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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8일 서울시 중구 순화동재개발구역 앞에서 천막 농성을 시작한 철거민들. 이곳에서 각각 음식점을 운영하다 감정평가를 거부한 채 쫓겨난 이들은 7년 넘게 생존권 보장을 요구하고 있다.
▲ 순화동 철거민, 천막농성 돌입 지난 18일 서울시 중구 순화동재개발구역 앞에서 천막 농성을 시작한 철거민들. 이곳에서 각각 음식점을 운영하다 감정평가를 거부한 채 쫓겨난 이들은 7년 넘게 생존권 보장을 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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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천막농성) 안 하면 사람들이 몰라요. 이 땅에 어떤 아픔과 슬픔이 있었는지. 여기 살던 사람들 다 울면서 떠났어요."

19일 오전 서울시 중구 순화동 재개발구역 앞 천막농성장, 1.5평 남짓 공간에서 털모자와 패딩으로 몸을 감싼 지석준(44)씨가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 지난 2007년 이곳에서 가족과 함께 운영하던 장어요리점을 철거당한 그는 8년 가까이 생존권 보장을 요구하다가 지난 18일 밤 천막을 쳤다.

마지막이라는 심정이었다. 재개발조합의 내부 분쟁으로 5년여 동안 중단됐던 공사가 지난해 봄 본격적으로 재개되면서 속도를 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천막 뒤편에는 크레인이 우뚝 솟아 있고, 철골 골조물 위로 인부들이 쉴 새 없이 오갔다.

"노모와 아내까지 용역에게 폭행당해... 어떻게 사과 없이 공사를"

이곳 순화동 재개발 구역은 그의 고향이기도 하다. 부모가 이곳에서 장사를 하며 그를 키웠고, 그 또한 보증금 5000만 원에 월세 80만 원짜리 장어요리점을 열었다. 올해 초등학교 5학년이 되는 지씨의 아들은 이곳에서 기저귀를 차고 뛰놀았다. 테이블 열한 개짜리 작은 식당이었지만 제법 손님이 모였다. 식당을 여는 데 들어간 투자금을 회수하고 돈이 막 모일 무렵, 식당을 비우고 나가라는 날벼락 같은 통보가 날아들었다. 그는 당시 "이사 비용도 안 나오는 감정평가를 거부하고 싸우는 길을 택했다"고 한다.

그가 쫓겨나듯 떠난 공간에는 오는 2016년까지 지하 5층, 지상 22층 규모의 주상복합아파트가 세워질 예정이다. 공사장 펜스에 그려진 청사진은 유명 관광지의 랜드마크를 연상시켰다. 이곳에 입주할 누군가에게는 꿈에 부푼 공간이겠지만, 지씨의 기억은 그 반대다. 용역 300여 명이 찾아와 강제로 명도집행을 하는 과정에서 그의 아내와 노모까지 폭행을 당했다. 그는 "상인과 주민을 합쳐 60여 가구 모두 울며 떠났는데, 이런 땅에서 사과 한 마디 없이 멀쩡하게 건물을 짓는다는 건 있을 수 없다"라고 분노했다.

천막 안에는 한식당을 운영하다 지난 2007년 말에 철거된 유영숙(55·여)씨도 함께 있었다. 그 역시 감정평가를 거부하고 지금까지 버텨왔다. 지난 1998년부터 남편과 장사를 시작한 유씨는 경북 청송에서 약수를 떠다 밥을 지을 정도로 사업에 공을 들였다. 식당 건물 2층에서 가족과 함께 살았던 그는 철거 이후 서울 북아현동의 낡은 단독주택에 자리를 잡았다. 하지만 이마저도 '북아현재정비촉진지구'에 속한 탓에 언제 헐릴지 모른다. 유씨는 "정말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천막농성이라는 큰 결심을 했다"라고 말했다.

"용산참사 때 돌아오지 못한 남편... 대신 뜻 이뤄주기로 결심"

지난 18일 서울시 중구 순화동재개발구역 앞에서 천막 농성을 시작한 철거민들. 이곳에서 각각 음식점을 운영하다 감정평가를 거부한 채 쫓겨난 이들은 지난 2009년 용산참사의 피해자이기도 하다. 유영숙(여)씨는 남편을 잃었고, 지석준(남)씨는 하반신 장애를 얻었다.
▲ 서울 중구 순화동재개발구역 앞 천막농성장. 지난 18일 서울시 중구 순화동재개발구역 앞에서 천막 농성을 시작한 철거민들. 이곳에서 각각 음식점을 운영하다 감정평가를 거부한 채 쫓겨난 이들은 지난 2009년 용산참사의 피해자이기도 하다. 유영숙(여)씨는 남편을 잃었고, 지석준(남)씨는 하반신 장애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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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이 오랜 시간 농성을 이어가는 또 하나의 이유는 지난 2009년 '용산참사'로 가족과 동료를 잃었기 때문이다. 유씨의 남편은 가게가 철거된 후 "내 권리를 꼭 찾겠다"며 용산 제4구역 철거민과 함께 한강로 남일당 건물에서 공통투쟁을 벌였다가 경찰과 대치 중에 숨졌다. 당시 고등학생이던 작은 아들은 그 충격으로 실명 위기에 처했다. 유씨도 그때의 농성으로 대상포진 진단을 받았지만 농성을 멈추지 않았다.

지씨 또한 '그날' 남일당 옥상에 있었다. 불타는 망루에서 건물 옥상으로 뛰어내리면서 두 다리가 부러졌고, 다시 옥상 난간에 매달려있다 떨어지면서 허리가 부러졌다. 당일 옥상 위에서 다리가 부러진 그를 부축한 사람이 바로 유씨의 남편이다. 하지만 지씨만이 겨우 살아남았다. 그 뒤 지씨는 10여 차례 넘게 수술을 받았다. 지금도 목발을 짚어야만 거동이 가능하다. 자연스럽게 생계는 아내의 몫이 됐다.

현재 이들은 재개발조합과 시공사인 롯데건설을 상대로 생존권을 보장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이날 찾은 농성장은 지난밤 천막 위에 쌓인 눈이 녹아 흐른 탓에 습도가 높았다. 뒤편에서 끊임없이 들리는 공사 소음과 천막을 살피는 경찰의 무전소리가 그들과의 인터뷰를 끊임없이 방해했다. 눅눅해진 이불을 덮고 있는 이들에게 "힘든 농성을 포기하고 생계에 매진하는 것이 낫지 않겠느냐"고 조심스레 물었다.

"그럼 아이 아빠가 제대로 눈을 못 감을 것 같아요. 지금도 떠나지 못하고 곁에 있는 거 같은데…. 내 권리를 꼭 찾겠다던 남편의 뜻을 이뤄줘야겠다는 거, 그거 하나는 결심했어요."(유영숙)

"재개발로 한 가정의 가장은 죽었고, 또 한 가정의 가장은 평생 장애를 안고 살게 됐어요. 아빠가 용산참사로 다친 것을 아는 아들은 제가 투쟁에 나서는 걸 정말 싫어해요. 그런데 여기서 멈추면 아들에게 해줄 말이 없잖아요. 꼭 이겨서 아들에게 내가 왜 싸웠는지 얘기해주고 싶어요."(지석준)


태그:#용산참사, #재개발, #순화동, #철거민, #생존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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