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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도대체 학급의회 언제 열어요? 빨리 바꿔야 돼요!"
"급식 검사를 우리가 하니까 불편해요, 선생님이 해요!"
"일일이 칫솔질 했는지 검사하는 건 너무 어려워요."

지난 3월 첫 주 우리 반을 스스로 만들어가는 첫 번째 학급의회가 열린 이후, 아이들의 불만과 불평이 끊임없이 쏟아진다. 아이들이 직접 정하는 정책들 중 몇몇은 비효율적이거나 단점이 쉽게 눈에 들어왔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예상 가능했던 일이었다. 꾹 참고 간섭하지 않은 채 내버려둔 것이 결국은 이렇게 되었다. 하지만 나는 여기저기서 터져나오는 불만들을 향해 항상 같은 말로 답했다.

"그래? 그럼, 다음 학급의회 때, 바꾸면 되겠네. 지금은 어쩔 수 없어."
"그건 안 돼. 지금은 정해진 정책대로 하는 거야."

내가 자동응답기처럼 매번 이 대답으로 일관하는 이유는 한 가지 생각 때문이었다. '실패'의 경험. 나는 '성공'의 경험만큼 아이들의 생각을 단단하게, 마음을 튼튼하게 만들어줄 수 있을 경험이 바로 실패라고 생각했다. 내가 살아온 삶을 돌아봐도 마찬가지다. 성공의 달콤한 기억보다 실패의 쓰라린 기억은 내 머리에 짙게 남아 있다. 삶 속에서 경험한 실패는 삶의 방향을 바꾸었고 뿌리 깊었던 가치관을 흔들었다. 그렇게 누구나 그렇듯이 실패를 통해 나를 조정해나갔다.

그래서 나는 아이들보다 먼저 태어나 삶을 가르치는 선생(先生)님으로서 내가 아이들보다 먼저 살아오면서 얻은 실패의 소중함을 전달하고 싶었다. 아이들이 생각과 마음의 성장을 위해 실패를 스스로 견디고 기억하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아이들이 하는 불만의 고자질을 들으며 기분이 내심 좋았던 이유도 실패를 겪고 있는 아이들이 대견했기 때문이다.

학급의회는 매월 말일에 열린다.
 학급의회는 매월 말일에 열린다.
ⓒ 고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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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를 통해 스스로 정책 바꾸어 나가는 아이들

아이들이 실패에 대해 불만만 나에게 늘어놓는 것은 결코 아니었다. 다소 어설프지만 해결방법도 있었고, 정책의 어떤 부분이 문제인지도 어느 정도는 알고 있는 듯했다. 감사부에서 만든 건의함에는 정책 수정에 관한 쪽지들이 가득했다. 그렇게 실패의 경험이 차곡차곡 쌓여가고 있을 무렵, 나는 두 번째 학급의회를 아이들에게 공지했다.

두 번째 학급의회가 열리고, 각 부서(행정부, 감사부, 인성부, 환경부, 학습부)의 부원들은 3월 초 각 부서에서 만들었던 정책들을 스스로 평가하고 개선안을 마련하는 과제를 받아들었다. 아이들끼리 공유하는 정책에 대한 생각과 고민은 기대보다도 더 날카롭고 섬세했다.

[행정부] "다른 부서들과 겹치는 정책이 많아서, 정책을 정하기 전에 부서 간 협력이 필요하다."
[감사부] "쉬는 시간에 정책을 점검하는 일이 흐지부지 되었다. 어떤 방법으로든 정책을 점검하는 일을 책임지고 할 수 있으면 좋을 것 같다."
[인성부] "인성부로서 아이들이 정책을 잘 지키고 있는지 점검만 할 것이 아니라, 친구들끼리 자연스럽게 친해질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야 한다."
[환경부] "청소 시간이 너무 부족하다. 부족한 시간 때문에 대충 청소를 하다보니까 청소가 제대로 안 된다."
[학습부] "수업 시간을 알리는 종소리랑 할리갈리(보드게임) 종소리가 헷갈린다. 종소리 대신에 수업 시간을 알릴 수 있는 다른 방법이 필요하다."

한 달 동안 정책을 수행하면서 느낀 불편함을 아이들이 누구보다 몸소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아이들은 또한, 그러한 불편함을 느끼는 것에 멈추지 않고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고민했다. 아이들은 각 부서에서 부서원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어떻게 하면 문제점을 해결하고 더 좋은 정책을 만들 수 있을지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또한 아이들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자신의 부서가 학급이라는 작은 사회를 위해 좀 더 할 수 있는 일은 없을지에 대한 물음에도 진지하게 반응하고 있었다. 때로는 서로의 의견을 저울질하기도 하고, 때로는 의견의 장단점을 서로 지적하기도 했다. 아이들은 분명 한 달 동안, 학급이라는 작은 사회 속에서 스스로 결정했던 일에 대해 실패를 겪었지만 그 실패의 과정을 되풀이하지 않고 수정해 나아가고자 스스로 노력하며 책임지고 있었다.

