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청소년·대학생일본환경연수단은 지난 1월 19일~24일 5박 6일 일정으로 오사카·효고현 등 일본 간사이 지역에서 환경연수를 진행했다. 오사카 주민 석면피해 국가 배상 소송 승소 사례, 커뮤니티 디자인 스튜디오L, 아마가사키시 주민 햇빛발전소, 탈핵 강좌, 지구온난화 대책과 COP20 강좌 등 일본 사회의 최근 주요 환경 이슈들을 접하고 왔다.

청소년일본환경연수단은 대전충남녹색연합과 한국가스공사충청지역본부가 주관하고 대전광역시, 서구청, (사)디모스가 후원한 제4회청소년·대학생환경대상의 수상팀과 스텝 20명으로 구성되었다.... 기자 말

지난 2014년 10월 일본 환경운동사에서 아주 빛나는 주민들의 승리가 있었다. 10월 9일 일본 대법원은 오사카부 센난지역의 석면 방적공장 근로자와 유족 89명이 제기한 소송에서 "국가가 석면이 인간의 신체에 끼치는 악영향을 알고 있으면서도 규제하지 않았다"며 원고들에게 배상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일본 언론뿐 아니라 국내 언론에서도 판결 내용을 중요하게 전하며 국내 석면 피해 관련 소송과 정책에 영향을 미칠지 주목했다. 하지만, 눈물 없이 들을 수 없는 주민들의 고통과 슬픔의 역사, 위대한 투쟁과정은 보도되지 않았다. 특히 다수 피해자들이 재일교포이며 한일관계의 역사적 비극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은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다.

전투기 석면호  센난지역 석면산업계가 일제에 헌납한 전투기 석면호. 일본의 석면산업은 일제시기 군수산업으로 성장하여 고도 경제성장기까지부흥이 이어졌다.
▲ 전투기 석면호 센난지역 석면산업계가 일제에 헌납한 전투기 석면호. 일본의 석면산업은 일제시기 군수산업으로 성장하여 고도 경제성장기까지부흥이 이어졌다.

청소년·대학생일본환경연수단은 지난 1월 19일 일본 간사이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오사카부 남부 센난으로 향했다. 바로 전날 시오자키 야스히사(塩崎恭久) 후생노동성 장관이 센난을 방문하여 피해자들께 직접 사죄하는 역사적인 날을 맞이했던 주민들은 우리 연수단을 매우 반갑게 맞아주었다.

공항까지 마중 나온 주민대책위 간사 요오카(78)씨는 연수단에게 점심을 대접해 연수단을 놀라게 했다. 센난시립다루이노인회집회장에서 진행된 간담회에는 센난시장과 시의회 의장까지 참석해 환영해주었다. 석면 피해로 몸이 불편한 소송원고인단과 주민대책위분들까지 직접 참석해 석면피해의 심각성과 대책활동 등을 얘기해 주었다. 기대 이상의 환대에 연수단은 일본 방문 첫날부터 감동이었다.

타케나카 이사토 센난시장 센난시장과 센난시의회 의장이 청소년대학생환경연수단을 환영해주었다.
▲ 타케나카 이사토 센난시장 센난시장과 센난시의회 의장이 청소년대학생환경연수단을 환영해주었다.
ⓒ 양흥모

관련사진보기


타케나카 이사토 센난 시장은 환영사에서 "어제 일본 후생노동성 시노자키 장관이 이 지역에 방문해 문제에 대한 책임을 통감하고 사죄했다. 석면 피해자 대책을 마련하고 환자를 적극적으로 치료하겠다고 말했고, 후생 노동성의 행보에 기대를 걸고 있다. 앞으로 센난 피해에 대한 대책 마련을 위해 적극적으로 임하겠다"라고 행정적 지원을 약속했다.

기무시타 도요카스 센난시의회 의장도 "의회차원에서도 시장과 힘을 모아 진지하고 신중한 자세로 석면 관련 정책들을 펼쳐나가도록 하겠다", "환경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60억 인구가 살아가기 힘들다. 여기에 있는 학생들이 환경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해달라"며 국가 배상소송의 성과에 기대를 걸고 있었다.

