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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이 좋아서 자꾸만 만지작거립니다~
▲ 이거 없으면 못 살겠데이~ 기분이 좋아서 자꾸만 만지작거립니다~
ⓒ 김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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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목련나무에 봉우리가 맺혔습니다. 곧 봄이 올 것 같다고 야단이지만 기온은 자꾸만 이랬다 저랬다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자연의 순리대로라면 정말 곧 멀지 않아 따뜻한 봄날이 되겠지요. 그러면 고향에도 봄소식으로 가득할 것 같습니다. 며칠 찾아가지 못한 고향집. 어머니의 전화가 이 때쯤이면 올 것 같은데 예상 외로 오지 않아 찾아갔습니다.

전화가 올 때쯤 오지 않는다는 것은 집보단 들에서 하루를 보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니면 요즘 핸드폰이 고장이 나서 수리를 맡겼는지 알아보고 있는 중이라는 얘기를 얼핏 전해 들었던 것 같기도 합니다.

집에 잠시 들러 가져간 간식거리들을 정리해 두고 서둘러 들로 나갔습니다. 임시창고 옆에선 큰형부가 겨울 바람에 찢어지고 부러진 것들을 수리하고 계셨고, 큰언니가 작은 과수원 한가운데에서 대추나무 가지치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좀처럼 밭일은 안 할 거라며 평소 큰소리치던 언니였는데 웬일인지 열심히 가지를 치고 있었지요. 그러고 보니 아무리 주위를 이리저리 둘러봐도 어머니는 보이질 않았습니다. 건너편 밭에선 작은 어머니가 밭을 일구고 계셨습니다. 할 수 없이 큰소리로 불렀습니다.

막내는 자꾸만 어머니의 모습을 담습니다~
▲ 지팡이 없으면 안된다더니~ 막내는 자꾸만 어머니의 모습을 담습니다~
ⓒ 김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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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어디있는교~"
"와아~내 여기 있다~오나~"
"어디~"

한참을 헤매다가 놀랐습니다. 임시창고 옆 감나무 아래에서 쪼그리고 앉아 밭고랑에 묻혀 있는 비닐을 제거하고 계셨습니다. 머리엔 까만 모자, 사람 얼굴을 알아볼 수 없는 그런 모자 있지요. 안 그래도 작은 체구인데 한 해가 다르게 자꾸만 더 작아지는 것 같습니다. 눈에 잘 띄지 않았습니다. 밭고랑에 앉아 호미로 손짓을 합니다. 그 모습을 보고 뛰어가면서 울컥했습니다. 벌써 저 모습이 우리 어머니라는 생각에 잠시 무거운 마음을 어찌할 줄 몰랐습니다.

"하도 작아서 안 보인데~이"
"우째 시간 되든갑제~"
"시간 안 되도 만들어야제~배는 안 고프나~"
"와~안 고프겠노~아침 쪼매 묵고 내리와가~너거 큰언니가 사온 김밥 서너 개 묵고 아직꺼정 아무것도 못 묵고 있다 아이가~"
"내사 일부러 집에 가서 엄마가 좋아하는 호빵을 두고 왔는데~"
"있다 올라갈란다~춥기도 하고~"
"그러게 오늘 바람도 쫌 불고, 생각보다 춥네~이따 먼저 올라가자~"

해가 아직 있지만 어머니는 일찍 퇴근(?)을 하셨어요~
▲ 어머니의 보물 1호'유모차' 해가 아직 있지만 어머니는 일찍 퇴근(?)을 하셨어요~
ⓒ 김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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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무잡잡한 얼굴에 살이라고 없는 초췌한 모습, 그렇다고 이것저것 드시는 분도 아니시고 먹는 것보다 움직이는 게 더 많으니 살찔 겨를이 없다고 하십니다. 아무튼 예전 같으면 하던 일은 마치고 집에 가실 텐데 큰형부와 큰언니는 안 갈 것 같으니 우리끼리 집에 가자고 하셨지요.