3시간에 걸친 의회는 쉽게 폐회를 선언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치열했다. 두 번째 학급의회에서는 내가 도움을 주는 말을 해도 별 신경을 쓰지 않아 내가 다 무안할 지경이었다. 실제로 인성부와 환경부는 방과 후에도 남아 부서원들과 끝장회의를 이어가기도 했다.

[행정부] 정책이 자꾸 다른 부서와 겹치는 바람에 행정부가 할 일이 너무 없어서, 행정부 구성원인 회장, 남부회장, 여부회장이 달마다 한 명씩 찢어져서 인성, 환경, 학습부에 파견을 가는 것으로 결정되었음. 4월에는 회장은 학습부, 남부회장은 인성부, 여부회장은 환경부로 파견.

[감사부] 쉬는 시간마다 정책을 점검할 학생을 뽑고 점검하기로 했는데, 제대로 운영이 되질 않기 때문에, 선생님 책상 옆에 자리를 만들어서 그 쉬는 시간에는 꼭 그 자리 앉아서 점검이 역할을 할 수 있게 할 것.

[인성부] 우리 반 아이들끼리 아직 이름도 모르고, 얘기도 아예 안 해본 친구들이 좀 있어서, 2주마다 한 번씩 마니또를 운영하기로 결정하였음(단, 마니또를 하는데 돈을 쓰는 행위는 절대 금지). 또한, 남는 시간을 이용해서 선생님께 교실놀이를 부탁하고 우리가 서로 어울려 노는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음.

[환경부] 청소시간이 많이 부족해서, 일주일에 세 번 청소를 하는 대신, 나머지 이틀은 집에 가기 전에 미니빗자루로 자신의 자리를 쓸고 갈 것. 또한, 5교시와 6교시 사이 10분 쉬는 시간을 없애고 점심시간에 붙여서 청소시간을 늘릴 예정.

[학습부] 기존의 종소리를 울려서 수업시간을 알리는 정책을 폐지하고, 수업 시간 3분 전에 클래식 음악을 크게 트는 것으로 수정함. 음악을 크게 틀면 안 들릴 일도 없고 할리갈리 종소리랑 헷갈릴 일도 없음. 단, 수요일 하루는 클래식 음악 대신에 친구들이 듣고 싶은 음악을 신청받아 추첨해서 틀어주는 것으로 함.

스스로 삶의 지혜 깨닫는 아이들

정해진 정책들이 마냥 완벽한 것은 아니다. 아니 어쩌면, 완벽한 정책은 영원히 없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이 정책들이 자신들이 약속했던 것들을 스스로 비판하고 자기가 하고 싶은 일들을 조금 조금씩 양보하면서 만들어졌다는 것이 중요한 사실이다. 우리가 함께 살기 위해서는, 가끔은 모두를 위해 자기의 이익을 포기할 줄도 알고, 지름길을 포기하고 돌아갈 수도 있어야 한다. 난 아이들이 이 지혜를 스스로 깨달았으면 했다.

학급을 위해 하는 일이 많지 않아서 일을 나눠서 하고 싶다는 아이들, 돌아가며 쉬는 시간에 쉬지 않고 학급을 위해 점검이 역할을 자청한 아이들, 아이들끼리 친해질 수 있도록 학원 갈 시간을 쪼개서 마니또를 계획하겠다는 아이들, 10분 쉬는 시간(특히 점심을 먹은 후 5교시와 6교시 사이의 쉬는 시간은 정말 아이들에게 중요하다)을 포기하면서까지 청소시간을 늘리겠다는 아이들까지.

난 이 아이들이 학급을 위한 정책들을 만드는 동안, 은연중에 많은 것을 스스로 느끼고 배우고 있다고 믿고 있다. 학급의회 다음 날, 끝장회의를 펼치다가 학원에도 가지 못한 한 아이에게 점심을 먹다가 물었다.

"어제 남아서 무슨 얘기했어?"
"인성부 애들이랑 마니또 어떻게 할지 정했죠."
"그래서 다 정해졌어?"
"아뇨, 애들끼리 의견이 다 달라가지고요, 오늘도 해야 될 거 같아요."
"오래 걸리겠네. 인성부 활동 하는 거 귀찮지 않아?"
"재밌어요. 선생님 된 것 같은 기분!"
"으이구, 선생님이라도 그런 거 다 못 정하거든!"
"그건 맞아요! 크크. 이제는 선생님이 하자고 해도 안 할 걸요?"

점점 내 말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는 아이들, 그래도 기분은 이만큼 좋다.

○ 편집ㅣ최규화 기자

덧붙이는 글 | 2015년 3월 2일부터 시작된 신규교사의 생존기를 그리는 이야기입니다.



태그:#초등학교,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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