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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 발인날인 13일 낮 서울 동대문구 경남기업 본사에 '성완종 회장님 편히 잠드소서'가 적힌 검은 현수막이 내걸려 있다.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 발인날인 13일 낮 서울 동대문구 경남기업 본사에 '성완종 회장님 편히 잠드소서'가 적힌 검은 현수막이 내걸려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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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깝죠. 국내 건설사 중에서 역사도 오래됐고, 기술력도 좋은 회사였는데…."

14일 국내 대형 건설사 한 임원의 말이다. 기자가 '경남기업이 내일(15일) 상장 폐지된다'고 말하자, 그는 한숨부터 내쉬었다. 대우건설 등에서 30여 년 동안 일해온 그는 "경남기업은 건설회사 중에서도 나름의 역사와 기술력을 갖춘 몇 안 되는 회사 중 하나"라고 말했다.

그런 경남기업이 14일 마지막으로 주식거래를 마쳤다. 이날 최종 주가는 113원이었다. 그리고 15일 주식시장서 경남기업은 사라지게 된다. 국내 건설사 최초의 주식시장 상장과 해외시장 첫 진출 등 한때 화려한 나날을 보냈던 회사였다. 그러나 경제위기와 3번에 걸친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 성완종 전 회장의 죽음 등 굴곡의 역사도 갖고 있다.

경남기업은 42년 만에 그렇게 쓸쓸한 퇴장을 맞게 됐다.

건설사 최초로 주식시장에 입성한 경남기업... 42년 만에 쓸쓸한 퇴장

경남기업은 1951년 경암토건 주식회사로 출발했다. 이어 1954년에 현재의 경남기업으로 이름을 바꿨다. 이어 1965년엔 태국 중앙방송국 타워 신축공사를 따내면서 업계 최초로 해외에 진출하기도 했다.

이 회사는 1973년에 주식시장에 이름을 올린다. 국내 건설회사 가운데 처음이었다. 그리고 1977년에는 서울 반포에 경남아파트를 지으면서 주택사업까지 진출했다. 최근 몇 년 전까지 '경남 아너스빌'이라는 상표로 아파트를 짓기도 했다.

경남기업의 굴곡진 역사는 1988년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지분인수부터 시작된다. 대우그룹 계열의 건설회사로 입지를 갖춰나갈 즈음에 외환위기가 터졌다. 이어 정부 주도의 대기업 사업 맞교환은 대우그룹 해체로 이어지게 된다.

결국, 경남기업도 대우로부터 떨어져 나왔다. 그룹으로부터의 자금줄이 끊긴 경남기업은 99년 8월께 첫 번째 워크아웃을 신청하게 된다. 이후 2002년 12월께 경남기업은 워크아웃을 조기에 졸업했다.

경남기업의 최근 5년간 주가 추이. 14일 마지막 주식거래가 이뤄진 경남기업의 최종 주가는 113원이었다.
 경남기업의 최근 5년간 주가 추이. 14일 마지막 주식거래가 이뤄진 경남기업의 최종 주가는 113원이었다.
ⓒ 네이버 증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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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물차 영업으로 번 종잣돈으로 건설업 뛰어든 성완종

성완종 전 회장과 경남기업과의 인연은 2003년부터 시작된다. 성 전 회장은 당시 충청지역의 연고를 둔 대아건설 사장이었다. 76년에 화물차 영업으로 모은 140만 원의 종잣돈으로 건설업에 뛰어든 이후 1982년 대아건설 사장에 취임했다.

중견 건설업체의 한 임원은 "당시 대아건설의 성완종 사장이 해외시장으로 진출하기 위해 여러 회사와 접촉했던 것으로 안다"면서 "'당시 '(대아건설이) 국외 건설 시장에서 네트워크와 시공능력을 갖춘 경남기업을 인수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돌았다"고 전했다. 그는 "당시 워크아웃에서 막 졸업한 경남 입장에선 새로운 오너를 통한 자금 지원 등에 목이 말랐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럼에도 회사 규모나 도급 순위 등에서 대아건설이 경남기업을 인수하기란 쉽지 않았다. 하지만 2004년 성완종 사장은 경남기업을 인수하는 데 성공한다. 그는 당시 경남기업 지분 51%를 인수한 후, 대아건설과 합병시켰다. 이어 경남정보기술을 설립하면서 규모를 키웠고, 그 역시 대아경남그룹 회장으로 취임했다.

