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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사고택의 오월의 풍경입니다.
 추사고택의 오월의 풍경입니다.
ⓒ 강미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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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둣빛 신록이 우거져 가는 5월에 충남 예산군 신암면 추사 고택로 261에 있는 추사 고택을 방문했습니다.

이곳은 자연의 사계절 아름다움과 단아한 고택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곳입니다. 특히 추사의 뜰을 거닐며 추사 김정희 선생의 그림과 글귀들을 읽으면 고매한 옛 선비의 정신을 동경하게 됩니다.

추사 고택은 추사 김정희 선생의 증조부인 월성위 김한신이 영조 대왕의 사위 화순옹주의 부군이 되면서 예산과 서울에 저택을 하사 받은 것이라고 합니다. 월성위궁은 서울의 저택으로 김정희가 관직 활동을 할 때 지냈던 곳이고 조상의 터전이 있는 추사 고택은 성묘와 독서를 위해 자주 왕래하여 머물렀다고 합니다.

      추사고택의 사랑채
 추사고택의 사랑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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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사고택 경내에 들어서면 나무기 둥마다 붙어 있는 추사 김정희의 서체의 글귀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추사 김정희는 조선 후기(정조~철종)의 대표적인 금석학자, 고증학자, 실학자, 서예가, 화가였습니다. 김정희는 어려서 부터 글을 잘 지었고 7세 때 '입춘대길'이라는 글을 써서 대문 앞에 붙이는 바람에 지나가는 체재공이 보고는 감탄해 김정희가 앞으로 대가가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어려서부터 박제가의 가르침을 받은 김정희는 종3품까지 벼슬이 오르고 흥선대흥군에게 글을 가르치는 스승이 되기도 했습니다.

    추사고택 나무기둥에 걸려있는 추사김정희의 글
 추사고택 나무기둥에 걸려있는 추사김정희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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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사고택 나무기둥에 걸려 있는 글귀에는 "세상에서 두 가지 큰일은 밭 갈고 독서하는 일이다", 그리고 " 천하에서 제일가는 사람은 나라에 충성하고 부모에게 효도하는 사람이요" 라는 추사의 말씀입니다.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좋은 반찬은 오이나물과 두부 생강이라는 소박한 글귀도 있습니다. 현대의 산업사회 속에서 바쁘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겐 별 대수롭지 않은 말들 같지만, 추사의 뜰을 거닐며 추사 김정희 선생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면 마음이 고요해지고 평정을 얻게 됩니다.

마침 학교 선생님의 인솔로 태안에서 어린 학생들이 이곳에 견학을 왔습니다. 하지만, 시간때문인지 선생님 따라 바쁘게 돌아보고는 사진 찍기에 열중합니다. 이곳에 상주하는 해설사의 도움을 받아 자라는 학생들에게 좀 더 구체적이고 진지한 추사 선생님의 정신과 추사 고택의 유례의 설명을 들으면 아이들에게 마음에 양식이 될 것입니다.

추사고택에서도 학생들이 적극적인 체험 활동을 할 수 있는 제도가 마련되었으면 합니다. 체험관에 들러서 왜 학생들이 추사의 서예나 탁본체험을 안 하고 가느냐고 물었더니 일 회당 들어가는 경비 때문에 그러는 것 같다고 합니다.

     추사고택 사랑채에 걸려있는 세한도
 추사고택 사랑채에 걸려있는 세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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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희 선생은 생전에 추사 고택 사랑채에서 독서를 하고 지내며 선비들을 만나 학문의 토론을 했습니다. 이곳 천장 가까이에 걸려 있는 유명한 세한도는 제주도 유배 시에 그의 제자 이상적이 스승이 좋아하는 책들을 중국에서 구해다가 선물을 준 것에 감동해 그려준 그림입니다. "날씨가 추워진 뒤에야 소나무와 잣나무의 푸르름을 알았네" 소나무와 잣나무의 지조에 비유한 제자와 스승 간의 변함없는 의리를 그림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그 힘든 시기에 스승과 제자의 변함없는 의리가 그림 속에서 빛이 되어 남아 있습니다. 그 당시에 제자인 역관 이상적은 북경에서 가져온 귀한 책들을 잘나가던 벼슬아치들에게 바쳤으면 출세할 법도 한데 옥살이하는 그의 스승 김정희에게 두 번이나 선물로 드렸던 것입니다.

