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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 한쪽에 정차해있는 꽃마차 말. 종일 아스팔트 위에 기다리다 손님이 오면 태운다. 하루 스무 가족 정도가 이용한다고 한다.
 도로 한쪽에 정차해있는 꽃마차 말. 종일 아스팔트 위에 기다리다 손님이 오면 태운다. 하루 스무 가족 정도가 이용한다고 한다.
ⓒ 전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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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2일 동물사랑실천협회는 한 방송국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한 시민으로부터 제보를 받은 내용을 협회 메일로 보낸 것이다. 제보 동영상은 참혹했다. 동영상 속에선 말 한 마리가 꽃마차를 끌고 공터로 들어온 뒤 한 남자에게 매질을 당하기 시작했다. 급기야 말은 쓰러졌고, 쓰러진 말 위로 발길질과 매질은 계속됐다. 동영상은 총 10분 가량의 내용이었다.

영상을 통해 볼 때 이 남자는 지칠 대로 지친 말을 채찍으로 계속해서 때렸다. 맞다가 완전히 땅에 쓰러져 탈진한 말을 다시 발로 짓이기고 학대하는 모습도 나왔다. 또 말이 가혹 행위 끝에 겨우 일어난 후, 말의 온몸에 묻은 흙을 털어내기 위해 말에게 고무 호스로 물을 세차게 뿌리는 장면도 등장했다. 한 남자가 주도해 적극적으로 말에게 가혹 행위를 했고, 주변에 있던 세 사람은 가세 혹은 수수방관하고 있었다.

지난 23일 오전 9시 동물사랑실천협회 활동가들과 경주로 향했다. 목적지는 경주의 천마총 앞 유원지. 말들이 밤중 지내는 곳은 주변의 공터였다. 오후 1시가 넘은 시각 공터에 도착했다. 남아있는 꽃마차와 길 건너에 트럭들이 보였다. 말들은 트럭 안에 없었다. 일을 하러 이미 유원지로 간 상태였다. 5분 거리에 유원지가 보였다. 말 두 마리가 도로 옆에 서 있었다.

다가서니 직원으로 보이는 사람이 있었다. 사건이 일어난 시점과 사건에 대해 설명을 하자마자 "모르는 일이며 자기들 말이 아니다"라고 했다. 이상했다. 동영상을 보지도 않고 무조건 자기들 말이 아니라니? 꽃마차에는 요란한 광고판이 붙어있었다.
꽃마차 안을 들여다 봤다. 한 가족이 탈 수 있을 정도의 공간이었다. 그에 비해 말은 크기가 작았다. 경주용 말보다는 작고, 제주도 조랑말 정도의 말. 이 말들은 어디서 와서 어떤 사연으로 이곳에 오게 됐을까.

그 말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이 말은 25살 정도 되었다고 한다. 말의 발 모습
 이 말은 25살 정도 되었다고 한다. 말의 발 모습
ⓒ 전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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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원들은 말이 세 마리밖에 없다고 했다. 그런데 전날 미리 와 있던 방송팀들의 설명은 달랐다. 지난 22일까지 분명히 갈색 말이 세 마리, 하얀 말이 한 마리였다는 것이다. 영상 속에서 학대 받던 갈색 말도 보이지 않았다. 그 말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마주에게 전화했다. 마주에게 "그 말을 팔라"고 했더니 "얼마에 가져갈 거냐, 다른 말을 가져가라"라고 했다. "그 학대받은 말을 데려 가려고 온 거다"라고 답했더니 "모르는 일이다"라며 전화를 끊는다. 대화 불가였다.

오후 2시가 넘은 시각에 경주시청 축산과에서 담당자들이 나왔다. 그들은 오랫동안 꽃마차 관련 민원을 해결하려고 했다고 설명했다. 우리는 마주를 설득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 말은 분명히 크게 다쳤을 것이고, 건강 상태가 좋지 않을 테니 우리가 사겠다는 의사를 전달했다. 미리 주변의 수의사를 섭외하고, 말 전용 트럭을 빌릴 수 있는 곳도 마련했다.

