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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이었다. 아내가 갑자기 메신저로 뜬금없는 말을 꺼냈다.

"우리 경매할까?"
"응? 무슨 경매?"

"무슨 경매는. 주택 경매지. 인터넷을 하다 보니까 동네 아파트 한 곳이 싼 가격에 경매로 나와서. 첫 번째 유찰 되고 두 번째라던데 주변에 경매 잘 하는 사람 없나?"
"없는데. 그래도 경매는 좀 그렇지 않나? 어쨌든 한 번 알아보지 뭐."

그렇다. 아내는 주택경매를 이야기 하고 있었다. 3억4천만 원대의 최저 경매가격이 그 아파트의 전셋값과 같다며 아내는 흥분한 듯 보였지만, 정작 나는 그런 아내의 태도에 흠칫 놀랄 뿐이었다.

무엇보다 경매의 '경'자도 모르던 아내가 아니던가. 과거 내가 흘러가는 이야기로 경매를 언급했을 때 아내는 어머니와 함께 '아무리 싸게 좋은 집을 얻는다 하더라도, 남의 눈에 눈물 흘리게 하면서까지 꼭 그래야 하겠냐'며 나를 만류했었다. 그런데 그런 그녀가 '유찰'이라는 전문용어까지 구사하다니.

게다가 아파트란다. 아내는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마당이 꼭 필요하다며 늘 아파트 떠나는 게 소원이었던 사람이었다. 나의 뜨뜻미지근한 반응에도 불구하고 틈만 나면 일반 주택 전세를 보러 다녔고, 마당 넓은 처가에 가서는 역시 마당이 좋다며 잔소리 아닌 잔소리를 해댔다. 그런데 그런 아내가 아파트 경매를 언급하다니. 그것도 1년 6개월 전 강동구로 이사 오면서 경사가 급해 유모차를 끌기 어렵다며 아예 쳐다보지도 않던 아파트를 말이다.

계속해서 진행되는 재건축
▲ 강동구의 마천루 계속해서 진행되는 재건축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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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메신저를 주고받던 아내는 이내 평정심을 되찾았다. 돈 때문이었다. 비록 경매의 최저가격은 3억4천만 원대라지만 최종 낙찰가격은 아무리 싸도 주위 시세와 별반 차이가 없을 터, 우리는 그 아파트를 구매하기 위해서는 최소 1억 원의 대출이 필요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는데, 그것은 지금 우리의 형편상 불가능한 일이었다.

사실 우리는 지금까지 살면서 한 번도 주택 매매를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물론 돈이 턱없이 부족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불안전한 직장도 그러하거니와 계속 떨어질 것 같은 부동산 시장 앞에서 주택 매매는 비합리적이라고 생각해왔기 때문이다.

아무리 정부가 저금리 대출을 장려하며 집을 사라고 홍보해도 우리는 관심이 없었다. 어차피 줄어드는 인구에 집은 남아돌게 될 것이며, 그만큼 집값은 떨어질 것이 자명하지 않은가. 아내와 나는 부동산 경기를 살리기 위한 정부의 꼼수에 놀아날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왜, 아내가 갑자기 아파트 경매 이야기를 꺼내게 되었을까? 그것은 바로 현재 끊임없이 언론에 오르내리고 있는 서울시 강동구의 전세난 때문이었다. 

끔찍한 강동구 전세난, 그 한복판에 서다

언론에서 하루가 멀다 하고 이야기하고 있듯이 현재 서울시 강동구의 전세난은 최악이다. 결국 전세난이란 전세를 구하려는 수요에 비해 공급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에 벌어지는 상황인데, 현재 강동구는 서울시 전세난의 진원지로, 전세를 구하려는 사람들의 규모가 상상 그 이상이다.

강동구의 전세난이 이처럼 심각해진 첫 번째 이유는 무엇보다 오랫동안 지체되었던 강동구 아파트 단지들의 재건축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강동구의 많은 아파트들은 과거 1970~1980년대 강남개발과 함께 그 배후의 주거단지 혹은 이주민들을 위한 수용지로 건설되었는데, 근 10년간 설왕설래하던 재건축이 현실화됨에 따라 수많은 가구들이 전세시장으로 쏟아져 나오고 있다.

