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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을 둘러싼 말말말
 대학을 둘러싼 말말말
ⓒ 전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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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한 말일까? 가장 위의 말은 우리나라의 초·중·고등학교와 고등교육까지 관할하는 황우여 교육부장관이, 가운데 말은 교육을 넘어 문화·경제·사회 전 분야를 책임지는 최고통수권자인 박근혜 대통령, 마지막 말은 한양대 이영무 총장이 했던 말이다.

그렇다면 그들이 말하는 대학이란 무엇일까. 취업 인력을 생산하는 대학은 '좋은 대학'이고, 취업 못하는 인력을 만들어내는 대학은 운영효율성이 떨어지는 '불량 대학'이라는 이야기다.

대통령, 교육부장관, 사립대 총장에 이르기까지 대학은 기업에 필요한 인력을 생산하는 곳이라 말했다. 물론, 대학에서 배운 배움의 결과는 사회발전에 이롭게 사용되는 것을 지향하고 그것은 근로(일, 노동)로 표현된다.

지금의 '대학'은 유니버시티 팩토리(University Factory)

현재 대학은 사회에서 필요한 인력을 생산하는 곳이라기보다, 기업에서 필요한 인력을 그때 그때 그때 생산하는 맞춤형 공장의 형태에 가깝다. 대학은 기업의 인력수요에 맞춰 상품을 찍어내려고 노력하되 판매되지 않은 재고물품에 대해서는 책임을 지지 않는다.

기업에서 영어를 잘하는 사람이 필요하니 영문학과가 필요하고, IT업계가 늘어나고 있으니 컴퓨터계열학과도 늘어나야 하고, 임용할 선생님의 수가 적어지니 사범대를 정리해야 한다는 논리가 생긴다.

똑같은 학문을 접한다고 하더라도 각자가 갖고 있는 가치, 경험, 철학, 능력, 전문분야, 관심 영역 등에 따라 배운 학문을 어떻게 응용해 써먹을지에 대한 방식은 달라진다.

그러나 정부가 말하는 산업수요대학은 사범대를 나왔으니 무조건 교사가 되는 것이고, 교사를 필요로 하는 곳이 적으니 사범대 학생은 과잉공급으로 치부돼 쓸모없는 이들로 평가된다. 개인이 갖고 있는 개성, 기질은 철저하게 시스템에 의해 무시되는 것이다.

ⓒ 전진희

유니버스티 팩토리(University factory) 역시 공장과 다르지 않게 운영된다. 공장이 수요에 맞춰 자신의 상품을 경쟁력 있게 만들어 매력적으로 판매하는 것처럼 대학도 기업의 수요에 맞춰 자신의 상품(학생)을 판매한다. 여기에서 공장과 대학이 다른 점이 있다면, 대학은 자신의 돈으로 장사를 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상품이면서 수요자이기도 한 학생들의 주머니에서 돈을 빼 운영을 한다는 점이다.

[유니버시티 팩토리의 운영방법①] 등록금을 더 많이 걷기 위해 매진한다

 사립대학들의 이월적립금 현황을 보는 거와 같이 등록금을 동결하거나 인하했음에도 매년 이월적립금을 늘어나고 있다
ⓒ 대학교육연구소

지난 4월 열린 서울총장포럼에서 대학 총장들은 대학 기여입학제 허용과 등록금 자율화를 요구할 것을 정부에 요구했다.

법에서 정해놓은 사립대들의 법인전입금도 제대로 납부하지 않고, 등록금 의존도가 전체 재정의 60%대를 차지하고 있음에도 등록금을 자유롭게 인상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구한 것이다.

기여입학제 허용은 부의 대물림을 위한 수단이고 대학재정을 늘리기 위한 명목에서 추진될 뿐 대학발전에 하등 도움될 것이 없다는 비판이 오랫동안 제기돼왔다. 총장들의 발언을 보면 어떻게 하면 대학재정 수입을 늘릴 수 있을지 혈안이 돼 있는 셈이다.

[유니버시티 팩토리의 운영방법②] 수요에 맞춘 대학구조조정

정부는 공대 인력수요가 부족해 공대를 지원하는 정책을 펴겠다고 발표하고 '대학구조개혁정책'을 통해 취업률이 낮은 대학을 대상으로 인원 감축을 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자 거의 모든 대학에서 공대에 집중적으로 투자를 하거나 공대를 신설해버리고 취업률이 낮은 학과를 없애버렸다.