시청 담당자가 마주에게 전화를 걸었다. 마주는 완강했다. 무조건 모르는 일이며, 업무 방해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곤란한 상황이었다. 시청 담당자가 그 말이 있는지 확인을 요청해도 상대방이 이렇게까지 완강하게 버티면 행정력을 발휘하기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물보호법 상 동물보호감시원(현 지자체의 동물복지 담당관)은 학대가 의심되는 곳의 출입을 요구할 수 있다. 법적 근거가 있기에 담당관은 여러 차례 마주를 설득했다.

사육장을 보여 달라는 담당관의 요구에 결국 마주가 제시한 곳은 그 공터였다. 그러나 그곳은 말이 이벤트에 참여할 동안 머무르는 곳이 분명했다. 사육장은 분명히 따로 있을 것이었다. 우리는 시청 담당자들과 트럭 구석구석을 살폈다.

꽃마차는 왜 위험할까. 우선 도로에 아무 제한 없이 다니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 달 일산에서 도로를 달리던 차와 말이 부딪히는 사고도 있었다. 둘째, 시내의 도로는 대부분 아스팔트로, 장기간 그곳을 다니는 말의 관절에 무리가 올 수 있다. 관절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관리가 필요하다. 그러나 우리가 본 말들의 털은 모두 까칠하고 더러웠다.

말은 혹서기를 제외하고 하루종일 물을 먹지 못한다. 입에 거품을 물고 있다.
 말은 혹서기를 제외하고 하루종일 물을 먹지 못한다. 입에 거품을 물고 있다.
ⓒ 전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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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에 얼마의 하중을 견딜 수 있는지 제한도 없었다. 휴일도 없고, 은퇴 후 생활 보장도 없다. 말의 관리가 오직 업자의 손에 의해 이뤄지기 때문에 동물의 복지가 어떻게 보장되는지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다. 말들이 저녁에 쉬는 트럭 위는 충분히 쉴 수 있는 공간이 아니었다. 넓지도 않고, 건초도 풍성하지 않았다. 말들도 때로는 누워 쉬는 것을 좋아한다.

오후 4시가 넘은 시각, 영상 속의 말은 보이지 않았다. 우리는 제보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영상을 찍은 것은 지난해 11월, 동물 관련 방송에 제보했지만 연락이 없었다고 했다. 그래서 뉴스 방송에 제보하게 됐다고 했다. 제보자에게 영상 속에서 지속적으로 말을 채찍으로 때리고 발길질하는 사람의 인상착의를 물었다. 베레모 같은 모자를 쓰고 수염이 있는 50대 초반의 남자, 키는 165에서 170사이의 작은 키라고 했다. 우리가 유원지에서 본 사람 중에는 그런 인상을 가진 사람이 없었다. 이대로 그를 놓칠 것인가.

그런데 트럭에 붙어있는 사진이 눈에 띄었다. 사진 속에는 한 인물만 집중적으로 나와 있었다. 자세히 관찰해보니 사극에 출연했다는 것을 홍보하는 내용. 차창 바깥에서 보니 트럭 안에는 그 사람의 명함이 있었다. 그리고 명함 안에는 그 사람의 주소가 나와 있었다. 혹시라도 아직 그곳에 말이 있을지 모른다는 희망으로 우리는 차를 몰았다.

오후 8시가 넘은 늦은 시각, 우리는 그곳에 도착했다. 꽃마차가 있었고, 말들이 여기저기 묶여 있었다. 그 말을 찾을 수 있을까. 바로 앞에 작은 밥집이 있었다. 식당 안에 손님이 보였다. 그리고 수염을 한 남자가 보였다. 우리는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사진 속의 남자를 만났다. 꽃마차에 붙어있는 홍보물 안의 남자였다.

설득, 그리고 과제

낡고 좁은 마차 안
 낡고 좁은 마차 안
ⓒ 전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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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우리에게 넘겨주시면 아무것도 문제 삼지 않겠어요."
"이거 보세요... 말은 말이요... 야생 상태에서는 제어가 안 되죠. 그러니 훈련이 필요하지요."

계속 이야기는 산으로 가고 있었다. 나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지난해 11월에 공터에 있던 말 어디 있어요? 말 살아있나요, 아니면 죽었나요?"

그 남자는 화를 벌컥 내기 시작했다.

