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박상옥 신임 대법관 후보자에 대한 반대여론이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이유는 딱 하나, 그가 박종철 고문치사사건 담당검사로서 수사 결과 축소·은폐에 가담했다는 의혹이다. 하지만 그 이유 때문에 시민단체뿐 아니라 법조계 내부에서도 박 후보자가 대법관으로 적절하지 않다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단 하나의 이유에 담긴 역사적 의미가 거대하기 때문이다.

1987년 서울대 언어학과에 다니던 고 박종철 열사가 물고문으로 사망한 서울 남영동 대공분실(현 경찰청 인권센터) 509호 조사실 현장(자료사진).
 1987년 서울대 언어학과에 다니던 고 박종철 열사가 물고문으로 사망한 서울 남영동 대공분실(현 경찰청 인권센터) 509호 조사실 현장(자료사진).
ⓒ 권우성

관련사진보기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을 한 마디로 표현한 강민창 당시 내무부 치안본부장(지금의 경찰청장)의 말이다. 이 한 마디는 1987년 6월 항쟁을 낳았고, 대한민국의 역사를 바꿨다.

이때 검찰의 행보를 두고, 사람들의 평가는 두 갈래로 나뉜다. 첫 번째는 경찰의 고문치사 은폐를 밝혀낸 '용감한 검찰'이다. 최환 서울지방검찰청 공안부장은 시신을 얼른 화장하려는 경찰에 맞서 부검을 지시했고, 안상수 당직검사(현 경남 창원시장)는 부검의 황적준 박사의 제대로 된 부검을 위해 부검 현장에서 그를 보호한다. 이후 검찰은 서울지검 형사부에 박종철 고문치사사건 수사를 맡기는데 박상옥 후보자는 수사팀 중 하나였다. 그해 1월 24일 검찰은 두 명의 경찰관을 기소했다.

'박종철 고문치사 은폐' 공범이 된 대법관 후보자

1987년 5월 22일 <동아일보>는 김승훈 당시 정의구현사제단 대표 신부가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이 축소·은폐했다'고 밝힌 내용을 보도했다.
 1987년 5월 22일 <동아일보>는 김승훈 당시 정의구현사제단 대표 신부가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이 축소·은폐했다'고 밝힌 내용을 보도했다.
ⓒ 동아일보

관련사진보기


그러나 약 4개월 만에 검찰은 영웅에서 '공범'으로 전락한다. 5월 18일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은 검찰이 진짜 범인인 고문경찰관 세 명의 존재를 확인했는데도 덮어버렸다고 폭로했다.

검찰은 1차 수사에 참여한 신창언 부장과 안상수 검사, 박 후보자 등에게 다시 한 번 수사를 맡긴다. 그 결과 박처원 치안본부 5차장 주도로 모두 5명이 고문치사사건에 가담한 사실이 드러나지만, '최종책임자'인 강민창 치안본부장은 이때에도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수사발표 전문 바로가기). 2009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이 사건을 두고 "검찰이 외압에 굴복, 수사권을 적절하게 행사하지 못했고 진실 왜곡을 바로잡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진실화해위 보고서 바로가기).

서울지방변호사회는 4일 이 일을 지적하며 '박상옥 후보자 사퇴'를 공식 요구했다. 김한규 신임 회장 체제에서 낸 첫 성명서였다. 서울변호사회는 "법원은 우리 사회의 정의를 수호하고 양심을 대변하는 최후기관이며 특히 대법원은 최고의 사법기관으로서 어떤 권력에도 굴하지 않고 양심에 따라 사회 구성원을 보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박 후보자는 고문 끝에 억울하게 죽어간 한 대학생의 가해자와, 그 가해자를 숨기려는 시도를 알면서도 스스로의 책임을 방기했다"고 꼬집었다.

