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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주사 안 맞을래요! 나 도망갈 거예요."

병원 안이 쩌렁쩌렁 울린다. 대기 중인 손님들이 웬일인가 쳐다본다. 지난 20일 9살인 첫째 아들이 고열로 시름시름 앓기에 이비인후과에 왔다. 의사 선생님이 아이의 콧속이랑 입속이랑 이리저리 보시더니 나를 살짝 부르신다. 주사 한 대 맞아야 한다고. 아뿔싸! 그런데 그 소리를 아이도 들었다.

옛날엔 나도 한 '달리기' 했는데...

주사놓기를 거부하는 아들과 나의 추격전! 성공했으나 몸은 만신창이다.
▲ 이비인후과에 갔다. 첫째 아들이 A형 독감이란다. 주사놓기를 거부하는 아들과 나의 추격전! 성공했으나 몸은 만신창이다.
ⓒ 김승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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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 아들과 나는 서로 얼굴을 쳐다보며 정말 많은 생각을 했다. 나와 아들의 거리는 3미터 가량, 그러나 가운데에 손님을 위한 의자가 놓여있어 돌아가려면 4미터 정도 된다. 머릿속으로 잠깐 계산을 하고 있는 사이, 아이가 병원 문을 열고 냅다 뛰기 시작했다. 나는 얼른 따라 나갔다.

병원은 3층, 아이는 계단으로 쏜살같이 내달린다. 빠르다! TV에서 보던 우사인 볼트보다 스타트가 빠른 것 같다. 나도 아이를 따라 계단을 내려갔다. 아이는 금세 2층으로 내려갔다.

나는 두세 계단을 뛰어넘어 쫓아갔다. 죽을 각오로 계단을 내려가는 나, 당장 심장마비라도 올 것처럼 숨이 가빠졌다. 종아리와 허벅지가 경련을 일으킨다. 아이는 벌써 2층에서 1층으로 내려가는 중간 계단을 뛰고 있다. 나는 마지막 힘을 다해 폴짝 뛰어 다섯 계단을 내려갔고 아이의 손을 낚아챘다. 바로 이어지는 아이의 절규!

"아 아악! 싫어요. 나 주사 안 맞을래요. 싫어요"
"너 자꾸 도망가면 더 큰 주사 놓는다."

간신히 병원으로 올라갔다. 간호사 2명과 나, 이렇게 세 명이 붙었다. 제일 듬직한 간호사가 아이의 등 위로 올라가고 나와 다른 간호사는 다리와 두 손을 잡았다. 이렇게 '고문 자세'를 하고 난 다음에야 주사를 놓을 수 있었다.

첫째 아들, A형 독감이란다. 아내와 나는 아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이야기를 나눴다.

"오늘 아들 주사 맞히느라 정말 고생했어. 계단 내려가는 건 정말 자신 있었는데 아, 힘들더라고."
"그럼, △△이가 얼마나 빠른데."
"주사 맞히는 데도 나랑 간호사 두 명이 감당 못 해서 세 명이 붙었다니까. 그 모습을 한 번 봤어야 해."
"히히."

나름 날샌돌이라 불렸던 나인데 오늘 내 모습은 9살 아이에게도 쩔쩔매는 아저씨 바로 그 모습이었다. 그래도 살을 빼서 이 정도지, 지난해 10월 교회 체육대회에서 달리기 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배는 앞으로 내밀고 상체는 뒤로 처져있고, 머리는 기어코 앞으로 튀어나가야 하겠다는 집념으로 똘똘 뭉친 그 모습! 짧은 보폭으로도 달려보겠다는 나! 바로 배 나온 중년 아저씨 그대로였다. 100미터 한번 뛰고 나서 자리에 주저앉아 한동안 일어나지 못했다. 숨은 금방 넘어갈 것 마냥 호흡이 가빠졌고 종아리와 허벅지에 뭉친 근육은 일주일 가까이 나를 힘들게 했다.

4.5kg 감량! 도대체 어디가 빠졌지?

22일 재 본 몸무게는 62kg이다. 체중 조절을 시작한 이후로 3달이 지났다. 4.5kg이 줄었다. 명절, 오랜만에 보는 사람들은 뱃살도 들어가고 얼굴선도 좀 빠졌다고 하는데 왜 난 그걸 느끼지 못할까? 도대체 빠진 살은 어느 부위일까?

내 앞에 놓여진 생선 한 조각... 명절 음식은 내 식단표와 맞지 않아 휴일 내내 속이 더부룩했다.
▲ 명절 음식! 맛은 있으나 조절이 필요하다 내 앞에 놓여진 생선 한 조각... 명절 음식은 내 식단표와 맞지 않아 휴일 내내 속이 더부룩했다.
ⓒ 김승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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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벅지나 종아리도 청바지에 꽉 끼인 것을 봐서는 살이 빠졌다는 것을 잘 모르겠고, 얼굴이며 턱선도 마찬가지다. 팔이나 어깨도 그냥 그런 것 같고. 뱃살이 좀 빠졌다는 것을 느끼는 건 허리띠를 조이는 구멍이 한 칸 반 정도 줄었다는 거뿐이다.

근데 그것도 배꼽을 중심으로 한 중간 윗배는 살이 별 차이가 없다. 허리띠를 매는 부분은 아랫배와 골반 사이니까 말이다. 아님 전체적으로 조금씩 부기가 빠진 것 같은 효과인가? 몸이 좀 가벼워진 감은 있으나 거울로 보는 내 모습은 그다지 감량이란 걸 느끼지는 못하겠다.

어쨌든 다이어트에 위험기간인 명절도 무사히 지냈다. 그동안 잡곡과 채식 위주의 식단 때문인지 명절 음식이 몸에 잘 맞지 않았다. 조금만 먹어도 배가 부르고, 한번 배가 부르면 한 끼는 안 먹어도 될 정도였다. 습관이란 게 참 무섭다. 보기엔 맛있고 사족을 못 쓰는 명절 음식! 그러나 내 배는 낯설어한다. 기름지고 지방이 가득 섞인 음식을 힘들어한다.

명절 다음날 점심때쯤 울산으로 내려왔다. 아침 식사는 대전에서 먹은 후 점심을 거르고 저녁식사로 김치에 잡곡밥을 한 공기 쓱싹 비웠다. 그래 바로 이 맛이다! 하루에 한 끼 정도는 백미에 기름기 있는 육류나 부침, 치킨 정도는 먹을 수 있을 것 같으나, 명절 내내 접했던 음식들은 배에 뭐가 얹힌 것처럼 몸에 부담을 주었다. 잡곡밥에 차갑고 매운 고춧가루가 듬뿍 올려진 김치 쪼가리가 그리웠다.

오늘 출근하며 나는 내 일상을 찾았다. 식습관도 운동습관도 다시 궤도에 올랐다. 명절이 자주 있는 것도 아니니 그리 큰 부담은 아니다. 꾸준히 일 년을 버텨보자. 혹시 아나? 병원 계단을 우리 첫째 놈보다 더 빨리 달릴지…….


태그:#다이어트, #독감, #복부비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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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음악, 종교학 쪽에 관심이 많은 그저그런 사람입니다. '인간은 악한 모습 그대로 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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