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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슈올레 오쿠분고 코스
 규슈올레 오쿠분고 코스
ⓒ 유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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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월 26일부터 31일까지 규슈여행을 다녀왔습니다. 고양시 녹지과 직원들과 규슈올레 탐방에 나선 것이지요. 제주올레에서 일본에 수출한 규슈올레는 제주올레와 길 표시가 같았습니다. 길을 안내하는 간세와 리본, 화살표가 똑같아 전혀 낯설지 않았고, 쉽게 길을 찾을 수 있었지요. 길은 아름다웠고, 걷기 좋았습니다. 우리나라와 다른 풍경이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게다가 날씨까지 좋아서 걷는 발걸음이 무척이나 가벼웠지요.

우리 일행은 규슈올레 3개 코스를 걸었습니다. 오이타현의 고코노에 야마나미 코스와 오쿠분고 코스와 사가현의 다케오 코스입니다. 코스마다 특색이 있어 걷는 느낌이 달랐습니다. 그래서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 기자 말

기차 건널목에 차단기가 내려졌다. 기차가 들어오는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아사지 역에서 기차를 기다리는 승객이 있는 것을 보고 온 참이었다. 아사지 역에는 2칸짜리 노란색 기차가 들어온단다. 기다렸다가 기차가 오는 것을 볼까 하다가 그냥 걸음을 재촉했는데, 기차가 들어오는 시간에 맞춰 건널목에 도착한 것이다.

창식씨와 한범씨가 기차가 오는 순간에 맞춰 사진을 찍겠다고 폼을 잡았다. 한데 노란색 기차가 들어올 줄 알았더니 빨간색 기차가 전조등을 켜고 기운차게 달려온다. 규슈올레 안내책자에는 분명히 노란색 기차였는데 말이다. 하지만 그게 무슨 상관이랴. 지금 우리가 보는 게 진짜배기지, 하면서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아사지역으로 가는 2칸짜리 빨간 기차.
 아사지역으로 가는 2칸짜리 빨간 기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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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사지 역에서 시작해 분고다케다 역에서 끝나는 규슈올레 오쿠분고 코스는 전체 길이가 11.8km이며, 소요 예상시간은 5시간이다. 전날 걸은 고코노에 야마나미 코스가 넓디넓은 한다 고원을 중심으로 길이 이어져 일본의 자연을 음미하는 길이라면 오쿠분고 코스는 일본의 산촌마을과 농촌마을을 지나는 아기자기한 길이라고 할 수 있다.

아사지 역은 구마모토와 오이타를 잇는 단선 철도가 서는 간이역으로 역무원이 없는 무인역이다. 아담한 역사 한쪽에 규슈올레를 찾는 이들을 위한 사무실이 마련되어 있다. 역무원은 없어도 규슈올레 안내원은 있다. 중년의 나이를 훌쩍 넘긴 나이 든 남자 분이다. 자원봉사를 하는 분이라고 했는데, 인사를 나눴지만 이름을 묻지 못했다.

이 사무실에는 오쿠분고 코스를 다녀간 이들의 흔적이 사진과 글로 남아 있다. 한글이 더 많은 것을 보니 규슈올레를 찾는 이 대부분이 한국인들이구나, 짐작할 수 있었다.

걷기 전에 잠시 역으로 들어가 기웃거렸다. 철도가 하나뿐인 아사지 역은 깨끗했고, 한산했다. 중년 아줌마 한 사람이 다소곳이 서서 기차를 기다리다가 역을 둘러보는 우리 일행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쳐다본다.

규슈올레 오쿠분고 코스 출발지인 아사지역. 규슈올레 안내를 하는 사무실이 역에 있다.
 규슈올레 오쿠분고 코스 출발지인 아사지역. 규슈올레 안내를 하는 사무실이 역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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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을 빠져 나와 걷기 시작한 길 옆에 붉은 동백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붉은 꽃잎들이 길 위에 흩어져 보석처럼 빛난다. 12월 초에 제주에서 무리지어 피어난 동백을 보았는데, 규슈에서도 동백은 한창이었다. 한겨울에 붉게 피어난 동백을 보니 마음까지 붉은 물이 드는 것 같다. 가슴이 설렌다.

아사지 역에서 기차 건널목까지는 고작 3~4분 걸리는 거리. 귀엽기조차 한 빨간색 기차는 순식간에 건널목 앞을 스쳐 지나갔다. 차단기는 다시 올라가고, 우리는 걸음을 재촉했다. 오늘은 점심 도시락을 준비하지 않았으니, 중간에 요기를 할 만한 곳이 있으면 꼭 들르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그럴 만한 곳은 한 군데도 없었다. 그러니 오쿠분고 코스를 걷기 전에 느긋하게 즐기면서 걸으려면 점심을 꼭 준비할 것.