당장 올해 상반기만 하더라고 명일동 삼익그린1차 아파트의 1560가구와 고덕주공2단지 아파트의 2770여 가구에 이주명령이 떨어져 있는 상황이며, 이후 고덕주공 4단지(410가구)와 5단지(890가구), 7단지(890가구), 3단지(2580가구) 등이 뒤를 이을 것이라고 한다. 2013년 강동구청에서 발간한 강동구 사회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강동구의 아파트는 총 7만8000여 세대로 전체 주택의 약 46%를 차지하고 있는데, 그 중 많은 아파트들이 재건축 대상인 것이다.

여기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강남의 개포동과 잠원동의 재건축이 진행되면서 그곳의 이주민들 역시 강동으로 유입되고 있는 중이다. 재건축을 하게 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기존의 생활반경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임시 거처를 마련하고 싶어 하는데 강동구는 비교적 강남구와 가깝고, 강남보다는 전셋값이 저렴해 이주민들이 선호할 수밖에 없다. 결국 강남에서 오는 이주민들이 강동에 전셋집을 구하고 강동의 이주민들은 주변 하남시나 송파 가락 등으로 옮겨감으로써 전세난을 주변으로 확장시키고 있는 것이다.

더욱 큰 문제는 이와 같은 전세난이 앞으로 더 악화되면 악화되었지, 호전될 가능성이 없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강동구에서 재건축이 계속되는 이상 향후 10년간 강동구의 전세난이 계속될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는데, 말이 쉬워 10년이지, 당장 그곳에서 생활을 영위하는 사람들에게는 악몽일 수밖에 없다.

갓 집을 구한 신혼부부들이야 아예 주거지를 옮기면 그만이지만, 오랫동안 한 지역에서 터를 잡은 이들에게는 잦은 이사가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만약 자녀가 있다면 그들의 학교는 당장 어찌 해야 되는가 말이다.

녹록지 않은, 강동구에서 전셋집 구하기

드디어 시작이다
▲ 주공2단지 재건축 드디어 시작이다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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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은 이런 전세난이 결국 돈으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현재 강동구의 전세난은 강동구 전셋값을 천정부지 수준으로 올려놓고 있는 중이다. 당장 우리 아파트만 하더라도 전셋값 시세가 1년 6개월 전과 비교해서 적게는 5천만 원에서 7천만 원 정도 올랐으며, 주위 빌라의 경우도 2~3천만 원이 오른 상황이다. 빤한 월급쟁이가 1년 동안 돈을 차곡차곡 저금해도 1천만 원을 모을까말까 하는데, 2년 전세 기간 동안 전셋값 인상분이 그 몇 배를 추월한다면 도대체 어떻게 살라는 말인가.

상황이 이러하니 아내가 차라리 아파트 경매를 생각할 수밖에. 나는 결국 아내와 함께 주말마다 집을 구하러 다니기로 했다. 우리의 이삿날은 올해 7월로 비교적 여유가 있는 편이었지만, 이런 전세대란에 마냥 손을 놓고 있을 수는 없었다. 혹여 괜찮은 전셋집이라도 나오면 집주인에게 양해를 구하고, 복비를 물고서라도 이사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경매 소동이 있고 난 후 첫 주말. 아이들을 차에 태우고 강동구 전체를 돌아다니며 부동산을 전전했다. 아이들은 다른 집으로 이사 간다는 소리에 처음에는 듣는 둥 마는 둥 했지만, 우리가 부동산 중개인과 이야기를 하고, 직접 집들을 보고 다니자 그제야 실감이 나는지 칭얼대기 시작했다. 왜 우리 집을 놔두고 이사를 가냐는 것이었다. 기껏해야 7살 되는 녀석에게 전세 제도를 설명할 수도 없고, 도통 뭐라고 해야 하는지 참으로 난감하기만 할 뿐이었다.

