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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저런 걱정은 남의 일이네."

설 명절을 앞둔 이맘때쯤이면 부산까지는 얼마, 어떤 날이 가장 덜 막히는지 알려주는 뉴스가 줄을 잇는다. 올해도 어김없이 꽉 막힌 고속도로를 보여주던 앵커는 막힐수록 여유를 가지라는 당부를 잊지 않는다.

아내의 말처럼 우리 가족은 몇 해 전부터 명절 교통체증과 이별했다. 차례와 제사가 장남인 나에게 옮겨온 까닭이다. 귀향 대열에서의 탈출, 남의 일이 되었지만 고향을 잃어 버렸다는 허전함도 없지 않다.

불과 몇 해 전만 하더라도 명절을 앞두고는 꽤 분주했다. 짧게는 3일, 길게는 일주일 동안 이어지는 명절을 보내기 위해 꾸려야 하는 다섯 식구의 짐은 만만치 않았다. 아내는 2~3주 전부터 아이들 속옷, 외출복, 편하게 입을 옷 등을 꼼꼼하게 챙겼다. 아이들은 각자 핸드폰을 비롯해 게임기도 챙겼다. 어린이집에 다녔던 막내는 인형까지 챙겼다. 겨울에는 옷만 큰 가방으로 2개 이상 됐다.

짐을 챙긴 다음에 할 일은 시장 보기였다. 며느리들 사이에서 각자 몇 가지씩 사서 오면 차례준비가 편하겠다는 이야기가 나왔고 그렇게 하기로 합의했다. 과일이나 고기, 과자가 차에 실렸다. 거기에 어머니와 처갓집, 오랜만에 찾아뵐 친척들 선물 세트도 몇 개나 준비해야 했다.

빠듯한 예산을 이리저리 쪼개는 일은 아내에게 꽤 큰 스트레스였다. 가장 덜 막힐 시간을 출발 시간으로 정하고 나면 아내는 가스 점검부터 전기 코드 뽑기, 문단속까지 꼼꼼하게 확인했다. 나도 나름대로 차를 점검하고 기름을 채우고 덜 막히는 길을 골랐다.

시골집에 홀로 남을 어머니를 생각하면, 발길이...

민족 최대의 명절 설날을 하루 앞둔 지난해 1월 29일 오전 서울역에서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코레일유통 직원들이 고향으로 내려가는 귀성객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다.
▲ "즐거운 명절 보내세요" 민족 최대의 명절 설날을 하루 앞둔 지난해 1월 29일 오전 서울역에서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코레일유통 직원들이 고향으로 내려가는 귀성객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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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집, 나에겐 푸근했지만 아내와 아이들에게는 불편했다. 어머니 혼자 사시는 시골집이다 보니 삼형제와 며느리, 손자, 손녀 등 13명이 넘는 대가족이 함께 하는 건 고역이다. 음식을 하기에 너무 비좁은 주방에 푸세식 화장실까지. 이런 화장실을 한 번도 이용해보지 않은 아이들은 참다 참다 엄마, 아빠를 부른다. 그때마다 동네 노인정을 이용하기도 했다.

제사를 가져오기 전, 내가 명절 때 하는 거라곤 운전사 역할이 전부였다. 고향집에 도착해 짐을 풀고 나면, 친척집에 찾아가거나 고향 친구들과 만나 술을 마시는 건 정해진 수순이었다. 동생들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초등학교 동창 모임도 보통 명절 전날 밤에 했다.

이렇게 삼형제는 술자리를 찾아 나가고 며느리들은 다음날 써야할 차례 음식을 준비하느라 분주했다. 불만이 없지는 않았지만 완고한 경상도 집안에서 이를 두고 며느리들이 큰 소리를 낸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처갓집은 고향집과 30분 거리에 있다. 차례와 성묘가 끝나면 동생들은 귀성 준비를 서두른다. 아내도 빨리 처가로 갔으면 하는 눈치다. 그러나 나 홀로 느긋하다. 음복으로 마신 술은 한잠 자야 깬다는 핑계를 대기도 했다. 그럴 때면 아내는 어머니 몰래 레이저 광선을 쐈다. 지척에 있는 친정집에 빨리 가고픈 아내를 이해 못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금방 텅 비어버릴 시골집에 홀로 남을 어머니 생각이 발길을 잡았다.

