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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용산 사태를 낳을 수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는 경기도 평택시 팽성읍 안정리 로데오 거리 '안정쇼핑몰 예술인 광장 조성 사업'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관련기사 :  "땅주인 승낙 필요없다"...평택시의 막무가내 '강제수용').

이 기사에 따르면, '평택 안정리 팽성읍 일대에는 2016년까지 전국 50여 개 미군기지의 90%가 들어올 계획'으로, '안정리 로데오 거리는 K6 캠프 험프리(Camp humpreys) 부대 앞에 위치하고 있어, 주한미군 이전을 앞두고 거리 활성화에 대한 주민 기대가 높은 곳'이다.

그런데 주민들은 왜 반대를 하는 걸까. 더군다니 이들은 미군부대 이전을 앞두고 투기를 위해 찾아온 외지인들도 아니다. 평생을 혹은 대대로 안정리를 삶의 터전으로 삼으며, 언젠가는 경기가 풀리겠지 하는 실오라기 같은 희망을 안고 살아온 이들이 대부분이다. 지난 1월 마지막 주, 이 지역 주민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안정리 로데오 거리 반대하는 주민들

아버지 때부터 46년째 안경점을 운영하고 있는 현대안경 대표 김응규(49) 안경사는 103세 되신 할머니와 부모님을 모시고 안경점을 운영하고 있다. 김 대표에게 안정리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추억 가득한 고향이자 가족과 함께 한 평생직장이다.

"로데오거리 조성할 때 2필지로 돼 있던 건물을 내달라고 해서 내 줬다. 당시 가게가 반으로 줄었다. 공사 중에는 소음과 쓰레기 때문에 힘든 부분도 있었지만 다들 잘 살기 위한 것이라 생각하고 민원도 넣지 않고 참았다. 광장 만들면서 살림집 옆으로 공중화장실을 지었지만 참고 지냈다. 그런데 이번 일은 참을 수 없다. 돈 줄 테니 나가라는 것은 그동안의 인내와 희생, 같이 살려고 했던 노력은 살피지 않고 무시하는 것이다."

김 대표는 얼마 전 시에서 나왔다는 지장물 조사원이 도면을 들고 다니면서 번지수를 확인했다는 건 알고 있지만, 그 이상의 설명은 전혀 없었다며 분통을 터트렸다. 당시에도 김 대표는 "번지수는 확인해 줄 수 있지만, 건물을 팔 생각은 전혀 없다"고 분명히 밝혔다고 한다. 그러나 자신이 마치 건물을 팔 사람처럼 누군가 의도적으로 이야기를 퍼트리고, 이간질하고 있다며 불쾌함을 감추지 않았다.

"시는 신문 보도가 나간 후에도 직접 와서 건물 매입이나 관련 절차에 대해 통보한 적도 없고, 전화 한 통 없었다. 이런 식으로 밀어붙이고, 타당성 있는 조치를 취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40년을 일궈 온 가게와 건물을 잃게 된 송현숙씨는 평택시에 '안정리쇼핑몰 예술인창작광장 조성' 반대 진정서를 제출했다.
▲ 건물주의 분노 40년을 일궈 온 가게와 건물을 잃게 된 송현숙씨는 평택시에 '안정리쇼핑몰 예술인창작광장 조성' 반대 진정서를 제출했다.
ⓒ 고기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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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듯한 가게라곤 찾기 힘든 로데오거리 초입에 위치한 뉴욕핫도그는 낮에도 외국인들이 들락거렸다. 낮에는 보통 문을 걸어 잠그는 게 일상인 안정리게이트 앞에서 보기 드문 일이다. 건물주 송현숙씨는 젊을 때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다. 신혼 초에 남편과 같이 시작했던 가게가 잘 되자, 건물주는 임대료를 터무니없이 요구했다.

사업을 접어야 할지를 고민할 정도였다. 마침 그때 빈 건물이 생겼다. 송씨는 은행 대출과 일수 돈을 빌려 건물을 샀다. 그게 40년 전이다. 당시만 해도 안정리는 인적이 드물었고, 대부분 가게는 썰렁했다. 그래도 악착같이 버텼다. 3~4년 간격으로 건물 리모델링도 하면서 어떻게든 버텨보려 했다.

