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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대학의 열람실에서 공부하는 학생들.
 한 대학의 열람실에서 공부하는 학생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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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학생, 안 돼요."
"교수님이 들어도 된다고 하셨는데…."
"학생 4학년이죠? 이거 1학년 수업이에요. 우리 과 학생들도 자리 없어요. 다른 과 학생 안 받아요."

4학년 1학기, 철학 수업을 듣고 싶었던 내 희망은 허무하게 사라졌다. 몇 번을 찾아가서 부탁했지만 조교 선생님은 단호했다. 전공수업을 다 들어도 졸업 학점이 채워지지 않아 어쩔 수 없이 타과 전공을 들어야 하는 나. 하지만 수강신청은 험난했다.

4학년 2학기, 노동 수업이 듣고 싶어 사회학과 사무실을 방문했지만 문 앞에서 발걸음을 돌렸다. '타과생 수강신청 안 받습니다. 전산으로 하세요.' 수강 신청을 못할 거란 확신이 들었다. 수강신청 정정 기간 동안 학과 사무실 문 앞엔 종이가 붙어있다. '타과생 수강신청 안 받습니다' '전화 후 방문 바람.'

듣고 싶은 수업을 들을 수 없다. 누구를 위한 학교일까, 

#2.

"회식 자리에서 지도교수가 허벅지에 손을 올려 깜짝 놀랐다."
"노래방에서 지도교수가 어깨에 팔을 올렸다."
"개강 회식 후 노래방에서 옆자리로 불러서 손을 잡으려 했다."
"지도교수가 손을 당기면서 얼굴을 숙여 손에 입을 맞추었다."

작년 여름 방학, 학교가 뉴스에 나왔다. A 교수가 외국인 대학원생을 성희롱했다. 그것도 모자라 선물 강요, 시험문제 유출은 물론 부인의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시키고, 학생들 명의로 차명계좌를 만들어 사용했다. 그 계좌로 시간강사에게 4000만 원의 돈을 지금껏 받아왔다.

성범죄가 빈번한 대학. 사진은 지난해 11월 서울대에서 열린 성범죄 피해자모임 '피해자X' 기자회견 모습.
 성범죄가 빈번한 대학. 사진은 지난해 11월 서울대에서 열린 성범죄 피해자모임 '피해자X' 기자회견 모습.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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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개강 후, 학교는 조용했다. 학생들은 이런 사건이 있는지도, A 교수가 누군지도 몰랐다. A 교수는 올해 1월 증거 불충분으로 무혐의 처분이 났다. 학교 내에서도 성폭력 심의 위원회가 열렸다. 아무 제재 없이 회의를 종결했다. 회의에는 교직원, 교수, 학생 대표가 참여해야 한다고 학칙에 나와 있다.

"회의에 참여한 학생이 누군가요?"
"대학원생은 학부생이 아닐 뿐더러 학생대표가 없어서 참여 안 했습니다."

성희롱뿐이 아니었다. 차명계좌, 아내 가게 아르바이트 문제도 그냥 넘어갔다고 한다. A 교수는 이번 학기 수업이 개설되었다. 이에 학과 교수들이 건의서를 제출하고 진상조사를 요구했다. 뒤늦게 학교 측에서도 공문서 변조, 전자금융거래법 위반, 공금횡령 등의 혐의로 A 교수를 다시 고발하고 수업을 삭제했다.

#3.

학교 게시판에 세월호 참사를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대자보가 붙었다. 며칠 뒤, 자보는 보이지 않았다. 대학본부 측에서 철거한 것이었다. 학생들이 담당 부서를 찾아가 항의했다. 이 과정에서 폭행 시비가 일어났다.

"교직원이 민원인의 얼굴에 뜨거운 녹차를 끼얹고, 팔 등 신체 부위를 물리적으로 폭행하여 전치 2주의 부상을 입혔다."

학생들은 경찰에 신고했고, 담당 교직원을 폭행 혐의로 고소했다. 교직원은 학생들을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맞고소했다.

작년 한 해 동안 내가 다니는 학교에서 일어난 일들이다. 우리 학교뿐만 아니다. 학교 안에 공간이 부족해 카페에서 모임을 하고, 한 학기 기숙사비가 300만 원인 곳도 생겼다. 학교 안에 영화관이 들어왔고, 학내 중국집은 프랜차이즈 업체가 들어와 짬뽕 한 그릇이 만 천 원이다. '글로벌 인문대'가 탄생하기도 하고, 군대 갔다 오니 학과가 없어지는 건 이제 놀랄 일도 아니다. 세월호 관련 행사를 개최한 학생들은 장학금을 받지 못하고, 학교 안에는 경찰이 들어온다.

우리는 누구를 위한 학교에 다니고 있는 걸까.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를 쓴 박보경씨는 현재 인권연대 청년칼럼니스트로 활동중입니다. 이 기사는 인권연대 주간 웹진 <사람소리>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수강신청, #대학, #성희롱,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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