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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 6명이 사망하고 11명이 부상을 당했던 여수 대림 산업 폭발사고 2주기를 맞아 추모와 예방 대책을 요구한 지 3일도 지나지 않았는데, 또다시 가슴 철렁한 사고가 일어났다.

지난 17일 오후 10시, 전남 여수 국가 산단 내 세제 원료 등을 생산하는 아이씨케미칼에서 반응기의 압력이 높아져 폭발하면서 화재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작업 중이던 노동자 3명이 타박상을 입었으며, 공장 건물 일부가 파손된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은 산화에틸렌을 이용해 계면활성제를 만들어내는 반응기(일명 탱크로리)에서 온도와 압력이 높아지면서 폭발이 발생한 것으로 사고 원인을 발표했다. 계면활성제는 액체 표면에 달라붙어 표면의 활성을 크게 하고 성질을 급격히 변화하게 하는 물질로 세제, 화장품, 공업 용품 원료로 쓰이고 있다.

반응기에 사용된 산화에틸렌은 열, 스파크, 화염, 마찰, 충격, 오염에 의해 쉽게 점화하고 폭발 위험성이 높아 사고 대비 물질로 규정돼 있는 물질로 호흡기 흡입 시 구토, 두통, 폐부종을 일으킬 수 있는 물질이다.

또한, 생식 능력의 장애를 일으키거나 유산·불임 등을 유발하는 생식 독성 물질인 동시에 세포 또는 생물 집단에게 돌연변이를 발생시키는 변이원성 물질로 당장 인명 피해가 없다고 해서 안심할 물질은 아니다. 이번 사고는 대림산업 폭발 사고 이후 잊을 만하면 반복되는 화학 물질 사고라는 점에서 여수 지역 노동자 및 주민의 불안을 가중시키고 있다.

4월 초 공개될 '우리동네 위험지도' 앱에서 제공되는 아이씨케미칼 사업장 2012년 배출량 공개물질 현황과 위험성 정보
 4월 초 공개될 '우리동네 위험지도' 앱에서 제공되는 아이씨케미칼 사업장 2012년 배출량 공개물질 현황과 위험성 정보
ⓒ 현재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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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 지역에서는 지난 1월 30일 노동자 5명이 부상당한 LG화학 폴리카본나이트 포스겐 가스 누출 등 크고 작은 사고가 잇따르고 있다. 이에 화학물질감시네트워크 여수건강과생명을지키는사람들(아래 여수건생지사)은 더 이상의 화학 사고를 용납할 수 없으며 긴급 성명을 통해 올바른 사고 원인 조사와 재발 방지 대책을 아래와 같이 요구한다.

구조적 원인 찾아야

첫째, 관계 당국은 작업자 실수로 사고 원인을 봉합하려는 시도를 중단하고 시스템적 원인조사를 실시하라.

사고가 나자 경찰과 소방 당국, 그리고 언론은 사고 원인을 작업자 부주의, 실수로 치부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주요 언론은 관계 당국의 발표를 인용해 야간 작업자들이 상승한 반응기에 제때 냉각수를 주입시겼는지, 주입 후 제대로 된 대응 조치를 취했는지 등 정확한 사고 경위를 조사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이러한 조사 방침이라면 작업자들이 마치 주입 시기를 놓쳤거나 압력 상승 후 자리를 지키지 않은 것처럼 책임을 추궁하는 쪽으로 결론 날 확률이 높을 수 있다. 반응기 사고 경우 이번 사고와 같이 급격한 온도 상승으로 압력 조절이 불가능해지면서 폭발 화재로 이어지는 것이 대부분이다. 이러한 경우 시스템적 요인을 그 무엇보다 먼저 살펴봐야 한다.

먼저, 압력 상승 시 온도의 급격한 상승은 공정 디자인 문제(Design System Error)일 가능성이 높다. 안전한 공정이었는지 여부를 면밀히 조사해야 한다. 사업장 공정안전보고서(PSM)가 제대로 작성됐는지도 파악해야 한다.

초기 설비 도입 단계에서의 문제일 수 있다는 것이다. 여수 경찰서 관계자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올해 들어) 세 번인가 네 번 작업을 하긴 했는데 좀 불안했다는 거죠, 기계 자체가..."라고 말했다. 이 같은 인터뷰 내용이 그 가능성을 높이고 있는 만큼 철저한 조사를 요구한다.

다음으로 작업 절차 상의 문제(Procedure System Error)일 가능성이 있다. PSM이 현장에서 온도 상승시 비상 대응 계획으로서 실제 작동되고 있었는지, 다시 말해 냉각수 주입 절차, 주입 이후 대책, 초기 단계에서 비상 정지 매뉴얼 등의 존재 유무를 면밀히 살펴보아야 한다.

둘째, 화학 물질의 안전관리를 위한 노·사·민·관이 참여하는 지역 관리 체계인 지역 사회 알권리법과 조례를 조속히 제정하라. 매번 반복되는 화학 물질 사고 때마다 수 차례 근본적인 대책 마련을 요구해왔다.

이번 사고는 정확한 조사 결과가 나와 봐야 알겠지만, 또다른 측면에서 보면 노후 설비에 의한 사고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왜냐하면 여수 산단의 경우 대부분의 설비가 30~40년된 것으로 적절한 보수 정비가 이뤄지지 않았을 경우 언제 어디서든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2013년 9월 대림 산업 폭발 사고 이후 여수 지역 화학 사고 현황
 2013년 9월 대림 산업 폭발 사고 이후 여수 지역 화학 사고 현황
ⓒ 현재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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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자체 단위의 여론 형성 필요해

이처럼 노후 설비를 포함한 화학 물질의 안전한 관리와 사고 시 비상 대응을 위해 지난해부터 화학물질감시네트워크와 여수건생지사는 '화학물질관리와 지역사회알권리법과 조례(아래 알권리법 조례)' 제정 사업을 전국 주요 산단 지역에서 펼쳐왔다.

전국 주요 산단 중 여수 지역은 그 어떤 지역보다도 이러한 관리 체계 마련이 시급하다. 왜냐하면 여수 산단은 산화에틸렌, 염소, 포스겐 등 독성가스 외에 황산, 암모니아, 염산 등 유해화학물질, 휘발유·경유·톨루엔·벤젠 등 위험물 등 3종류 물질을 모두 취급하고 있어 작은 사고라도 터지면 자칫 대형 참사로 연결될 가능성이 높은 지역으로 손꼽히기 때문이다.

알권리법은 '화학물질관리법 개정안'으로 2015년 4월 국회 본회의 상정을 앞두고 있다. 지역에선 법 제정과 동시에 지자체 조례 제정을 통해 알권리법 취지에 맞게 실제 지역에서 실현될 수 있도록 하는 여론 형성이 필요하다.

다시 한 번 마지막으로 요구한다. 여수시 의회는 이번 사고를 계기로 여수시 지역 사회 알권리법 조례를 제정하기 위한 구성원들의 뜻을 하루 빨리 모으기 바란다. 몇 번의 사고가 대형참사로 이어지지 않은 것은 어쩌면 천운이다. 운은 계속되지 않는다.

덧붙이는 글 | 지난 17일 발생한 여수 산단 아이씨케미칼 반응기 폭발 사고의 제대로된 사고 조사와 재발 방지 대책을 촉구하는 내용의 칼럼입니다. 이 글은 일과 건강에도 실렸습니다.



태그:#여수산단, #폭발화재사고, #화학물질, #안전보건, #일과건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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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과건강 기획국장으로 화학물질감시네트워크 사무국장이며 안전보건 팟캐스트 방송 '나는무방비다' 진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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