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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꽃이 화사한 농촌입니다
 배꽃이 화사한 농촌입니다
ⓒ 강미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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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에 월백하고 은한이 삼경일제, 일지춘심을 자귀야 알랴마는, 다정도 병인양하여 잠 못들어 하노라."

고려 시대의 문신 이조년의 시조입니다. 푸른 은하수가 펼쳐진 삼경, 달빛에 흐드러지게 핀 배꽃 가지에 걸린 내 그리움을 어이 두견새가 알려 마는. 요즘은 시골길을 걷다 보면 하얗게 핀 배꽃 풍경에 나도 모르게 이조년의 <다정가>를 읊게 됩니다.

사월의 눈부신 신부처럼 이화가 만발한 계절 앞에 서면 한 떨기 꽃으로 저버린 생명이 생각납니다. 지난해 세월호 참사처럼 인간의 문명, 이기와 실수가 수 많은 생명을 앗아간 사실과 최근 천재 지변 지진으로 수천 명의 네팔 사람이 사라졌다는 소식을 듣고 인생 무상함을 느끼고 합니다.

           이화가 만발한 사월입니다
 이화가 만발한 사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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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밭갈이한 넓은 밭에서 일하는 노인들입니다
 밭갈이한 넓은 밭에서 일하는 노인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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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꽃 나무가 하얀 물결을 이루는 배꽃 동산을 멀리서 바라보면 오래 전 작은 초가집 사이로 환하게 피어나는 배꽃을 상상할 수 있습니다. 조선 말 한국을 방문한 미국의 천문학자 퍼시벌 로웰은 안갯속의 아늑한 초가집들을 바라보고 우리나라를 조용한 아침의 나라, 영어로 'The Land of Morning Calm'라고 했습니다.

이 아름다운 나라에 피어나는 봄꽃 물결처럼 올해는 아름답고 멋진 일이 많았으면 합니다. 농촌은 지금 밭갈이와 씨앗 뿌리기에 한창입니다. 저 살아 숨 쉬는 미네랄이 풍부한 흙을 보십시오. 흙은 살아있는 온갖 생명을 품어 살게 하는 토양이며, 인간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양식을 제공하는 젖줄입니다.

한평생 저 땅을 일구고 씨앗을 뿌리며 자식들을 키워낸 분들이 홀로 남아 살아가는 곳이기도 합니다. 기계가 저 넓은 밭을 혼자 돌아다니며 흙을 부드럽게 갈고 반듯한 고랑을 만들어 냅니다.  길을 가다 보면 정작 젊은 사람은 평일에는 인근 산업 단지에 일하러 가고, 나이 드신 분들이 넓은 밭에서 씨앗을 뿌리거나 일하는 모습을 종종 보게 됩니다.

그나마 건강하신 분들은 밭에서 일하고, 몸이 아픈 노인은 허름한 시골집에서 노후를 보내는 모습을 봅니다. 30~40년 전만 해도 농사는 기계로 짓는 것보다 노동에 의지하는 열악한 환경이었습니다. 소가 이끄는 쟁기로 논밭을 갈고, 어렵게 농사를 짓는 환경에 어른들은 자식만큼은 농촌에서 고생하고 살지 말라고 자식들을 키워 도시로 내보냈습니다.

농촌에서 밭농사하며 고향 집을 지키는 노인들은 대부분 베이비붐 세대를 키워낸 분들입니다. 80~90세의 나이에 접어든 사람 중 30~40년 이상 된 낡은 집에서 살아가는 경우가 있습니다. 지붕 서까래에 얹은 흙이나 나무들이 낡아서 흙이 뚝뚝 떨어져도 노인들이 집을 새로 단장하지 않고 사는 이유는 경제적인 문제도 있겠지만, 자식들이 고향에 다시 돌아와 살 일이 없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자식들은 도시에서 나름대로 아이들을 낳아 키우고, 공부 시킨다고 시간적, 경제적 여유가 모자라 나이가 든 부모님을 제대로 돌보지 못하는 예도 있습니다.

                배꽃이 피어나는 길
 배꽃이 피어나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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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농촌에서 일하는 노인
 농촌에서 일하는 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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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이 허락되는 노인들은 텃밭이라도 가꿔 도시에 사는 자식에게 먹을 양식이라도 보내는 낙으로 사는 분들도 있지만, 문제는 아픈 몸을 이끌고 홀로 쓸쓸히 살아가는 독거 노인의 실태입니다. 몸이 아파도 혼자 병원에도 갈 수 없고, 돌봐주는 사람들이 없거나 자식들이 있어도 멀리 떨어져 일과 가정을 돌봐야 하는 자식들을 둔 노인들입니다. 산업 사회에 자식들이 부모들 공양한다는 것은 먼 옛말이 됐습니다.

저 순결한 배꽃들이 화사하게 피어나는 길을 걸으며 봄의 향연에 가뻐하지만, 홀로 병마와 싸우며 쓸쓸히 살아가는 노인들을 만나면 그들이 이 사회의 일꾼을 키워낸 부모이자 곧 나의 부모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들이 현재 사는 모습이 곧 나의 미래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무엇보다 그 분들이 아플 때 병원이라도 편하게 다닐 수 있는 의료 제공 및 편리한 교통편 그리고 홀로 살아가는 노인들이 따뜻한 밥과 국에 식사라도 제대로 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마련해주는 제도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저 동산에 피어나는 하얀 배꽃을 위해 뿌린 충분한 거름이 있기에 가을 배 수확의 기쁨을 누릴 수 있듯이, 발효가 잘된 퇴비를 주지 않고는 풍년을 기약할 수 없습니다. 농촌 마을 곳곳에 홀로 살아가고 있는 독거 노인을 잘 보살피고 그 분들이 안전하고 편안한 노년을 보낼 수 있을 때 그 분들이 길러 낸 자식들이 사회의 일꾼으로 제 소임을 다하고, 그 후손들이 잘 자라 멋진 대한민국의 미래를 만들 것입니다.

      멀리서 바라본 배꽃 동산
 멀리서 바라본 배꽃 동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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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이화, #독거노인, #농촌, #베이붐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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