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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 함께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제주도로 넘어가는 과정은 다사다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전하며 살 거냐고? - 기자 말

2012년 8월 서울 생활을 정리했다. 100일이 갓 넘은 아이와 함께 우리의 힘으로 제주도에서 새롭게 그려나가 보기로 했다. 우리를 이동하기 힘들게 하던 집은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공유하고, 생활에 필요한 짐은 자동차 트렁크에 실을 정도로만 정리했다. 갖고 있는 것과 반비례하여 우리의 마음도 가벼워지기 시작했다.

새로운 도전에는 언제나 그렇듯 주변의 응원과 지지보다는 비난에 대해 대응해야 했다.

충청북도 진천의 보련골에 피어난 연꽃
 충청북도 진천의 보련골에 피어난 연꽃
ⓒ 한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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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연고도 없는 제주도에서 뭐하면서 살라고?"
"왜 편안한 집 두고, 1달 동안 어린 애 데리고 텐트에서 고생하며 다니려고 하니?"

우리에게 새로운 삶은 절실했다. 매일같이 반복되는 일상과 육아의 고됨을 다른 방식으로 풀어나가려 했다. 주변의 시선에 신경을 쓰지 않고, 자연환경이 아름다운 공간에서 우리의 목소리로 아이와 소통하며 살아가고 싶었다. 그리고 부모가 행복하고 즐겁게 산다면, 아이 또한 그 에너지를 받아 건강하게 성장할 것이라고 믿었다. 생활이 불편할지라도 새로운 도전을 시도해보기로 했다.

서울을 떠나려고 한 지 얼마 안 되어 뒤에서 오고 있던 차량이 우리가 타고 있는 차를 들이받는 사고가 났다. 다행히 큰 사고가 아니었고, 보험회사에서 처리해주었다. 그런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서울을 떠나니 천둥번개가 동반한 비가 억수로 내리기 시작했다. 교통사고 후유증이 생길 수도 있고, 남편도 목이 뻐근하다고 하여 우린 광명에 있는 종합병원에 가봤다. 며칠간 마사지를 받으면 괜찮아질 거라는 진단을 받았다.

첫날부터 교통사고와 악천후 때문에 떠나야 하나 망설여졌다. 액땜했다고 생각하고 길을 나섰다. 첫날은 충청북도 진천군 보련골의 한 정자에 텐트를 쳤다. 어둑해진 후에야 도착하여 주변이 어떤지 몰랐는데, 아침에 일어나니 주변에 환하게 핀 연꽃들이 여기저기 피어 있었다. 진흙탕이었던 우리의 첫 여정에, 꿈을 잃지 말라고 축복해주는 듯 싶었다.

코펠을 이용하여 간단하게 밥을 먹고 텐트를 정리하던 중, 마을사업을 운영하고 계시던 분이 차 한 잔 마시러 오라고 초대해주었다. 이곳은 연꽃차가 유명하다며 차를 따라주시는데 은은한 향이 우리 주변에 퍼졌다. 보련골은 마을의 형상이 마치 '물 위에 뜬 연꽃' 같아 보련이라는 이름을 갖게 됐단다. 새로운 여정을 응원하신다며 연잎차를 우리에게 선물로 주셨다. 

텐트 여행을 통해 바뀐 삶

아이가 잠든 시간 독서하며 사색하기
 아이가 잠든 시간 독서하며 사색하기
ⓒ 김태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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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는 지정된 장소에서만 텐트를 칠 수 있었는데, 우리의 흐름대로 충청도와 경상도, 전라도를 여행하면서 원하는 곳에 머물 수 있었다. 자유로웠다. 한강이나 캠핑장에서 텐트를 칠 때면 누구의 텐트가 더 럭셔리한지 비교하는 듯한 분위기였는데, 더 이상 내가 갖고 있는 것을 남과 비교하지 않아도 됐다. 이제는 물건의 기능에만 초점을 두어 사용할 수 있게 됐다.

떠나오기 전까지 갓난아이와 내 몸을 돌보면서 1식 3찬을 해서 먹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야영을 하기에 1식1찬이나 2찬으로 간단한 요리만 해먹으니 살림에서부터 해방된 듯 싶었다. 집이 되어버린 텐트에서는 먼지가 쌓일 틈 없이 텐트를 걷어 들였다. 특별히 청소를 하지 않아도 됐다. 살림이 간편해지니 서로가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더 많이 생겼다.

시간과 공간에 여유가 생기니, 아이도 긴장하지 않고 대할 수 있었다. 밤중에 우는 아이를 이웃 눈치 보며 달래지 않아도 됐다. 산책을 할 때도 지나다니는 차와 오토바이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됐다. 아이와 푸르른 자연 속에서 풀벌레와 강물 흐르는 소리를 들으며 평온하게 지낼 수 있었다.

텐트 생활에 있어 비가 걸림돌이었지만, 비로 인해 새로운 인연을 만나기도 했다. 전라남도 영암의 한옥마을을 돌아다니다 비가 너무 많이 내려 민박집에 머물려고 알아봤다. 하지만 민박집들은 더 이상 운영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비오는 와중에 애타게 머물 곳을 찾고 있는 게 안쓰러워 보이셨는지 한 할아버지께서 자신의 집에 하룻밤 머물고 가라고 하셨다.

지은 지 얼마 안 된 한옥집에서 할아버지께서는 차를 대접하며 할아버지의 옛 이야기들을 꺼내주셨다. 할아버지는 시장에 잠깐 갔다 오시더니, 아이를 위해서 엄마가 영양가 좋은 것을 먹어야 된다며 우족을 푹 삶으셨다. 모르는 여행객에게 이렇게 성심성의껏 대접해주시니 송구스러울 뿐이었다.

한 달 간의 여행은 우리의 다음 길을 응원해주는 수많은 만남과 추억들을 남겨주었다. 또한 우리의 여정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 싶었던 분들의 선물이 쌓였다. 차 뒷좌석에는 쌀, 보리, 고추장, 된장, 매실액, 연잎차, 유모차, 아이 옷 등이 한가득 실려 있었다.

목포항에서 차를 배에 실으면서 나 자신에게 물었다.

'우리의 다음 여정도 다사다난한 삶인 게 보이는데 계속해서 나아갈 것인가?'

아름다운 자연의 경이로움을 맛볼 수 있고, 사랑하는 동반자들과 함께 동고동락하면서 살아갈 수 있는데 무엇과 바꾸겠는가!


태그:#텐트, #디지털노마드, #디지털보헤미안, #전국여행, #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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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탐험을 좋아하고 현재 덴마크 교사공동체에서 살고 있는 기발한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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