석면피해자들과 간담회 연수단과의 간담회에는 <석면피해국가배상소송원고단>과 <센난지역석면피해시민모임>의 주민들이 참석해 석면 피해의 고통과 소송과정 등을 들을 수 있었다.
▲ 석면피해자들과 간담회 연수단과의 간담회에는 <석면피해국가배상소송원고단>과 <센난지역석면피해시민모임>의 주민들이 참석해 석면 피해의 고통과 소송과정 등을 들을 수 있었다.
ⓒ 양흥모

관련사진보기


연수단과의 간담회에는 '석면피해국가배상소송원고단'과 '센난지역석면피해시민모임'의 주민들이 참석해 석면 피해의 고통과 소송과정 등을 들을 수 있었다.

공항에서부터 연수단을 안내한 센난지역서면피해시민모임의 유오카 카즈요시 대표는 "이 원고인단 분들 중에는 한국어를 아는 분이 있다"라며 학생들에게 주의를 당부했다. 피해주민들 중 1/3 이상이 제일교포들이다.

유오카 대표는 "일제강점기 오사카 일대에는 징용 등으로 끌여온 조선사람들이 40만 명 이상이었다. 2차 대전 전후로 제일교포들이 센난 지역으로 들어와 피해를 입었고, 양심적인 일본인들의 마음에는 그것이 고통으로 남아 있다. 석면 제품을 만들 때 일본, 특히 센난 지역에는 2차 대전 이전과 이후에 걸쳐 많은 재일 교포가 왔다. 석면 공장이라는 혹독한 환경 속에서 힘든 일을 할 수밖에 없었고 피해자가 속출했다"며 역사적 배경도 덧붙였다.

 유오카 카즈요시 대표 유오카 카즈요시 대표는 “이 원고인단 분들 중에는 한국어를 아는 분이 있다.”라며 학생들에게 주의를 당부했다. 피해주민들 중 1/3 이상이 제일교포들이다.
▲ 유오카 카즈요시 대표 유오카 카즈요시 대표는 “이 원고인단 분들 중에는 한국어를 아는 분이 있다.”라며 학생들에게 주의를 당부했다. 피해주민들 중 1/3 이상이 제일교포들이다.
ⓒ 양흥모

관련사진보기


"센난 지역은 1900년대 초부터 석면 공장이 많이 생겼고 바로 8년 전까지도 주변에 공장이 많이 남아 있었다. 100년 동안 이 지역에서는 석면 산업이 계속 발전해 왔고 1945년까지 군수물자, 전쟁을 위한 용도로 이용되었다. 제품을 만드는 사람들은 석면의 위험성을 몰랐지만 정부는 석면이 위험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산업발전이라는 위험성을 숨겼고, 그 결과로 오늘 참석하신 피해자분들이 생겨나게 되었다. 우리는 재판에서 국가의 책임을 물었고, 결국 2014년 10월 9일 대법원에서 우리가 승리했다. 어제 일본 정부의 가장 높은 관료 중 하나인 후센 노동성 장관이 센난에 왔고, 오늘 아침 조간신문에 그에 대한 기사가 보도되었다." - 유오카 대표

마이니치신문 석면피해자께 사죄하는 후생노동성 장관 1월 19일 마이니치신문 조간 1면에 실린 석면피해자 영정과 유가족께 사죄하는 후생노동성 장관 관련 기사.
▲ 마이니치신문 석면피해자께 사죄하는 후생노동성 장관 1월 19일 마이니치신문 조간 1면에 실린 석면피해자 영정과 유가족께 사죄하는 후생노동성 장관 관련 기사.
ⓒ 양흥모

관련사진보기


석면피해 주민 휴대용 산소공급기를 착용하고 나온 오카다씨는 부모님이 석면 공장의 노동자였고 부모님을 따라다니면서 석면 피해를 입었다. 마이니치 신문 등에 실린 후생노동성 장관의 사죄 관련 사진은 장관이 오카다씨 집을 찾아 사죄하는 모습이다.
▲ 석면피해 주민 휴대용 산소공급기를 착용하고 나온 오카다씨는 부모님이 석면 공장의 노동자였고 부모님을 따라다니면서 석면 피해를 입었다. 마이니치 신문 등에 실린 후생노동성 장관의 사죄 관련 사진은 장관이 오카다씨 집을 찾아 사죄하는 모습이다.
ⓒ 양흥모

관련사진보기


휴대용 산소공급기를 착용하고 있는 오카다씨는 아래와 같이 피해 사례를 증언해 주었다.

