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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인터스텔라>의 한 장면. 인듀어런스 호가 웜홀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다.
 영화 <인터스텔라>의 한 장면. 인듀어런스 호가 웜홀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다.
ⓒ 워너브라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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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영화 <백 투 더 퓨처2>에서 30년 뒤 미래로 그렸던 해였다. 1989년에 만든 영화 속에 등장하는 2015년 모습과 실제 2015년은 다르면서 비슷했다. 하늘을 나는 자동차는 아직 없지만 화상 전화나 홀로그램 영상, 음성 명령을 알아듣는 가전제품, 구글 글래스 같은 웨어러블 기기는 이미 현실화됐다. 그렇다면 과연 주인공 마티처럼 미래에서 나이 든 자신을 만나거나 과거로 가서 자신의 어머니와 사랑에 빠질 수 있을까?

이달 초 창간한 교양 과학 잡지 <한국 스켑틱>(바다출판사)은 지구와 또 다른 지구를 잇는 웜홀이 그려진 책 표지를 통해 '시간 여행'이 가능한지 묻는다. 현재를 벗어나 과거와 미래를 넘나드는 '시간 여행'은 아직 <백 투 더 퓨처>나 <인터스텔라> 같은 SF(사이언스 픽션) 영화에서나 가능한 '픽션'이다.

웜홀 타임머신? 미래에서 온 시간 여행자는 왜 없나

하지만 과학 이론들도 '시간 여행' 가능성을 뒷받침하고 있다. 바로 물체가 빛의 속도에 가깝게 움직이면 시간이 느리게 흘러 미래에 도달할 수 있다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빛에 관한 특수상대성이론과 중력에 관한 일반상대성이론)이나 우주에서 다른 시공간을 이어주는 굽은 블랙홀인 '웜홀'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회의적인'이라는 뜻의 '스켑틱(Sketic)'이란 잡지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이 책은 이른바 '시간 여행' 이론에 회의적이다. 1992년 미국에서 이 잡지를 창간한 뒤 20년 넘게 발행인과 편집장을 맡고 있는 마이클 셔머는 '킵 손의 타임머신은 가능한가'란 글에서 지난해 개봉한 영화 <인터스텔라> 자문을 맡기도 했던 캘리포니아 공과대학의 물리학자 킵 손의 '웜홀 타임머신'에 반기를 들었다.

합리적 회의주의를 앞세운 교양 과학 잡지 <한국 스켑틱> 창간호 표지. 시간 여행 가능성을 커버 스토리로 다뤘다.
 합리적 회의주의를 앞세운 교양 과학 잡지 <한국 스켑틱> 창간호 표지. 시간 여행 가능성을 커버 스토리로 다뤘다.
ⓒ 김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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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영화 <백 투 더 퓨처>에서 과거로 여행하는 주인공 마티는 이른바 '모친 살해 패러독스'에 빠진다. 과거에서 자신을 낳을 어머니와 사랑에 빠져, 자신의 존재 자체가 사라질 수 있는 역설이다. 이같은 역설을 피하려고 우리 우주와 비슷비슷한 여러 개의 우주가 동시에 존재한다는 다중우주론에 입각한 '평행 우주'가 대안으로 등장하기도 했다.

킵 손은 한 발 더 나아가 칼 세이건의 소설 <콘택트>의 주인공을 지구에서 26광년 떨어진 베가성까지 보내려고 웜홀을 이용한 '타임머신'을 생각해냈다. 킵 손은 1988년 웜홀에선 시간과 공간이 밀접하게 얽혀있어 웜홀을 따라 움직이면 공간뿐 아니라 시간을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는 가설을 발표했다.

하지만 마이클 셔머는 "(킵 손은) 1990년대 초에 이르러 자신의 이론에 회의적인 태도를 보였"고 "모든 타임머신은 작동하는 순간 저절로 파괴될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고 밝혔다. 스티븐 호킹도 "만약 시간 여행을 할 수 있다면 왜 미래에서 온 시간 여행자들은 보이지 않느냐고 반문했다"면서 "수많은 역설과 물리법칙의 제약을 고려할 때 나 역시 시간 여행의 가능성에 대해 회의적이다"라고 지적했다.  
 
이 책이 진짜 '회의적인' 이유는, 이같은 주장에 대해 회의적인 비판 수용에도 적극적이라는 것이다. 호주 멜버른대학 물리학 교수인 제임스 리치먼드는 "시간 여행의 물리학에 대한 현재 지식 수준에 비추어 볼 대 이 특집의 저자들이 시간 여행의 가능성을 너무 성급하게 부정하려 했다"면서 "킵 손의 타임머신은 알려진 모든 물리법칙에 부합한다"고 반박했다.

