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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릴라칼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쓰는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원료비 연동제에 따른 도시가스 요금 인하. 박근혜 정부나 새누리당이 생색낼 아무런 근거가 없다
▲ 새누리당 도시가스 요금 인하 플랜카드 원료비 연동제에 따른 도시가스 요금 인하. 박근혜 정부나 새누리당이 생색낼 아무런 근거가 없다
ⓒ 안호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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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가스 요금이 10.3%나 내린다잖아? 그래도 서민을 위하는 건 새누리당밖에 없어. 야당이 하는 일 뭐가 있어. 대통령 경제 살리기에 발목이나 잡고."

시장 어귀에 걸린 "도시가스 요금을 10.3% 인하합니다"라는 플래카드 밑, 과일 가게에서 과일을 사던 아주머니의 말에 주인은 연신 고개를 끄덕거린다. 이쯤 되고 보면 도시가스 요금 인하를 정부나 여당의 치적으로 둔갑시킨 새누리당 홍보 전략을 나무라야 할지, 플래카드 내용 하나로 대통령과 여당, 야당을 각각 지지와 규탄의 대상으로 나누는 아주머니의 정치 안목을 탓해야 할지 아리송하기조차 하다.

원료비 연동제에 따라 올 1월과 3월, 5월 인하된 도시가스 요금은 박근혜 대통령이나 새누리당의 업적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도시가스 요금의 연료비 연동제를 박근혜 정부가 도입한 것도 아니거니와, 국제 LNG 가격이 지난 하반기 30% 이상 하락했는데도 꿈적도 하지 않던 요금을 가스사용 비수기에 찔끔 내린 것은 그리 칭찬받을 일도 아니다.

또 국제 유가의 폭락에도 국내 기름값, 전기요금 인하를 강제하지 못하는 박근혜 정권의 물가 정책은 그리 점수를 주기 어렵다. 지난해 한국가스공사의 영업이익은 1조719억 원에 달한다. 제대로 된 물가연동제였다면 영업이익의 상당 부분은 작년에 벌써 가스요금 인하로 이어졌어야 했다.

새누리당이 내건 '가스 요금 인하' 플래카드는 눈속임이다. 그러나 이러한 눈속임은 거기에 화답하는 그릇된 정치적 안목이 여론이 되고 지지율로 이어지기에 끊임없이 반복되는 것이다. 새누리당이 내건 플래카드 내용을 보고 전기요금도 인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늘어나고 여론으로 형성됐다면, 새누리당은 플래카드를 내리거나 한국전력에 요금 인하를 요구하고 나섰을 것이다.

박근혜 정권과는 아무 관계도 없는 도시가스 요금 인하

박근혜 대통령 지지율이 올해 들어 최고치로 상승했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발표됐다. 여론조사 기관 리얼미터에 따르면 지난 4~8일 성인 2천 명을 대상으로 한 대통령 지지율 여론조사 결과, 전주보다 4.8% 상승한 44.2%로 나타나 연속 2주 상승세로 이어졌다고 한다.

이런 여론조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당혹스럽다. 혹자들은 여론조사 음모론을 제기하기도 한다. 또 다른 부류들은 여론조사 무용론을 내세우기도 한다. 음모론이나 무용론이 다음에 나오는 것이 자조론이다. 40%에 육박하는 콘크리트 지지율, 그래서 국민성은 할 수 없다는 한탄이 이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한탄의 자조론도 명쾌한 분석이 안 되기는 매한가지다.

사실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이 오를 이유는 없다.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50% 여야 합의를 번복시킨 대통령의 결단이 지지율을 끌어올렸다는 분석이 있다. 그러나 여야가 합의한 국민연금 개혁안은 완전하지는 않지만 늘어나는 노령인구의 빈곤 문제에 국가의 책임을 강화한다는 측면에서는 진일보한 합의다.

