것. 민간적 차원에서의 외교적 기능은 하찮아 보일 수 있지만 정작 들풀과 같은 그런 무명의 존재들이 오히려 큰 역할을 하는 게 아닐까 싶어요.

덧붙이는 글 | 후암에도 실을 예정입니다



태그:#차현석, #후암, #흑백다방, #굿, #타이니 앨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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