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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풍경, 근대를 만나다>(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원 10명 지음 / 채륜서 펴냄 / 2014.11 / 1만4800원)
 <조선의 풍경, 근대를 만나다>(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원 10명 지음 / 채륜서 펴냄 / 2014.11 / 1만4800원)
ⓒ 채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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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언제부터 지금과 같은 형태의 결혼식을 하게 됐을까? 초기 풍경은 어땠을까? 오늘날 아이들의 필수품인 장난감들은 언제, 어떤 장난감들이 우리나라에 전해졌을까? 우리는 언제부터 크리스마스를 즐겼으며 도입 초기에도 지금처럼 선물을 주고받았을까? 그렇다면 당시 사람들에게 인기 있던 선물들은 무엇이었을까?

<조선의 풍경, 근대를 만나다>는 이처럼 조선말~근대에 이르는 시기에 우리나라에 전해진 수많은 문물과 문화, 풍속들의 도입과 그에 얽힌 사연, 당시의 풍경들을 들려주는 책이다.

저자는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원들 10명이다. 저자 각자가 9년 동안(2005~2014년) 개화기부터 일제강점기까지 대중들에게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했던 문물과 문화, 풍속 등을 연구해 여러 자료집과 연구서를 냈다.

이때 알게 된 것들을 좀 더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는 것이 좋겠다는 취지로 누구나 읽기 쉽도록 풀어 쓴 것이라고 한다.

부동산 투기에 주가 조작까지... 오늘날과 비슷한 일제 자본주의

"일제강점기에 불어 닥친, 가히 광풍이라 할 만한 투기는 부동산, 금광, 미두 등에서 생겨났다. 부동산은 지금의 투기와 유사한 모양새를 가지고 있다. 당시 일본의 대륙 진출의 항구가 될 종단항의 후보지로 함경북도 청진, 나진, 옹기 등이 입에 오르자 이 세 지역을 중심으로 땅 투기 열풍이 불어 닥쳤다.

요즘 말로 하자면, '떴다방'이나 '부동산 브로커' 등도 활개를 쳤다. 심지어 종단항으로 나진이 유력하다는 소문이 돌자 청진의 사람들이 모여 종단항 유치를 위한 궐기대회를 열기도 했다. 그리고 마침내 나진으로 종단항이 최종 결정되자 이곳의 일부 땅값이 이전보다 1000배 이상 치솟기도 했고, 이로 인해 일순간에 졸부가 된 사람들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금광에 대한 열풍도 대단했다. 실제로 일제강점기 당시 세계 3대 금광 중 하나가 조선에 있었다." - <조선의 풍경, 근대를 만나다> 본문 중에서

아마 이 부분을 읽으며 오늘날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 같다. 그런데 투기만이 아니다. 유행패션을 쫒는 사람들이나 창경궁의 벚꽃놀이에 몰려든 엄청난 인파, 크리스마스 선물을 사려고 경성일대 몇몇 백화점에 몰려든 사람들 이야기 등, 시대와 규모는 다르지만 오늘날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책을 읽는 내내 했다.

당시 사람들을 열광케 한 여러 가지 투기 중 이 책에서 중점적으로 다루는 것은 '미두'다. '미두왕 반복창'을 비롯하여 일확천금을 꿈꾸며 '미두취인소'로 몰려들었던 수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고 갔다는 그 미두 열풍 말이다.

미두취인소는 오늘날로 얘기하자면 일종의 증권거래소이다. '미두'는 한자로는 '米豆', 즉 쌀과 콩의 거래소라는 뜻이다. 그런데 실제로 쌀과 콩, 즉 현물은 거래되지 않았단다. 투자자가 '언제쯤 쌀값이 어느 정도 오를 것인가'를 예상해 구매를 약속, 그만큼 투자하는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때 약속금액의 10%만을 증거금(투자 약속금액)으로 투자할 수 있게 했다. 우선 적은 금액으로 투자할 수 있게 함으로써 많은 사람들이 선뜻 뛰어들 수 있도록 머리를 쓴 것이다. 그럼에도 한탕주의에 병든 조선인들은 일본이 던진 미끼라는 것을 모르고 혈안이 됐다. 조선의 수많은 재산가들은 물론 흔히 말하는 개미투자자들까지 몰려들었단다. 심지어는 소매치기까지 해 미두시장으로 뛰어드는 사람까지 생겨날 정도였다니 그 열풍이 짐작된다.

"미두취인소의 표면적인 설립 목적은 조선의 쌀 가격의 안정과 과도한 경쟁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 이면적 배경은 이와는 사뭇 다르다. 그리고 그 역사적 배경은 당시 일본의 경제상황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1890년대 일본은 전쟁과 흉년으로 자국의 쌀 소비량과 생산량의 불균형이 찾아온다. 일본 상인들은 일본의 쌀과 품질은 유사하면서도 가격은 훨씬 저렴한 조선의 쌀 시장으로 눈을 돌리게 된다.

하지만 일본 상인들에게 조선의 쌀 시장은 녹록치 않았다. 조선의 쌀 상인들은 이미 자기들끼리의 탄탄한 조합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본의 상인들은 일본으로의 원활한 쌀 공급을 위해 일본 영사관의 허락 하에 인천에 미두취인소를 설립하게 된 것이다. 즉 표면적인 설립목적과는 달리 조선의 쌀 수탈을 위한 것이었다. 그래서 이곳에서의 거래는 일본 오사카의 쌀 시세가 기준이 되었다.