여기에 근거도 없는 '보험료 2배 인상' 국민부담을 내세워 여야 합의를 뒤집은 것은 정치권력의 폭거일 뿐이다. 국민연금을 세금으로 등치시킨 박근혜 정부의 세금 폭탄론. 여기에 박수를 치고 지지율 상승으로 화답하는 건 결국 우리의 미래를 우리 스스로가 발목 잡는 일이다.

"정치적 생명은 끝났지요. 차떼기와 비교해도 나을 것 없잖아요. 박근혜 정부 치명상을 입을 것 같네요. 또 천막당사로 걸어 들어가는 것 아닌지 모르겠네요."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의 자살과 연이어 메모, 녹취파일이 터져나올 때, 어떻게 될 것 같냐는 사람들의 질문에 나는 이렇게 답했다. 그러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물론 아직까지 수사 중이라고 하지만 이완구 총리의 사퇴 외에는 이렇다 할 파장도 없다. 돈 받았다고 적시된 사람들은 대부분 '부인'으로 일관하고 있고, 그 사람들과 오랫동안 불가분의 관계에 있던 박근혜 대통령은 철저하게 남의 일 보듯 하고 있다.

그러나 '성완종 메모'에 이름을 올린 대부분의 사람들이 대통령과 직접적인 관계에 있고, 국무총리가 이 문제로 물러나는 사태에도 대통령이 이렇다 할 사과도 없다는 것은 이해하기 힘든 처사다. 만약 들끊는 여론이 2002년 차떼기 사건 때와 같다면 대통령이 이 사건에서 구경꾼처럼 행세할 수 있었을까?

결국은 국민 여론이 찻잔 안의 태풍이라고 진단됐기 때문에 오히려 노무현 정부의 사면을 문제 삼고 나선 것이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의 사면이 문제가 있다손 치더라도 이 사건의 본질은 성완종 전 회장이 과거 한나라당과 새누리당에 정치자금을 불법적으로 뿌린 행위다. 박근혜 대통령도 절대 자유로울 수 없는 처지인 것이다.

박근혜 정권의 지지율 상승? 병든 사회의 단면일 뿐

여론의 사전적 의미는 '사회 대중의 공통된 의견'이다. 올바른 여론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국민 개개인의 참여와 이성적 판단이 전제되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합리적인 판단과 참여, 민주주의적 토론 등 어느 하나도 제대로 보장하고 있지도 않거니와 익숙지도 않다. 여론은 없고 여론몰이만 횡행한다. 심지어는 선거조차도 목소리가 큰 사람, 앞에 나선 사람, 기득권을 가진 사람이 승리를 독식하는 것이다.

정치는 여론몰이에 고무돼 패정을 바로잡을 기회를 잃는다. 국민연금 논란, 성완종 사태, 박근혜 정권의 경제정책, 어느 하나 후한 점수를 얻기 힘들다. 그럼에도 40% 지지율을 유지하고 '국민연금 여야 합의는 세금폭탄' 말 한마디에 지지율이 반등하는 것은 여론사회의 후진성을 보여주는 병든 사회의 한 단면이다.

병든 사회는 비단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사람들의 탓만도 아니다. 여당이 내건 가스요금 인하 눈속임 플래카드에 감사하며 박수와 지지를 보내는 무지, 여론조사가 귀찮다며 통화 중지 버튼을 눌러버리는 무관심, 모두가 병든 사회의 가해자이면서 피해자인 것이다. 

'모든 민주주의 사회는 국민의 수준에 맞는 걸맞은 정부를 가진다.'

프랑스 정치학자 알렉시 드 토크빌의 말이다. 우리 사회 모습은 우려스럽다. 보수-진보의 문제가 아니다. 지지율이 올라야 할 아무런 근거가 없는데도 지지율이 오른다는 건 좋은 징조가 아니다. 최근 나라 밖에서 박근혜 정부의 인권과 언론자유 문제, 경제정책, 부채관리에 쓴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정작 쓴소리를 귀담아 들어야 하는 건 국민들이다. 국민 수준에 걸맞은 정부가 박근혜 정부라면 말이다.


태그:#여론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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