      추사고택의 뒷뜰입니다
 추사고택의 뒷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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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희 선생님은 1830년 생부 김노경의 윤상도 옥사에 연류되여 고금도에 유배됐습니다. 곧 풀려 났으나 헌종 1840년에 다시 윤상도의 옥사에 관련 제주도에서 8년간 유배생활을 했습니다. 그 이듬해에 다시 예송논쟁으로 함경북도 북청으로 유배되었다가 1853년에 풀려났다고 전해집니다.

비록 김정희는 감금되고 풀려나기를 반복하는 13년이라는 유배생활을 했지만, 희망을 잃지 않으며 그의 학문의 깊이와 수양에 정진했습니다. 헌종1840년 윤상도의 옥사에 연루되어 8년간 제주도 유배생활 동안에 삼국시대부터 내려오던 한국의 서법을 연구해 그만의 독창적인 필체 추사체를 탄생시켰습니다.

고난 속에서도 학문연구에 정진한 그의 정신력과 숭고한 업적에 고개가 숙여집니다. 이 외에도 금석학 연구로 북한산 진흥왕 순수비를 고증하는 등 서예, 시문, 묵화를 남겼으며 난초, 대나무, 등 산수화를 잘 그렸습니다. 추사 고택 근처에 있는 추사 기념관에 가면 그의 업적을 볼 수가 있습니다.

영조의 딸 화순옹주가 출가한 집안에서 태어난 김정희의 집안에는 대대로 명필이 많았다고 합니다. 과거에 급제한 김정희는 서울에 있는 그의 증조부 월성위궁에서 생활했지만, 애석하게도 그가 34살 되는 해에 생모가 돌아가시자 비탄하여 고향 예산으로 내려와 한때 불교에 심취했습니다. 추사고택에서 가까운 곳인 화암사에서 불교에 정진하며 수행을 했다고 전해집니다.

추사 김정희는 운 좋게도 자제군관의 직책으로 아버지 김노경을 따라 청나라에 건너가서 연경의 학자 옹방강과 완원을 만나 그의 학문 활동에 큰 도움을 받게 됩니다. 청나라에서 고증학과 금석학을 배운 김정희는 북한산 신라 진흥왕 순수비를 발견하고 판독하였습니다.

     추사고택을 돌아보고 가는 대학생들입니다
 추사고택을 돌아보고 가는 대학생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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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 학생들도 우르르 몰려 왔다가 추사고택을 돌아보고 나갑니다. 학생들이 추사고택에 와서 무엇을 보고 느끼고 돌아가는지 일일이 물어 보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 기회에 추사 김정희 선생님의 업적과 생애 그리고 그분의 정신에 대해 배우기를 바랍니다.

     추사고택의 야외쉼터
 추사고택의 야외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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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처에 추사김정희 묘소가 있는 쉼터에서 잠시 쉬어갈 수도 있습니다.

     추사고택담장위의 단풍잎의 운취
 추사고택담장위의 단풍잎의 운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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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초록빛이 물드는 오월에 이끼 앉은 돌기와에 살포시 내려앉은 나뭇가지 잎사귀가 싱그럽습니다. 세월은 가고 인걸은 온데간데 없지만, 그의 흔적과 발자취만이 변함없는 자연속에서 나그네의 마음에 양식이 되어 새록새록 피어나고 있습니다. 호랑은 죽어서 가죽을 남기는데 사람은 무얼 남기고 갈 것인지 생각해 보는 하루입니다.

    추사고택옆에 있는 추사김정희의 묘소
 추사고택옆에 있는 추사김정희의 묘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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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겨울에는 하얀 눈꽃이 추사 김정희 선생님의 묘소와 소나무 바위를 하얗게 장식했지만 지금은 연초록 잔디가 입혀지고 싱그러운 녹음이 점차 우거지고 있습니다. 바쁜 삶의 가운데도 자녀분들과 함께 이곳을 둘러보시면 새로운 에너지를 얻게 되고 나의 삶을 돌아보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태그:#추사고택의 봄풍경, #세한도, #추사김정희의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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