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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스터 정상(Gloucester Tops)에서 바라본 배링톤국립공원
▲ 배링톤국립공원 글로스터 정상(Gloucester Tops)에서 바라본 배링톤국립공원
ⓒ 이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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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이 멀지 않은 톨우즈 빌리지(Tallwoods Village)라는 바닷가 동네를 퇴직 생활의 근거지로 택한 이유가 있다. 나는 바다를 좋아하고 아내는 산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가까운 곳에는 세계 유산으로 등록된 바링톤탑스 국립공원(Barrington Tops National Park)이 있다.

산을 찾아 나서기로 했다. 북쪽에 있는 배링톤 정상(Barrington Tops)은 가본 적이 있기에 이번에는 조금 남쪽에 있는 글로스터 정상(Gloucester Tops)을 찾아 나섰다. 항상 하던 대로 아내는 지도를 들고 길을 안내하며 나는 운전대를 잡는다.

조금 이른 아침이다. 지난번 배링톤 정상을 갈 때에는 타리(Taree)를 통해 갔으나 이번에는 나비악(Nabiac)이라는 동네를 통해 가는 길을 택했다. 나비악 주유소에 들러 기름을 넣었다. 자그마한 식당도 있는 제법 큰 주유소다. 식당에는 적지 않은 자동차 여행객이 이른 아침을 먹고 있다. 호주 사람은 시간만 나면 여행을 즐긴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로스터(Glocester)라는 동네를 향해 내륙으로 들어간다. 2차선 도로에 속도 제한은 90km라고 적혀 있다. 도로가 좋긴 하지만, 제한 속도를 내기에는 부담이 있는 커브가 많다. 90km 속도 제한은 90km를 넘지 말라는 경고라는 생각을 갖고 운전한다. 젊었을 때는 속도 제한이 적힌 속도 이상으로 달리곤 했는데, 늙은 증거인지도 모르겠다. 천천히 주위 환경을 즐기며 운전한다.

글로스터 입구에 있는 전망대에서 마을을 내려다보며 사진을 찍고 동네에 들어선다. 자그마한 동네다. 지난 번에도 들렸던 동네 안내소(information centre)에 들른다. 할머니 둘이서 친절히 맞는다. 자원 봉사로 일하는 동네 할머니라는 것을 직감으로 알 수 있다. 목적지를 이야기했더니 간단한 정보지 등을 주면서 비가 와서 물이 많기는 하지만 자동차 들어가는 데는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했다.

고맙다는 인사를 남기고 산 쪽으로 길을 꺾는다. 비포장 도로가 나온다. 도로 옆에는 드넓은 목초지에서 소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다. 호주에 사는 소는 축사에서 생활하는 소보다 행복(?)할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산길을 계속 들어가니 개울이 나온다. 시멘트로 포장된 도로는 개울물에 잠겨 있다. 천천히 운전하며 건넌다. 조금 더 가니 물에 잠겨 있는 도로가 또 나온다. 도로 주위에 있는 물에 몸을 담그고 있는 소들도 있다. 이렇게 물에 잠겨 있는 도로를 몇 개 더 지나고 나서 가파른 길을 오른다. 야영장이 나온다. 서너 개의 텐트와 자동차가 있고 주위에서는 아이들이 놀고 있다.

계속 산길을 오르니 길이 끝난다. 막다른 길목에 식탁 하나 있고 옆에는 시냇물이 흐른다. 물에 손을 담근다. 차가운 청량감이 온몸을 적신다. 어렸을 적 도봉산을 오르내리며 보았던 시냇물이 생각난다. 지금은 전혀 다른 모습을 하고 있을 것이다. 가지고 온 점심을 펼친다.

이곳에는 하이킹 코스가 많다. 짧은 것부터 며칠씩 걸어야 하는 긴 코스도 있다. 전망대가 있다는 짧은 길을 걷는다. 하늘이 보이지 않는 깊은 산이다. 싱싱한 이끼가 바위와 죽은 통나무를 초록색으로 덮고 있다. 이끼를 이렇게 아름답게 보기는 처음이다. 습한 곳에서 만난 싱싱한 삶을 보니 더 아름답게 보이나 보다. 평소에 가지고 있던 '이끼'라는 단어가 주는 부정적 이미지가 없어진다. 

전망대에 도착했다. 한 무리의 사람이 점심을 먹고 있다가 자리를 비켜준다. 전망대에 올라서니 멀리 낭떠러지 아래로 맑은 물줄기가 떨어지는 것이 보인다. 깊은 숲 속의 신선한 공기를 마음껏 마신다. 조금 더 걷는다. 이번에는 시야가 확 트인 전망대가 나온다. 수많은 산등성이가 끝없이 펼쳐져 있다. 

자동차를 타고 왔던 길을 조금 더 내려가 다른 산책길을 걷는다. 조금 긴 산책길이다. 주위에는 이름 모를 버섯이 많다. 종류도 다양하다. 버섯에 대해 아는 것이 있으면 따먹을 수도 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든다. 숲을 한참 내려가니 개울이 나온다. 자그마한 폭포도 있다. 개울에 얼굴을 담그며 더위를 식힌다. 물 소리, 바람 소리 그리고 이름 모를 새소리가 요란한 골짜기에 있으니 나도 자연과 하나가 된 기분이다.

돈 보다 자연을 택한 지역 주민

산이 좋아 야영장에서 지내는 사람들, 캐러밴을 가지고 와서 지내는 사람도 있다.
▲ 배링톤국립공원 산이 좋아 야영장에서 지내는 사람들, 캐러밴을 가지고 와서 지내는 사람도 있다.
ⓒ 이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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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갈 시간이다. 땀에 젖은 몸을 바람에 말리며 비포장 도로를 달린다. 올라오면서 인상 깊게 보았던 자그마한 집을 향해 사진을 찍는다. 외딴 이곳에 사는 사람과 차 한 잔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문명과 사람을 등지고 사는 용기가 부럽다.

오면서 들렸던 글로스터에 다시 도착했다. 온 김에 동네를 한 바퀴 돌아본다. 골프장도 있고, 모텔도 서너 개 보인다. 수영장, 테니스장 그리고 크리켓 운동장 등이 있는 규모 큰 스포츠 단지가 있다. 동네 한복판에는 실개천이 흐르고 큰 산이 마을을 감싸고 있다. 자그마하고 예쁜 그림 같은 동네다.

이 동네는 얼마 전까지도 뉴스에 자주 나왔다. 호주 굴지의 회사(AGL)가 지하 자원을 개발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연이 훼손된다는 이유로 반대하는 동네 사람들의 시위가 끊이지 않았다. 지금은 주민의 반대에 굴복해 회사가 개발을 잠정적으로 중지한다고 발표한 상태다.

호주 굴지의 회사가 작은 동네의 주민 의사에 굴복한 것도 이해하기 어렵지만, 금전적인 혜택을 포기하고 자연과 함께하고자 하는 주민도 이해하기 어렵다. 개발은 좋은 것이고 돈은 많을수록 좋다는 사회에서 잔뼈가 자란 나에게는...


태그:#호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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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니에서 300km 정도 북쪽에 있는 바닷가 마을에서 은퇴 생활하고 있습니다. 호주 여행과 시골 삶을 독자와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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