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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여름, 일본 훗카이도 동쪽 츠루이마을에서 우핑한 이야기입니다. 우프(World-wide opportunities on Organic Farms)는 1971년에 영국에서 처음 시작한 전세계 유기농 농장 네트워크입니다. 유기농 농장을 포함하여 친환경적이고 대안적인 삶을 사는 곳에 가서 하루에 정해진 시간을 일하고 숙식을 제공받는 문화체험 프로그램입니다. - 기자 말

 하트앤트리의 고요한 새벽모습
 하트앤트리의 고요한 새벽모습
ⓒ 이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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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내가 우핑을 하고 있는 하트엔트리가 쉬는 날이다. 매주 목요일은 특별한 일이 없으면 쉰다고 했다. 그래서 오늘은 꽃을 사러 시장에 나가기로 했다. 마을에서 조금 멀리 떨어진 곳으로 가는 만큼, 우리는 새벽에 5시에 일어나서 일본식 주먹밥 오니기리를 만들었다. 내가 예상했던 것과는 조금 다른 오니기리였다.

사실 생각보다 너무 간단했다. 밥에 밑간도 하지 않았다. 손에 물을 묻힌 뒤 소금을 살짝 집어 양쪽 손에 비비고 밥을 손 위에 올린다. 그런 뒤에 간장에 조린 닭고기와 구운 연어를 넣고 꼭꼭 눌러 모양을 만들면 끝이었다. 이런 오니기리는 집에서도 충분히 만들 수 있는 최고의 요깃거리였다. 우리는 하나씩 랩에 싸고 따뜻한 커피와 물을 준비했다.

오늘은 새로운 우퍼가 오기로 한 날이다. 홍콩 사람이고 이름은 쿠니라고 했다. 삿포로에서 밤 버스를 타고 오늘 새벽에 도착한다고 해서 사치코씨가 마중을 나갔다. 하지만 새벽 5시가 안 돼 나간 사치코씨는 8시가 넘어도 돌아오지 않았다.

버스기사에게 물어보니, 쿠니라는 새로운 우퍼는 삿포로에서부터 버스를 타지 않았다고 했다. 아침 일찍 마중을 나온다는 걸 알면서도 아무 연락 없이 오지 않다니, 무슨 일이 생긴 것인지 모르겠지만, 약속을 지키지 않는 건 상대방에게 피해를 주는 일이 분명하다.

꽃시장으로 가는 길, 국도에선 시속 60km 이하로

결국 우리는 모모코, 쏘냐, 모모코의 할머니, 쿠피와 함께 길을 나섰다. 사실 난 꽃시장이 츠루이 마을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알고보니 거의 150km를 달려야 꽃시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더구나 일본 국도에선 시속 80km 이상으로 속도를 낼 수 없다. 대부분의 국도에선 시속 60km 이하로 달려야 하는데, 그래서 시간이 더욱 많이 걸렸다. 도로에 차가 거의 없어서 충분히 속도를 낼 수 있을 것 같았지만 누구나 법을 준수하며 조심조심 운전을 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정말 일본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농장에서 직접 수확학 허브로 만든 허브소금
 농장에서 직접 수확학 허브로 만든 허브소금
ⓒ 이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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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안에서 재잘재잘 수다를 떨며 오니기리를 먹다보니, 어느덧 첫 번째 휴게소가 나왔다. 휴게소 안에 있는 야채코너에서 나는 특별한 것을 발견했다. 야채가 담긴 선반 위에 모든 생산자들의 사진이 걸려있었다. 휴게소 직원에게 물어보니 사진 속 인물들이 생산하고 직접 이곳에 와서 포장까지 한다고 했다. 예전에 책에서 읽었던 완주의 농협과 비슷한 형태인 것 같았다.

생산자는 포장과 운반 등을 모두 해, 중간비용을 줄이고 판매상은 판매한 수익금만 가져가는 형식이다. 중간거래 비용을 줄이니 소비자도 더욱 믿고 물건을 살 수 있고, 생산자에게 많은 이득이 가는 시스템이다. 책에서만 보던 것을 실제로 보니 매우 현실감 있게 다가왔다.

우리는 다시 길을 나섰다. 새벽에 집을 나올 때는 안개 탓에 쌀쌀함이 느껴졌는데, 오전 11시쯤 되니 더워져서 하나 둘 옷을 벗어야 했다. 훗카이도에서도 특히 산과 바다가 함께 있는 쿠시로 지역은 낮과 밤의 온도차가 컸으며 새벽 3시면 해가 뜨고 오후 7시 정도에 해가 질 정도로 낮이 길었다.

