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기사수정 : 19일 오후 6시 39분]

류희인 전 청와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차장이 15일 서울 광화문 드림엔터에서 열린 국가미래전략 토론회에서 역대 정부의 위기관리시스템을 비교해 설명하고 있다.
 류희인 전 청와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차장이 15일 서울 광화문 드림엔터에서 열린 국가미래전략 토론회에서 역대 정부의 위기관리시스템을 비교해 설명하고 있다.
ⓒ 김시연

관련사진보기


"재난 관리 책임은 국무총리에게 넘기고 대통령은 전통적인 안보만 챙기겠다고? 잘못된 생각이었다."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국가 위기관리 시스템에 구멍이 드러났다. 정치, 사회, 경제, 과학기술 등 각 분야 전문가들이 매주 모여 30년 뒤 대한민국 미래 비전을 토론하는 자리에 '사회 안전 전략'이 추가된 것도 위기관리시스템이 빠진 선진국 진입은 허상으로 보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재난 컨트롤타워... 국무총리에 넘겨선 안돼"

지난 15일 오후 광화문 드림엔터에서 KAIST(한국과학기술원) 미래전략대학원 주최로 열린 국가미래전략 토론회에선 공교롭게 참여정부를 대표하는 두 위기 관리 전문가가 만났다. 류희인 전 청와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차장 겸 위기관리센터장과 산업안전보건연구원장을 지낸 박두용 한성대 기계시스템공학과 교수가 그 주인공이다. 

두 사람은 지난해 4월 세월호 사고 이후 청와대의 재난 컨트롤타워 기능 복원을 줄기차게 주장해 왔다. 결국 지난해 국민안전처가 신설되고, 청와대 국정기획수석 밑에 재난안전비서관을 두는 등 일부 기능이 복원되긴 했지만, 국방, 외교, 통일 같은 전통적인 안보와 자연-인적 재난을 구분하는 이명박 정부 시절 관행이 쉽게 바뀌지 않고 있다.

노무현 당시 대통령 당선자가 지난 2003년 2월 21일 오전 인수위에서 열린 마지막 전체회의에서 대구 지하철 참사 사건에 대한 추모 묵념을 하고 있다.
 노무현 당시 대통령 당선자가 지난 2003년 2월 21일 오전 인수위에서 열린 마지막 전체회의에서 대구 지하철 참사 사건에 대한 추모 묵념을 하고 있다.
ⓒ 주간사진공동취재단

관련사진보기


예비역 공군 소장이기도 한 류 전 사무차장은 "참여정부는 출범 직전 혜화전화국에서 발생한 사이버 대란과 대구 지하철 사고를 계기로 재난 안전 관리를 정부 중요 업무로 설정하고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처에 위기관리센터를 만들어 재난 대응을 강화했다"면서 "5년 뒤인 2008년 2월 남대문(숭례문) 전소도 국가 상징물 손실이란 관점에서 결국 국가 위기였지만 이명박 정부는 오히려 NSC 사무처를 해체하고 청와대가 갖고 있던 재난 컨트롤타워 기능을 행정안전부로 보냈다"고 지적했다.

류 연구위원은 "재난 사고의 법적 책임자는 국무총리고 대통령은 전통적인 안보만 하겠다는 건 잘못된 생각"이라면서 "우리나라는 대통령 중심제 국가이고 대통령이 군통수권자여서 세월호 참사나 원전 사고 같은 국가 재난을 국무총리에게만 맡겨놓고 대통령이 팔짱만 껴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1986년 옛 소련 체르노빌 원전 사고처럼 결국 군을 동원해 사고를 수습해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는데 이명박 정부 초기엔 청와대에 이런 긴급한 재난 상황을 보고할 조언자조차 두지 않았다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 들어서도 '행정안전부'를 '안전행정부'로 이름만 바꿨을 뿐 청와대가 재난 컨트롤타워 기능은 포기한 결과 세월호 참사를 더 키웠다.

"이명박 정부, 재난 컨트롤타워 포기... '해양사고 매뉴얼' 실종" 

이명박 당시 대통령 당선인과 인수위원들이 지난 2008년 2월 11일 오전 서울 숭례문 화재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 당선인과 인수위원들이 지난 2008년 2월 11일 오전 서울 숭례문 화재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 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

관련사진보기


류 전 사무차장은 지난해 4월 세월호 참사 직후 '해양사고 매뉴얼 실종 사태'를 떠올렸다. 참여정부 당시 청와대에선 국가 위기관리를 33개 유형으로 나눈 뒤 구체적인 정부부처 대응을 담은 2800여 개 행동 매뉴얼을 만들어 차기 청와대에 넘겼는데 이명박 정부는 이 가운데 2000여 개를 행정안전부로 보냈다는 것이다.

