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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일 열린 제7차 무역투자진흥회의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발언을 하고 있다.
 지난 19일 열린 제7차 무역투자진흥회의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발언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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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의 '사정 강풍'이 연일 계속되고 있다. 포스코에서 시작된 기업 비자금 정국은 신세계와 동부, 에스케이(SK)와 롯데쇼핑 등 재계 전반으로 확대될 조짐이다. 이완구 총리에 이어 박근혜 대통령까지 '반부패 전쟁'을 선언하면서 사정 '강풍'은 '태풍'으로 변하고 있다.

'태풍'의 중심엔 검찰뿐 아니라 국세청, 공정거래위원회, 국가정보원까지 사정기관이 망라돼 있다. 재계는 일단 바짝 긴장하는 눈치다. 일부에선 '표적수사', '길들이기' 등 격앙된 목소리도 나온다.

기자는 최근에 기업인, 고위공무원 등과 만난 자리에서 물었다. '왜 지금인가'라고. 그리고 '무엇을 얻기 위한 것인가'라고. 그들의 생각과 답은 각기 달랐다. 하지만 공통된 목소리도 있었다. 하나같이 '의도', '보여주기식', '불신' 등의 용어였다. 이어 "이런 방식의 사정드라이브가 계속 반복되는 한, 부정부패가 사라질 가능성은 별로 없다"는 것이었다.

사자방에서 포자방으로 그리고 기자방으로

지난 16일 대기업의 한 고위급 임원은 격앙돼 있었다. 당초 해당그룹의 인력채용 등 투자 에 대해 이야기를 들을 참이었다. 그룹내 부사장급인 A씨는 "기업 투자는 언제든 필요하면 하게 돼 있는 것"이라며 "(정부가) 언제는 규제를 다 풀어줄 것처럼 해놓고, 이제 와선 (기업을) 모든 비리의 온상인 양 몰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판국에 (오너에게) 누가 투자 보고서를 올릴 수 있겠느냐"고 되물었다.

그 임원은 되레 기자에게 "왜 지금 (정부가) 이렇게 합니까"라고 물었다. 기자가 다시 "저에게 묻는 게 아니라 하고 싶은 말이 있으신 것 아닌가"라고 되물었다. 그는 "이해가 되질 않는다"고 했다. 정부의 태도를 문제 삼았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기업인 사면을 이야기하던 정부가 어느 순간 돌변했다는 것.

실제 사정 정국을 주도하는 황교안 법무장관은 작년 9월 재벌 기업인 사면을 언급했었다. 그는 당시 "잘못한 기업도 경제살리기에 헌신적인 노력을 하고 국민들 여론이 형성되면 다시 기회를 드릴 수 있다"고 말했다.

최경환 경제부총리도 기업인 사면에 대해 "전적으로 공감한다"고 거들었다. 작년 말에는 청와대조차 "해당 부처에서 판단하면 될 일"이라고 할 정도였다. 하지만 대한항공의 조현아 땅콩회항 사건이 변수가 됐다. 이 사건으로 재벌 오너에 대한 국민 여론이 급격히 나빠지자 사면 카드는 슬그머니 사라졌다.

A씨는 "당시 정부의 태도를 보면서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면서 "일부 기업인 사면을 두고 마치 재계에 큰 인심이라도 쓰는 것처럼 행세하는 것 같아 씁쓸했다"고 말했다. 그는 "어느순간 신문 지면에 사자방 비리에서 포자방으로 바뀌더니 이젠 기자방이라고 한다"며 "4대강 문제는 온데간데없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사자방 비리는 '4대강과 자원외교, 방위산업 비리'를 줄여서 정치권에서 쓰는 용어다. 이것이 최근 포스코 비자금 사건 이후 '포자방'으로 둔갑했다가, '기업 비자금'으로 더 확대된 '기자방'으로 바뀌었다는 것. 한 마디로 원칙없이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들쭉날쭉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공무원, 대기업, 정치인 때려서 손해볼 거 없다

검찰이 거액의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의혹으로 포스코건설에 대한 수사에 착수한 지난 13일 인천시 연수구 포스코건설 건물에서 압수수색을 마친 검찰 수사관들이 압수품을 가지고 나오고 있다.
 검찰이 거액의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의혹으로 포스코건설에 대한 수사에 착수한 지난 13일 인천시 연수구 포스코건설 건물에서 압수수색을 마친 검찰 수사관들이 압수품을 가지고 나오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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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재계 인사의 지적도 비슷하다. 중견 대기업의 사장인 B씨는 "부정부패와 전쟁을 벌인다는 데 어떤 국민이 반기를 들 수 있겠는가"라며 "문제는 국민들이 얼마나 공감하느냐의 여부"라고 말했다.