우리는 점심시간이 거의 다 되어서 원래 목표했던 꽃가게가 있는 가든에 도착했다. 가든이 시작하는 곳부터 다양한 꽃들이 있었다. 입장권을 사니 야생꽃 씨앗을 선물로 주었다. 가든은 대체로 서양식으로 꾸며져 있었다. 일본의 젠 문화를 엿볼수 있는 정원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에 사실 조금 아쉬웠다.

프랑스 파리에선 일본의 젠 가든을 많이 볼 수 있었다. 반대로 일본에 오니, 서양의 클래식한 정원을 많이 볼 수 있다. 서로가 서로의 것을 좋아하다보니, 진정 자기 자신이 가지고 있는 아름다움은 미처 살피지 못하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 아쉬움이 남았다.

들꽃과 풀들이 엉켜 자라고 있었던 야생화 꽃밭

 우리가 도착한 정원 모습. 가지런하고 예쁘게 정돈된 모습
 우리가 도착한 정원 모습. 가지런하고 예쁘게 정돈된 모습
ⓒ 이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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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든은 야생화 꽃밭과 일반 꽃밭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야생화 꽃밭에는 양귀비나 크고 작은 들꽃과 풀들이 엉키어 자라고 있었고 일반 꽃밭에는 화려하고 큼지막한 꽃들이 잘 정돈되어서 자라고 있었다.

가든을 관리하는 데는 참 많은 노력이 필요한 것 같았다. 나무 주변에 야생딸기를 심은 것과 소나무 주변을 둥글게 다듬어 꽃밭을 만들어 놓은 것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뿐만 아니라 곳곳에 있는 작은 정자들이 관람객에게 쉴 곳을 제공해 줌으로써 가든의 부드러움을 한층 더해준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양귀비 꽃이 여기저기 예쁘게 피어있는 정원 모습
 양귀비 꽃이 여기저기 예쁘게 피어있는 정원 모습
ⓒ 이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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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스크림을 맛있게 먹고 있는 모모코짱과 쏘냐
 아이스크림을 맛있게 먹고 있는 모모코짱과 쏘냐
ⓒ 이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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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다음으로 간 곳은 꽃을 파는 직판장이었는데, 가든에서 본 것처럼 꽃 종류가 다양하지는 않았지만, 하트엔트리 정원에 심는 허브 종류부터 장미, 연꽃, 라벤더 등을 저렴한 가격에 팔고 있었다. 8개의 라벤더 화분 한 세트를 한화 2만 원 정도에 팔고 있었다. 각종 허브와 꽃을 사고 나니 차 두 대에 싣고 가야할 만큼 많았다. 가격은 매우 저렴한 편이어서, 모두 합해서 한화로 10만 원 정도 나왔다. 차를 몰고 150km를 갈만하다고 느껴졌다.

 직판장에서 판매되는 허브
 직판장에서 판매되는 허브
ⓒ 이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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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렴한 가격에 구입 할 수있었던 다양한 종류의 식물
 저렴한 가격에 구입 할 수있었던 다양한 종류의 식물
ⓒ 이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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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계획했던 일을 모두 마치고 쉬기 위해 온천으로 향했다. 파도가 몰아치는 해변 근처에 있는 온천이었는데 바다가 보이는 곳이라서 더욱 특별했다. 입장료는 5천 원 정도로 비싸지 않았다. 모두 옷을 다 벗고 들어가야 했기에 조금 민망하긴 했다. 이곳 온천은 내가 방문했던 다른 일본의 온천과는 좀 달랐다.

온천장에 들어가자마자 암모니아 냄새가 확 풍겨왔고 물의 색깔은 매우 붉었다. 철분이 함유 돼있어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다. 700m 지하에서 뿜어져 나오는 온천 물은 바다 바로 옆에 있어서 그런지 짭짤했다. 온천에 몸을 담그고 있으니 피부가 미끈미끈해지는 것 같았다. 온천장 안에서 밖으로 나오는 문을 통해 베란다로 나오면 바다가 바로 앞에 보였다. 아무 것도 없이 그냥 밖에만 나왔는데도 신선하고 시원한 바람이 순식간에 몸과 마음의 피로를 풀어줬다.