"1988년 이전까지는 팀스피릿 같은 훈련 있을 때면 대목이라고 할 만한 시기가 있었다. 하지만 88년 이후 20년 가까이 불황이었다. 주한미군 이전하면 장사가 될까 하는 기대만 갖고 버텨 왔다. 2년 전 대출 받아 리모델링 하고 체인점 낸 것도 그런 이유다. 미군 이전하면 쥐구멍에도 볕들 날이 있다고 잔뜩 기대하며 기다려 왔는데, 건물 강제 매입이라니... 미군이전이 날벼락 될 줄 누가 알았겠나."

송씨는 차라리 빈 건물이나 안 쓰는 건물을 이용하지, 왜 버젓이 장사하고 있는 건물을 매입하려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힘들게 일군 가게다. 이제야 겨우 수익이 날 만한데, 사유재산을 시가 함부로 처분하겠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 멀쩡한 건물 헐어서 휴게소를 만드는 게 공익이냐? 미군이 뭐라고 평생 살아 온 시민까지 내쫓나, 보상한다 해도 필요 없다!"

송씨는 강제 매입에 대해 분명한 의사를 표하려고 지난달 19일 시 감사관실에 '예술인광장 조성사업 취소' 건으로 진정서를 냈다. 그런데 시의 반응은 송씨를 더욱 격노하게 만들었다. 시가 "관련법에 따라 절차를 이행한 사항으로 절차상 하자가 없다"고 회신하며, "광장조성사업 취소 건이 도시계획위원회 심의에 제출될 것이며, 심의결과 진정 건이 거부될 경우 90일 이내에 처분청이나 재결청(경기도지사)에 행정 심판을 청구하거나 행정소송법에 의거 행정법원에 행정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고 알려 왔기 때문이다.

송씨는 "절차상 하자가 없다고 하는데, 주민 의견 청취를 위한 어떤 설명도 없었고, 심지어 전화 한 통 없었는데 문제없으니 소송하라는 건... 이게 무슨 민주국가냐, 헌법에는 사유재산을 보호하라고 나와 있다"며 개발 독재에나 있을 법한 일이 안정리에서 일어나고 있다며 분통을 터트렸다.

"광장 집객 효과? 지나가던 소가 웃을 일"

로데오 거리 뉴욕 핫도그&커피와 꼬지 가게는 다른 가게들과 달리 낮에도 찾는 손님들이 많다.
▲ 안정리 로데오 거리 가게 로데오 거리 뉴욕 핫도그&커피와 꼬지 가게는 다른 가게들과 달리 낮에도 찾는 손님들이 많다.
ⓒ 고기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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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에게 가게는 단순히 재정적 필요를 채워주는 수단이지만, 누군가에게는 가족이 함께 하는 행복한 공간이다. 로데오거리 '꼬지' 가게 모녀는 내국인보다는 외국인, 특히 미국인을 주고객으로 삼아 꼬치구이와 케밥을 승부수로 띄운 곳이다.

서울에서 하던 사업과 직장을 접고 안정리로 내려온 김영애씨와 그의 딸은 작은 가게지만, 미군들 사이에 입소문이 나면서 장사가 점차 안정되어 갔다. 모녀가 함께 꿈을 꿀 수 있다는 사실 때문에 지난 몇 년간 행복했다.

그러던 그들에게 집주인 뜻과는 무관하게 건물이 헐린다는 소문이 들리기 시작했다. 김씨는 시가 무슨 꿍꿍이로 광장을 만든다고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했다.

"미군부대 앞 광장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 부대 자체가 얼마나 넓은데, 로데오 거리 광장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 집객 효과 운운하는데, 난센스다. 지나 가던 소가 웃을 일이다."