성 전 회장은 경남기업을 통해 해외 자원개발 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기 시작했다. 2005년 국내 업체들과 함께 컨소시엄을 꾸려 러시아의 캄차카반도 석유탐사 사업을 진행한다. 이어 이명박 정부 출범 후에는 해외 자원개발 사업에 속도를 내면서, 마다가스카르 광산개발과 미국 멕시코만 심해 가스탐사 사업 등에 참여했다.

이밖에 성 전 회장은 지난 2007년에 베트남지사를 설립하고 '랜드마크72' 빌딩 등 대규모 개발 사업에도 나섰다. 1조 원에 달하는 대형 사업이었지만, 세계 금융위기가 이어지면서 자금난을 겪게 됐다. 게다가 국내 부동산 시장 침체에 따른 건설업이 급격한 내리막길을 걷자, 경남기업은 2009년 1월 다시 워크아웃에 들어가게 된다.

탄탄한 기술력으로 3번의 워크아웃을 견뎌냈지만...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8일 오후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자원외교 비리 관련 의혹에 대해 부인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이날 성 회장은 이명박 정부시절 특혜를 받았다는 의혹에 대해 "MB(이명박) 정부의 피해자가 어떻게 MB맨이 되겠냐"며 "일부 언론 보도와 달리 나는 MB맨이 아니다"고 말했다.
▲ 눈물 흘리는 성완종 "나는 MB맨 아니라 MB 정부 피해자"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8일 오후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자원외교 비리 관련 의혹에 대해 부인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이날 성 회장은 이명박 정부시절 특혜를 받았다는 의혹에 대해 "MB(이명박) 정부의 피해자가 어떻게 MB맨이 되겠냐"며 "일부 언론 보도와 달리 나는 MB맨이 아니다"고 말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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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경남기업은 구조조정과 토목 사업 등으로 2011년 5월 워크아웃을 다시 끝냈다. 두 번째 워크아웃에서 벗어났지만, 베트남 개발사업에 자금이 여전히 묶여 있는 상황에서 국내외 사업 부진이 계속됐다. 결국 2013년에 3109억 원의 당기 순손실을 기록하면서 그해 말 세 번째 워크아웃을 신청했다.

창사 이래 최대의 위기에 직면한 성완종 전 회장은 회사를 살리기 위해 여러 채널을 통해 도움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주요 시중은행 등 채권단의 지원을 이끌어 내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지만 쉽지 않았다. 결국, 성 전 회장은 지난달 20일 회사 경영권과 지분 포기를 선언했다. 경남기업을 살리기 위해 마지막 카드까지 내던졌다.

하지만 이번엔 정권의 대대적인 사정드라이브에 걸려들었다. 지난 정부의 자원외교 비리 수사에 경남기업이 등장했고, 검찰의 압수수색도 이어졌다. 업계 한 관계자는 "경남기업과 채권단이 기업회생을 위한 자금 지원 여부를 놓고 회의가 있던 날에 공교롭게 검찰의 (경남기업에 대한) 수사가 본격화 됐다고 한다"고 말했다.

경남기업 관계자도 "성 전 회장은 마지막까지 회사를 살리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면서 "검찰의 자원외교 비리 수사에 회사 이름이 언론에 등장하면서 채권단의 분위기도 싸늘해졌다"고 설명했다.

결국, 채권단은 경남기업 지원을 포기했다. 이어 회사는 법정 관리 행을 피할 수 없었다. 법원은 지난 7일 경남기업의 법정관리 개시를 결정했고, 이성희씨를 법정 관리인으로 임명했다. 지난 9일 이씨가 법정관리인으로 취임하려던 날, 성완종 전 회장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리고 경남기업도 주식시장에서 사라지게 됐다.


태그:#경남기업, #성완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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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황의 원인은 대중들이 경제를 너무 몰랐기 때문이다"(故 찰스 킨들버거 MIT경제학교수) 주로 경제 이야기를 다룹니다. 항상 배우고, 듣고,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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