특히 리치먼드 교수는 "킵 손의 이론에 따르면 웜홀 타임머신을 이용하는 시간 여행자는 웜홀이 창조된 순간으로만 시간을 거슬러 여행할 수 있다"면서 "웜홀 타임머신이 아직 만들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미래에서 온 시간 여행자를 볼 수 없는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또다른 회의주의자인 앤드류 버나딘은 "이론상으로는 웜홀 같은 것의 존재가 가능할지 모른다"면서도 "아직 웜홀은 히말라야에 산다는 전설의 설인처럼 검증이 필요한 존재"라고 다시 반박했다.

신부터 혈액형까지... '미신'에 맞선 회의주의 과학자들

미국 스켑틱협회 홈페이지. 1992년에 설립돼 5만5천여명의 회원이 활동하고 있다.
 미국 스켑틱협회 홈페이지. 1992년에 설립돼 5만5천여명의 회원이 활동하고 있다.
ⓒ 스켑틱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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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스켑틱> 창간호에선 이밖에 혈액형만으로 사람의 성격을 알 수 있다는 '혈액형 성격론'과 긍정적 사고가 건강에 이롭다는 '긍정심리학' 등의 비과학성을 비판했다. 신과 기적의 존재 같은 종교 문제부터 '심령사진' 사기극 고발까지 내용도 다양하다.

이 잡지는 미국 스켑틱협회(http://www.skeptic.com)에서 20년째 만들고 전세계 5만 명이 구독하고 있는 과학 저널 <스켑틱>을 한국어로 옮긴 것이다. 스켑틱협회는 1992년 초자연적 현상이나 사이비 과학, 유사 과학, 음모론 같은 기이한 주장을 과학적 방법과 비판적 관점에서 검증하려고 만든 단체다.

<이기적 유전자>로 잘 알려진 리처드 도킨스와 <총, 균, 쇠>를 쓴 제러드 다이아몬드 등 유명 학자들이 편집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고 말한 프랑스 철학자 데카르트를 비롯해 <코스모스>를 쓴 칼 세이건이나 리처드 파인만, 유명 마술사 제임스 랜디 등도 '과학적 합리주의자'로 알려져있다.

'회의주의자' 하면 흔히 사사건건 꼬투리를 잡고 의심하는 사람이란 부정적 의미로 오해하기 쉽다. 하지만 여기서는 기존 관습이나 상식, 권위를 인정하지 않고 충분한 증거가 나오기 전까지는 판단을 유보한 채 계속 의심하는 행위를 말한다.

스켑틱협회를 만든 마이클 셔머는 창간호에 실린 '회의주의 선언'에서 "'합리적 회의주의'와 '과학적 방법'은 우리가 순수한 회의주의와 경솔한 믿음 사이의 위험한 해협을 항해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A형은 수줍음이 많고 내성적이라거나 B형은 활달하고 친절하다는 식으로 오랫동안 뿌리내린 '혈액형 성격론'에 대한 비판에도 과학적 방법론이 동원됐다. 응용 심리학자인 레베카 앤더스 버크너와 존 버크너 5세는 이 책에서 단순 이론적 비판에 그친 게 아니라 실제 지원자 182명을 대상으로 직접 연구해 혈액형과 성격이 무관하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과학동아> <뉴턴> 안 부러운 <스켑틱>의 비판 정신

1년에 4차례 나오는 계간지긴 하지만 <과학동아>와 <뉴턴> 등 월간지가 양분하고 있는 국내 과학 잡지계에 <스켑틱>의 등장 자체가 반갑다. 단지 새로운 잡지여서가 아니라 과학기술에 대한 비판적 관점 때문이다.

우린 이미 황우석 교수 사건 등을 통해 과학기술에 대한 맹신이 초래하는 비극을 잘 알고 있다. 또 '이기적인 B형 남자와 소심한 A형 여자'를 기정사실화한 영화 <B형 남자친구>처럼 과학으로 포장됐지만 잘못된 상식들이 우리 주변에 수두룩하다. 오는 6월 출간 예정인 <한국 스켑틱> 2호에서도 식이요법을 둘러싼 '다이어트 신화'를 특집으로 다룰 예정이다.

"회의주의를 통해 독자들의 비판적 사고를 돕고 한국 사회에 합리적 사고관을 뿌리내리는 데 기여하겠다"는 한국판 편집자들의 다짐이 꾸준히 이어지길 바란다. 한국판 창간호에 한국인 필자는 '인플레이션과 다중우주'를 쓴 박병철 대진대 물리학과 초빙교수 1명뿐이었지만 앞으로 점차 늘린다고 하니 국내 회의주의자들의 활약도 기대해본다.


태그:#스켑틱, #회의주의, #인터스텔라, #과학잡지, #시간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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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회부에서 팩트체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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