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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존엄성 실현은 민주주의의 사명입니다. 전시라 할지라도 인간의 본질적인 기본권은 보호받아야 한다는 게 현대 사회의 합의입니다. 인간에 대한 다양한 형태의 억압 중에서 폭력적 수단을 가장 배척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지난 5일 주한 미국대사 피습 사건은 우리 사회를 충격에 빠뜨렸습니다. 리퍼트 주한 미국 대사를 공격한 김기종씨는 사건 발생 당시 한미연합훈련과 전쟁 반대를 외쳤습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김기종씨가 자신의 영향력을 보여주고, 주목받기 위해 저지른 범행으로 보인다는 추측을 내놓고 있습니다.

평화 외치면서 폭력 사용... 사건의 실체부터 파악해야

마크 리퍼트 주한미국대사가 5일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열리는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민화협) 주최 조찬강연회에 참석하던 중 오전 7시 35분께 김기종 우리마당 대표가 휘두른 흉기에 얼굴과 왼쪽 손목 부위에 큰 부상을 입었다. 흉기를 휘두른 김기종씨는 현장에서 체포되었다. 사진가 김성헌씨가 <오마이뉴스>에 사진을 제공했다.
 마크 리퍼트 주한미국대사가 5일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열리는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민화협) 주최 조찬강연회에 참석하던 중 오전 7시 35분께 김기종 우리마당 대표가 휘두른 흉기에 얼굴과 왼쪽 손목 부위에 큰 부상을 입었다. 흉기를 휘두른 김기종씨는 현장에서 체포되었다. 사진가 김성헌씨가 <오마이뉴스>에 사진을 제공했다.
ⓒ 사진가 김성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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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반대와 평화를 외치면서 정작 김기종씨 본인은 폭력적 수단을 사용했습니다. 이에 수많은 전문가들은 '극단적 민족주의자의 인정욕구에서 비롯된 사건이 아니겠느냐'라는 추론을 내놨습니다.

전문가들의 추측과 달리 배후세력의 지시에 따라 공범의 도움을 받고 범행을 저지른 것일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경찰과 검찰의 수사가 마무리되지 않은 지금, 모든 예상은 추측에 불과하다는 점입니다. 이런 참담한 사건을 두고 추측만 내놓은 것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지금 시점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더 강조할 필요도 없이 철저한 수사입니다. 미국 대사를 공격한 이유가 무엇인지, 혹시 다른 사람과 함께 범행을 모의한 것인지, 범행을 지시하거나 부추긴 사람이 있는지 이번 사건의 실체를 있는 그대로 밝혀내야 합니다.

지나친 추측, 혼란 야기하고 애꿎은 피해자만 양산할 뿐

어떠한 것도 단정할 수 없는 상황에서 섣부른 판단은 더 큰 혼란만 부추깁니다. 사실과 다른 내용이 기정사실처럼 퍼져나가면 사안의 실체를 밝히는 과정이 난항을 겪습니다. 진상이 밝혀지지 않는 동안 온갖 추측이 난무하고, 이 추측이 사실관계를 왜곡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지나친 추측은 자극적 가십만 양산할 뿐입니다.

한 사람이 자칫하면 목숨을 잃었을 수도 있는 심각한 사건입니다. 더욱 더 신중하고 침착하게 사안의 실체를 밝혀나가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너무나 당연한 말입니다.

이 와중에 대통령은 이번 사건을 '한미동맹에 대한 공격'이라고 규정했습니다. 사건 발생 당일에 말이죠. 김씨가 한미연합훈련을 반대했기 때문인 걸까요. 그런 이유라면 대통령의 발언은 신중하지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한미연합훈련에 대한 부정적 평가는 국회뿐만 아니라 시민사회 내에서도 꾸준히 제기됐기 때문입니다.

가장 우려되는 점은 이처럼 사안의 실체와 상관없는 애꿎은 사람들이 피해를 입지 않을까 하는 부분입니다. 야당 또한 이 같은 문제가 되풀이될까 걱정하는 눈치입니다. 야당은 이번 사건을 정치적으로 악용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이미 이런 우려가 조금씩 현실이 되는 듯합니다.

여당은 야당을 향해 '테러범 변호인'이라고 논평했습니다. 일부 보수성향의 언론들은 김기종씨와 야당·시민사회단체 사이의 연관된 일들을 이 잡듯 뒤지고 있습니다. 야당은 이번 사건을 민주사회에서 용납할 수 없는 행위라고 규정하는 성명을 발표했지만 무엇 때문인지 야당을 비판하는 내용의 기사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추측을 이용한 또 다른 공격이 자행되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김기종씨가 공격한 것은 한미동맹 아니라 민주주의

마크 리퍼트 주한미국대사가 5일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열리는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민화협) 주최 조찬강연회에 참석하던 중 오전 7시 35분께 김기종 우리마당 대표가 휘두른 흉기에 얼굴과 왼쪽 손목 부위에 큰 부상을 입었다. 흉기를 휘두른 김기종씨는 현장에서 체포되었다. 사진가 김성헌씨가 <오마이뉴스>에 사진을 제공했다.
 마크 리퍼트 주한미국대사가 5일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열리는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민화협) 주최 조찬강연회에 참석하던 중 오전 7시 35분께 김기종 우리마당 대표가 휘두른 흉기에 얼굴과 왼쪽 손목 부위에 큰 부상을 입었다. 흉기를 휘두른 김기종씨는 현장에서 체포되었다. 사진가 김성헌씨가 <오마이뉴스>에 사진을 제공했다.
ⓒ 사진가 김성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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끔찍한 사건일수록 평정심을 지켜야 합니다. 그래야 진상을 규명하는 데 방해를 받지 않습니다. 특히 외교사절에 대한 공격이었습니다. 대통령은 해당국 정부에 위로의 마음을 전하고, 누구보다 평정심을 지킨 채 중심을 잡아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대통령의 발언 이후 공교롭게도 이번 사건이 정치 공세로 비화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지금 가장 중요한 일은 피습 사건의 범행 동기, 공범 여부, 배후세력의 존재 여부를 확인하는 일입니다. 어느 누구도 섣부른 판단을 해서는 안 됩니다.

대통령이 굳이 사건 당일 코멘트를 해야 했다면 이런 폭력 행위를 배척하는 우리의 헌법을 제시해도 좋았을 것입니다. 헌법은 우리 사회의 확실한 약속인 만큼 쓸데없는 논란을 불러일으키지는 않았을 테니까요.

우리 헌법은 민주주의를 채택하고 있습니다. 민주주의는 폭력적 수단을 배척합니다. 따라서 김기종씨는 한미동맹을 공격한 것이 아닙니다. 한미동맹은 이런 저급한 폭력 행위에 공격당할 만큼 허약하지 않습니다. 김기종씨가 공격한 것은 바로 이 나라의 민주주의입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개인블로그(http://reframelive.com/)에도 게재했습니다.



태그:#주한미국대사, #김기종, #마크 리퍼트, #한미동맹, #리퍼트 피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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