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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많이 왔습니다. 지난달 미국 북동부 지역은 눈이 60cm 이상이 내려 온통 마비였습니다. 직원들이 출근을 못 하니 회사도 쉬고 학생들을 데려갈 스쿨버스도 운행할 수 없어 학교도 휴교를 했습니다. 오전 내내 휴대전화는 폭설로 인한 각종 안내들로 쉴 새 없이 울려댔습니다.

득~ 득~

집에 없는 척 하려 해도... 눈삽을 들고 나갈 수밖에 없다

눈을 치우는 청년들
 눈을 치우는 청년들
ⓒ 김다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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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소강상태를 보이자 삽으로 눈을 치우는 소리가 들립니다. 옷을 단단히 입고 밖으로 나갈 채비를 합니다. 굳이 밖을 내다보지 않아도 들려오는 삽질 소리에 '때'가 되었음을 직감합니다. 쌓인 눈을 치워야 합니다. 너무 추운 날에는 나가는 게 귀찮아 집에 없는 척 안 나가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눈 치우는 소리가 '이래도 안 나올래?'로 들려서 불편한 마음에 나간적도 있습니다.

밖으로 나가니 앞 동의 청년들이 눈을 치우고 있습니다. 그들도 무장을 하고 나왔습니다. 미국은 눈이 쌓이면 집 주변의 눈을 반드시 치워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신고가 들어가 벌금을 내게 됩니다. 설마 그럴까 싶지만 사실입니다.

지난 1월 북동부에 폭설이 내렸을 때, 국무장관 존 캐리는 보스턴에 있는 그의 집 주변의 눈을 치우지 않아 50달러(한화 약 5만 원)의 벌금을 부과 받았습니다. 당시 그는 오바마 대통령과 함께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공무 중이었습니다.

'시티즌 커넥트'에 제보된 존 캐리의 집
 '시티즌 커넥트'에 제보된 존 캐리의 집
ⓒ 시티즌 커넥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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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턴 시는 '시티즌 커넥트(Citizens Connect)'라는 홈페이지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 사이트는 보스턴 시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을 실시간으로 제보 받는 곳으로, 교통표지판 훼손, 불법 주차, 죽은 동식물 등을 시민들이 제보하여 보다 나은 환경을 만들기 위한 목적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이곳에 눈을 치운 흔적이 전혀 없는 존 캐리 집의 사진이 올라가게 됩니다. 누군가가 제보한 것입니다. 모든 곳이 다 마찬가지겠지만 보스턴 같은 대도시는 보행자가 많기 때문에 눈을 치우지 않으면 많은 사람들이 불편을 겪게 됩니다.

내 소유의 토지가 아닐지라도 그 눈을 치워야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게다가 폭설이 내린 직후이니 자가용을 이용하는 사람보다는 대중교통을 이용하거나 걷고자 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므로 서로를 위해 눈을 치우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눈 뿐만이 아니라 여름 잔디 관리에도 벌금 부과

이런 벌금은 여름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닙니다. 여름에는 집 주변의 잔디 관리를 하지 않으면 벌금을 부과 받습니다. 잔디 깎는 것은 물론, 말라죽지 않도록 물도 주어야 합니다. 누군가의 제보가 들어가면 그 역시 벌금을 내야합니다.

2014년 여름, 캘리포니아는 가뭄에 시달렸습니다. 그래서 주 정부는 물을 아끼자는 캠페인을 벌였으나 오히려 물 소비가 증가한 것으로 조사 됐습니다. 주 정부는 세차, 분수 가동, 잔디에 물주기 등에 규정된 사용량을 넘으면 기존의 벌금액을 훨씬 웃도는 500달러(한화 약 50만 원)를 부과한다는 발표를 하기에 이릅니다.

비도 오지 않는데다 고액의 벌금까지 부과한다고 하니 집 주변의 잔디들이 성할 리 없습니다. 그럼에도 주 정부는 잔디가 죽어 조경에 문제가 생기면 규정대로 벌금을 부과하겠다고 합니다. 이런 앞뒤가 맞지 않는 정부의 요구에 민심은 폭발하고 맙니다. 지난 일이기는 하지만, 한동안 이 문제로 시끄러웠던 캘리포니아였습니다.

이처럼 미국은 집 주변의 환경을 관리하지 않으면 벌금을 내는 시스템이 자리 잡혀 있어서 사계절 내내 정돈된 환경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름에 잔디에 뿌려지는 물을 보면 물이 아깝다는 생각을 많이 하고는 합니다. 살수장치(스프링클러)로 물을 줄 때는 몰랐는데, 호수를 이용해 물을 주는 걸 본 후로 그 양이 엄청나다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식수로는 부적합한 물이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저는 그 깨끗한 물이 참 아까웠습니다. 아무래도 잔디에 물을 주는, 그 문화에는 아직 가까이 다가가지 못 한 것 같습니다.

이 글을 쓰는 동안 눈이 또 내립니다. 저는 오늘도 삽을 들고 나가야 할 것 같습니다.

눈삽
 눈삽
ⓒ 김다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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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미국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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