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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여자 싫어할 남자 없다고 합니다. 하지만 있었습니다. 싫어했다기보다는 여자를 취할 기회가 있었음에도 스스로 멀리 했다고 하는 것이 정확한 표현일 것입니다.

혼인을 하고도 한참 동안이나 아내를 처녀로 놔뒀습니다. 남자 구실을 못해서가 아니라 나이 어린 아내에 대한 배려였습니다. 하늘 아래 둘도 없는 효자, 천하의 명재, 꼿꼿한 선비, 충직한 신하로 묘사되고 있는 사람은 '소'씨 성에 '현성'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습니다.

'현성'은 별호이고 그의 이름은 '경'입니다. 소현성은 북송 시대를 배경으로 한 국문장편소설 <소현성록>의 주인공입니다.

북송시대 가정소설 <소현성록>

<소현성록> (옮긴이 지연숙 / 펴낸곳 (주)문학동네 / 2015년 1월 24일 / 값 2만 3000원)
 <소현성록> (옮긴이 지연숙 / 펴낸곳 (주)문학동네 / 2015년 1월 24일 / 값 2만 3000원)
ⓒ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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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현성을 주인공으로 하는 국문 장편소설 <소현성록>(옮긴이 지연숙, 펴낸곳 (주)문학동네)은 북송 시대, 유복자로 태어난 소현성이 과거에 급제해 승상까지 이르는 출세 여정, 혼인을 해 가정을 이루는 과정에 수없이 수반되는 다사다난한 우여곡절을 그려낸 가정소설입니다.

그 시대에서는 보편적인 가정에서 모범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대표적 가정사일지 모르지만 요즘의 눈높이로 보면 절대 있을 수 없는 일들이 버젓하게 전개됩니다.

요즘의 눈으로 봐도 막장드라마 중의 막장쯤은 돼야 등장할 수 있는 여러 요소들, 출생, 성장과정, 씨앗싸움, 질투, 복수…,  말초신경과 관음증을 자극하기에 충분한 요소들을 골고루 갖추고 있습니다.

소설이 허구를 전제로 하고 있지만 그 시대를 담고 있게 마련입니다. <소현성록> 또한 그 시대에 통용되던 시대적 가치와 정치·사회적 문화, 문학적 표현방식 등이 고스란히 반영돼 있습니다.

비유 표현의 진수 보여주는 북송시대 판 막장 드라마

과거를 보러간 현성은 시간이 다 돼도 답을 쓰지 못하고 있는 다섯 사람의 답을 대신 작성해 줘 동시에 급제합니다. 소현성이 붓글씨를 휘갈겨 쓰는 모습은 '마치 종이 위에 구름이 어리고 용과 뱀이 꿈틀거려 날아오르는 것 같았다'고 표현됩니다.

다섯 사람이 본 소현성의 모습은 '옥으로 몸을 새기고 꽃으로 얼굴을 만든 듯한 선인'의 모습으로 묘사됩니다. 비유의 극치라 할 수 있는 '하늘만큼 땅만큼'보다 훨씬 가상적인 비유입니다. 어떤 인물을 묘사하고, 어떤 상황을 전개하는 설명마다 상상할 수 있는 어휘, 그려낼 수 있는 비유들은 다 동원한 듯합니다.

이러한 비유들은 내용에 등장하는 인물과 상황에 대한 상상력을 진하게 자극하는 장식이 되고, 상황이 전개되는 과정에 긴장감을 더해줍니다.  

이때 공자는 천자가 화대를 특별히 만들어 재주 있는 사람을 바라는 것을 보고 글을 먼저 바치기가 좋지 않은 듯해 한가히 놀다가 끝날 시각이 다 되어서야 명지(名紙 과거시험에 쓰는 종이)를 펴고 붓을 들었다. 한 번 휘두르니 종이 위에 구름이 어리고 용과 뱀이 꿈틀거려 날아오르는 것 같았다. (중략)

다섯 사람이 민망해하다가 목소리를 따라 돌아보니 옥으로 몸을 새기고 꽃으로 얼굴을 만든 듯한 선인이 흰 모시 겉옷을 가을바람에 나부끼며 흰 얼굴에 검은 관을 숙여 쓴 재 저희를 향해 말을 묻고 있었다. -<소현성록> 42쪽-

어사가 눈을 들어보니 여자의 피붓빛은 맑은 옥 같고 눈썹은 버들 같으며 두 눈은 가을 물이 흐르는 듯했는데 구름 같은 머리를 흐트러뜨리고 남루한 옷을 입었느니 마치 달이 근심하고 꽃이 시름하는 듯했다. -<소현성록> 75쪽-

소현성은 부인을 셋이나 두지만 그 또한 호색이어서가 아니라 하늘 아래 둘도 없는 효자가 취할 수 있는 도리였기 때문입니다. 유복자로 태어난 현성이 효와 충 그리고 덕을 품성으로 할 수 있었던 건 어머니 양씨부인이 보인 엄숙한 가정교육이 밑그림으로 그려져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밑그림으로 빠트리지 말고 읽어야 할 교육과 효

소설에서는 부정한 딸에게 사약을 내려 자살하게 하고, 아내가 다른 여자에게 장가드는 남편이 입을 예복을 마련하게 하는 등 현실적 잣대로 봐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도 없는 일들이 버젓하게 펼쳐집니다. 이러한 내용들은 그때 당시의 사회상, 시대적 가치와 문화적 배경을 두루 읽을 수 있는 창이 됩니다.  

아내가 지아비를 다른 사람에게 보낼 때 어찌 남의 손을 빌려 옷과 차림을 시키겠습니까? 소녀가 지아비 먼길 떠나는 행장을 혼자 차리는데 지어미 있는 오라비 길복까지 지어줘야 합니까? -<소현성록> 146쪽-

시대에 따라 효와 충, 도리와 덕, 아녀자가 갖추어야 할 정숙과 부덕에 대한 기준과 가치도 달라지는 게 당연함에도 둘도 없는 효, 선비다운 덕, 충과 겸비한 실력으로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상승이 된 소현성은 수신제가와 입신양면으로 이루고 싶은 이상적인 인물로 그려집니다.

어려서 읽던 '콩쥐팥쥐'보다 훨씬 더 재미있고, '춘향전'이나 '심청전'보다 훨씬 더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는 상황들을 내용 속 여기저기서 흥미진진하게 전개되며 한 시대의 삶을 진하게 그려냅니다.

400여 쪽이 넘는 <소현성록> 원본이 책 후반부(P393∼P833)에 고스란히 들어가 있어 그때 당시의 표현방법과 문체 등을 연구하고 이해하는 데 좋은 기초자료로 기여할 거라 기대됩니다.

덧붙이는 글 | <소현성록> (옮긴이 지연숙 / 펴낸곳 (주)문학동네 / 2015년 1월 24일 / 값 2만 3000원)



소현성록

지연숙 옮김, 문학동네(2015)


태그:#소현성록, #지연숙,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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