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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평소에 사용하는 스마트폰이 어느 순간 작동을 멈췄을 때, 의외로 큰 고통을 준다. 강박으로 인한 혼란이나 초조 때문이다. 하지만 다시 켜지고 나면 고통은 말끔히 사라진다. 지난 11일 억울한 환자들이 모인 이곳에서 듣게 된 것은 절대 멈춰선 안 될 기계가 어떤 이유로 세 번을 멈췄다는 이야기였다. 세 번의 부품교환을 거쳐서 다시 가동했지만 상황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상태였다.

환자단체연합회는 지난 11일 오후 7시 서울 시청역 근처 '스페이스 노아'에서 제15회 '환자샤우팅카페'를 열었다. '환자샤우팅카페'는 최현정 아나운서가 진행하고, 권용진 국립중앙의료원 기획조정실장, 구영신 의료전문 변호사, 안기종 환자단체연합회 대표가 '솔루션 자문단'으로 참여했다.

제15회 '환자샤우팅카페'는 '어처구니없는 에크모 세 차례 고장 사망사건' 및 '억울한 폐암치료제 잴코리 비보험 사건'을 주제로 두 시간 동안 진행됐다. 이날 출연자들의 공통점은 어머니로서 자식에게 미안한 마음을 전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두 사건 모두 현행 제도 하에서 명쾌하게 답을 찾기 어려운 문제로 출연자와 자문단 간의 논의가 심도있게 진행됐다. 또한 현 제도의 문제점 역시 날카롭게 지적됐다.

폐암치료제 '잴코리' 비보험 사건

5월 11일 제15회 환자샤우팅까페에 출연해 잴코리 약재 건강보험 적용 대상에서 배제된 사연을 이야기하는 신정덕 씨
 5월 11일 제15회 환자샤우팅까페에 출연해 잴코리 약재 건강보험 적용 대상에서 배제된 사연을 이야기하는 신정덕 씨
ⓒ 좌-환자단체연합회/우-화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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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암 말기 진단을 받은 신정덕(71)씨는 연말이면 보험이 된다는 담당 의사의 말을 믿고 한 달 약값이 1000만 원에 육박하는 '잴코리'(Xalkori, 성분명: 크리조티닙)라는 고가의 폐암치료제를 복용하기 시작했다. 약은 효과가 있었고 1차 치료제로 2년 넘게 복용해왔다.

그렇게 지금까지 약값으로 지출한 돈이 3억 원에 육박했다. 지난해부터 도무지 금액이 감당이 되지 않아서 의사의 권유로 하루에 한 알만 먹었는데, 예전에 비해 큰 차이를 보이지는 않았다.

약이 매우 고가임에도 환자가 굳이 잴코리를 복용한 이유는 담당 의사가 '건강보험이 적용되면 5%만 부담하게 될 것이고, 조만간 제약사와 보건당국간 협의가 이뤄질 예정이라 오래 기다리지 않아도 될 것 같다'고 설명했기 때문이다.

다행히 그 말처럼 올해 5월 1일부터 폐암치료제 '잴코리'가 건강보험 적용이 돼 한달 약값 중 5%만 부담하게 된다고 해서 한시름 놓게 됐다. 그런데 보건복지부에 문의해 보니 "잴코리는 2차 치료제로 건강보험 적용이 되기 때문에 신정덕씨처럼 1차 치료제로 잴코리를 사용한 경우에는 건강보험 적용을 받을 수 없다"라는 답변을 들었다. 그 말은 환자와 그 가족에게 청천벽력이나 다름 없었다.

신씨는 "나는 자식들에게 엄마가 아니다, 짐이 되는 정도가 아니라 원수가 됐다"라고 전했다. 그는 "차라리 병을 모르고 살다 아무 약도 안 먹고 죽었더라면 더 편했을 것"이라며 사람을 죽이는 게 암이 아니라 돈이 돼버린 현실에 대해 분노했다.

이날 참석한 자문단은 신씨를 도와줄 수 있는 뾰족한 방법이 없다는 점에 안타까워했다. 자문단으로 참석한 구영신 의료전문 변호사는 "이번 사건이 법의 해석이나 조문의 문제가 아니라 정책 결정의 문제이기 때문에 해결하기 쉽지 않다"라고 말했다.

환자단체연합회 안기종 대표 또한 "제도만 가지고는 아무런 해법이 없는 게 현실"이라고 분석했다. 그렇지만 "보건복지부에 동일한 피해를 입은 폐암 환자 실태가 어느 정도 되는지 요청하는 것"을 시작으로 "해결할 방법을 찾아보는 노력을 계속 해보자"라고 제안했다.