3년 전 어머니의 폭탄선언 "제사 이제 모시고 가라"

"내가 힘들어 안 되겠다. 제사 이제 모시고 가라. 집도 좁고 엄동설한에 모두 너무 고생이다. 나 혼자 서울로 가면 편한데..."

3년 전, 설 명절은 그야말로 엄동설한이었다. 시골집은 수도가 얼어 밥도 해먹을 수 없을 지경이어서 물을 길어 와 차례를 지냈다. 웃풍 때문에 보일러 온도를 올려도 방안에서 입김이 나올 정도였으니... 어머니께서 며느리들에게 미안해 할 수밖에 없었다. 움직일 수 있을 때까지 제사상만은 손수 장만하겠다던 어머니는 기독교 집안에서 시집 온 며느리에게 봉제사(奉祭祀) 접빈객(接賓客)의 전권을 넘겼다. 연세 때문에 힘들다는 실질적 이유와 이제는 제사를 맡겨도 된다는 믿음에 기초한 결정이었다.

어머니 결정에 당혹스러운 것은 나를 위시한 삼형제였다. 고향에 안 가는 명절을 생각해본 적이 없고, 오랜 친구들과 술자리는 명절을 기다리는 하나의 이유이기도 했다. 그러나 삼형제의 완곡한 만류에도 어머니는 뜻을 꺾지 않았다. 쾌재를 부른 건 며느리와 손자, 손녀들이었다. 음식을 준비하기엔 서울이 편했고, 아버지의 고향인 시골보다 자기들이 자란 도시가 아이들에게는 익숙했다.

서울에서의 명절 준비는 어머니의 역귀성으로 시작된다. 떡국 떡만큼은 우리 논에서 난 쌀로 만들어야 된다는 어머니가 보따리를 이고 청량리역 열차에 내리면 딸아이가 제일 먼저 할머니에게 달려간다.

다음날 아침 일찍 동생네가 차례로 도착하고 온 집안이 왁자지껄해진다. 전을 붙이고 만두를 빚고 한강 공원에서 배드민턴을 치기도 한다. 어머니를 모시고 빠진 제수용품을 사려고 재래시장을 돌아보는 것도 시골에서는 가질 수 없는 재미이기도 하다.

예기치 못한 갈등 불러오는 명절, 잘 보내려면...

시골에서는 차례와 세배가 끝나면 귀성 짐 꾸리기에 바빴지만 서울에서는 또 다른 일정의 시작이다. 서울 근교 1박 2일 가족여행이 그것이다. 시골을 오가는 시간과 비용이면 가족 여행이 충분하다는 것과 명절은 모두에게 축제가 되어야 한다는 어머니의 지론이었다. 여행 준비와 여행지에서의 설거지는 남자들 담당이다. 며느리들은 물론 아이들까지 대만족이다.

명절이 지나고 나면 부부싸움이 늘어나고 이혼율이 올라간다는 뉴스를 볼 때면 착잡하다. 소가족으로 구성되어 있다가 대가족의 관계가 요구되는 명절은 비록 2~3일밖에 안 된다고 해도 예기치 못한 갈등을 증폭시킬 수 있다. 부부의 관계도 예외는 아니다. 고향으로의 귀향은 나에게는 즐거운 여정이었지만 좁고 불편한 시골집, 거기에서 명절을 준비해야 하는 며느리나 아이들의 기분은 아빠의 감정과 같을 수는 없을 것이다.

고향을 찾는 것과 부모님들이 역귀성 해 명절을 보내는 것, 둘 중 무엇이 좋다고 단정할 수 없다. 어디서 명절을 보내든 오랜만에 모인 식구들이 모두 즐거워하고 가족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다면, 그걸로 된 것 아닐까?

이번 명절에도 우리 가족은 차례 후에 강화도로 1박2일 여행을 가기로 했다. 온 가족이 서해의 낙조를 바라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일 듯하다. 강화 평화 전망대에서 아이들에게 개성 송악산을 보여줘도 좋을 일이다. 온가족이 같이 있을 수 있다는 것, 그것이 명절이 주는 최대 행복 아닐까. 


태그:#명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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