B씨는 "차라리 대기업과 중소기업, 하청업체 사이의 불공정 거래를 뿌리 뽑겠다고 했으면 (국민들에게) 박수를 받지 않았을까 한다"고 덧붙였다. '왜 지금 기업비자금 수사를 한다고 생각하느냐'고 물었더니, 그는 "기업인 수사는 결국 두 가지"라고 답했다.

하나는 선거를 앞둔 차별성이고 또 하나는 재계 길들이기라는 것. 지난 정권 실세에 대한 표적 수사에서 기업인들은 어쩔 수 없이 들어가기 마련이라는 것. 이어 정부의 각종 경제정책에 기업의 참여를 이끌어 내려는 수단으로 쓴다는 것이다.

민간 경제연구소의 선임연구위원인 C씨는 "최근 경제부총리가 경제단체장 등과 만나는 자리에서 공정거래위원장 등을 함께 데리고 나오지 않았는가"라며 "기업인들 입장에선 그런 형식의 자리가 유쾌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정부의 '임금인상' 요구에 재계가 그동안 난색을 표했고, 이날도 마찬가지"라며 "재계의 입장을 뻔히 알고 있던 최 부총리가 새로운 대안을 내놓지 않았다"라고 전했다. 대신 그날 오후 검찰은 포스코건설에 대해 대대적인 압수수색을 벌였다.

또 C씨는 "기업인들 입장에선 속으로 '결국 이렇게 압박하는구나'라고 생각했을 것"이라며 "정부와 기업이라는 주요 경제 주체 사이에 불신의 골만 깊어지는 꼴"이라고 말했다.

다른 재계단체 인사도 비슷하다. D 전무는 "부패한 정치인과 공무원, 기업인을 때려잡는다고 하는데 누가 뭐라 하겠는가"라며 "문제는 이런 사정드라이브를 통해 얻어내려는 의도가 무엇이냐가 관건"이라고 전했다.

부패와 전쟁한다는 데 누가 반기 들겠나

이미 박근혜 대통령은 "부정부패 척결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 그리고 경제살리기를 위해서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맞는 말이다. 박 대통령의 '의도'대로만 진행된다면 말이다. 하지만 시장이나 국민들은 여전히 갸우뚱하다.

C 연구위원은 "결국 현 정권도 기업비리, 자원외교 수사 등을 통해 지난 정권과의 차별성을 세울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이를 통해 국정 장악력을 높이고, 공무원 연금개혁이나 기업 투자 등을 이끌어 내려고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내년 총선을 앞둔 올해가 정치권과 재계, 공무원 조직을 다잡는 데 절호의 기회라고 강조했다. 검찰뿐 아니라 국세청, 공정위 등 경제검찰 격인 조직을 총동원하는 것도 이런 맥락이라는 것.

이에 국세청의 한 고위간부는 "기업들의 탈세 등 불법행위에 대해선 항상 예의주시하며 보고 있다"면서 "마치 특정 기업이나 사안을 두고 조사를 벌이는 것처럼 비치는 것이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또 다른 사정 당국의 간부는 "일부 정치인이나 기업들 입장에선 표적수사 등으로 느낄 수 있는 여지가 있는 것이 사실"이라며 "사자방이든, 기자방이든 비리의혹 수사는 집권 기간 내내 진행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결국, 이번 사정 드라이브를 통해 집권층은 자신들의 지지층을 결집시키고, 국정 지지율을 높이는 효과를 낼 수 있다. 실제로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은 최근 다시 반등세를 보이고 있다. 이어 공무원 연금 개혁이후 이반 조짐을 보이는 관료사회와 여당 등에 대해서도 충성도를 높이는 계기로 삼을 수도 있다. 지난 이명박 정부의 부패를 들춰냄으로써 차별성을 부각하고, 재벌 등 기업들에 정부 정책에 적극 협력하라는 메시지까지 전달하는 효과까지 볼 수 있다. 이번 박근혜식 사정드라이브가 갖는 '노림수' 다.



태그:#박근혜, #부정부패 척결, #검찰, #국세청, #재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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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황의 원인은 대중들이 경제를 너무 몰랐기 때문이다"(故 찰스 킨들버거 MIT경제학교수) 주로 경제 이야기를 다룹니다. 항상 배우고, 듣고,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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