중앙대 민속학과는 2010년 최우수 교육단위, 2012년 우수 교육단위로 인정받았다. 게다가 전국에 두 군데밖에 없다. 하지만 중앙대는 민속학과를 없애고 공대를 우선 지원하는 정책을 펴겠다고 발표한다. 건국대는 73개 학과를 63개로 통폐합하지만 공대나 경영 등 인기학과는 모집단위를 학부에서 학과로 세분화시킨다.

대학의 구조가 기업의 요구에 따라 '확' 달라지는 셈이다. 이렇게 되면 대학은 수요를 쫓아다니기에 급급하고 그 과정에서 대학은 학문을 편식할 수밖에 없게 된다.

이러한 기업맞춤식 교육은 대학 곳곳에 존재한다. 국민대에서는 문과·예체능 등 비이공계 학생 전원이 컴퓨터 프로그래밍 과학을 두 학기에 걸쳐 수강하도록 의무화했다. 예체능계 학과 진학자가 컴퓨터 프로그래밍어를 왜 배워야 하냐는 질문에 대학 측은 "지금 사회에서 IT회사가 급증하고 있고 정부 정책 또한 공대 지원 정책이기에 차세대 육성에 도움이 된다"는 해명을 내놨다.

이런 정책에 전문가들은 회의적인 입장을 보였다.

"외국에선 프로그래밍 수업을 초·중·고 때부터 정규화해서 진행합니다. 컴퓨터를 잘하는 법을 가르치는 거라기보다, 논리적 사고를 가능케하기 위해서죠.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웹언어를 암기해서 써먹을 수 있게 하기 위해 집중해서 가르칩니다. 그렇기 때문에 논리적 사고를 하는 데도 기술 습득에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오히려 학점을 따기 위해 학원에 다녀야 할 지도 모릅니다."

기업의 수요에 맞춰 인력을 공급하는 형태로 대학을 발전시키는 과정에서 대학은 장기간의 발전계획이 아닌 일 년치 정부지원과 수요에 급급하고 있는 셈이다.

'유니버시티 팩토리'에 저항하라

우리나라 고등교육법에는 대학의 설립목적을 아래와 같이 밝히고 있다.

제28조(목적) 대학은 인격을 도야(陶冶)하고, 국가와 인류사회의 발전에 필요한 심오한 학술이론과 그 응용방법을 가르치고 연구하며, 국가와 인류사회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

고등교육법에 따라 대학을 운영하려면 대학은 사회 발전 방향에 따라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교육을 백년지대계라 한다. 백년을 두고 세우는 계획이라는 말이다.

모든 학문은 추구하는 분명한 가치가 있고 학문은 학문간 긴밀한 연결 속에 발전한다. 그렇기 때문에 백년을 두고 계획을 세우려면 모든 학문을 고루 발전시켜 가기위한 대책이 필요하다.

건국대영화학과 통폐합사태를 지켜보던 어떤 평론가는 이렇게 말했다.

"영화산업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글을 쓰는 작가가 있어야 하고, 그것을 표현하는 연출가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실제 영화화 시키는 수백 명의 스태프들이 있고, 그것을 연기하는 연기자가 있어야 한다. 또한 완성된 영화를 지원하는 배급사가 있어야 하고 영화를 틀 영화관이 있어야 한다. 또 좋은 영화를 지원하는 국가의 정책이 있어야 한다. 이렇게 영화하나를 만들 때 수많은 사람과 수많은 학문이 결합된다. 어느 하나에만 치중한다면 우리나라에선 영화도, 기업도, 문화도 사라지게 될 것이다."

현재 우리사회에 필요한 것은 기업의 수요에 맞춰 인력을 배당하는 인력사무소와 같은 유니버시티 팩토리가 아니다. 사회가 균등하게 발전할 수 있도록 전체 학문을 발전시키는 '대학'(大學)이다.


태그:#UNIVERSITY FACTORY, #대학, #기업, #박근혜,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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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육연구모임 대학고발자에서 운영자로 있습니다. 대학고발자 웹진 - 월간대학을 통해 갑이 된 대학과 을로 전락한 대학생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전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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