그동안 잦던 전화도 없고 무슨 일 있었냐고 물었더니 핸드폰이 고장이 나 큰언니가 가져갔다고 했습니다. 일하고 있던 큰언니에게 집에 올라가겠다고 하자 언니는 가방에서 뭔가 봉투를 하나 내놓았습니다. 어머니의 핸드폰이었습니다. 일하다 말고 집에 가자고 하는 어머니의 의외의 반응에 그 마음 변하기 전에 가야할 것 같아 서둘러 집으로 왔습니다. 당연히 어머니의 보물 1호인 차도 저희 자동차에 실어서 말입니다.

휴일 오후 늦은 시간 잠깐 왔다 갔던 게 미안해서 그날은 저녁까지 먹고 가기로 했습니다. 배고파하는 어머니를 위해 호빵 몇 개를 쪄서 드리고, 간단한 저녁준비를 하려고 했습니다.

"김치 안 묵어서 버릴라고 했데이~"
"아까븐 김치는 와 버릴라꼬~김치전이나 부쳐묵고 하지~"
"안 그래도 김치부침개 묵고 싶어가 할라카이 귀찮아서 말았다 아이가~"
"아~알았다~지금 해줄게~"
"마아 놨둬라~귀찮다~"

어머니의 저 허리춤 주머니 속이~~
▲ 궁금합니다~ 어머니의 저 허리춤 주머니 속이~~
ⓒ 김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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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이야기는 그 얘기였습니다. 김치전을 부쳐달라는, 남편이 김치전을 하는 사이 전 큰언니한테서 받은 핸드폰에 단축번호에 오남매의 전화번호를 입력했습니다. 큰아들부터 막내딸까지, 그리고 사위들과 며느리까지 열 명의 자식들을 나란히 입력을 하고 직접 핸드폰을 손에 쥐어 드렸습니다.

"아이고~살 것 같데이~이거 없이 못 살겠더라~아이고~"
"그라믄 빨리 해달라고 하제 와 가만 있었노~"
"마아 기다렸다 아이가~이젠 살 것 같데이~"

이거 태웠을 때도 온 가족은 핸드폰 소동이 있었지요~~
▲ 까만비닐이 쓰레기인줄 알고 그만~ 이거 태웠을 때도 온 가족은 핸드폰 소동이 있었지요~~
ⓒ 김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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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폰을 쥐고 열었다 닫았다 한참을 만지작거렸습니다. 얼굴에는 웃음기 가득 채워서 말입니다. 그 모습은 마치 어린 아이들이 처음 핸드폰 사 줄 때의 모습과도 같았습니다. 한 때는 핸드폰을 비닐봉지에 넣어 들고 다니다 가마솥에 불을 지핀다고 잠시 장작더미 옆에 두었다가 그만 모르고 불태워버린 적도 있었습니다.

색깔이 검정이라 약간 걱정이 됩니다~ㅎㅎ
▲ 검정색의 새 휴대폰입니다~ 색깔이 검정이라 약간 걱정이 됩니다~ㅎㅎ
ⓒ 김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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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김치전을 부쳐 앞에 내 놓으니 한숨에 드셨습니다. 얼마 전부터 무척이나 드시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정말 맛있게 잘 먹었다며 얘기하셨습니다. 된장찌개에 김치전이 전부인 밥상이었지만 모처럼 어머니와 함께 맛있는 저녁을 먹었습니다.

핸드폰이 없었던 일주일의 시간이 어머니는 답답했던 것 같습니다. 신경 써서 전화번호를 눌러야 하는 집 전화 대신 단축번호만 꾹 누르면 오남매의 목소리가 저절로 나오는 이 편한 기기가 우리 어머니를 핸드폰 중독으로 만들어버렸네요. 어쩌죠? 핸드폰 없으면 못 살 것 같다는 우리 어머니를 어떻게 해야 하나요?


태그:#어머니, #휴대폰, #고향집,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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