김씨는 "미군을 상대로 그들이 원하는 게 뭔지 조사가 필요하다면 자기 돈을 들여서라도 하겠다"며 미군들이 원하는 것은 상가라고 자신했다. "미군 부대가 들어서기 전부터 혹은 그 이후부터 몇십 년씩 대를 이어온 이곳 사람들 이야기와 상가가 상품이다. 그걸 다 허물고 광장을 짓는다면 아무런 상품 없이 물건을 팔겠다는 말과 뭐가 다르냐?"고 말하는 김씨. 비록 안정리 토박이는 아니지만, 누구보다 안정리에 많은 애정을 갖고 있었다.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 했다. 십 년 가까운 세월을 한 자리에서 장사를 한다는 것은, 장사도 장사지만 좋은 이웃들이 함께 하지 않으면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장사하는 사람 입장에선 좋은 이웃을 만난다는 건 엄청난 행운이다. 어렵고 힘든 일을 털어놓을 수 있고, 기댈 수 있는 이웃은 건물주와 세입자, 토박이와 타지인이라는 경계를 허문다.

"무작정 나가라니 황망... 길거리 나앉으라는 말이냐?"

외지인 소유 건물들은 1년내내 문을 닫고 있어 로데오거리 상가를 휑하게 만들고 있다. 개발사업을 한다면 놀고 있는 건물을 매입해도 될 것을 굳이 장사하고 있는 건물을 철거 혹은 리모델링하려고 하고 있다며 지역민들이 반발하고 있다.
▲ 외지인 소유 건물 외지인 소유 건물들은 1년내내 문을 닫고 있어 로데오거리 상가를 휑하게 만들고 있다. 개발사업을 한다면 놀고 있는 건물을 매입해도 될 것을 굳이 장사하고 있는 건물을 철거 혹은 리모델링하려고 하고 있다며 지역민들이 반발하고 있다.
ⓒ 고기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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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엔탈 스킨케어'의 김호섭 대표는 지나는 사람이 흔치 않아 유령 거리라 불리던 시절부터 같은 자리에서 가게를 하고 있다. 장사가 잘 돼서 9년 넘게 버틴 게 아니다. 미군들이 오면 조금 나아지겠지 하는 희망으로 자격증도 따고, 투자도 하면서 기다렸는데 건물을 나가야 한다니... 주민들은 모두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고 했다.

"건물주가 나가라는 게 아니고, 시민을 보호해야 할 시가 이렇게 무작정 나가라고 떠밀다니 황망하다, 아무런 예고도 없이 갑작스럽게 건물을 수용해 버리면 가진 것 없는 세입자들은 길거리에 나앉으라는 말이냐?"

김 대표는 "주민 삶의 터전을 강탈하는 게 개발이고, 예술인가? 상가를 살려야지, 장사 잘하고 있는 상가를 없애고, 상가를 활성화 시키겠다는 말이 탁상행정이 아니고 뭐냐"며 강산이 변하는 세월 동안 해 준 일 없는 정부가, 시를 앞세워 시민을 죽음으로 내몬다고 하소연했다.

상인들이 이런 주장에 대한 평택시 입장은 뭘까? 평택시 도시재생과 관계자는 "안행부에서 작년에 사업 승인을 해주고, 금년도에 조기 집행하라고 기간을 정해줬기 때문에 주민들과 충분한 교감이 이뤄지지 않았다. 절차적인 불미한 사항이 있었던 점은 송구스럽게 생각한다. 수용 예정 지역은 상업지역이라 현 공시지가의 2.2배를 산정했는데, 시의회에서 사업 승인을 해 주면 반대하는 주민들과 자주 접촉해서 협의 매수하는 방법을 추진하겠다"고만 밝혔다.

안정리 로데오 거리, 안정리 게이트에서 몇 걸음만 내딛으면 경기문화재단에서 운영하는 공방들이 있다. 그 중 한 곳은 이미 문이 닫혔고, 나머지 두 곳은 인적마저 드물다. 멀쩡히 장사가 잘 되는 가게는 헐고, 인적 드는 곳에 예술을 빙자한 공방을 만드는 게 시가 원하는 사업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낮인데도 찾는 이가 없어 문 닫힌 공방. 지역주민들은 전형적인 탁상행정으로 예산낭비한 사례라고 지적한다.
▲ 아무도 찾는 이 없는 공방 낮인데도 찾는 이가 없어 문 닫힌 공방. 지역주민들은 전형적인 탁상행정으로 예산낭비한 사례라고 지적한다.
ⓒ 고기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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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안정리, #미군기지 이전, #평택시, #용산사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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