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안전벨트 안 매면 위험한데..."

어디서 들리는 첫째 아들 목소리다. 아들은 계속 말을 한다.

"아저씨, 안전벨트 안 매면 죽을 수도 있대요."

소리 나는 쪽을 바라보았다. 버스에 앉자마자 안전벨트부터 찾아 매던 첫째 아이가 통로 옆에 있는 아저씨를 보고 하는 말이다. 아내는 얼른 아들 머리를 잡고 돌렸다. 생전 처음 보는 사람한테 안전벨트를 매라고 강요하다니! 안전벨트를 매자는 건 틀린 말은 아니지만 이제 8살 되는 아이가 자기에게 그런 말을 하는 자체가 버릇없다고 여길 수 있는 상황이다. 

"엄마, 안전벨트 안 매면 사고 나서 죽을 수도 있지요, 그렇죠?"
"응, 그래그래 알았어. 과자 먹자."

서둘러 아들의 주의를 과자로 돌렸다. 건너편 아저씨는 살짝 미소를 지으시더니 안전벨트를 매고 있다. 다행이다. 괜히 쪼그만 게 시비 건다고 화내시지나 않을까 걱정했는데.

우리 아들 두 놈은 물론 아직 어려서 그런 면도 있지만, 어떤 상황인지 가리지 않고 질문을 하거나 자기 생각을 무차별로 쏟아낸다. 너무 표현을 못하거나 말없이 참고 있는 성격이 아니라서 좋은 면도 있지만, 반면 난처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이 글에서는 우리 아들들이 철없이 내뱉은 말 때문에 난감했던 에피소드를 들려주고자 한다.

"엄마, 저 택시 아저씨는 왜 대머리예요?"

처가가 있는 대전에서 울산으로 내려왔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터미널에서 택시를 잡았다. 우리 사는 아파트 이름을 불러주니 택시는 이내 출발했다. 택시 안에서 이리저리 움직이다가 둘째 아들이 갑자기 뭔가 물어본다.

"엄마, 저 아저씨는 왜 머리카락이 없어요?"

순간 화들짝 놀랐다. 얼른 아이 입을 막았다. 택시기사는 그 소리를 들은 건지 만 건지 운전에 집중하고 있다. 아들은 엄마 손을 치우며 다시 한 번 소리를 지른다.

"엄마, 왜 그래요? 내가 물어보잖아요. 저 아저씨는 왜 대머리예요?"

이젠 대놓고 운전기사에게 물어본다.

"아저씨, 아저씨는 왜 머리가 없어요? 언제부터 그랬어요??"

아……. 이 일을 어떻게 수습할꼬. 강제로 아이를 반으로 접어서 무릎에 앉혔다. 기사 아저씨 눈치를 보았다. 별다른 기색은 없다. 그러나 6살짜리가 날카롭고 또박또박 외치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을 리는 없다. 나는 내 무릎에서 기어 나오려는 둘째를 꽉 붙잡고 가만 있으라고 작은 소리로 말했다. 기사 아저씨는 심기가 좀 불편한 듯 헛기침을 한다.

더 이상의 질문은 막아냈지만 집에까지 가는 내내 죄송하고 불편한 마음에 고개를 들지 못 했다. 아, 이 시한폭탄 같은 아들내미야!

"나는 아기라서 앉아가야 해요. 제 동생도요"

집으로 가는 시내버스를 탔을 때의 일이다. 버스 요금을 내고 앉을 자리를 찾았다. 사람이 많지는 않으나 앉을 자리는 없었다. 버스 가운데에서 손잡이를 잡고 아들 둘과 아내와 함께 서 있었다. 이때 첫째 아들의 대책 없는 무차별 포격이 또 시작됐다. 천천히 또박또박 큰 소리로 외친다.

"전 어려서 앉아 가야 하는데.... 그죠 엄마! 아기들은 앉아서 가야 하죠?"

예전과는 다르게 좌석이 많지 않다. 더 많은 사람을 태우기 위해서 입석을 많이 만들었음일까?
▲ 시내버스 내부 예전과는 다르게 좌석이 많지 않다. 더 많은 사람을 태우기 위해서 입석을 많이 만들었음일까?
ⓒ 김승한

관련사진보기

나는 첫째를 뒤로 잡아끌었다. 너무 민망했다. 주위 시선이 우리 쪽으로 쏠리니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그런데 첫째 아들 앞에 앉아 있던 학생이 일어난다. 자리를 양보해 준 것이다. 첫째는 냉큼 하고 달려가서 앉았다. 웃어야 하나 울어야 하나! 근데 앉자마자 이놈이 우리를 보면서 또 한마디 한다.

"내 동생도 어린데. 나보다 어려서 앉아 가야 하는데……."
"△△아, 너도 앉아서 가고 싶지? 다리 아프지 않아?"

이번엔 6살짜리 동생을 바라보며 얘기한다. 그 얘기를 듣던 옆 좌석의 한 학생이 일어나서 벨을 누른다. 정말 내리려는 건지 아님 꼴 보기 싫어서 그냥 내리려는 건지는 모르겠다.

"△△아, 여기 앉아, 자리 있잖아."
"응 형아, 알았어."

이게 참 무슨 상황인가! 강제로 자리를 뺏는 모양이 돼버린 거다. 주위 사람들이 피식피식 웃는다. 우리도 웃었다. 쓴웃음을……. 그런데 상황이 여기에서 끝났으면 좋았을 것을, 첫째 아들의 만행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엄마, 엄마도 다리 아프잖아요. 엄마도 빨리 자리 잡아요."