국립중앙의료원 권용진 기획조정실장은 "잴코리는 위험분담계약제를 통해 급여에 등재가 됐기에 현 제도상으로는 3년 동안 급여기준을 바꿀 수 없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잴코리의 건강보험 등재 이전에 복용하면서 효과를 보아온 환자들에게마저 똑같은 기준을 적용해 건강보험 적용을 배제하는 것은 문제"라면서 환자단체와 함께 적극적으로 문제를 풀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에크모 세 차례 고장 사망사건

심장에 장착된 에크모(ECMO, 체외막산소화장치)가 3번 고장난 후 사망한 아이의 사진을 꺼내보이며 자신의 사연을 이야기하는 김혜영 어머니
 심장에 장착된 에크모(ECMO, 체외막산소화장치)가 3번 고장난 후 사망한 아이의 사진을 꺼내보이며 자신의 사연을 이야기하는 김혜영 어머니
ⓒ 좌-환자단체연합회/우-헤럴드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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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우팅'을 하기 위해 자리에 앉은 두 번째 출연자인 김혜영씨는 시작부터 목이 메어 제대로 말을 잇지 못했다. 

대구에 사는 그녀는 지난해 10월 둘째 아이를 출산했다. 그러나 출산한 지 일주일이 됐을 때 정기검진 차 내원한 병원에서 아이가 선천적으로 나타나는 희소 심장병인 HLHS(좌심실형성부전증후군)이 있다는 충격적인 진단을 받아야 했다.

아기는 서울의 한 대학병원으로 전원됐고 한 차례의 수술 후 에크모(ECMO, 체외막산소화장치)라는 기계를 달게 됐다. 이 기계는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을 살린 심장과 폐의 기능을 대체할 수 있는 인공심폐 의료기기다. 하지만 문제는 이 기계에서 발생했다. 

담당 교수는 수술한 지 열흘 만에 아기 엄마에게 면담을 요청했고, 아이에게 사용 중인 에크모의 바이오펌프 부품이 세 차례 고장났었다는 사실을 전했다. 그동안 아이가 빨리 낫길 바라며 하루에 30분씩 단 두 번밖에 없는 면회를 하기 위해 대구서 서울까지 오간 시간들을 한순간에 무너뜨리는 말이었다.

이후 아이는 합병증까지 생겼고 결국 태어난 지 한 달 만에 피부괴사까지 진행돼 소생불가 진단을 받았다. 그토록 안아보고 싶었던 아기는 한 달 만에 딱딱한 모습으로 엄마 품에 안기게 됐다. 그녀는 아이를 먼저 떠나보낸 죄책감과 부끄러움 그리고 사무치는 그리움 때문에 샤우팅 내내 터져 나오는 울음을 참아야 했다.

그녀는 "담당 교수가 '바이오펌프 균열은 지금까지 한 번도 없었기 때문에 연속으로 세 번이나 발생한 것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제조사 측에서 책임을 지고 보상을 할 테니 기다려보자'고 했다"라고 전했다. 하지만 제조사 측에서는 자체 조사 결과 "에크모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고 말하고 있다"라는 입장이었다. 그녀는 "제조사는 '이번 문제는 기기 사용자인 병원이 매뉴얼에 적혀있는 권장 사용 시간을 지키지 않고 과부하가 걸릴 정도로 오래 사용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고 덧붙였다.

식약처 조사에서도 제조사 측과 동일하게 사용자인 병원이 과도하게 기계를 사용함으로써 기기에 문제가 생겼을 가능성이 높다는 결과가 나왔다. 하지만 여전히 병원 측과 제조사 측은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있어 문제는 해결점을 찾지 못한 채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그녀는 "이번 사고에 대해 병원에서는 알아보려고 하지도 않고 제조사는 이미 병원 측 과실로 몰면서, 왜 다들 모르는 척 하려고 하는지 이해가 안가고 답답하기만 하다"라고 하소연했다. 그녀는 "병원이나 제조사에 책임을 물으려는 게 아니라, 단지 왜 우리 아기가 죽게 되었는지 그 원인을 알고 싶다"라고 말했다.

식약처 위해정보공개란에 게재된 해당 에크모 기기의 장착된 펌프의 사용상 주의사항
 식약처 위해정보공개란에 게재된 해당 에크모 기기의 장착된 펌프의 사용상 주의사항
ⓒ 식품의약품안전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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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권용진 실장은 "이같은 문제가 발생했을 경우, 소송을 통해 다퉈야만 해결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안타깝다"라면서 "환자단체연합회 차원에서 억울한 환자가 생겼을 때 같이 대응해주고 해결책을 마련해주는 모임을 만들어야 한다"라고 제안했다.

구영신 변호사는 "피해를 입은 사람이 문제 제기를 해야 거기에 대해 상대방들이 자신들의 책임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는 과정에서 공방이 오가며 입증되는 부분이 있다"라고 설명했다.

안기종 대표는 "다행인 것은 이번 문제를 식약처에 요청해서 조사도 했고 위해정보공개를 통해 에크모에 장착된 펌프사용에 대한 주의사항을 안내하는 내용이 전국에 배포됐다는 점"이라고 진단했다. 또한 "전국 160여 개의 병원에서 에크모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이를 계기로) 이와 같은 일이 다시 발생하지 않는 환경을 만들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 편집ㅣ김지현 기자



태그:#환자단체연합회, #에크모, #ECMO, #잴코리, #건강보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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