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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26일, 대법원이 박정희 전 대통령의 긴급조치 발령에 대해 "국가배상법상 불법 행위로 볼 수 없다"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2013년 4월, 대법원이 "긴급조치는 위법"이라고 판시해놓고선 이번에는 "긴급조치를 발령한 것은 '고도의 정치행위'였기 때문에 정치적 책임은 있지만 민법상 불법행위 책임은 없다"며 자기모순적 판결을 내 놓은 것입니다.

국가 폭력의 피해자 구제의 길을 막아버린 사법부의 퇴행적 판결, 이에 대한 비평을 두 차례에 걸쳐 소개합니다. 먼저, 건국대 한상희 교수가 법리와 정의를 왜곡한 판결의 법리를 따져보았습니다. - 참여연대 

과거사의 청산은 시대적 사명이자 우리 모두의 소중한 인권이다. 지난 권위주의 시절, 국가와 법의 가면 아래 자행되었던 적나라한 폭력들을 제대로 고발하고 그에 상응하는 처벌과 교정, 화해와 다짐을 이루어냄으로써 다시는 그러한 국가폭력이 반복되지 않도록 방비하는 것은 이 시대가 요구하는 우리 모두의 의무이자, 폭력으로부터 절대적으로 자유로워야 하는 우리 인간 모두의 권리인 것이다.

하지만, 지난 3월 26일 대법원 제3부(재판장 박보영, 민일영, 김신, 권순일(주심))가 긴급조치선포행위에 대하여 면죄부를 던져준 판결(대법원 2015. 3. 26. 선고 2012다 48824 판결)은 이러한 당위를 정면에서 거부한다.

아니 그 판결은 유신체제하에서의 국가폭력을 '고도의 정치적 행위'라는 이름으로 정당화함으로써 다시금 그 사악한 권위주의체제로 회귀하고자 하는 양승태 대법원장 체제의 퇴행적 모습을 여지없이 드러내었다.

원심판결: 사법적 과거사 청산

이 사건은 가장 전형적인 국가폭력의 문제를 다루었다. 원고는 긴급조치 제9호에 의해 대학 재학 중에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영장 없이 불법하게 구금되었다는 이유로 국가를 상대로 배상을 청구하였다. 이에 피고인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는, 이 구금행위는 당시 긴급조치가 위헌인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공무원으로서의 법집행의 의무를 다한 것일 뿐이기 때문에 배상책임은 없다는 반론을 제기하였다.

이에 대해 원심법원인 대전지방법원 민사제2부(부장 심준보)는 제1심판결을 파기하고 원고의 손을 들어 주었다. 원심법원은 이 긴급조치 제9호가 "유신체제에 대한 국민적 저항을 탄압하기 위한 것임이 분명하여, 오히려 국가공권력에 의한 지배를 강화하고, 다수의 의사에 의한 국민의 자치를 막으며, 자유·평등의 기본원칙에 의한 법치주의적 통치질서에 어긋나고, 국민의 기본적 인권을 침해하는 것으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도 반한다"고 본 것이다.

원심법원은, 박정희 당시 대통령은 국민의 기본권보장과 헌법수호의 의무를 저버린 채 이런 불법적인 긴급조치를 발령한 것은 국가배상법상의 고의 내지는 과실에 의한 것이라고 하여야 할 것이며 따라서 국가는 배상책임을 져야 한다고 보았다. 나아가, 설령 고도의 정치적 행위에 대해서는 사법적 판단이 적절하지 않다는 이론을 고려한다 하더라도 이 경우는 너무도 명백한 헌법위반에 해당하기 때문에 법을 집행하여야 할 법원은 의당히 국가배상 여부를 심판할 수 있어야 한다고 보았다.

사실 이러한 원심법원의 판단은 그동안 사법부 나름의 과거사청산 작업이기도 하다. 유신체제 하에서 이루어졌던 국가폭력이 법이라는 엄폐·은폐물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이 법원의 사법절차였음을 감안한다면, 사법부가 할 수 있는 과거사청산은 무엇보다도 이 법의 외피를 깨쳐 버리고 그 폭력의 적나라한 속살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어야하기 때문이다.

긴급조치에 대한 위헌무효선언이라든지, 독재 권력의 억압에 피해를 입은 사람들에 대한 재심판결이 줄 잇는다든지, 혹은 이들에 대한 국가배상판결이 내리지는 것은 그 작은 성과들이기도 하다. 물론 이러한 사법부의 과거사청산은 국민적인 요구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너무도 느리게 그리고 너무도 조금씩 진행되어 왔다. 더구나 사법부 내부에서의 인적 청산 문제는 아예 거론조차 되지 않은 채 지금까지도 방치되고 있을 따름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이 대법원의 판결로까지 이어진다.

