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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재기 전 국립국어원장이 3월 16일치 <경향신문>에 기고한 글
▲ 초등학교 한자교육 '반대'에 답함 심재기 전 국립국어원장이 3월 16일치 <경향신문>에 기고한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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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경향신문>을 펼쳤다가 '초등학교 한자교육에 '반대'에 답함'이란 글을 읽었다. 글을 쓴 심재기 전 국립국어원장은 2018년부터 초등학교 3학년 이상 교과서에 한자 병기를 반대하고 한자교육을 포기하는 건 이 나라가 일류국가로 발돋움하는 것을 발목 잡는 일이라고 나무란다. 바꿔 말하면 한자교육을 해야만 일류국가가 될 수 있다는 말. 정말 그런가. 다음은 그 글에서 한 부분을 따왔다. 

"그동안 한글전용 정책의 결과로 인한 불완전한 의사소통으로 말미암아 국민 전체에 상당한 불편을 초래하고 있으므로 이 부조리한 어문생활을 더 이상 좌시할 수 없다는 게 대다수 국민의 공감대에서 온 결정으로 보인다." (기사 한 부분) 

한글전용, 그러니까 한글로만 써온 우리 말 정책으로 의사소통이 '불완전'해졌고, 국민 전체에 '상당한 불편'을 일으켰는데 이 부조리한 어문 생활을 더 이상 봐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말이다.

궁금하다. 한글로만 썼을 때 말이나 글이 통하지 않는 일이 얼마나 될까. 오히려 한자로 썼을 때, 더 말이 통하지 않는 게 아닐까. 글은 덮어두고라도 말로 지껄일 때를 한번 떠올려 보라. '한글전용 정책의 결과'라고 했을 때, '전용'이란 한자를 머릿속으로 떠올리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사전 올림말 '全用, 全容, 悛容, 專用, 轉用'에서 한글 전용했을 때 전용에 맞는 한자를 골라낼 수 있을까. '한글 전용' 하면 '아, 한글 한 가지로만 쓴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더욱이 국민 전체에게 상당한 불편을 주어 더는 두고 볼 수 없다는 게 많은 사람의 뜻이라고 했지만 이 말도 사실과 다르다. 한글로만 써서 불편한 건 국민이 아니라 이 땅의 먹물들이 아닐까. 남들 모르는 한자를 휘휘 갈기듯 써서 지식을 뽐내고 거들먹대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서 안타까운 게 아닐까. 한글로만 써서 말이 통하지 않는다고 하면서 심재기 전 원장이 신문에 낸 글을 보라. 한자 하나 섞지 않았다. 거꾸로 앞엣말을 한자를 바꿔 아래처럼 신문에 냈더라면 어땠을까.

그동안 한글專用 政策의 結果로 因한 不完全한 意思疏通으로 말미암아 國民 全體에 相當한 不便을 招來하고 있으므로 이 不條理한 語文生活을 더 以上 坐視할 수 없다는 게 大多數 國民의 共感帶에서 온 決定으로 보인다.

과연 국민 대다수가 알 수 있는 글이 되었는가. 신문을 보고 '오, 정말 뜻이 잘 통하게 썼네' 하고 손뼉칠 사람이 얼마나 될까. 오히려 무슨 신문을 이따위로 신문을 내냐고 나무라는 사람이 더 많지 않을까. 가방끈 긴 사람들끼리야 라틴어로 지껄이든 한자로 도배한 글을 쓰든 생각이 통하니 누구 하나 불편하지 않겠지. 하지만 모르는 사람한테는 하얀 건 종이요 까만 건 글씨일 뿐이다.

'한자어에 대한 이해의 부족으로 전문적인 문장이나 대화는 물론 일상의 문자 생활에서도 무지와 오해로 말미암아 엄청난 소통장애를 가져'왔다는 말도 어처구니 없다. '전문적인 문장이나 대화'는 덮어두고라도 일상에서 한자를 몰라서 소통장애가 엄청나게 일어나는 보기가 어떤 게 있는지 솔직히 궁금하다.

초등학교 1학년 교실이라고 치자. 교사가 어려운 한자말을 써서 말하는데 학생들이 못 알아듣는다. 그렇다고 한다면 누구를 탓하고 나무라야 하는가. 학생인가, 선생인가. 마찬가지로 한자말을 마구잡이로 섞어쓴 책이 있다고 치자. 이 책을 독자가 읽어내지 못한다면 욕 들을 사람은 독자일까, 작가일까.

말이 났으니 한자교육이 우리 아이들에게 학습의 짐을 늘리는 문제도 따져보아야 한다. 심 전 원장은 왜 한자교육만 학습 부담을 늘린다는 소리로 반대하냐고 한다. 바꿔 말하면 이런저런 교육을 다하는데 왜 유독 한자교육만 문제삼냐는 것처럼 들린다. 마치 교통신호를 어긴 운전자가 "왜 나한테만 그러냐?"는 말과 같다.

초등 교과서에 한자 병기가 이뤄지면 한자 사교육은 엄청나게 늘어날 것이다. 수업을 따라가자면 낮은 학년, 아니, 그보다 더 어린 유치원 때부터 아이들을 한자 외우기에 내몰려야 한다. 초등학교 영어교육을 보라. 3학년부터 영어 교육을 하지만 아이들은 유치원 때부터 영어 사교육에 시달린다.

짐이 무거우면 등짐을 덜어주어야 사람이고 어른이다. 그런데 가뜩이나 무거운 짐으로 비틀대는 아이들에게 보따리 하나를 더 얹어주면서 다 너희를 위한 일이라고 떠벌리니 할 말을 모르겠다. 한자교육이 세계화의 흐름을 따르는 일이고 민족문화의 고유성을 지키는 일이라고 빙빙 돌려 말하지 말라.

이어 "1980년대에 급격한 한글전용 현상이 생긴 것은 출판계, 언론계의 상업주의 논리와 교육계의 편의주의 논의가 맞물리면서 일어난 현상이지 그들이 주장하는 국민 주도의 문자혁명으로 보는 것은 언어도단이다"라도 나무란다. 하지만 내 눈으로 보기엔 한자교육으로 사교육업체를 배불리려는 상업주의 논리와 중국을 떠받드는 사대주의 논리가 맞물린 것으로만 보인다. 

한자로 쓴, 숱한 우리 고전문학이나 사료들은 어쩌냐고 할지도 모르겠다. 그게 문제라면 고전을 쉽고 바른 우리 말로 번역할 전문가를 길러내자. 일본, 중국 같은 한자문화권 나라들과 소통하는 게 문제라면 그 나라 말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들을 충실히 키워내는 게 더 남는 장사가 아닐까.

언제나 말을 가르고 말로써 사람을 가른 게 누구인가. 입버릇처럼 소통을 말하고 통합을 부르대면서 어렵고 낯선 말과 글로 권위를 세우고 언제나 제 할 말만 지껄이고 백성들 말은 귓등으로도 듲지 않던 사람들이 과연 누구인가.

이 땅에서 배운 사람입네 하던, 비뚤어진 먹물들 아닌가. 그 수는 얼마 되지 않지만 대대로 돈과 권력을 잡고 심지어 헌법소원까지 내면서 야금야금 한자말을 늘려갈 궁리를 지금도 한다. 너나없이 소통하는 민주사회가 되면 자칫 자기들 자리를 잃을까 겁이 난 때문이다. 그래서 묻고 싶다. 어느 쪽이 더 부조리한 어문생활인가.


태그:#초등한자, #한자교육, #초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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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말과 글쓰기 교육, 어린이문학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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