강일동, 고덕동, 명일동, 암사동, 천호동, 성내동 등 방문하는 부동산마다 모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전세 매물이 거의 없다는 것이었다. 5인 가족 기준에, 기존에 살던 수준의 집을 구하려면 빌라라도 최소한 전셋값 3천 만 원 이상이 더 필요하다고 했고, 그마저도 극히 드물다는 것이 공통된 의견이었다.

어쩌다가 조건이 맞아 집을 직접 둘러보기도 했지만 그런 경우 융자가 크게 잡혀 있거나, 햇볕이 안 들어 춥다든가, 주변 환경이 시끄럽다든가 실제 생활하는데 있어서 불편한 지점이 빤한 경우였다. 아내의 말대로 이런 좋지 않은 조건이니, 이런 전세난에도 불구하고 전세가 남아 있는 듯했다. 아내는 집 근처에 아이들과 함께 거닐 수 있는 최소한의 공원이라도 있으면 좋겠다고 했지만, 현실은 들어갈 집만 괜찮아도 감지덕지였다.

우리 부부가 상담을 하면서 한숨을 내쉬자 어떤 부동산 중개인은 자기들 역시 힘들다며 하소연을 했다. 어쨌든 그들도 먹고 살기 위해서는 매매나 전세가 활발하게 이루어져야 되는데 요즘 같아서는 계약 자체가 너무 없다는 것이었다.

또한 전세난이 부동산 업계의 빈익빈 부익부를 조장해, 공통 전산망에 기반을 둔 지역 내 부동산들의 협업 자체를 힘들게 만들었단다. 전세난이다 보니 수요자는 차고 넘치고, 따라서 매물을 많이 갖고 있는 부동산들은 기존처럼 지역 내 부동산들과 정보를 공유하며 수수료를 나눠 가질 필요가 없게 된 것이다. 문제는 그 때문에 소비자들이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인데, 이를 해결하는 방법은 단 하나 뿐이었다. 발품을 더 열심히 파는 수밖에.

끝이 보이지 않는 전세난. 생각 같아서는 내가 좀 멀리 출퇴근을 하더라도 아예 강동구를 떠나 전세난이 그나마 덜 한 지역에서 집을 구하고 싶었지만, 그 역시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당장 첫째 까꿍이의 유치원도 유치원이지만, 나의 출퇴근 시간이 길어지는 만큼 아이 셋을 혼자 감당할 수밖에 없는 아내의 수고로움이 마음에 걸렸다. 

집주인과의 통화에서 알게된 뜻밖의 사실

아파트가 전체 주택의 46%다
▲ 강동구의 모습 아파트가 전체 주택의 46%다
ⓒ 강동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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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이 전세난을 어떻게 해쳐나가야 할까. 그러나 이 고민은 전혀 뜻하지 않은 곳에서 해결되었다. 아니, 고민 자체가 필요 없게 되었다.

주말 동안 부동산을 다녀본 결과, 우리는 아직 전세 기간이 남아 있는 입장에서 가장 시급하게 알아봐야 할 것이 현재 살고 있는 집주인의 의사임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집주인과 통화한 결과 전혀 뜻밖의 대답을 얻은 것이다.

"저도 부동산에 전화해서 좀 알아봐야겠지만, 어쨌든 현재 전셋값을 주변 시세만큼 올릴 예정이에요. 대신 목돈은 힘들 테니 그만큼 월세로 받을 예정입니다."

소위 반전세였다. 집주인은 약 월 30만 원 정도를 생각하는 듯했다. 현재 이 집에 잡혀 있는 융자 5천 만 원의 이자라도 받아야겠다는 뜻이겠지. 계산이 복잡해질 수밖에 없었다. 지금 강동구의 상황이라면, 집주인이 아무리 전셋값을 올려 내놓는다 해도 잘 나갈 것이란 전제 하에 이사를 하려 했던 것이다. 하지만 반전세의 경우는 그것을 확신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전혀 다른 고민의 시작. 과연 우리는 강동구에서 집을 구할 수 있을까?  


태그:#강동구, #전세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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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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