이 대법원 제3부의 판단은 이 정도로 미미한 이행기정의조차도 정면에서 거부해 버렸다. 그것도 변호사조차 없는 본인소송의 형태로 제기된-그래서 한 변호사의 말처럼 가장 약한 고리에 해당하는- 국가배상사건에서 가장 비열한 모습으로 세상을 분노하게 만들었다.

대법원의 견강부회

그 시작은 소액심판사건인 이 사건에 대해 대법원이 굳이 "대법원판례가 없고, 하급심의 판단이 엇갈리고 있는 상황"이라는 핑계를 대며 스스로 판단하고자 나서는 것에서부터이다. 이미 대법원 2013년 4월 18일의 판결(2011초기689)사건을 통해 긴급조치 제9호는 위헌무효임을 선언했다든지, 하급심의 경우에도 대다수의 판결이 국가배상책임을 인정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여기서 전혀 언급되지 않고 있다.

오로지 대법원이 염두에 두고 있는 선례는 1951년의 "거창사건" 피해자들에 대해 소멸시효완성을 이유로 국가배상책임을 부인한 것(대법원 2008.5.29. 선고 2004다33469)뿐이다. 하지만 이 사건은 거창사건의 경우와는 그 법리적 층위를 달리 하여 이미 대법원이 위헌무효라고 선언한 선례를 바탕으로 해서 이루어진 것임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전혀 다른 것을 무리하게 끌어다 들인 견강부회의 사례인 것이다.

여기서 대법원의 본심이 엿보인다. 그저 과거사 사건 중에서 가장 취약하게 보이는 이 사건을 대법원의 심판대 위에 끌어들여 자기들의 퇴행적 법리를 갖다 맞추는 모델 케이스로 삼은 것이다. 그리고 그 음모는 상고이유 제2점(불법행위의 성립여부)과 제3점(시효완성여부)에 대한 판단에서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불법행위의 성립 여부

이 판결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의 긴급조치선포행위가 국가배상의 원인이 되는 불법행위를 이루는가에 대한 판단은 겨우 6줄짜리 한 문장으로 처리된다. 긴급조치가 위법하여 무효라 하더라도, 대통령이 그 긴급조치를 선포한 행위는 "고도의 정치성을 띤 국가행위"이기 때문에 대통령은 정치적 책임은 몰라도 "국민 개개인에 대한 관계에서 민사상 불법행위를 구성한다고는 볼 수 없다"는 것이 그나마 내용이다. 한 마디로 밑도 끝도 없는 판단이다.

실제 "고도의 정치성을 띤 국가행위"라는 개념은 소위 통치행위라는 이름으로 대통령과 같은 국가최고기관의 행위에 면죄부를 던져주던 구시대의 유물이다. 그것은 '한국적 민주주의' 혹은 '영도자적 민주주의'를 외치던 시절의 권력논리를 구성하던 허위의식이었을 뿐, 오늘날의 민주화시대에는 결코 어울리지 않는 담론이다. 그러기에 헌법재판소는 물론 대법원조차도 이 통치행위에 대해 스스로 판단하고 그 위법성을 지적한바 적지 않다.

대법원은 이미 통치행위라 하더라도 그에 맞서 "기본권 보장, 법치주의 이념을 구현하여야 할 법원의 책무를 포기하여서는 아니 된다"(2010. 12. 16. 선고 2010도5986 판결)고 선언한 적이 있다. 더구나 이런 통치행위론은 그 행위의 효력여하와 관련한 부분에서나 판단될 일이지 이렇게 사법의 영역에서 그로 인해 불법한 손해를 입은 개개인에게 국가가 어떤 책임을 져야 할 것인지를 판단하는 상황에다 갖다 붙일 일은 아니다.

그러다보니 이 대법원 제3부의 판결문은 법리에도, 선례에도 맞지 않는, 문자 그대로 순 억지의 판결이 다름 아니게 된다. 긴급조치는 위법인데 그것을 선포한 행위는 합법이 되는 것으로 판단하려면 적어도 그 선포자인 대통령에게 고의도 과실도 없이 오로지 아주 순수하게 국가를 위한 일념 하나만으로 그렇게 했다는 증명이라도 있어야 할 터인데, 이 판결은 그런 증명의 노력조차도 하지 않는다.