"세월호 사고 한 달 뒤 (NSC에서 함께 일했던) 국장이 대형 인명 피해 해양사고 매뉴얼을 갖고 있느냐고 내게 묻더라고요. 우린 이미 전산화해서 (MB 정부에) 다 넘겼는데 당시 국회의원이 (안전행정부에) 해양 사고 매뉴얼을 요구하니까 찾다 못 찾아 우리에게 연락이 온 겁니다. 이명박 정부에서 해양수산부를 없애 해양 사고 매뉴얼을 관리할 주무부처까지 사라졌는데 공무원들이 캐비닛에 처박아 놓고 제대로 챙겨 보겠느냐고요. 이게 두 정부의 차이였어요." 

그나마 세월호 참사 이후 박근혜 대통령도 뒤늦게 재난안전비서관을 신설하는 등 재난 컨트롤타워 기능을 일부 복원했지만 국가안전보장위원회는 여전히 재난을 외면한 채 국방, 외교, 통일 등 전통적 안보 역할만 고수하고 있다.

류 전 사무차장은 "국가 위기관리는 머리 역할을 하는 컨트롤타워와 몸통인 집행기관, 수족에 해당하는 현장 조직 3개 구조가 조화를 이뤄야 한다"면서 "청와대가 컨트롤타워를 맡고 집행기관인 국민안전처 밑에 지방환경청 등 지방 조직과 지방자치단체 등 수족 기능을 활성화시켜야 한다"고 밝혔다.

"박근혜, 선악 이분법에 경제적 규제-사회안전 규제 구분 못해"

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 한 달 전인 지난해 3월 20일 오후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제1차 규제개혁 장관회의 및 민관합동 규제개혁 점검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 한 달 전인 지난해 3월 20일 오후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제1차 규제개혁 장관회의 및 민관합동 규제개혁 점검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 청와대

관련사진보기


한국안전학회 부회장인 박두용 교수는 이처럼 대통령의 국정 철학에서 비롯된 국가재난관리시스템 차이와 규제 완화가 맞물려 재난 위험과 사회 갈등을 더 키우고 있다고 지적했다.

참여정부는 지난 2007년 우리나라 사고 총량을 파악하는 등 '사고 관리'에 나섰다. 15세에서 65세 사이 직업 가능 인구를 잘 보존하는 것도 저출산-고령화 대책으로 봤기 때문이다.

박 교수는 "2006년 기준 산업, 가정, 교통 재해 등 사고 건수는 1288만 건이고 직접 비용이 27조2천억 원, 치료 비용만 4조 원에 달했다"면서 "이처럼 사고가 많은 이유는 각종 원전, 지하철 1, 2호선 전동차처럼 각종 설비와 시설, 차량이 노후화되고, IMF 이후 외주화와 비정규직 증가로 현장 기능-기술 인력 시스템이 붕괴됐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과거 세월호 같은 대형 참사가 발생하면 국민 성금이나 보상으로 해결됐지만 1인당 국민소득 2만 달러를 넘어가면 동정적인 보상을 거부하고 책임있는 사람의 배상을 요구하게 된다"면서 "우리나라 국민의 정신적, 심리적 요구 수준은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 수준인데 안전 인프라는 1만 달러 수준이고 위험은 점점 고도화 되는데 규제는 점점 완화되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특히 김영삼 정부 '규제 합리화'에서 비롯된 규제 완화가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규제 개혁'을 거쳐 이명박-박근혜 정부에 이르러서는 규제를 '선악' 이분법으로 접근해 거의 맹목적으로 규제 완화를 추진하는 단계라고 꼬집었다.

박 교수는 "이명박 정부는 규제를 '전봇대 뽑기', 박근혜 정부도 '악'으로 규정하고 이분법적으로 접근하다보니 경제적 규제와 사회적 규제를 분리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규제개혁위원회를 경제행정 규제개혁위와 사회안전 규제개혁위로 구분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아울러 박 교수는 "세월호 사고는 실수에서 비롯된 게 아니라 평형수 부족과 화물 과적 등 사람이 죽을 수 있다는 것 알면서도 저지른 '나쁜 사고'"라면서 "사고를 차별화해 알고도 저지른 '나쁜 사고'는 가중 처벌하고, 몰라서 발생한 '좋은 사고'는 알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 편집ㅣ최은경 기자



태그:#세월호 참사, #위기관리시스템, #대구 지하철 참사, #류희인, #박두용
댓글27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2,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마이뉴스 사회부에서 팩트체크를 맡고 있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