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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레시노에 있는 료칸 시이바산소(稚葉山莊)
 우레시노에 있는 료칸 시이바산소(稚葉山莊)
ⓒ 유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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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 맑았다. 울창한 숲에서 나무 사이로 햇볕이 따사롭게 쏟아졌다. 걷기 좋은 날이었다. 전날, 우리 일행은 우레시노의 유명한 료칸 '시이바산소(稚葉山莊)'에서 잤다. 울창한 숲이 우거진 산 속에 지어진 시이바산소는 우레시노에서 첫손 꼽히는 료칸이라고 했다.

숙소 앞으로 펼쳐진 자연 풍경은 아주 깊은 산 속에 들어와 있는 것 같았다. 온천은 외부인들이 이용할 수 있는 대중탕과 료칸에 묵는 손님들만 이용할 수 있는 온천탕으로 구분되어 있었다. 저녁에는 대중탕을, 다음날 아침에는 료칸 온천을 이용했는데 개인적으로 대중탕보다 료칸 온천이 훨씬 좋았다.

대중탕은 규모는 컸으나 사람들이 많아 소란스러웠다. 하지만 료칸 온천탕은 규모는 작으나 이용하는 사람이 적어 조용하고 쾌적했다. 시이바산소 객실에는 개인용 온천 시설도 있어, 혼자 호젓하게 바깥 풍경을 음미하면서 온천을 즐길 수 있다.

코스를 다 걷지 않아도 충분히 좋더라

이른 아침에 일어나 가볍게 온천을 하고, 아침식사를 했다. 그리고 우레시노 코스를 걸으러 갔다. 오후에 3박4일의 짧은 일정을 마치고 비행기를 타야했기 때문에 우레시노 코스는 전부 걷지 못했다.

지난 이틀 동안 걸었던 아마쿠사 레이호쿠 코스와 아마쿠사 이와지마 코스는 구마모토현에 있지만, 우레시노 코스는 사가현에 있다. 사가현에는 다케오 코스도 있다. 다케오 코스는 지난 연말에 걸었다. 3천년 된 녹나무가 깊은 인상을 남긴 길이었다.

규슈올레, 우레시노 코스
 규슈올레, 우레시노 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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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레시노 코소는 전체 길이가 12.5km로 소요예상시간은 4~5시간 정도이다. 난이도는 '중상'. 우레시노 코스의 가장 큰 특징은 눈은 물론 마음까지 말갛게 씻어주는 녹차밭이 있다는 것이다. 그 녹차밭을 따라 걷다보면 어디선가 본 것 같은 기시감마저 느껴지는데, 제주올레에도 차밭이 넓게 펼쳐지는 구간이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우레시노의 차밭은 우리나라 남해 다랑이 논을 떠올리게 한다. 몇 해 전, 남해를 걸어서 한 바퀴 돈 적 있는데, 그때 다랑이 논을 지나갔더랬다. 남해의 다랑이 논이 유명해서 일부러 그쪽으로 길을 잡은 것이다. 다랑이 논이 기억에 남는 건, 그곳에서 만난 할머니 때문이었다.

길 위에 마늘을 펼쳐 놓고 손질을 하던 할머니는 마을 사진을 찍는 나를 보고 "사진 찍을 거나 있어? 볼 것도 없구만" 하면서 말을 걸었다. 몇 마디를 나눈 뒤였을 것이다. 할머니가 갑자기 문득 물었다.

"밥 먹었어?"

오후 한 시를 훌쩍 넘어선 시간이었다. 후미진 시골마을에 식당이 있을 리 없으니 당연히 점심을 먹지 못했다. 시골 마을을 걸으면 간식을 준비하지 못하면 종일 쫄쫄 굶는 경우가 많았다. 이날도 그런 각오를 하고 걷던 참이었다. 아니라는 대답이 떨어지자마자 할머니는 처음 보는 나를 집으로 잡아끌었다.

"우리 집에서 밥 먹고 가."

그날, 댁에 계시던 할아버지와 겸상으로 점심을 먹었던 기억은 좋은 추억으로 남아 있다. 할머니는 밥상만 차려주고 다시 마늘을 손질한다고 가셨던 것이다. 우레시노 차밭을 내려다보며 걸으면서 남해 다랑이 논이 떠오른 건 그 때문이다.

우레시노 코스를 걸으면 끝없이 펼쳐진 녹차밭을 볼 수 있다.
 우레시노 코스를 걸으면 끝없이 펼쳐진 녹차밭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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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레시노 코스는 히젠 요시다 가마모토 회관에서 출발해 녹차밭과 삼나무 숲을 지나 우레시노 시내에 있는 시볼트 공중 족탕에서 끝난다. 코스가 시작되는 요시다 시라야 마을은 도자기가 유명한 곳이란다. 우레시노에서 재배하는 녹차가 유명해지면서 더불어 도자기가 필요해졌고, 그 덕분에 도자기 산업이 발달했단다.

우리는 우레시노 코스 가운데 보즈바루 파일럿 다원(茶園)에서 출발해 22세기 아시아의 숲을 거쳐 어젯밤 우리가 묵었던 시이바산소까지 걸었다. 걸은 거리는 6km여, 걸린 시간은 2시간 남짓. 이 구간은 우레시노의 차밭이 아름답게 펼쳐지고, 또 삼나무가 울창한 22세기 아시아의 숲으로 이어지는 길이다. 우레시노 코스의 백미라고 할 수 있다. 걸어보니 참 좋더라.

