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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수요일과 목요일 오전 네 시간씩 나는 '줌마렐라'가 된다. 작년 10월부터 이용하게 된 '아이돌봄지원서비스' 덕분이다. 이는 1년 반 전에 동네 엄마를 통해 알게 된 정부지원사업으로 '만 12세 이하 아동을 둔 맞벌이 가정 등을 위해 아이돌보미가 가정을 직접 방문하여 아동을 안전하게 돌봐주는 우리 가족 행복돌보미, 아이돌봄서비스'이다.

출산 전만큼 활발하진 않지만 그래도 아이들을 돌보며 틈틈이 집에서 글을 쓰고 있었고, 애 셋을 끌고 마을극단 활동도 하고 있어 굳이 돌봄서비스가 필요할까 싶었다. 그러나 이런 서비스가 있다는 얘기를 듣고 나니 1주일에 하루 이틀쯤은 아이들 없이 오롯이 내 시간을 갖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다자녀 가구 자격으로 동사무소에 가 필요한 서류를 내고 소득에 따른 등급 판정을 받은 후 시간제 돌봄선생님 배정되기를 기다렸다.

우리는 쑥쑥 자라고 있어요!
▲ 일곱살, 다섯살, 세살! 우리는 쑥쑥 자라고 있어요!
ⓒ 정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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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이 지나고 1년이 다 되도록 돌봄선생님은 배정되지 않았다. 지원자는 많고 돌봄선생님은 적다는 게 이유였다. 마침 첫째가 병설유치원에 가게 되어 조금 여유가 생겼고 돌봄서비스 신청한 것도 잊어가던 차 연락이 왔다. 드디어 돌봄선생님이 배정된 것이다.

마을극단 하반기 공연이 한 달 앞으로 다가와 매일 연습을 해야 하던 때였다. 아직 한 번도 엄마와 떨어져본 적이 없는 20개월 복댕이가 걱정되었지만, 며칠 전부터 상황을 설명하고 산들이에게 동생을 잘 돌봐 달라 부탁을 했다. 낯선 누군가 집에 오고 늘 함께 있던 엄마가 외출 준비를 하자 불안해하던 복댕이는 내가 신발을 신자 참았던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드디어 돌봄서비스 시작, 눈물의 이별도 시작

강일동 삼남매~
▲ 세상에서 제일 먼저 친해진 단짝 강일동 삼남매~
ⓒ 정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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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으로 내려가는 내내 복댕이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직장맘들은 매일 아침 이런 눈물의 이별을 하겠구나 싶어 마음이 짠해졌다. 그러나 아이들 없이 걷는 길은 구름 위를 걷는 듯했고, 마을극단 연습실에선 젖먹이고 기저귀 갈지 않고 오로지 연습만 할 수 있었다. 회사 가면 아이들 생각이 전혀 나지 않는다는 남편이 무심하다 생각했는데 나 역시 그랬다.

서비스를 신청할 때는 네 시간이 길다 싶었는데 신데렐라의 황금마차가 호박으로 변하는 12시는 파티장의 왈츠가 끝나기도 전에 돌아왔다. '나'에서 '엄마'가 되어 집으로 가는 길에서야 아이들 걱정이 밀물처럼 밀려왔다. 뛰듯 집으로 돌아가 문을 여니 복댕이는 곤히 낮잠을 자고, 산들이는 돌봄선생님과 식탁에 마주 앉아 간식을 먹으며 다정히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산들이는 무척 평온하고 행복한 얼굴이었다. 누나는 유치원에, 동생은 안방에서 자고 돌봄선생님과 단둘이 보내는 시간이 몹시 좋아 보였다. 돌봄선생님은 아이들과 보낸 시간을 들려주시며 본인도 아이가 셋이라며 웃으셨다. '아이가 셋'이라는 말에 동지를, 선배를 만난 것 같아 상담처럼, 투정처럼 돌봄선생님을 붙잡고 '세 아이 엄마'의 고충을 늘어놓았다. 특히 나에게 어려운 둘째 이야기를 쏟아냈다.