실제 대통령은 헌법 수호의 의무를 진다. 거기다 수많은 보좌진과 전문지식을 갖춘 관료들의 도움을 받는다. 그런 대통령이 자신이 발령한 긴급조치가 어떤 면에서 불법하며 왜 문제인지를 알지 못했다면-즉, 고의나 과실이 없었다면-, 그 대통령은 자기가 무슨 짓을 하는지 전혀 모르는 바보이거나, 혹은 자기기만의 무의식에 사로잡힌 정신이상자일 가능성이 높다. 어쩌면 이 엄청난 판단을 단 6줄로밖에 표현하지 못한 것은 이딴 억지에 대한 대법관들의 자의식이 작용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소멸시효 완성 여부

소멸시효에 관한 판단도 마찬가지로 독단으로 일관한다. 수사권이 없는 중앙정보부 소속 공무원이 원고를 구금한 것은 불법행위이기는 하지만 시효는 구금에서 풀려난 즉시 시작되는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는 것이 이 대법원의 판단이다. 유죄판결을 받으면 재심절차에 의해서만 자신의 억울함이 증명되기에 그 재심판결부터 시효가 시작되지만, 이 사건의 경우에는 유죄판결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따로 재심결정을 기다릴 이유가 없다고 본 것이다.

이런 대법원의 판단은 앞선 판례들을 정면에서 위반한다. 여태까지 법원은 권위주의체제의 폭력에 희생된 사람들이 국가배상청구를 실질적으로 할 수 있는 시기가 그 폭력이 있은 날이 아니라 그러한 폭력이 불법한 것임을 국가가 선언한 때-즉, 재심판결이 있거나 진실과 화해 위원회의 결정이 있은 때-라는 점을 명백히 한 바 있다. 이런 기준에 의하면 이 사건의 경우 시효는 빨라야 긴급조치가 위헌무효로 판결된 2010. 12. 16.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 판단하는 것이 불법적 폭력을 휘두른 국가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양심선언이다.

그런데 대법원은 이마저도 외면한다. 통상임금 사건에서 힘없는 노동자들에게는 그렇게도 엄격히 적용되던 신의칙이 정작 국가가 저지른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물러 터진 솜방망이 격이 되어 아무런 의미도 갖지 못하고 있다. 국가는 국민의 신뢰와 신임을 바탕으로 존재한다. 그것이 민주적 법치의 핵심이다. 개인의 거짓말은 참을 수 있지만 국가의 거짓말은 용인될 수 없는 것이 법치국가의 기본 틀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신의칙(신의성실의원칙)은 개인보다는 국가에 더 강하게 적용되어야 한다. 하지만, 이 판결은 이런 법치국가적 정의의 요청을 정반대로 치받는다. 국가가 한 개인에 대해 행한 무지막지한 폭력을 반성하고 처단하기는커녕, 그것에 대해 항의하는 피해자의 목소리조차도 막아버리는 이 파렴치함이 대법원에게는 "신의성실"이라는 미사여구로 이해되고 있는 것이다.

스스로 과거사가 되어 버린 사법부

실제 그동안 양승태 대법원장이 '지휘'하는 대법원은 수많은 퇴행적 판결들을 내어 놓았다. 약자일수록 엄격해지는 법 논리로 통상임금법리의 본질을 왜곡해 버린 판결이나 왜 KTX 여승무원들의 근무행태가 불법파견에 해당되지 않는지조차 불분명하게 내려진 판결 혹은 중소기업의 피와 땀을 빨아먹은 KIKO사건 판결, 거의 법 창조의 수준에 이른 이석기 전 의원 등에 대한 내란선동죄 유죄판결 등 그동안 어렵사리 이루어놓은 민주화의 성과들을 일거에 무너뜨려버리는 판결들이 적지 않았다. 대법원의 판결이 정치적 보수화의 단계를 넘어서서 민주화에 대한 반동의 수준에까지 이르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이 국가배상사건 판결은 그 정점을 달린다. 대법원이 정치사법·계급사법의 선두를 이끌면서 권력과 자본의 이익에 봉사해 왔던 그동안의 법 왜곡이 이제는 과거사의 문제에까지 확장된다. 역사 그 자체를 그 과거사가 현재적 폭력으로 전횡하던 시절로 되돌려 놓으려 하는 것이다. 5·16이 쿠데타인지 혁명인지의 질문이 국회 인사청문회의 단골 메뉴가 되어 버린 이 시점에서, 대법원은 자신이 이미 위헌무효라고 판단하였던 긴급조치의 불법성을 새삼 부정해 버림으로써 또 다른 친위쿠데타의 결과인 유신체제를 다시금 정당화하고 나선다.

마치 재물에 눈먼 중세의 교회가 남발하던 면죄부처럼, 반문명의 시절로 되돌아간 대법원은 권력에 눈멀어 적나라한 국가폭력에 면죄부를 던져주고 있다. 사법부에 대한 미진한 과거사 청산의 과오가 이제 양승태 대법원의 과거회귀라는 또 다른 과거사를 만들어내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그 와중에 우리의 민주주의는 시나브로 스러져가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의 판결비평 사업으로 진행되는 것으로, 참여연대 블로그에도 게재되어 있습니다.

글쓴이는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실행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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