"부모님이 석면 공장의 노동자였고 부모님을 따라다니면서 석면 피해를 입었다. 이번 재판에서 부모님은 노동자라는 이유로 승소했지만, 어제 후센 장관이 방문했을 때 그 자녀들은 노동자가 아니었다는 이유로 환경성 쪽에 이야기를 하라는 말을 듣고 화가 났다. 전쟁 때 징용으로 일본에 오신 한국인 아버지는 수해를 복구하던 현장에서 일본인 어머니를 만나 결혼하셨다. 하지만 석면공장에서 일했던 아버지는 폐암으로 사망하셨고, 선고를 받던 날 여생이 4달 남았다는 말을 들었다.

어머니는 1980년대경부터 석면으로 인한 질병 치료를 시작해 암으로 발전 하지는 않았으나 2년 전 돌아가셨다. 외출할 때는 꼭 휴대용 산소봄베를 사용하는데, 아버지의 고향인 군산을 방문하기 위해 일본에서 산소통을 7개 가져갔다. 한국에서는 산소통을 충전할 곳이 없기 때문이다. 한국 일정을 소화하다가 결국 산소가 모자라 마지막날은 그저 가만히 있었던 기억이 난다. 내 병명은 비만성 흉막비강이다. 폐 점막이 고무처럼 되어 있어 폐가 부풀어 오르지 않아 산소통의 산소에 의존하기 때문에 호흡 자체가 힘겹다."

석면피해 만화 이 만화는 센난지역 석면피해와 문제를 생생하게 기록하였다.
▲ 석면피해 만화 이 만화는 센난지역 석면피해와 문제를 생생하게 기록하였다.
ⓒ 양흥모

관련사진보기


피해주민들로부터 생생한 석면 피해의 고통과 문제를 접한 연수단은 매우 놀라워했고, 외할머니 같은 분들의 평생의 고통과 한을 공감하며 슬퍼했다.

센난 지역의 석면피해는 일본제국주의와 고도성장기 산업화로 인한 차별과 피해다. 국가 야욕과 발전 이데올로기의 피해 상징이 센난인 것이다. 오카다씨는 "센난 지역 석면피해는 승소했지만 납득이 안 가는 부분이 남아 있다. 앞으로 석면피해 문제 해결을 위해 계속 노력할 것이다"라고 의지를 밝혔다.

석면피해 할머니께 선물 드리는 청소녀연수단 청소년연수단은  석면피해 할머니와 할아버지들께 직접 준비한 선문을 드리며 그 동안의 고통을 위로해드리고 정을 나누었다.
▲ 석면피해 할머니께 선물 드리는 청소녀연수단 청소년연수단은 석면피해 할머니와 할아버지들께 직접 준비한 선문을 드리며 그 동안의 고통을 위로해드리고 정을 나누었다.
ⓒ 양흥모

관련사진보기


일제강점기 개발된 한국의 석면광산, 특히 충남 홍성과 보령 일대 석면광산과 한일협정이후 부산 등 한국으로 이전한 일본의 석면산업. 센난의 피해와 문제는 일본과 한국, 그리고 동남아로 확장되어 여전히 진행 중이다.

또한 다른 '센난'이 여기저기 있다. 국가 산업정책과 시설로 인해 피해를 받고 있는 밀양 송전탑, 제주 강정 해군기지, 청양 강정리 석면광산, 당진과 보령 화력발전소 등 고통으로 잠들지 못하는 '센난'들이 있다. 정부는 센난 석면 소송의 판결 내용 "국가는 위험성을 알고 있었으나 규제하지 않았다"를 기억해야 할 것이다.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