둘째까지 대학에 보내고 막내가 중학교에 가자 이젠 하루 몇 시간씩은 본인 일을 해도 되겠다 싶어 막내에게 양해를 구하고 일을 시작하셨다는 돌봄 선생님은 애 셋 키우는 게 얼마나 힘든지 다 안다며 토닥여주셨다. 본인도 둘째에게 제일 미안하다며 산들이를 보듬어주셨다.

아이들에게 더 반가운 돌봄선생님

엄마가 선물하는 최고의 유산
▲ 누가 뭐래도 우리는 삼남매 엄마가 선물하는 최고의 유산
ⓒ 정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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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집에 함께 있어도 싱크대 앞에서, 책상 앞에서 늘 바쁘기만 한데 돌봄선생님은 어떤 집안일도 하지 않고 네 시간 동안 자기들과 놀아주기만 하시니 아이들은 돌봄선생님 오시는 날만 기다리게 되었다. 복댕이는 두어 번 더 울며 헤어졌지만,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기도 전에 울음을 그쳤고 곧 (배꼽을 보여주는 복댕이 특유의) 배꼽인사로 나를 배웅했다.

오전 11시면 낮잠을 자던 복댕이는 조금이라도 더 선생님과 놀기 위해 눈을 비벼댔고, 산들이는 선생님을 독차지하기 위해 조금이라도 일찍 동생을 재우려 안간힘을 썼다고 한다. 돌봄선생님은 칼싸움, 종이찢어 뿌리기, 공룡싸움, 종이접기 등등 평소 내가 절대 해주지 않는 다양한 놀이로 아이들과 재미있게 놀아주셨다. 마을극단 공연이 끝난 후 서비스 이용을 반으로 줄일까 했지만 돌봄선생님을 기다리는 아이들을 위해 주 2회 이용을 계속 이어갔다.

산들이가 다섯 살이 되어 동네 청소년 수련관에서 체육이나 미술 수업을 하나 듣게 할까 하는 생각도 잠깐 들었지만 평소 누나와 동생 사이에 끼여 관심을 많이 받지 못한 산들이는 여럿이 하는 수업보다 돌봄선생님과 보내는 오붓한 시간을 더 원했다.

잔소리 안테나를 접고 나만의 시간

그래도 재밌잖아!
▲ 엄마가 들어가지 말랬는데... 그래도 재밌잖아!
ⓒ 정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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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엄마보다 돌봄선생님과 노는 걸 더 좋아하게 되면서 나도 5년 동안 잊고 있었던 나만의 시간을 즐기게 되었다. 칼바람이 부는 겨울날엔 안방에 혼자 누워 아이들을 향해 귀를 열지 않고 죽은 듯 쓰러져 자기도 했고, 월차를 낸 남편과 오붓하게 영화관 나들이도 하고, 트로트를 틀고 산을 오르는 할아버지들 틈에서 나 홀로 오전 등산을 하기도, 한의원에서 침을 맞으며 늘어지기도 했다.

도서관이나 까페에 혼자 앉아 책도 보고 글도 쓰는 시간들. 출산 전엔 이런 시간들이 일상이었다. 혼자 밥을 먹고 지하철을 타고 책상에 앉아있다 혼자 잠이 드는 시간들이 외롭고 적막하기도 했는데 세 아이의 엄마가 되고 보니 신데렐라의 꿈같은 밤처럼 간절한 시간들이 되었다.

집에서도 책상에 앉아 책을 보거나 글을 쓰기도 하지만 수시로 나를 찾아대는 아이들의 요구를 들어주거나 묵살하며 버텨야만 사수할 수 있는 내 시간들. 그마저도 늘 한쪽 귀를 열어 아이들의 소리를 들으며 잔소리 안테나를 가동해야 한다. 크게 위험한 상황이 아닌 한 아이들끼리 온전히 놀게 하자 다짐하지만 와이파이보다 더 잘 터지는 나의 잔소리 안테나!