허걱! 왜 엄마까지 끌어들이는지. 그렇게 하지 말라고 온몸으로 눈치를 줬건만 상황 파악을 못하는 우리 첫째는 아랑곳없이 계속 자기 얘기를 한다. 마침 한 사람이 일어났다. 벨을 누르고 내리는 문으로 걸어간다. 우리는 모든 것을 체념한 심정으로 자리에 앉았다. 속으로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네 이놈, 집에 가서 보자'

"여기 누가 죽은 거예요?"

이번 에피소드는 '최악'이다. 올해 큰 어머님이 돌아가셨다. 울산에서 차를 몰고 충남 금산군으로 향했다. 밤늦게 서야 도착했는데 큰댁 식구들은 침울한 분위기 속에서도 우리들을 반갑게 맞아주셨다. 큰댁 작은댁 아이들끼리 인사하고, 우리는 장례 절차와 화장 후 유골을 어디로 모실 건지 간단히 얘기한 후 식사를 하러 자리에 앉았다. 음식이 나오고 숟가락을 들려는 순간, 첫째 아이의 돌발 질문이 시작되었다.

"근데 누가 죽은 거예요?"
"△△아, 조용히 해. 여기서는 그런 거 물어보는 거 아냐."
"궁금해서 그래요. 누가 죽은 거예요? 왜 죽었어요?"

다행히 식당 구석에 자리를 잡았지만 아이의 목소리는 날카롭고 한자 한자 천천히 발음하기 때문에 멀리서도 잘 들린다. 하, 이 난감한 상황을 어찌할꼬! 아이에게는 차근차근 작은 소리로 설명을 해주고는,

"△△아, 이런 데서는 질문도 작은 소리로 하는 거야. 그리고 아까 올 때 얘기해줬잖아. 큰 할머님이 돌아가셨다고. 기억 안 나? 지금 형들하고 큰 아버지들이 너무 슬프시니까 조심조심 행동하고 말도 가려서 해야 해 돼."

이 외에도 여러 에피소드가 있다. 웃어넘길 수 있는 것도 있지만, 참 난처하고 죄송한 마음에 일찍 자리를 뜬 적도 있다. 특히 공공장소에서도 궁금한 것을 참지 못하는 아이들 때문에 제대로 시간을 때우지 못하고 차에 몸을 싣기도 한다.

궁금한 것을 물어보는 게 나쁘지는 않다. 당연히 모르는 것은 알고 싶고, 왜 그런지 이해하고 싶을 것이다. 우리는 이럴 때마다 상대방이 기분 나쁘지 않게 그리고 조용히 질문할 것을 여러 번 당부를 했다. 물론 아이의 질문에도 성의껏 대답을 해준다. 그러나 아이들의 호기심과 상상을 초월한 궁금증은 이 모든 것을 백지화 시키고 만다.

이럴 때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혼란스럽다. 무조건 하지 말라고 윽박지를 수도 없고, 그렇다고 다 받아주는 것도 아이의 인성에 그다지 좋지 않을 것 같다. 수위 조절을 어디까지 어떻게 어떤 방법으로 이끌어야 할지 고민이다.

부모와 아이와의 대화는 질문에서부터

어릴 적 난 부모님과의 대화가 거의 없었다. 그래서인지 부모님에게 질문도 거의 하지 않았던 것 같다. 지방면사무소 직원이었던 아버지는 출근 전과 퇴근 후, 그리고 휴일엔 어머니와 함께 논과 밭에서 밀린 농사를 하기 위해 저녁 늦게 들어오셨다. 공무원이셨던 아버지 덕에 부자는 아니어도 끼니 걱정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부모와 자식 간 대화는 매우 한정적이었고, 질문과 대답이 아닌 일방적인 지시와 학교 통신문에 의한 문서 회람이 전부였다.

40년 가까이 된 사진이다. 부모님은 농사일로 바빠 우리 삼형제끼리 있을 때가 많았다.
▲ 나의 어린시절 삼형제 사진 40년 가까이 된 사진이다. 부모님은 농사일로 바빠 우리 삼형제끼리 있을 때가 많았다.
ⓒ 김승한

관련사진보기

나는 어릴 적 겪었던 부모와 자식 간의 소통방식을 우리 자식들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다. 서로에게 관심을 갖고 충분히 얘기하며 궁금한 게 있으면 상상을 동원해서라도 알려주려고 한다. 잘 모르는 게 있어도 절대로 모른다고 하지 않고 '아빠도 잘 모르겠는데 같이 찾아보자'고 하며 대화를 끊지 않는다.

부모와 자식 간 대화는 질문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윗사람들로부터 단편적인 지시와 복종을 받고 자라온 세대들은 익숙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진솔한 질문이야말로 서로의 생활 양식과 정서적 교감을 풍성하게 해 줄 수 있다. 궁금증은 또 다른 궁금증을 낳고 대화는 지속된다. 질문에서 시작된 대화는 자연스레 세대 간 소통뿐만 아니라 다소 서로 생각이 다른 집단과의 차이점을 좁혀줄 수 있는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사춘기가 시작되면 자녀와 대화가 단절된다는 얘기를 많이 듣는다. 과연 그럴까 싶다. 말 한 마디가 천 냥 빚을 갚는 것처럼 꾸준히 대화법을 찾아보고 적용해보면 세대 간 열린 마음이 서로에게 전달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태그:#아이의 질문, #대답, #소통
댓글7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영화, 음악, 종교학 쪽에 관심이 많은 그저그런 사람입니다. '인간은 악한 모습 그대로 선하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