길은 마을을 지나 공원으로 이어진다. 한데 마을을 지나는 길에 나뭇가지에 매어진 올레 리본을 따라갔더니 어느 사이엔가 리본이 사라져 버렸다. 그럴 리가 없는데, 하면서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자니 어느 집에서 할아버지 한 분이 나오신다. 할아버지는 우리가 코스를 벗어났다며 온 길로 돌아가라고 손으로 방향을 알려주신다. 말이 통하지 않지만, 손짓과 표정만으로 충분히 알 수 있다.

마을 주민들이 만든 것으로 보이는 한글표지판은 걸음을 저절로 멈추게 했다. 한 가족으로 보이는 4개의 인형이 세워져 있었다. 어린 소녀는 환영의 뜻으로 꽃다발을 안았고, 소년은 축구공을 안고 있었다. 순해 보이는 개 한 마리가 그들과 함께 우리를 환영해주었다. 개 역시 인형이었다. 단란한 인형가족은 올레를 걷는 이들을 위한 이 마을 주민들의 환영인사였다.

휴지 하나 떨어져 있지 않은 공원이라니

규슈올레 오쿠분고 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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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단식 논이 이어지는 마을을 지나 도착한 유자쿠공원(用作公園)은 적막했다. 봄에는 벚꽃이, 가을에는 단풍이 아름답다는 공원은 온통 낙엽으로 덮여 있었다. 겨울이 깃든 공원은 나름대로 운치가 있었다. 연못 주변을 서성이고, 공원 안을 이리저리 거니는 것은 오쿠분고 코스를 걷는 이들이 즐길 수 있는 기분 좋은 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공원이 어찌나 깨끗하고 관리가 잘 돼 있는지 우리는 감탄을 거듭했다. 특히 김운용 고양시 녹지과장은 고양시에서 공원관리과장을 역임한 지라 공원관리가 쉽지 않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휴지 하나 떨어져 있지 않은 공원이라니, 놀랄 수밖에 없었다.

대나무 숲과 삼나무 숲을 지나서 길은 논 사이로 이어진다.

"어, 유자다."

노란 유자열매가 주렁주렁 매달린 나무들이 여러 그루 보인다. 유자는 먹음직스러우면서 탐스럽게 열렸다. 그뿐인가, 길 위에서 산딸기를 보았다. 우리나라에서는 5월과 6월 사이에 볼 수 있는 산딸기를 12월에 규슈올레를 걸으면서 본다. 한 개 따서 입안에 넣으니 단맛보다 신맛이 강해 저절로 얼굴이 찌푸려진다.

후쿠지의 마애불
 후쿠지의 마애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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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숲을 지나고, 계단식 논을 지나니 길은 다시 마을로 이어진다. 그렇게 걸어서 도착한 곳은 후코지(普光寺). 한자를 그대로 읽으면 보광사. 절이다. 절은 밖에서 보는 것보다 규모가 컸다. 후코지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절벽에 부조되어 있는 마애불이다. 높이가 20미터나 된다는 마애불은 먼발치에서 봐도 가까이에서 봐도 한없이 부드러우면서 인자한 느낌을 자아낸다.

마애불을 조각한 이는 누구일까. 문득 궁금해졌다. 절벽에 마애불을 새기는 작업은 깊은 불심이 없다면 불가능하지 않을까? 그 앞에서 두 손 모아 합장을 한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절벽을 깎아서 만든 토굴암자는 어두웠다. 그 안을 작은 돌부처들이 벽면을 채우고 있었다. 그 부처들을 세월이 먼지가 되어, 이끼가 되어 감싸 안고 있었다. 돌부처 앞에 놓인 몇 개의 동전은 속세 사람들의 흔적이었다.

후코지 법당에서는 피아노로 예불을 할 수 있다는데, 우리는 사람의 기척이 없어 그저 기웃거리기만 하고 떠났다. 절에서 너무 오랜 시간 지체한 것 같았기 때문이다. 걷다 보니 오쿠분고 코스에는 걸음을 더디게 하는 것들이 너무 많다. 유자쿠공원이 그러더니, 후코지도 마찬가지다.

이게 주상절리?

규슈올레 오쿠분고 코스
 규슈올레 오쿠분고 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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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은 마을 사이로, 논 사이로 이어진다. 내딛는 걸음은 자꾸 더뎌진다. 주변을 자주 두리번거리면서 구경하기 때문이다. 일본의 농촌 풍경은 우리의 것과 한없이 닮았으면서도 무언가 다른 느낌을 자아냈다. 추수가 끝나 텅빈 들판도 마찬가지였다.