이젠 우리도 자기만의 '공간'이 필요해

아빠가 묶어준 까꿍이의 머리
▲ 엄마가 없이 아빠와 나들이 아빠가 묶어준 까꿍이의 머리
ⓒ 정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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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살까지 보육기관에 보내지 않고 아이들을 집에 데리고 있으면서 늘 엄마가 곁에 있다는 안도감을 심어주고 싶었다. 그러나 아이가 셋이 되고 아이들이 커가면서, 또 내가 나이가 든 만큼 체력이 떨어지고 초보엄마의 예민함이 무뎌지면서 엄마와 항상 함께 하는 게 꼭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사랑은 서로 간에 공간을 내어주는 것'이라는 누군가의 말처럼 엄마와 아이들 사이에도 공간이 필요함을 느끼는 요즘이다. '엄마'라는 이름과 '제1양육자'라는 책임 혹은 권한으로 아이들에게 너무 많은 것을 강요하고 엄하게 선을 그은 것은 아니었을까. 24시간 엄마의 그늘 아래 있는 아이들일 수도 있지만 24시간 엄마의 감시 아래 있는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은 일곱 살 까꿍이의 변화에서 깨달았다.

일곱 살 까꿍이는 자신감과 독립심이 커져가는 시기이기도 하지만 엄마 눈을 피해 마음껏 놀고 싶은 아이로 자라고 있다. 집에 갈 시간을 재고 있는 엄마 없이 놀이터에서 지칠 때까지 놀고 싶고, 엄마가 없는 집에서 집안을 누비며 두 동생들을 호령하며도 놀고 싶다. 이는 산들이도 마찬가지, 어쩌면 아직은 엄마바라기인 막내 복댕이도 마찬가지.

엄마가 없는 집, 책임감을 배운다

엄마의 바람
▲ 의좋은 형제 엄마의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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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시간이라도 서로의 존재로 가득 차 있던 공간을 비워내고 그 빈자리에 자신의 이름과 이야기로 채울 수 있게 한발 떨어져주는 일이 가까운 사이일수록 더 필요한 것 같다. 돌봄선생님의 보호 아래 있지만, 아이들에게 '엄마가 없는 집'은 '아내가 친정 가고 없는 집'과 비슷하지 않을까? 금기가 풀린 내 세상이기도 하지만 엄마의 빈자리를 채워가야 하는 책임감을 배우는 집이기도 할 것이다.

아직 범 무서운 줄 모르는 하룻강아지인 복댕이는 형 산들이에게 자주 덤비고, 그런 동생이 못마땅한 산들이는 기어오르는 동생과 싸우는 게 하루 일이다. 그러나 엄마가 없는 집에서 동생과 있는 시간이 늘어나자 두 녀석은 엄마의 자리에 형제애를 조금씩 키워가는 듯도 하다.

나 역시 신데렐라의 앞치마를 잠시 벗고 집을 떠나 나만의 파티장을 다녀오면 지겹기도 했던 집안일과 육아가 아주 조금은 새롭게 보이기도 한다. 끝이 보이지 않던 육아였는데 어느새 더 이상 젖을 먹이지 않고 아이를 업지 않는 지금이 되었다. 여기서 몇 년 만 더 지나면 세 아이 모두 내 품을 벗어나 학교와 유치원으로 날아가 자유부인이 되는 날이 오겠지?

육아에 얽매여 있다 아이들이 학교에 가면 갑자기 비어 버린 시간에 산후우울증이 오기도 한다던데, 그러지 않기 위해 지금부터 조금씩 아이들에게 자리를 내어주며 오롯이 엄마로 살았던 시간을 거름 삼아 나만의 이야기를 만들어 가야겠다. 생쥐들이 지어준 드레스가 아닌 내가 만든 드레스를 입고 화려하게 복귀할 자유부인 그날을 위해! (아, 그런데 그 날은 내 나이 마흔에 오는구나.)

우린 우리길을 갈거예요!
▲ 엄마, 걱정 마세요. 우린 우리길을 갈거예요!
ⓒ 정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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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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