우핑 호스트 14년차, 사치코상

온천은 몸과 마음의 피로를 모두 풀어줄 정도로 즐거웠다. 온천을 끝낸 우리는 온천 근처 쇼핑몰에 들어가서 뜨거운 소바를 먹었다. 식사를 끝으로 우리는 집으로 돌아왔다. 거의 세 시간 정도가 걸린 것 같다. 나는 차의 뒷좌석에서 자면서 왔지만 사치코 상은 계속 운전을 해야했으니 매우 피곤했을 것 같다. 오늘은 다른 것보다도 사치코 상과 다양한 이야기를 할 수 있어서 좋았다.

사치코 상은 올해로 우핑 호스트를 시작한 지 14년째라고 했다. 일본에서 우프를 시작한 첫 농가가 홋카이도에 있었는데 그게 지금 하트엔트리 근처였다고 했다. 어느날 그 우프 농가에서 조깅을 하다가 서로 만났고, 그게 인연이 되어서 사치코 상도 우프농가 신청을 하게 되었다고 했다. 지금은 우프재팬이 생겼지만 그 당시만 해도 영국에 우프농가 신청을 받았다고 하니 하트엔트리는 우프재팬의 조상격이라고 해도 되겠다.

사치코 상이 레스토랑에서 쓰는 간장이나 재료들에 유기농 표시가 되어 있지 않아 혹시 우프재팬을 하려면 어떤 자격 요건을 갖추어야 하냐고 물어봤더니, 특별한 것은 없다고 했다. 사치코 상이 우프등록을 했을 때는 간단한 인터뷰만 거치면 됐다고 했다. 반드시 유기농일 필요도 없다고 했다. 그런 것 자체에 대한 컨트롤이 없는 것 같아보였다. 물론 지금은 이야기가 달라졌을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사치코 상은 20여 년 전에 오사카에서 살았다고 했다. 그 당시 마사토 상과 함께 결혼해서 살면서 요리 대학을 나왔고, 오사카의 삶에 지쳐서 훗카이도에 와서 하트엔트리를 열었다고 했다. 요리대학을 다닐 적에 같이 공부했던 많은 사람들이 사치코 상 처럼 시골로 가서 레스토랑을 열었다고 했다. 영화 <해피 해피 브레드> 같은 농가 레스토랑의 1세대들이었다. 그것도 무려 20년 전에...

사치코상은 하트엔트리를 하면서 정말 많은 미디어에 출연했다고 한다. 그 덕분인지 많은 손님들이 다녀갔고 동시에 유명세도 탔다고 했다. 하지만 동시에 시련이 찾아왔는데, 레스토랑에 찾아오는 손님들에게는 맛있고 손수 만든 음식을 먹였지만, 모모코를 비롯한 자신의 자식들에게는 바쁜 삶에 치여 인스턴트를 먹이는 자신을 발견한 것이다. 그러면서 여러가지 일이 겹쳐 스트레스를 받은 나머지 심한 우울증에 걸려 2년간 하트엔트리를 닫고 힘겨운 시간을 보냈다고 했다.

 웃음이 너무 예쁜 사치코상
 웃음이 너무 예쁜 사치코상
ⓒ 이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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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도 여자는 일을 하기 쉽지 않다고 했다. 가정이 있는 여성이 가족의 동의와 지지 없이 이런 일을 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했다. 다행히도 매우 너그러운 마사토 상의 지지로 사치코 상은 자신이 원하는 하트엔트리를 발전시킬 수 있었다고 했다.

 사치코상의 친절한 남편, 마사토상
 사치코상의 친절한 남편, 마사토상
ⓒ 이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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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치코 상의 허브 농장과 작지만 다양한 야채들이 있는 텃밭은 농약이나 화학비료를 사용하지 않는 유기농이다. 하지만 농장에서 나오는 야채로는 레스토랑에서의 음식을 조달하기가 어려워 사치코 상의 친구의 텃밭에서 야채를 사온다고 했다. 또한 모자라는 치즈와 우유도 가든에서 일하는 스태프 중의 한 명의 농장에서 가지고 온다고 했다. 작은 마을이지만 서로 간의 교류가 뒷받침돼 있었다.

밤에는 집에 돌아와서 맥주를 한 잔 하면서 가든에 대한 여러 가지 이야기를 했다. 내일은 오늘 사온 꽃과 허브들을 가든에 심는다고 했다. 쐐기풀을 꺾어서 뿌리 밑에다 깔고 심으면 더 좋다고 이야기해 주었더니 그렇게 하자고 한다. 내일은 레스토랑에서 힘들게 접시 닦지 않고 가든에서 일할 수 있을 것 같다. 좋다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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