박상옥 대법관 후보자 임명철회 촉구 기자회견이 4일 오전 청와대 부근 청운효자주민센터앞에서 민주열사박종철기념사업회, 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참여연대, 민변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이들은 87년 6월항쟁의 도화선이 된 박종철 고문치사 은폐 조작사건의 담당 수사 검사를 대법관 후보로 대통령에게 제청한 대법원장과 국회에 임명동의를 요청한 대통령을 규탄했다.
 박상옥 대법관 후보자 임명철회 촉구 기자회견이 4일 오전 청와대 부근 청운효자주민센터앞에서 민주열사박종철기념사업회, 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참여연대, 민변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이들은 87년 6월항쟁의 도화선이 된 박종철 고문치사 은폐 조작사건의 담당 수사 검사를 대법관 후보로 대통령에게 제청한 대법원장과 국회에 임명동의를 요청한 대통령을 규탄했다.
ⓒ 권우성

관련사진보기


시민단체들은 박 후보자의 사퇴와 더불어 박근혜 대통령의 임명동의 철회를 촉구했다. 참여연대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민주열사박종철기념사업회 등은 이날 오전 청와대 인근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회도 같은 요구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사법부 일원인 법관들 역시 이런 경력을 가진 인물을 대법관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혀, 사법부의 체면과 명예를 스스로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국공무원노동조합 법원본부(법원노조)도 4일 성명서를 냈다. 이들은 당장 사퇴를 요구하진 않았지만 박 후보자의 둔감함을 문제 삼았다. 법원노조는 "박 후보자는 '초임 검사 때인 30년 전 일을 문제 삼는 것은 지나친 처사'라고 주장하고 있다"며 "역사·사회적 책임에 전혀 무감각한 모습"이라고 비판했다. 또 "국가가 고문으로 젊은이를 사망하게 하고 사건을 은폐했다는 잘못을 지적받는 자에게 정의는 무엇이고 인권의 보루는 무엇인지 의문"이라고 덧붙였다.

이들이 박 후보자에게 검증의 칼날을 들이민 것은 부동산 투기나 위장전입 여부 같은 국회 인사청문회 단골 메뉴가 아니다. 법조계와 시민사회는 그의 과거 경력을 바탕으로 '법관은, 법원은 무엇을 지켜야 하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박 후보자가 사법정의라는 막중한 책무를 짊어진 대법관 후보이기 때문이다.

박찬운 한양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교수는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남긴 글에서 "대법원은 시민의 인권을 옹호하는 최후의 보루"라며 "그런 기관에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가장 상징적인 인권유린사건 은폐와 관련된 담당검사가 세월이 흘렀다고 대법관으로 금의환향한다? 지하의 열사들이 관을 뚫고 나올 일"이라고 했다. 박 후보자 개인을 떠나 박종철 고문치사사건 자체가 현대사의 중대한 기점이었던 만큼 그의 수사 경력은 "공적인 흠결"이라며 "박 후보자가 사퇴를 거부한다면 역사는 그를 후안무치한 법률가로 평가할 수밖에 없다"는 말도 남겼다.

'대법관의 자격'을 묻는 사람들... 검증 피해갈 수 있을까

박상옥 신임 대법관 후보자
 박상옥 신임 대법관 후보자
ⓒ 대법원

관련사진보기


2011년 9월 27일 열린 취임식에서 양승태 대법관은 국민들이 원하는 법관상을 이야기했다.

"법원에 대한 신뢰가 유달리 높은 영미 사회에서 법관이 존경받는 이유는 그 사람이 법관이기 때문이 아니라 법관이 되기 전에 이미 존경받고 있던 사람에게 법관직을 맡겼기 때문이라고 하듯이, 법관은 법률전문가이기 전에 훌륭한 인품과 지혜를 갖춘 인격자이어야 합니다. 국민은 영리하기만 한 사람보다는 덕망 높고 이해심 깊은 사람이 법관이 되기를 더 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박상옥 후보자는 4일 설명자료를 내 "철저한 수사로 실체적 진실을 규명하지 못해 수사검사의 한 사람으로서 매우 안타깝고 송구스럽다"며 "당시 담당했던 역할은 청문회 과정에서 성실하게 말씀드리겠다"고 했다. 과연 그는 청문회에서 자신이 국민들의 존경과 신뢰를 받을 만한 최고법관감이라고 증명할 수 있을까.

[관련 기사]

신영철 대법관 후임은 검찰 출신 박상옥
점점 커지는 '고문치사 수사 대법관 후보' 논란


태그:#박상옥, #박종철, #대법관
댓글33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마이뉴스 정치부. sost38@ohmynews.com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