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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1년 계획에 없던 중국어 공부를 처음 시작한 후, 이듬해 중국 랴오닝성 진저우시 현지대학교에 입학한 32살 늦깎이 유학생입니다. 올해 7월 졸업을 앞두고, 이후 중국을 더 가까이 느끼고자 대학원 진학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제가 경험한 중국의 일상생활과 유학에 얽힌 에피소드를 담담하게 풀어나갈 예정입니다... 기자말

중국인에게 선물받은 철관음차와 카페에서 파는 꽃차
 중국인에게 선물받은 철관음차와 카페에서 파는 꽃차
ⓒ 김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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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뿐 아니라 세계인이 즐겨 읽는 소설 <삼국지> 첫머리에는 힘들게 모은 돈으로 어머니께 드릴 차를 사러 나온 유비의 모습이 그려진다. 그의 효성에 감복해 상인은 싼값으로 차를 내어주지만 이를 뺏으려 하는 황건적. 때마침 나타나 유비를 도와주는 장비... <삼국지>의 첫 장을 장식할 만큼 중국문화와 차는 떼려야 뗄 수 없다.

내가 지내는 랴오닝성 진저우(锦州)시의 수질은 그리 좋지 않다. 사실 유학을 떠나기 전 물에 대해선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중국 수질에 대한 악평을 익히 들어왔지만, 설마 중국 전체가 그럴까 싶어서였다. 하지만 운이 없게도 진저우는 그랬다. 수돗물을 틀자마자 우윳빛 불투명한 물이 주르륵 흘러나왔다. 수도관에 문제가 있거나, 소독약 탓인 줄 알았다. 하지만 그건 석회수였다. 어쩐지 욕실 군데군데가 하얗게 굳어가더라니.

처음엔 한국 습관처럼 수돗물을 받아 종종 끓여 마시기도 했는데, 특유의 시멘트 냄새와 미끄덩거리는 촉감에 목구멍으로 넘기기 힘들었다. 한 번 물을 끓일 때마다 전기포트 바닥은 석회가루가 쌓여 돌처럼 굳어간다! 게다가 잘 닦이지도 않아 굉장히 난감하다. 눈으로 돌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고 나니 찝찝해져 결국 슈퍼에서 생수를 사다 마셨다. 중국의 차 문화가 물이 안 좋아 생겼다는 말이 납득이 갔다.

차 사랑이 끔찍한 중국인

타피오카를 추가한 밀크티
 타피오카를 추가한 밀크티
ⓒ 김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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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차는 종류가 무척 많다. 각종 꽃잎을 말린 꽃차나 녹차, 홍차 등 수십 가지의 차를 어느 곳에서나 쉽게 구입할 수 있다. 종류에 따라 가격과 맛 또한 천지 차이다. 내가 한국에 있는 지인들에게 자주 선물하는 것 가운데 하나가 찻잎이다. 현지에서는 무료 시음이 가능한 곳도 많아 마셔보고 구매하기도 한다.

중국인은 차를 밀크티로도 즐겨 마신다. 중국말로 '나이차(奶茶)'라고 하는데 값도 싸고 파는 곳도 많다. 여기에 쫀득쫀득한 타피오카(열대나무에서 얻은 전분)를 넣으면 간단한 식사 대용이 되기도 한다. 요새는 대만에서 건너온 밀크티 체인점이 많아져 한국에서도 쉽게 나이차를 즐길 수 있다.

중국에서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홍차에 직접 우유를 첨가하는 방식으로 밀크티를 만들지 않는다. 보통 낮은 가격과 단맛을 위해 분말을 애용한다. 우려낸 찻물이나 우유, 물 등에 밀크티 분말을 탄다. 간단하긴 하지만 인스턴트 커피와 다를 바가 없다. 맛은 좋지만 칼로리가 높아 자주 먹으면 살이 쉽게 찐다.

이처럼 차를 즐기는 문화는 중국 생활의 일부분이다. 음식점에서도 차를 곁들여 마실 수 있고, 일반 가정집에서는 대부분 커피 대신 차를 대접한다. 우리나라가 커피를 즐기는 것 이상이다. 물론 커피도 마신다. 일찍 커피가 퍼진 대도시와는 다르게 이 곳은 작년에서야 제대로 된 에스프레소를 내려주는 커피숍이 생겼다. 덕분에 커피를 마시는 젊은이들은 늘어났지만, 아직까진 건강에 해로운 음료라는 인식이 강하다.

중국 음식과 환상궁합 '차', 하지만 미지근한 음료와 맥주라니!

식사 때 같이 딸려 나오는 차
 식사 때 같이 딸려 나오는 차
ⓒ 김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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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기거나 볶는 요리가 대부분인 중국음식은 기름이 많이 들어간다. 그 때문일까, 중국 동북쪽은 차가운 물을 선호하지 않는다. 음식점에서 물을 달라하면 우리나라와 달리 찬물을 주지 않는다. 뜨거운 물 또는 차를 무료로 주거나 생수를 사 마셔야 한다. 차를 달라고 할 때는 일단 공짜냐고 물어본 다음 시키는 것이 좋다. 간혹 돈을 받는 곳도 있기 때문이다. 예전 나름 고급 음식점으로 보이는 곳에서 무심결에 차를 달라했다가 찻값 30위안(약 5300원)이 추가됐던 쓰라린 경험이 있다.

