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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앞으로 다가온 영국 총선에서 '정통 좌파' 에드 밀리밴드(45)가 영국을 넘어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다.

영국의 제1야당 노동당은 다음 달 7일 열리는 총선에서 밀리밴드 당수를 앞세워 5년 전 보수당의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에게 빼앗긴 정권 탈환에 나선다. 지난달 31일 영국 최대 여론 조사 기관 유고브가 실시한 조사에서 밀리밴드 당수가 이끄는 노동당 지지율은 36%를 기록하며 보수당 32%를 앞질렀다.

또 다른 여론 조사 기관 '컴레스'의 조사에서는 정반대로 보수당이 36%의 지지율을 기록, 32%에 그친 노동당을 앞서면서 누가 승리할지 장담하기 어렵다. 하지만 줄곧 보수당의 뒤를 쫓기만 하던 노동당으로서는 대등한 싸움을 벌일 수 있게 된 것은 큰 약진이라 할 수 있다.

영국 언론도 선거전이 무르익을수록 상승세를 타고 있는 노동당이 승리할 것이라는 전망이 조금 더 우세하다. 산업 혁명으로 자본주의를 완성했던 영국이 그를 주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마르크스 대가'의 아들, 노동당 당수 되다

에드 밀리밴드
 에드 밀리밴드
ⓒ wikip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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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리밴드 당수가 주목 받는 이유 중 하나는 독특한 성장 배경 덕분이다. 밀리밴드 당수를 이야기할 때 그의 가족사를 빼놓을 수 없다. 1969년 영국 런던에서 출생한 그는 옥스퍼드대에서 경제학, 정치학, 철학을 공부하고 런던정경대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그의 아버지는 독일 나치의 박해를 피해 영국에 이민 온 폴란드계 유대인 랄프 밀리밴드(1924∼1994) 교수다. 1960년대 유럽을 대표하는 마르크스 이론의 대가이자 영국 좌파 운동을 이끌며 런던정경대에서 후학을 양성했다. 그의 어머니 마리온 코작도 노동당에서 열성적으로 활약한 좌파 운동가로 유명하다.

'좌파 가문'에서 태어난 밀리밴드 당수도 부모의 영향을 받아 일찌감치 정계의 길로 들어섰다. 9살 때 노동당의 선거 전단을 돌리고, 19살 때 노동당의 선거 운동 자원 봉사를 했다.

그보다 4살 더 많은 형 데이비드 밀리밴드 전 장관도 스타 정치인이었다. 밀리밴드 당수는 늘 형의 뒤를 쫓기만 했다. 형이 2001년 의회에 입성하자 그도 4년 후 의원이 됐고, 형이 토니 블레어 정권에서 외무장관을 역임한 뒤 고든 브라운 정권에서 에너지·기후 변화 장관을 지냈다.

형제는 정치 노선도 달랐다. 형은 블레어 총리가 외쳤던 '제3의 길'을 선택하며 중도 좌파의 길을 걸었다. 반면 동생은 정통 좌파의 길을 고집했다. 형은 외무 장관으로서 영국의 이라크전 참여를 주도했고, 동생은 이라크전을 신랄하게 비판하며 대립각을 세웠다.

형은 장차 대권에 도전할 노동당의 미래로 주목 받았고, 밀리밴드 당수는 자신의 이름보다 '랄프의 아들', 혹은 '데이비드의 동생'으로 더 유명했다. 하지만 그는 가장 극적인 순간에 형을 앞질렀다.

노동당이 2010년 총선 패배로 보수당에 정권을 내준 뒤 치른 당수 경선에서 형제가 나란히 출마해 동생이 승리한 것이다. 5명의 후보가 나선 1차 투표에서는 형이 37.8%를 득표하며 34.3%에 그친 동생을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과반 득표자가 없던 탓에 3~5위 후보가 얻은 표를 선호도에 따라 1~2위 후보에게 배분하는 2차 개표 결과에서 동생이 50.65% 득표율을 기록하며 49.35%의 형을 가까스로 따돌리고 대역전에 성공한 것이다. '형제의 대결'에서 패한 밀리밴드 전 장관은 2014년 정계에서 은퇴, 국제구호위원회(IRC)를 이끌고 있다.

현실과 이상 사이의 고민, 그의 선택은?

영국 노동당의 에드 밀리밴드 당수.
 영국 노동당의 에드 밀리밴드 당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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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리밴드는 당권을 손에 넣자 기다렸다는 듯 신노동당(New Labor), 즉 '제3의 길'은 끝났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자신의 최대 지지세력인 노동조합의 힘을 앞세워 노동당의 정강 정책을 대대적으로 고쳤다.

그는 블레어 총리의 '제3의 노선'이 서민이나 노동자를 외면하고 친기업, 친자본으로 지나치게 편향되는 바람에 사실상 보수당과 다를 바 없는 정당으로 변질시켰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노동당의 '좌파 본능'을 되찾기 위해 소득 불평등을 해소하고 노동 계층을 끌어안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밀리밴드 당수는 총선 공약으로 부유층 증세, 최저 임금 인상, 이민 개방, 대학 등록금 감액, 에너지 요금 동결, 국민건강보험(NHS) 강화를 내놨다. 캐머런 총리가 추진하는 유럽연합(EU) 탈퇴도 영국의 정치적 지위가 낮아질 것이라고 비판했다.

밀리밴드 당수는 노동당 홈페이지에 내건 출사표에서 "이번 총선은 영국이 소수의 권력층이 아닌 노동자를 위한 국가로 바뀔 기회"라며 "국부를 소수 부자들의 주머니에 쌓아둔다면 영국은 더 이상 성장할 수 없고, 노동자가 성공해야 영국도 성공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보수 세력이 이를 가만히 놔둘 리 없었다. 캐머런 총리와 보수당은 "밀리밴드 당수가 정권을 잡으면 영국 경제가 대란에 빠질 것"이라며 경고했고, 보수 성향 신문 <데일리메일>은 '레드 에드'라는 색깔론을 들고 나와 그의 아버지는 영국을 혐오했으며, 사회주의로 이끌려고 했다고 비난했다.

밀리밴드 당수는 정면 돌파를 선택했다. 곧바로 반박 기고문을 실어 "나의 아버지는 영국을 사랑했고, 영국 해군에 입대해 2차 대전에도 참전했다"고 강조했다. 또한 자신은 "노동자를 위해 작동하는 자본주의를 원하는 것이지, 자본주의를 혐오하는 것이 아니다"고 주장했다. 여론의 역풍을 맞은 이 신문은 결국 해당 기자를 징계하고 공식 사과했다.

물론 밀리밴드 당수도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정당 지지율은 노동당이 앞서지만, 인물 선호도는 캐머런 총리가 밀리밴드 당수보다 높다. 일반 유권자나 온건 노동당 지지층이 보기에 다소 과격할 정도로 좌파 노선을 고집한 탓이다.

또한 선거전이 워낙 박빙이라 노동당과 보수당 둘 다 전체 650석에 이르는 하원의 과반을 차지하기 힘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따라서 선거가 아닌 연정 구성에서 승리하는 쪽이 정권을 잡게 된다는 것이다.

영국 BBC는 "노동당과 밀리밴드 당수가 정권을 탈환하기 위해 연정에 성공하려면 강경한 좌파 정책을 어느 정도 포기하고 '하이브리드'가 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오랫동안 고집해온 정통 좌파의 이념이냐, 아니면 정권 탈환이냐. 밀리밴드의 선택이 주목된다.


태그:#에드 밀리밴드, #영국 노동당, #영국 총선, #데이비드 캐머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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