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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사안은 전쟁터라고 하지. 하지만 밖은 지옥이다."

드라마 미생에 나온 명대사중 하나다. 회사를 그만둔 선배가 오상식 차장을 찾아와 소주를 마시면서 어떻게 해서든 꼭 회사에서 버텨내라는 뜻으로 전한 말이다. 대한민국 직장인들의 엄청난 공감대를 불러일으키면서 사회적으로 이슈가 된 드라마 미생. 미생이 인기 있었던 이유는 우리의 삶과 너무나 닮아 있었기 때문이다.

미생을 보고 나는 잘 다니던 회사를 비로소 그만두어야겠다는 생각이 더욱 확고해졌다. 사랑하던 회사가 점점 미생에 나오는 '원 인터내셔널'의 어두운 점들과 닮아가고 있다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 안에서 다가올 나의 미래모습이 내가 싫어하고 증오하던 선배들의 모습이 될 것 같아 더 두려웠다.

직장인들의 많은 공감대를 형성하며 큰 화제를 모았던 tvN 금토드라마 미생
▲ tvN 금토 드라마 미생 직장인들의 많은 공감대를 형성하며 큰 화제를 모았던 tvN 금토드라마 미생
ⓒ 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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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대기업 타이틀을 버리고 '시민기자'로써의 삶을 살기로 마음을 먹었다. 직장을 다닐때는 차마 입밖으로 꺼낼 수 없었던 말. 누구나 다 알고 있지만 말할 수 없었던 말. 내 지난 일기장을 공개한다.

 2015/01/27 직장일기

아침부터 너무 일찍 일어났더니 피로가 몰려온다. 오늘은 2015년 경영방침 설명회를 위해 서울에서 대표이사가 경남에 방문한다고 해서 몇일전부터 비상이었다. 나는 군대를 다녀오지 않았다. 산업기능요원을 통해 군 대체 복무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군대의 '소원수리'가 뭔지 사회에서도 충분히 경험했고 뭔지 알고 있다.

분명 몇해전 지역단위로 개별 경영을 할 때 우리 회사는 아주 조직문화가 좋은 회사였다. 직원들의 만족도도 상당히 높았고 그로인해 중소기업청으로부터 노사문화 우수기업으로 선정되어서 상패도 받곤 했다. 그런 상을 받은것에 대해 전 직원 모두가 공감하고 기뻐하던 시절이 있었다.

시간이 지나 조직이 커지면서 지역에 있는 조직들은 통폐합이 되어갔고 서울본사가 커지게 되었다. 조직이 커지고 본사가 커지다보니 본부장, 실장등 '감투'쓴 사람들이 점점 늘어났다. 그러니 당연히 의사결정 구조도 복잡해졌다. 분명 지역 프렌차이즈 기반의 회사로써의 강점이 차별화였던 우리회사도 여느회사와 마찬가지로 중앙에서 콘트롤 하는 상명하복식 군대문화가 자리잡기 시작했다. 지역특성을 무시한채 조직별 단순비교를 통해 평가를 하고 그 평가의 칼날에서 살아남기 위해 해당 조직장들은 아랫사람들을 더 달달 볶으면서 조직의 개성은 사라져갔다.

지역별 독립운영 당시엔 지역마다 대표가 별도로 있었다. 하나의 중소기업과 같은 체제로 움직였다. 그 덕분에 전 직원의 장단점을 대표가 속속들이 알고 있었고 빠른 의사결정과 강한 실행력을 앞세워 고성과 창출이 용이했기 때문에 조직내 부정과 비리는 있을수가 없었다. 그럴 시간에 한발짝이라도 더 뛰기 바빴다.

지금은 소위말해 공산당 문화가 조직내 자리를 잡았다. 회의시간은 조직장이나 팀장이 연설하는 시간으로 바뀌었고 밑에 있는 직원들은 침묵했다. 높은 사람이 우리 조직을 방문한다고 하면 사전에 질문까지 미리 조사해서 검열을 하고 질문을 받는 사람이 기분 좋을만한 질문만을 하게했다. 회사를 위해 시장경쟁에서 뒤쳐지는 상품의 단점 개선을 건의하면 그 상품을 개발한 해당부서에서는 자신들이 다칠까 싶어 권력을 이용해 그 건의가 맨 위까지 보고가 되지 않도록 했고 보고가 된다고 해도 각종 핑계와 논리를 만들어 건의 의도와 다른 방향으로 보고가 되었다. 그런 시간이 길어지면서 더더욱 조직 내에선 침묵의 시간이 늘어났고 '까라면 까!' 식의 군대문화만이 깊숙히 자리잡게 되었다.

아침마다 사무실에 달린 TV를 통해 나오는 그룹뉴스나 사내방송에서는 온갖 책에 나오는  좋은말은 다 갔다붙여서 멋진 인재상을 그려내고 있고 실제 조직에서 그런 인재가 있으면 '고집세고 말많고 삐뚤한 놈'으로 매도하기 바빴다. 사극에 보면 왕들이 눈가리고 귀닫고 정치하는것과 다를바 없었다.

그런 조직문화의 변화는 곧 실적부진이라는 결과가 되어 우리에게 돌아왔다. 창립 12년만에 최초로 연말 인센티브를 받지 못하는 사태가 발생되었고 매출이 계속적으로 증가함에도 영업이익은 지속 하락하는등의 경영악화가 심각해지고 있다. 분명 근본적인 문제는 나와 있음에도 각자 한자리 하는 분들의 '자리 지키기'를 위해서 오로지 단기성과만을 부르짖고 미래를 위한 투자는 더디게 진행되었다. 매출과 영업이익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오른쪽 주머니의 돈을 세탁해서 왼쪽 주머니로 넣으면서 가짜매출을 올리는데만 열을 올렸고 그렇게 무너지는 영업이익에 대한 대책은 구조조정이나 내부 허리띠 졸라매기를 통해 매꾸려고 했다.

최근 언론에서 대한민국 기업의 평균수명은 16년이라고 한다. 우리 회사는 올해 13년차다. 10년이 지나면서 가파르게 상승하던 회사의 실적은 하락추세로 턴어라운드 했다. 진정한 위기다. 항상 노키아와 같은 실패사례를 언급하면서도 우리가 노키아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나는 7년이 넘도록 8년이라는 시간동안 '우리회사'를 사랑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집단적 타성에 젖어 나만 살고보자 식의 마인드를 가진 우두머리들이 너무 많아졌다. 계층이 늘어나고 자리가 늘어날수록 더 많아졌다. 개개인에서 더 나아가 지역적 특성과 개성마저 무시해버린 회사. 그렇게 나의 비전과 회사의 비전은 틀어져가고 있었다.



태그:#직장, #사직서, #대기업, #미생, #소원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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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콘텐츠 대표 문화기획과 콘텐츠 제작을 주로 하고 있는 롯데자이언츠의 팬이자 히어로 영화 매니아, 자유로운 여행자입니다. <언제나 너일께> <보태준거 있어?> '힙합' 싱글앨범 발매 <오늘 창업했습니다> <나는 고졸사원이다> <갑상선암 투병일기> 저서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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