소가와 주상절리는 규모가 기대보다 작아서 미처 모르고 지나칠 뻔했다. 규모가 큰 제주의 주상절리를 상상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곳을 흐르는 물길은 아주 세찼다. 아소산이 분화할 때 나온 화쇄류가 굳어져서 만들어졌다는 소가와 주상절리. 좁은 물길을 지나니 갑자기 확 넓어진다. 세차게 흐르는 물의 양도 제법 많다.

소가와 주상절리
 소가와 주상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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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슈전력 다케다 발전소 앞을 지나니 길은 다시 숲으로 이어진다. 대나무들이 빽빽하게 들어찼다. 그 길에는 마른 낙엽들이 수북이 쌓였다. 그리고 오카산성이 나타났다. 한 때는 튼튼한 산성이었으나 이제는 푸른 이끼가 잔뜩 낀 돌무더기가 되어버린 산성은 쓸쓸해 보였다. 그 돌무더기 위에는 대나무들이 빽빽하게 자라있었다.

1185년에 축성되었다는 오카산성은 18세기에 화재로 소실되었고, 1871년에는 성안의 모든 건물들이 해체되었다고 전해진다. 그래서 이제는 여기저기 쌓인 돌무더기들만이 한 때 산성이었다는 사실을 쓸쓸하게 증명하고 있다. 그래도 돌로 쌓은 벽들은 원래의 모습을 많이 간직하고 있어 제법 규모가 큰 산성이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오카산성
 오카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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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은 산성을 찬찬히 둘러볼 수 있게 이어지고 있었다. 돌무더기 위에 올라가서 아래를 내려다보기도 하고, 돌무더기 사이를 거닐기도 하면서 오카산성을 둘러보았다.

그런데 저 많은 돌들을 죄다 어디서 가져다가 저렇게 튼튼한 성을 쌓았을까? 그런 특별한 기술은 어떻게 알게 되었을까? 대단하다. 감탄이 저절로 나왔다.

한데 이 산성은 입장료를 내고 들어와서 관람을 해야 하는 곳이었다. 몰랐다. 우리는 올레 코스를 따라 걷다가 얼떨결에 오카산성을 구경한 관람객이 되었다. 매표소가 있는 입구로 들어와도, 입구로 나가도 입장료는 내야 한단다.

길을 걸으면서 사람들을 보지 못했는데, 오카산성에는 많지 않지만 관람객들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휴일을 맞아 나들이를 나온 정다운 연인들도 있었고, 가족도 있었다. 아, 그러고 보니 오늘이 일요일이구나.

산성을 둘러보느라 올레를 걷고 있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었는데 올레 화살표가 나타나 계속 걸어야 한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었다. 산성을 내려가는 길은 가팔랐다. 우리가 언제 이렇게 높이 올라왔지? 어리둥절해질 정도로.

산성을 벗어나니 마을로 내려가는 길이다. 오후 2시가 훌쩍 넘었다. 도시락을 준비하지 못해 간식을 먹으면서 허기를 때웠으니 마을이 반가울 수밖에. 라면집이나 우동집이 있으면 들어가서 간단하게 요기를 해야지, 하면서 찬찬히 주위를 살폈지만 그럴 만한 곳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규슈올레 오쿠분고 코스
 규슈올레 오쿠분고 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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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식당을 찾느라 마을 어디쯤에선가 길 표시를 놓쳤다. 걷다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규슈올레 리본도 화살표도 보이지 않는다. 에구에구, 이를 어쩌나. 어디쯤에서 길 표시를 놓쳤는지 모르겠다. 그렇다고 왔던 길을 되짚어 가려니, 그 또한 헷갈린다. 에라 모르겠다, 그냥 도착지점인 분고다케다역으로 곧장 가자.

아사지 역이 역무원이 없는 작고 소박한 역이었다면, 분고다케다 역은 매점도 있는 제법 규모가 있는 역이었다. 역 건물 옆으로 아침에 보았던 2칸짜리 빨간 기차가 서 있는 게 보였다. 여기서 후쿠오카로 가는 기차가 출발한다고 쓰여 있었다. 역 앞에는 손님을 기다리는 택시가 서 있었다. 조금 뒤, 버스 한 대가 역 광장 앞으로 들어섰다. 역 앞 풍경은 우리나라와 그리 다르지 않았다. 사람 사는 곳은 어디나 비슷하기 마련이 아닌가.

드디어 다 걸었다. 꼬박 다섯 시간을 길 위에 있었다. 코스에서 조금 벗어났지만 무사히 걷기를 마쳤다. 안도감이 느껴지자 허기가 뱃속을 무섭게 물어뜯기 시작했다. 우리, 빨리 밥 먹으러 갑시다. 내일은 무슨 일이 있어도 도시락은 꼭 준비합시다.


태그:#규슈올레, #오쿠분고, #아사지역, #분고다케다역, #후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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