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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북동부 뷔트쇼몽 공원에서 바라본 몽마르트르 언덕 전경. 가장 높이 솟은 하얀색 돔이 사크레쾨르 대성당이다.
 파리 북동부 뷔트쇼몽 공원에서 바라본 몽마르트르 언덕 전경. 가장 높이 솟은 하얀색 돔이 사크레쾨르 대성당이다.
ⓒ 송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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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역에서 몽마르트르 언덕까지의 산책. 한인 민박에서 만난 대학생 친구들과 함께 저녁을 먹은 뒤, 즉흥적으로 느지막이 파리 야행에 나섰다. 걸어갈 수 있는 가까운 거리다. 서울보다 춥지 않았다. 1월 초순의 파리는 영상의 온도였고 밤에도 충분히 걸을만 했다.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가 순간적으로 한 친구가 던진 말.

"저라도 싫을 거 같아요."

서울의 웬만한 달동네에 오르는 거보다도 완만한 곳 그러나 평평한 파리에서는 가장 높은 고지대(그래봐야 해발 129미터)에서 예술과 가난과 관광지가 뒤섞여 자유와 향락의 기운을 동시에 내뿜는 파리의 명소로 향하며, 우리는 바로 여기에 살고 있는 사람들, 거리, 골목길, 삶터 곳곳에 자리하고 있는 이민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던 중이었다.

"파리에 올 때 처음 도착한 곳이 북역이예요. 저는 아프리카에 온 줄 알았어요."

나 역시 비슷한 느낌이었다. 이민자들, 특히 흑인 주민들이 대부분을 차지하며 거니는 모습에 압도당했다. 북역 안에도, 앞에도, 숙소로 향하는 거리에도 짙은 피부색의 형제들은 가는 곳마다 사방을 둘러싸고 주위 어느 곳에나 '다수'로서, 그것도 '대다수'로서 존재했다. 조금은 놀랐다. 그 친구는 솔직한 인상 한마디를 더 덧붙였다.

"파리의 첫 느낌이 의외로 지저분해서 뭐랄까, 실망스러웠다고 할까요. 기대와 달랐어요."

파리 북역 기차 플랫폼 풍경
 파리 북역 기차 플랫폼 풍경
ⓒ 송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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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의 파리

그 순간 불현 듯 떠오른 장면, 지난 2011년 가을, <오마이뉴스> 유러피언드림 취재 차 온 런던에서 교포에게 들었던 이야기.

"인권법 때문에 불법 이민자 강제 추방 등이 난해한 점에 대한 여론이 안 좋아요."

그는 이민자 여성들이 시내에서 꽃을 파는 풍경을, "마구잡이로 꽃을 안기고 돈을 달라고도 한다"며 일그러진 표정으로 소개했다. 순간 떠오른 영화 <원스>의 여주인공이 "플라우어?"하며 꽃을 파는 이민자 여성이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모습에 많은 현지인들은 눈살을 찌푸렸나보다. <원스>의 감독은 애정 어린 시선으로 그렸지만.

몽마르트르의 밤길을 오르며 이 얘기를 꺼내자, 유럽 곳곳에서 반이민자 정서가 급증하고 있다는 얘기까지 이어졌다. 그 친구는 "나라도 싫을 거 같다"는 말을 한 것이다. 지금은 밤이라 적막한 분위기지만, 여기 몽마르트르는 파리에서 가장 유명하고도 가장 악명 높은 관광지다.

지난해 이 언덕 초입에 위치한 슈퍼마켓에 들어갔을 때, 어깨에 멘 나의 DSLR 카메라를 본 점원은 "소매치기 위험하다, 가방에 넣는 게 좋을 걸? 조심하라 블랙맨, 블랙맨!"을 외쳤다. 아이러니한 건 그 역시 짙은 피부색을 지닌 이방인의 풍모를 하고 있었다는 것.

파리를, 프랑스 사회를 깊숙이 들여다보지 않은, 스쳐지나가는 낯선 여행자의 시선에서 보면, 이 도시의 지저분하고 누추하고 위험한 모습들은 모두 이민자, 유색 인종들에게서 나타나는 것 같았다. 아니, 익숙하지 않은 낯선 시선으로 보기에, 더 민감하게 체감하는 것일 수도 있다. 분명 이 도시는 한데 어우러져 조화로이 공존하지 못한 채, 물과 기름처럼 서로 섞이지 않고 다른 세상처럼 갈라져 있는 간극이 자리하고 있음이 묵직하게 감지됐다.