중국인 친구는 중국음식은 기름으로 하는 게 대부분이라 뜨거운 물을 마셔야 소화가 잘 된다고 한다. 그러며 찬물을 찾는 내게 따뜻한 물을 권한다. 하지만 삼십 년 가까이 찬물만 마시던 입맛에 영 맞지 않았다. 습관은 무섭다. 미지근한 물을 마실 때마다 느끼는 따가운 목과 마신 것 같지 않은 허전함은 쉬 적응이 안 된다.

물뿐만이 아니다. 음료수를 사러 슈퍼에 들어갔다. 냉장고를 열자 코드를 뽑아둔 냉장고 냄새가 코를 찌른다. 역시나 전혀 시원하지 않은 음료들이 냉장고 안에 채워져 있었다. 냉장고는 단지 진열장 역할이었다.

"아저씨, 냉장고가 안 켜져 있는데요?"
"겨울인데 냉장고를 왜 틀어?"

태평스러운 대답이 돌아온다. 그럼 밖에라도 내놓던가. 난로를 빵빵하게 틀어 놓고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이해되지 않았다. 도시가 작아서 인지 냉장고는 초여름이나 돼야 돌아간다. 덕분에 남은 세 계절은 꼬박 미지근한 음료로 때워야 했다. 안심하고 시원한 음료수를 마시려면 큰 마트를 가는 것이 좋다.

냉장고에 있어도 전혀 시원하지 않은 음료수
 냉장고에 있어도 전혀 시원하지 않은 음료수
ⓒ 김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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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 나를 미치게 하는 것은 미지근한 맥주다. 적어도 한국에선 "캬!" 소리를 내며 시원한 맛으로 먹는 술이 아니던가. 어느 주류회사에서도 선전했듯이 맛있는 온도까지 있는 음료인데 대개는 그 근처에도 못 미친다.

가끔 양꼬치와 맥주를 마시러 나가곤 한다. 겨울인데도 찬 맥주가 나올 확률은 손에 꼽힌다. 밖에만, 아니 출입문 언저리에만 놔둬도 시원할 텐데 도무지 그럴 생각이 없어 보인다. 뜨뜻미지근한 맥주에 아쉬움이 배가되지만, 중국인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미적지근한 술을 잘도 마신다. 다른 건 모두 적응해도 아직 맥주만큼은 포기가 되지 않아 주문할 때마다 말한다.

"나라이쭈이량더바!(여기서 가장 시원한 맥주로 갖다 주세요!)"

식사 때 따뜻한 물 한 잔으로 바꾸시는 건 어때요?

상다리가 휘어질만큼 올라간 화려한 중국음식
 상다리가 휘어질만큼 올라간 화려한 중국음식
ⓒ 김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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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기름진 식단이면서도 비만인 사람이 많지 않다. 이들의 차 문화가 중국음식과 융화된 탓으로 보인다. 작년 한국에 다녀온 중국인 친구는 현지에서 우엉차가 다이어트에 효능이 좋아 인기를 끌고 있다며 선물로 사오기도 했다. 다이어트에도 도움이 되겠지만, 이처럼 평소 즐기니 건강에도 좋아 보인다.

중국생활을 시작할 때 살이 급격하게 쪘다. 한국음식에 비해 기름지고 밀가루의 비중이 높은 탓이었다. 그런데 특이하게 같이 유학생활을 시작한 한 친구는 한국에서 찐 살이 중국만 오면 다시 빠진다. 물론 귀국만 하면 그간 못 먹은 한국음식을 미련스레 먹은 탓도 있다. 하지만 중국에 오면 언제 그랬냐는 듯 쪘던 살이 자연스레 모두 빠진다.

그렇다고 다이어트를 하는 것도 아니다. 늘 먹는데도 금세 슬림해진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 친구는 음식점에서 뜨거운 차를 한 주전자씩 비워내는 '차 마니아'다. 차를 쉴 새 없이 마셔대는 친구의 모습을 보니 '정말 차 때문인가'하는 생각도 든다.

한국 식단은 중국에 비해 담백하긴 하지만 어느 정도 서구화가 이루어져 고지방 식탁을 피할 수 없다. 찬물도 여러 장점이 있겠지만, 건강을 위해 식사할 때만은 뜨거운 물 한 잔을 곁들이는 건 어떨까? 기름진 음식의 소화를 자연스레 도와줄 것이다. 물론 짜릿하게 차가운 맥주 한 잔의 갈증은 아직 양보하지 못했다. 그래서 한국인인가 보다.


태그:#중국, #중국문화, #중국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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