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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은 1805년 덴마크 오덴세에서 태어나 70세까지 독신으로 살면서 주옥같은 동화작품을 남겼다.
▲ 안데르센 동상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은 1805년 덴마크 오덴세에서 태어나 70세까지 독신으로 살면서 주옥같은 동화작품을 남겼다.
ⓒ 임경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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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속 현을 건드리는 간절함 하나 없이
세월이 흘러가는 건 쓸쓸한 일이다.
뜨겁지는 않지만 울컥하는 일 몇 개쯤은 품고 살 수 있기를
퇴근버스 안의 지친 모습도 사랑하지만
여행을 떠나는 기차트랩에 발을 올려놓는 사람처럼 살 수 있기를

그 사람만 있다면
그곳에 갈 수만 있다면
금방 일어설 수 있을 것 같은
간절한 무엇 하나 품고 살 수 있기를 - KBS라디오 클레식FM 전기현의 세상의 모든 음악('15.1.9.) '그 말이 내게로 왔다' 중에서

열정의 덧없음과 사랑의 공허함을 익히 알고 있으면서도 무심한 봄날의 단조롭고 무미건조한 일상에서 어디론가 탈출을 꿈꿀 때 내게 선물처럼 주어진 며칠간의 여행이 겨울잠에서 벗어나지 못한 내 몸의 세포들을 깨운다. 앵화가 바람결에 흰나비처럼 무리지어 쏟아지고, 온 천지가 피어나는 봄꽃과 봄기운이 생동하던 지난 4월 초, 우리 일행 15명은 북유럽 문화탐방을 위해 인천국제공항에서 이름도 낯선 판란드 국적기 핀에어에 몸을 실었다.

목적지는 핀란드 헬싱키, 지구가 자전하는 방향과 반대로 9시간 35분을 비행해야 했다. 헬싱키에서 환승하여 1시간 40분을 더 날아 우리들의 최종 목적지인 덴마크 코펜하겐에 도착했을 때는 오후 늦은 시간이다. 새벽 3시 30분에 광주에서 출발하여 하루를 온통 이동하는데 소비했다. 그 거리만도 8000㎞가 넘는다.

자전거 천국 덴마크

안데르센 동화에 나오는 인어공주를 모태로 1913년에 제작되었다.
▲ 코펜하겐 랑겔리니 해변의 인어상 안데르센 동화에 나오는 인어공주를 모태로 1913년에 제작되었다.
ⓒ 임경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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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 인근에 위치한 호텔에 여장을 풀고, 고도제한으로 이 도시에서 가장 높다는 23층의 스카이라운지에 오르니 도시의 야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전망 좋은 창가에 앉아 시원한 맥주 한잔으로 먼 이국의 정취에 젖어든다. 옆자리에선 연인들이 소곤소곤 알 수 없는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사랑을 쌓고 창 너머로 명멸하는 불빛들이 긴 여정에 지친 여행자의 마음을 가라앉힌다.

둘째 날은 코펜하겐 시내 투어다. 안데르센의 동화에 나오는 인어공주가 80㎝의 작은 동상이 되어 바닷가에 앉아있는 모습이 4월인데도 왠지 을씨년스럽다. 관광객들이 끝없이 찾아와 만지고 껴안고 사진 찍으며 그녀를 외롭지 않게 해 다행이다. 바닷가에 정갈하게 꾸며진 도로를 따라가면 신화에 등장하는 여신이 황소 4마리를 몰고 가는 역동적인 모습의 게피온 분수가 있고, 그 아래에 영국인 신자를 위한 성공회교회인 성 알반스교회가 고딕양식으로 서있다. 조금 먼발치의 아말리엔보르 궁전을 뒤로 하고 뉘하운 항구로 발길을 돌렸다.

유람선과 요트가 정박해 있는 운하 왼쪽으로 중세풍의 아름다운 건물들이 줄지어서서 관광객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 뉘하운 운하 유람선과 요트가 정박해 있는 운하 왼쪽으로 중세풍의 아름다운 건물들이 줄지어서서 관광객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 임경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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뉘하운 운하는 코펜하겐이 중세 이후 북해무역의 중심지였을 당시 인공적으로 조성한 항구로 파스텔풍의 유서 깊은 건물들이 지금도 자리를 지키고 있다. 항구를 따라 늘어선 노천카페에는 관광객들이 빼곡히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해바라기를 하며 커피가 식어가는 것도 잊은 채 안데르센의 인어공주와 성냥팔이 소녀, 미운 오리새끼를 추억하고 있다.

뉘하운 항구 인근에 있는 시청사 1층 갤러리에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전위예술전이 한창이다. 시청사 옆 큰길 티볼리공원 쪽에는 안데르센 동상이 고개를 들고 시선을 어디에도 주지 못한 채 동심에 젖어 있다. 그 옆으로는 자전거의 천국답게 쉼 없이 자전거들이 지나간다. 세계 156개국을 대상으로 한 유엔의 행복지수 조사결과 2012·2013년 연속 1위를 차지한 나라답게 그들의 표정은 평화롭고 온화하다.

오후 4시 30분에 출항하는 크루즈 DFDS SeaWays에 탑승하기 위해 항구로 이동했다. DFDS는 스칸디나비아의 도시와 도시를 운항하는 오랜 전통을 가진 덴마크 국적의 크루즈회사로 140년 넘게 북해를 항해해 오고 있단다. 우리가 이용할 배는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노르웨이 오슬로를 운항하는 크루즈로 길이 169m, 넓이 28.2m, 승객수 2026명, 룸수 637개, 450대의 차량을 실을 수 있으며, 4개의 레스토랑, 면세점, 3개의 바와 오락실, 수영장, 사우나, 헬스클럽 등을 갖춘 호화유람선이다.

승선하여 여장을 풀고 선내를 구경하는 사이 배는 조심스레 항구를 빠져나와 카테가트 해협을 따라 북으로 향하고 있다. 11층 갑판에 오르니 북해의 거친 바람이 얼굴을 할퀸다. 좁은 해협 양쪽으로 점점이 박힌 섬에는 그림같은 별장이 앉혀있다. 삶의 현장이며 생활이 터전인 우리네 바다와는 사뭇 다른 모습에 추운 줄도 모르고 넋을 빼앗긴다.

사람이 살면서 먹는 즐거움을 빼면 무슨 재미로 살아갈까. 뷔페식으로 제공되는 선상 만찬이 일품이다. 특히 연어회와 훈제에 곁들인 레드와인이 크루즈의 분위기와 절묘한 조화를 이뤄 기분을 한껏 끌어올린다. 아직 여행 성수기가 아니고 더욱이 주중이라 레스토랑은 우리들이 기분 좋게 떠들어도 될 만큼 비교적 한산하다.


태그:#북유럽, #덴마크, #인어공주, #뉘하운 운하, #안데르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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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물처럼, 바람처럼, 시(詩)처럼 / essayist, reader, travel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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