"저 분들이 하고 싶어서 구걸하고 노숙하고 소매치기하는 것일까요? 그렇게 하도록 강요하는 사회적인 구조가 존재하지 않을까 싶어요. 프랑스는 관용을 중시하는 나라라고 들었는데..."

나는 여전히 프랑스의 똘레랑스를 동경하고 있었다. '내가 보고 경험한 것은 수박 겉 핥기 식의 지극히 표피적인 현상일 게다...' 나 역시도 '유색'이면서, 더 '유색'인 사람들이 주위에 있을 때마다 소지품부터 추스르는 자신을 발견하면서도, 나는 속으로 '파리의 택시 운전사'에서 본 '똘레랑스'를 생각하고 있었다(그러고 며칠 후 '샤를리 테러'가 발생했다. 뉴스와 인터넷을 멀리 하고 여행을 다닌지라, 정작 현지에 있으면서도 나는 그 사실을 한참 후에야 알았다).

파리 프티팔레 미술관에서 본 그림
 파리 프티팔레 미술관에서 본 그림
ⓒ 송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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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밤이라 그런 지 몽마르트르는 한적했고, 다행히(?) 소매치기로 의심되는 누군가도 없었다. 이제 유럽의 겨울 휴가 시즌(크리스마스부터 연초)도 끝나가고 있어서 더욱 몽마르트 답지 않게 한가했다. 파리 시가지의 전경을 시원하게 내려다볼 수 있는 가장 높은 곳, 사크레쾨르 대성당 앞에 섰다.

겨울 밤의 파리는 잔뜩 흐렸고 짙은 안개가 자욱했다. 정동진에 일출을 보러 갔다가 먹구름에 가려서 희미한 아침 햇살만을 본 것 마냥, 같이온 친구들은 아쉬워했다. 그날 파리의 밤은 주황색 불빛만 둥둥 떠다녔다.

그리고 아침에 20구로 향했다

"길거리에 이렇게 많은 유색 인종이 뚜렷한 일도 없이 모여 웅성대고 있는 모습은 가히 충격이었다. 여기가 파리인가 북아프리카의 도시인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알아 들을 수 없는 말을 하는 아랍 인종의 남자들이 모여 있는 상태만으로도 저들이 나를 해치지 않을까 하는 두려운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곳에서 완전히 낯선 이방인이었다." (정수복, '파리를 생각한다' 중)

그것은 단순한 치기 어린 호기심이었을까. '앨레강스'와는 어울리지 않는 그 어떤 동질감이었을까. 다음날 아침, 결국 여기에 왔다. 몽마르트르 부근(18구)과 더불어 이민객들이 많이 모여 사는 밀집 지역인 파리 동북부의 19구와 20구, 파리 남서쪽 에펠탑부터 불로뉴 숲 부근까지 걸쳐 있는 부촌 지역인 16구와 완전히 대비되는 곳, 여행 책에는 "피하는 것이 좋다"고 언급되고 언론 기사에는 "우범 지역", "음침한" 등등의 단어로 수식되는 곳에.

이 여정의 출발지 파르망티(Parmentier)역에 다다르자 약간의 긴장감과 더불어, 또 습관적으로 나오는 행위 '소지품 추스름'이 조건반사적으로 이어졌다. 지갑을 등가방 안쪽 깊숙한 곳에 넣었는지 확인하고 한 손으로는 DSLR 카메라를, 다른 손으로는 가방 끈을 꽉꽉 부여잡았다.

그런 나를 맞이한 것은, 아침부터 역 앞 광장을 빙 둘러 들어선 재래시장이었다.

(다음 편에 계속)

파리 파르망티(Parmentier)역 인근에 들어선 아침 재래시장 풍경
 파리 파르망티(Parmentier)역 인근에 들어선 아침 재래시장 풍경
ⓒ 송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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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파리, #유럽 여행, #북역, #몽마르트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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