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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뒤에 늘어선 직행버스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이다.
▲ 과천시영버스 1번 바로 뒤에 늘어선 직행버스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이다.
ⓒ 박장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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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70년대 서울시의 버스는 대부분 서울시가 직접 운행한 시영버스였다. 다른 지자체 역시 시영버스나 군 공영버스를 주로 운행했다. 버스회사는 이들이 투입되지 않는 수익성 높은 노선만 운영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버스회사가 늘어나기 시작하더니 시영버스는 경쟁에 밀려 공익적 노선에만 투입됐다. 1990년대 신도시가 개발되면서 버스 회사가 없는 지역에 교통부재가 일어났다. 이로 인해 다시 시영버스가 운행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도 잠시, 어느새 시영버스는 마을버스로 바뀌며 민영 버스가 되어 갔다.

현재 대한민국에서 시영버스라는 존재는 잊혀지다시피 한 지 오래다. 하지만, 아직도 서울 근교 과천시에는 시영버스가 운행되고 있다.

과천은 시가지가 작고 한 곳에 집중된 형태다. 때문에 대부분의 교통망이 주요 공공기관과 주거단지가 사당동에서 안양 인덕원동으로 넘어가는 과천대로와 중앙로에 집중되어 있다. 과천 개발이 시작되기 이전부터 있던 마을은 자연히 교통의 혜택을 받지 못했다.

과천시청 앞에서 출발하는 4개의 노선은 1993년 과천이 개발되기 시작하면서 생겨났다. 시영버스는 이들 지역을 지나며 정부의 청사가 있는 도시 과천의 민낯을 보여준다. 아파트 단지를 지그재그로 지나기가 무섭게 울창한 숲과 한적한 교외를 지나며 개발이 한창 진행되던 90년대 이전 과천의 모습을 보여준다.

과천시영버스는 별도의 시간표와 노선도대로 운행한다. 흔한 BIS마저 뜨지 않는다.
▲ 과천시영버스 노선안내 과천시영버스는 별도의 시간표와 노선도대로 운행한다. 흔한 BIS마저 뜨지 않는다.
ⓒ 박장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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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버스조차도 지나지 않는 삼포마을, 갈현동 자연부락을 지나는 시영버스. 이 중 대표적인 노선인 과천 시영 1번 버스를 탑승했다.

과천시청에서 선바위, 경마공원 거쳐 양재화물터미널까지

서울의 관문인 선바위 역은 서울과 경기도 남부의 각지를 잇는 광역버스와 지하철이 만나는 곳이다. 이전부터 남태령이 있었고, 지금은 과천, 수원과 서울을 잇는 대표적인 교통요지다.

이곳의 빨간색 광역버스는 빠른 속도로 선바위역을 들렀다가 사람들을 토해내고 다시 싣는다. 대부분 우면산을 지나 서울 강남으로, 내곡동을 지나 양재로 가는 버스이다.

승객은 그렇게 많이 탑승하지 않는다. 공익 노선다운 모습이다.
▲ 시영버스의 내부 승객은 그렇게 많이 탑승하지 않는다. 공익 노선다운 모습이다.
ⓒ 박장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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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버스 사이로 하얀색으로 뒤덮인 버스가 느릿느릿 정류장에 들어선다. '과천시영버스'라고 인쇄된 마크 위를 찬찬히 보니 1990년대의 버스에 달려 있었을 법한 행선지 표기가 눈에 띈다. 승객 네 명. 기사는 천천히 버스를 몰고 양재로 가는 빠른 길이 아닌 에둘러 가는 길로 들어간다.

버스는 경마공원 뒤를 지나 돌아가는 다른 길로 서서히 들어서더니, 어느 새 막다른 길로 돌아온다. 과천시영버스의 회차지인 '삼포 종점'이다. 삼포 종점에서 모든 승객이 내리더니 기사는 방향을 바꿔 오던 길을 다시 돌아간다. 어느새 버스는 오던 길을 벗어나 다른 길로 들어선다.

두 노선의 시영버스가 이 앞의 막다른 길에서 방향을 돌린다.
▲ 시영버스 정류소, 삼포종점 두 노선의 시영버스가 이 앞의 막다른 길에서 방향을 돌린다.
ⓒ 박장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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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객이 혼자가 되자, 기사님이 말을 건넸다.

"이 버스, 3월달에 사라집니다."

재정부담으로 3월에 사라지는 과천시영버스

기사님이 버스의 속도만큼 여유롭게 내놓은 첫 마디였다.

"이제 과천시도 예전처럼 세금이 넘쳐나던 도시가 아니에요. 경기도가 경마공원 레저세를 관리하면서 과천시에 인구비례로 예산이 들어가니까, 아직까지 다른 도시처럼 적자는 없어도 입을 줄여야 할 때가 온 거죠.

사실 이 버스가 처음에 주변의 도시와 연합해서 운행을 시작했는데, 그 도시들은 다 적자가 나니까 그만뒀고, 과천도 그 정도 세금이 없었더라면 이렇게 운행할 수는 없었을 겁니다. 이거랑 비슷한 구간으로 다니는 버스가 보조금을 받아도 적자라고 폐선해 달라고 요구한다더라고요."

과천시영버스는 지난 2013년에만 8000만 원의 운송수입을 벌기 위해 8억 3800만원의 돈을 투입한 대표적인 적자노선이었다. 100원을 벌기 위해 1038원을 투입하는 식의 적자운행이 계속되어 온 것이다. 과천시는 시영버스의 운행 중단 및 마을버스로의 형간전환으로 연간 5억 원에 가까운 예산 절감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래도 5대씩이나 굴려온 과천시가 대단한 거예요. 이제 이 버스도 마을버스로 바뀐다고 하는데, 이제 시청 앞에 몰린 하얀색 버스는 못 보는 거지."

과천시영버스는 오는 3월을 마지막으로 운행을 중단한다.
▲ 양재종점에 도착한 시영버스 과천시영버스는 오는 3월을 마지막으로 운행을 중단한다.
ⓒ 박장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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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영버스가 어느덧 양재화물터미널 앞에 도착했다. 뒤꽁무니로 매연을 내뿜으며 멀어지는 버스 아래로 쏟아지는 쇼핑센터와 마트의 불빛을 바라보면서, 잠시간의 시간여행에서 다시 현재로 돌아온 기분을 문득 느꼈다.

22년 동안 과천과 함께 달려온 시영버스가 마을버스로 전환됨에 따라 시영버스로 운행 중인 5대의 차량은 모두 새로 생기는 마을버스 업체이자 과천 관내의 유일한 버스회사인 과천운수로 인계되어 시영버스들은 마을버스로의 새 삶을 살게 된다.

오는 3월까지 운행되는 시영버스가 무탈하게 운행되어 노선을 이어받게 될 마을버스까지 안전히 운행되기를 바랄 뿐이다.


태그:#과천시영버스, #과천, #시영버스, #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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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교통 기사를 쓰는 '자칭 교통 칼럼니스트', 그러면서 컬링 같은 종목의 스포츠 기사도 쓰고, 내가 쓰고 싶은 이야기도 쓰는 사람. 그리고 '라디오 고정 게스트'로 나서고 싶은 시민기자. - 부동산 개발을 위해 글 쓰는 사람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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