전체 코스를 다 걷지 못한 것은 아쉽다. 그러나 걷지 못한 길은 그리움으로 남아 다시 찾아가고 싶어지니, 너무 안타까워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길이 사라진 숲길을 걷는 기분이란...

우레시노 코스는 녹차밭을 따라 이어진다.
 우레시노 코스는 녹차밭을 따라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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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레시노 코스는 3월 1일로 개장 1주년을 맞이했다고 한다. 2번이나 규슈올레 심사에서 떨어진 기록(?)을 갖고 있는 코스이기도 하다. 우레시노 코스를 만든 우레시노 시 공무원들과 제주올레 사무국에서 생각하는 걷기 좋은 길은 엄청나게 차이가 났기 때문이다. 그건 길을 걸어본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일 수도 있다.

두 번이나 탈락하면 포기할 만도 하건만 이들은 끝까지 해내겠다는 오기로 길을 찾았다고 한다. 그리고 결국은 '올레의 신'이 강림하사 걷기 좋은 길을 찾아내게 되었다는 전설(?)을 남기면서 우레시노 코스를 만들었다나.

시이바산소에서 보즈바루 파일럿 다원까지 버스로 이동했다. 버스에서 내리니 너른 차밭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우레시노에서 생산되는 녹차는 품질이 좋기로 유명하단다. 일본 전국 차 품평회에서 5년을 연이어서 최우수상을 받았다고 한다.

차밭을 지나 길은 숲으로 이어진다. 규슈올레를 걸으면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나무는 삼나무와 편백나무. 일본의 조림정책은 정말 대단하다. 지난해 연말, 규슈올레를 함께 걸은 김운용 고양시 녹지과장은 조림이 잘 된 규슈의 숲길에서 감탄을 거듭하면서 무척이나 부러워했다.

우레시노 코스에서 만나는 삼나무 숲길은 아름답다.
 우레시노 코스에서 만나는 삼나무 숲길은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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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나무가 빽빽하게 들어찬 숲길을 지나니, 다시 녹차 밭이 펼쳐진다. 길을 차밭을 따라서 이어지다가 가끔은 차밭 사이로 슬쩍 스며들어 간다. 하늘은 맑았다. 따사로운 햇볕이 차밭 위로 쏟아진다.

차밭을 지나니 메타세쿼이아 숲길이 이어진다. 아시아의 숲이란다. 국제 교류가 활발하게 이어져 아시아 국가들이 튼실한 관계를 이어나가기를 염원하면서 조성한 숲이라는데, 조성만 해놓고 관리를 하지 않아 숲이 점점 더 울창해지고 있다는 설명을 들었다. 22세기의 미래를 생각해서 '22세기 아시아의 숲'이라 이름을 붙였단다.

처음에는 길도 만들었는데, 애초부터 사람들이 찾아오는 숲이 아니었기에 길은 숲의 일부분이 되어 버려 길이 사라졌다나. 사람의 손으로 숲을 만들었지만 사람의 손이 닿지않아 더 자연스럽게 자연이 된 숲이라니, 참으로 괜찮다. 자연은 손 대지 않아야 온전하게 보전되는 것 같다.

그런 숲에 숨겨진 길을 따라서 올레가 만들어졌고, 우리가 걷고 있는 것이다. 우레시노 코스는 접근성이 좋아 도보여행을 즐기는 이들이 많아 찾아온다고 한다.

길은 혼자 걸어도 좋지만, 동행이 있으면 더 좋지요.
 길은 혼자 걸어도 좋지만, 동행이 있으면 더 좋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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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가 너무 울창해 올레 리본이 없으면 길을 잃기 쉬울 것 같았다. 나무에 매달려 나부끼는 올레 리본은 언제 보아도 반갑다. 길은 나무 사이로 흐르며, 사람의 마음을 채운다. 걷는 걸음이 유난히 가볍게 느껴지는 건 그 때문이 아닐지.

숲을 벗어나자 다시 차밭이 이어진다. 계단식 차밭이 끝없이 펼쳐지는 풍경은 보고 있노라면 감탄이 저절로 나오게 한다. 우레시노의 차는 4월과 5월에 수확철로 이 계절에 이 길을 걸으면 가장 좋다나. 차를 수확하고 말리고, 가공하는 광경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녹차밭을 조망하면서 걷는 길, 우레시노 코스.
 녹차밭을 조망하면서 걷는 길, 우레시노 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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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이바산소까지 정말로 '놀멍 쉬멍' 걸었다. 유유자적이 따로 없었다. 우리는 시이바산소에서 걷기를 마쳤지만 길은 시이바산소에서 도도로키 폭포를 지나 우레시노 시내까지 이어진다. 우레시노 시내에는 공중목욕탕이 있고, 그 앞에 누구나 발을 담글 수 있는 족탕이 있다. 그곳에서 우레시노 코스가 끝난다.

우레시노를 떠나기 전, 잠시 이 족탕에 들러 발을 담갔다. 양말을 벗고 온천물에 발을 담그니 따뜻한 기온이 발을 통해 온몸으로 퍼진다. 그 편안한 느낌이라니... 족탕에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족욕을 하는 모습은 평화롭기 그지없다.

족탕에 발을 담근 뒤, 우레시노 녹차를 한 잔 마시면 우레시노 코스 걷기는 완벽하게 끝나는 것이리라. 이제 조금 있으면 봄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나리라. 그러면 규슈올레를 걷고 싶어 온몸이 근질거릴 것만 같아서 벌써부터 걱정이다. 어느 날 갑자기 배낭을 꾸리고 규슈올레를 걸으러 떠날 것 같아서.


태그:#규슈올래, #우레시노, #녹차, #규슈, #제주올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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