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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8월,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우리는 한 달에 거쳐 서울에서 육로와 해로를 거쳐 제주도로 넘어왔다. 100일이 갓 넘은 아이와 함께 전세계를 돌아다니려면 아이가 새로운 환경에 적응을 잘 할 수 있어야 하기에 우린 제주도에서 3년간 살아보고자 했다. 더 이상 어딘가에 소속되지 않고 우리의 힘으로 시작해야 하는데 제주도에서 과연 우리는 무엇을 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

제주살이의 허와 실

지인의 소개로 얻게 된 서귀포시 보목동에 위치한 돌담집은 우리의 제주살이를 풍요롭게 해주는 단초가 되었다. 아침마다 해변 따라 여유롭게 아이와 산책하며 시시각각 다른 바다빛을 음미할 수 있고, 겨울철 귤을 수확하는 시기에는 이웃들의 귤 인심이 좋아 귤을 사먹지 않아도 됐다. 가끔 지인들의 농장에서 귤이나 금귤(낑깡) 철에 도와주면 거의 한 달치 먹을 만큼의 귤을 얻을 수도 있었다.

근처에 차가 많이 다니지 않기 때문에 아이가 돌아다닐 때 안심할 수 있고, 육아용품대여가 잘 되어 있어 아이의 장난감도 사지 않고 저렴한 가격으로 빌릴 수 있어 우리의 짐을 늘리지 않아도 됐다. 자기의 꿈을 쫓아 온 사람들이 많이 이주해서 살거나 쉬러 오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사람들도 많이 생겼다.

집 앞 해변에서 보말 채취하기
 집 앞 해변에서 보말 채취하기
ⓒ 김태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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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제주살이가 항상 즐겁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우리는 해안가의 옛날 시골집을 빌린 것이기에 집에 곰팡이가 많이 피어있어 페인트질을 다시 하고 곳곳을 단장하는데 한 달의 시간이 걸렸다. 매달 1번씩은 피어나는 곰팡이를 없애는 데 시간을 보내야 하고 바퀴벌레, 지네와도 친근해야 했다.

하루는 수트를 입고 보말을 채취해서  집에 와 샤워를 하려고 수트를 벗을 때, 수트에서 손가락보다 더 큰 지네가 나와 기겁을 했다. 수트를 빨래대에 말리는 동안 지네가 수트 안이 습해 들어온 것을 난 모르고 수트를 입고 지네와 같이 수영을 한 것이다.

그리고 남편 또한 한밤중에 손가락이 따가워 일어나 보니 지네에 물렸었다. 아이가 안 물렸기에 다행이었다. 그래서 우린 한 달에 한 번씩 방역을 하고 텐트를 갖고 오름 근처에서 야영을 했다. 제주도는 겨울에 영하로 내려가지는 않지만 우리가 사는 곳은 기름보일러이고 웃풍이 세서 따뜻하게 지내려면 월 50만 원 정도가 난방비로 나간다. 그래서 우린 전기장판으로 가끔씩 습하다고 느낄 때만 난방을 하며 지냈다.

제주도에서 유휴자원 공유하며 살아가기

보목동에서 시골집을 완비하고 우린 평소에 관심을 갖고 있었던 공유경제로 무엇을 하며 살 수 있을지 논의했다. 시골집에 방이 3개인데 우린 방 한 개로 살아도 충분하기에 유휴자원인 방 2개가 있었다. 에어비앤비를 통해 방을 공유하니 올린 지 며칠이 안 되어 문의가 들어오는 것을 보니 신기했다. 시골집이고 에어컨이나 편의시설이 잘 구비되어 있는 것도 아닌데 전 세계에서 머물고 싶다는 사람이 있는 것을 보니, 세상에는 우리의 코드와 맞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집 앞마당에 공유한 텐트
 집 앞마당에 공유한 텐트
ⓒ 김태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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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로 갖고 있는 유휴자원인 텐트 2개로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서울에서 제주도로 내려올 때 야영하면서 썼던 텐트를 구석에 남겨놓았는데 쉐어하우스에 오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날씨도 따뜻해지면서 텐트를 다른 사람들과 공유해보자고 했다. 우리의 작은 마당에 검은 현무암으로 쌓여진 돌담이 있어 3~4인용 텐트를 쳐보니 운치 있어 보였다. 그리고 옥상에는 1~2인용 텐트로 소나무 사이로 바다의 풍광을 볼 수 있었다.

텐트에서 생활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닌데 과연 문의하는 사람이 있을까 반신반의하며 공유를 해봤는데 역시나 다양한 사람들에게 문의가 왔다. 그리고 편한 환경이 아니어도 지낼 수 있는 여행객들이기에 우리와 삶을 나누면서 함께 지낼 수 있었다.

우리 공간에 머문 게스트들과 함께 저녁식사
 우리 공간에 머문 게스트들과 함께 저녁식사
ⓒ 한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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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에서 다큐멘터리를 찍으러 왔다는 두 청년은 텐트에서 지내면서 또르띨라(tortilla)로 가정식 음식을 해줘서 요리법을 배우기도 하고, 스웨덴에서 온 청년은 맛있는 코트볼라(kottbullar)를 해주는 등 제주도의 시골집에 살면서 전 세계의 다양한 음식을 맛볼 수 있는 호사를 누렸다.

프랑스에서 살고 있는 우리나라 가족여행객을 통해 프랑스에서 갖고 오신 와인을 함께 마시며 프랑스에서 살아가는 방법이나 삶에 대해서 듣기도 하고, 20~30대 우리나라 청년들의 고민과 꿈에 대해서 나눌 수 있는 등 다양한 사람들과의 만남은 시골에서 단조로울 수 있는 우리의 삶에 활력을 주었다.

제주도에서 우리가 갖고 있는 유휴자원을 공유하여 가치를 생산해본 경험은 전 세계 어디에서도 살아볼 수 있겠다는 실험의 장을 펼쳐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또한 아이가 생활이 좀 불편히여도 자연환경이 아름다운 공간에서 함께 살아갈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갖게 해 주어 3년이라는 적응 기간을 1년으로 단축시켜 제주도를 떠날 수 있었다.


태그:#제주도이주, #제주도여행, #제주도, #쉐어하우스, #디지털노마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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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탐험을 좋아하고 현재 덴마크 교사공동체에서 살고 있는 기발한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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