또, 용이하게 조선의 쌀 수탈을 위해서는 조선 사람들을 미두취인소로  모이게 해야만 했다. 우리나라의 재산가들이 체면을 이유로 미두취인소에서의 거래를 꺼린다는 것을 알고 일본 투기꾼들이 '쌀클럽', 미우회' 등을 만들어 재산가들이 전화로 쉽게 거래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다. 그리고 초반에는 재산가들이 이익을 남게 해서 미두에 대한 투기에 불을 지피게 된다." - <조선의 풍경, 근대를 만나다> 본문 중에서

한 번의 거래로 오늘날 가치 180억 원이란 투자이익을 얻은 반복창 같은 미두거물도 탄생한다. 반복창은 1921년 5월 28일 당시 3만 원(오늘날 가치 30억 원)을 들여 초호화 결혼식을 올리고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한 장본인이다. 12세에 일본인의 아기를 봐주는 하인으로 들어갔던 그는 그 일본인의 미두시장 심부름을 하며 터득한 노하우를 이용, 미두로 일약 갑부가 됐다. 그러나 초호화 결혼식을 올린 몇 년 후 싸늘한 시체로 발견됐다. 그의 나이 30세였다고 한다.

미두열풍을 읽으며 어떤 한 사람의 돈을 싹쓸이하고자 의도적으로 접근해 처음에는 돈을 따게 했다가 나중에는 몽땅 잃게 만드는 조직적인 노름꾼들의 수법이 떠올랐다. 제아무리 실력과 운이 좋아도 저희끼리 짜고 치는 판에서 이길 수는 없을 것이다. 미두시장에서 우선 돈을 벌었던 사람들은 더 많은 이익을 노리며 투자를 하다 결국은 쪽박신세가 되고 만다.

책에는 빈손에서 미두왕이 된 반복창이나, 근검절약과 자수성가로 막대한 부를 축적했으나 미두시장에서 전 재산을 날린 후 자살을 한 윤여선의 이야기 등을 그린다. 수많은 사람들의 미두투기로 인한 좌절, 미두시장을 두고 벌어졌던 당시 사람들의 한탕주의 열풍, 미두시장의 몰락 등 그 다양한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다양한 풍속 이야기를 그렸지만... 이상하게 씁쓸하다

100년 전쯤 사람들의 일인데도 매우 씁쓸한 게 있다. 미두시장에서 돈을 버느냐 잃느냐를 두고 일본이 계획적으로 쥐고 흔드는데, 조선인들은 점쟁이를 찾아가 나온 점괘에 따라 투자여부와 규모까지 결정했다고 한다. 자신들의 의도대로 인형처럼 움직여 주는 조선 사람들을 비웃었을 일본인이 상상되어 매우 쓰렸다.

책은 이외에도 벚꽃놀이를 즐기고자 창경궁(원)에 몰려든 30만 명이 넘는 인파와 그들이 만들어낸 천태만상의 추태, 크리스마스 도입 당시 거리와 사람들의 풍경과 선물에 얽힌 이야기도 실렸다. 우리나라에 어린이 장난감이 처음 도입될 때와 당시 사람들의 반응이나 장난감 고르는 기준, 결혼식의 대명사가 된 오늘날과 같은 결혼식장에서의 결혼식과 피로연, 유행패션을 쫒는 사람들 모습과 안티 패션에 대한 일화도 있다. 책은 총 10가지 이야기들을 3장에 걸쳐 들려준다.

그간 일제강점기 관련하여 독립운동(가) 혹은 친일(파)과 관련한 이야기들이 대체적으로 많이 회자됐기 때문일까? "당시 여성들은 여우목도리 선물을 선호했다"라든가 "여성들이 찹쌀떡 화장법 혹은 밤 도깨비 화장법을 따라했다"처럼 흥미로운 이야기 몇 개를 아이와 친구들에게 들려주니 '설마?'의 반응이 대부분이다.

그중 누군가 반문한다. "일부는 독립을 위해, 일부는 친일을 하며,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본의 핍박에 시달리며 살지 않았을까?"라고 말이다. 하기야 필자 역시 누군가의 반문처럼 인식하고 있던 터라 꽤 읽을 때까지 좀 혼란스러웠다. 식민지 조선에서 일어난 일이라고 선뜻 믿지 못할 정도로 국가의 빼앗긴 주권은 나 몰라라 자신의 욕망 채우기에 급급한 조선인들 이야기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책이 소개하는 문물과 문화를 누렸던 사람들은, 그리하여 이런저런 풍속들을 만들어 낸 사람들은 그 당시 특권층이었을 것이다. 최소한 먹을 것 걱정은 없는 그런 사람들 말이다. 때문일까. 같은 무렵, 이국을 떠돌며 독립운동을 했던 독립운동가들의 이름과 곤궁한 처지들이 떠오르곤 했다. 일제의 핍박과 먹고 살길을 찾아 조선을 떠나야만 했던 조선족 1세대들의, 이국의 전장과 노동현장으로 끌려간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떠오르기도 했다. 

그래도 이 책이 흥미로운 것은, 누군가 읽기를 바라는 이유는 결혼식, 장난감, 크리스마스, 화장법 등, 우리의 생활에서 뗄 수 없는 것들이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왔을 때의 이야기들이기 때문이다. 당시 사람들의 반응과 사회에 일으킨 반향 등을 다양하게 들려주고 있는지라 그 시대 사람들을 이해하기에 좋은 참고가 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조선의 풍경, 근대를 만나다>(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원 10명 지음 / 채륜서 펴냄 / 2014.11 / 1만4800원)



조선의 풍경, 근대를 만나다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원 엮음, 채륜서(2014)


태그:#일제강점기(근대), #미두취인소, #미두왕 반복창, #미두열풍, #여우목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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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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