"당신들하고는 말이 안 되겠어요!"
"그럼 경찰을 부를 수밖에 없어요."
"난 모르는 일이니 맘대로 하세요!"

경찰이 온 시각은 오후 8시가 조금 넘어서였다. 관련 방송이 시작될 시간. 우리는 경찰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일단 말을 확인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했다. 안으로 들어가 말들을 확인했다. 말은 보이지 않았다. 경찰이 있는 상황에서 그 방송을 봤다. 방송을 타고 학대 영상이 퍼져 나갔다.

고발장을 쓰기 위해 일단 서울로 철수하기로 했다. 그런데 돌아오는 차안에서 그 남자의 전화를 받았다. 오후 10시가 다 된 시각. 남자는 뜻밖의 말을 했다.

"방송을 봤다. 내가 맞다. 미안하다. 내일 자수하겠다."
"사람을 처벌하는 것만이 목적이 아니다. 말을 우리에게 넘겨 달라."
"말은 이미 다른 곳에 팔렸다."
"그럼 우리가 다시 사오겠다. 당신이 협조해 달라."
"그건 할 수 없다."

"명백한 학대 상황이다"

꽃마차의 모습
 꽃마차의 모습
ⓒ 전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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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는 필요 없었다. 말의 안전이 궁금했다. 그러나 남자는 다시 사올 수 있도록 도울 수 없다고 했다. 돈을 벌기 위해 말을 이용했던 것이라면 다시 사고 파는 게 큰 문제가 될 것 같지 않았다. 그 말이 죽었기 때문에 자꾸 말을 바꾸는 것일까?

우리에게 과제가 남았다. 말을 찾아야 하고, 생사를 확인해야 한다. 그리고 말을 고통스럽게 하는 꽃마차 산업을 금지하는 것도. 도심 속에서 오락용으로 이용되는 동물에 대한 어떠한 제한도 없는 것이 문제다. 물론 이 과정에서 많은 반대에 부딪힐 수 있다.

알고 있다. 사람들 말대로 동물도 중요하지만, 사람도 중요하다. 생업을 인정해줘야 한다. 그러나 생업을 유지하더라도 지켜야 할 원칙과 도리가 있지 않을까. 결국 그 남자는 동물을 학대했다. 말을 다루는 게 그렇게 힘든 일일까. 관련 전문가의 자문을 얻기 위해 24일 말 전문 이광협 수의사님과 통화해 조언을 구했다.

수의사님은 영상을 보고 "영상에 나온 사람이 말을 전혀 조련할 줄 모르는 사람이며, 명백한 학대 상황이다"라고 말했다. 말이 넘어졌을 때 발이 어딘가에 끼는 등 안전하지 못한 상황에서 말을 빨리 일으키기 위해 말을 채근할 수 있으나, 그런 경우에도 말의 엉덩이를 찰싹 때리는 정도지 말의 얼굴을 치는 경우는 없다는 것. 경마장 기수의 경우에도 말의 얼굴을 때리면 일 주일 출전 정지를 당한다고 한다.

현재 말을 활용한 꽃마차 사업은 따로 허가나 등록의 기준이 없다. 말의 경우 완전한 반려 동물도 아니고, 식용만을 목적으로 한 동물도 아니기 때문에 별도의 범주가 필요하다. 일부 현실에서 말을 상업적으로 이용하고 있으나 이를 관리할 수 있는 법 조항이 없다는 것은 꽃마차 같은 '말 이용 산업'의 사각 지대가 발생하는 요인이 된다.

말산업육성법상 '말 이용업'이란 '체육시설의 설치·이용에 관한 법률'에 따른 승마장이 아닌 장소에서 승용말 임대, 말 트레킹, 승마 체험 등 말을 이용한 용역을 제공하는 사업을 말한다. 그러나 이에 이용되는 말을 등록하는 것은 의무가 아니다. 관련 법 제7조(말의 등록)엔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말의 생산·사육·조련·유통 및 이용 현황을 파악하기 위해 농림축산식품부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등록 기관을 지정하여 말을 등록하게 할 수 있다"고만 나와 있다. 관련 법의 정비가 필요한 시점이다.

덧붙이는 글 | 전채은 기자는 동물사랑실천협회 공동 대표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태그:#말 학대, #동물학대, #제주 꽃마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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