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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엘잡이 축제는 일년 중 단 5~6일만 볼 수 있는 캄보디아의 진풍경 중 하나다.
 리엘잡이 축제는 일년 중 단 5~6일만 볼 수 있는 캄보디아의 진풍경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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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아시아에서 가장 큰 호수인 톤레삽에서는 요즘 '리엘잡이'가 한창이다. 리엘은 캄보디아에서 가장 흔한 민물고기의 이름. 영어식 이름은 'Siamese mud carp'다. 캄보디아의 화폐단위인 리엘(Riel)도 바로 이 물고기 이름에서 유래됐다. 일반 붕어보다는 좀 날렵한 축에 속하는 이 물고기가 오래 전 물물교환의 중요한 가치기준이었다고 역사학자들은 전한다.

'리엘잡이 축제'는 통상 크메르달력으로 그믐달 초팔일부터 보름달이 차오르기 전까지 이루어진다. 1년 중 이 시기 5~6일 정도만 정부의 허가를 받아 리엘을 잡아 올릴 수 있다. 최근 불법화된 대형정치망 대신 '다이'라고 불리는 길이 100여 미터, 깊이 16미터짜리 고정식 그물망으로 고기떼들을 몰아 한꺼번에 건져 올리는 방식으로 고기를 잡는다. 캄보디아 정부가 내놓은 자료에 따르면, 해마다 약 3~4만톤 가량의 리엘 물고기가 이 톤레삽 호수에서 잡힌다고 한다.

14세기 원나라 사신 주달관이 물고기가 많아 노를 저을 수 없을 정도라고 기록할 만큼 메콩강유역에는 리엘같은 어자원이 매우 풍부해, 캄보디아인들을 위한 담백질 공급원으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14세기 원나라 사신 주달관이 물고기가 많아 노를 저을 수 없을 정도라고 기록할 만큼 메콩강유역에는 리엘같은 어자원이 매우 풍부해, 캄보디아인들을 위한 담백질 공급원으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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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29일부터 1월초까지 전국 각지 포구마을에서 동시에 리엘잡이 축제가 열렸다.  내가 현장을 찾은 1월 1일은 신년 휴일을 맞아 축제가 최대 정점에 달한 날이었다. 수도 프놈펜에서 차로 2시간 정도 떨어진 '깜퐁 루엉'이라 불리는 작은 어촌마을을 찾았다. 이 마을은 지난 2012년 방영된 KBS 다큐멘터리 <슈퍼피쉬> 촬영지이기도 하다.

이날 전국에서 1000여명이 넘는 인파가 이 작은 포구로 몰려들었다. 좁은 황톳길 진입로는 이들이 타고 온 경운기와 오토바이로 발 디딜 틈조차 없었다. '꾸이띠우'라 불리는 쌀국수와 각종 먹을거리, 과일 등을 파는 시끌벅적한 장터도 함께 열려 축제분위기를 한층 고조시켰다.

마을주민이라고 해봐야 고작 100여명 남짓 사는 이 작은 어촌마을로 사람들이 몰린 이유는 단지 신선한 민물고기를 구입하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캄보디아의 대표적인 발효음식 '쁘라혹'을 즉석에서 만들기 위해서다. 한해 먹을거리를 온가족들이 함께 만든다는 상징적 의미도 더해진다.

'쁘라혹'은 우리네 생선젓갈과 비슷한 음식이다. 다만, 젓갈이라고 해서 항상 날로 먹지는 않는다. 현지인들은 쁘라혹을 된장처럼 국에 넣어 끓여먹기도 하고, 밥에 비벼먹기도 한다. 잘게 썬 고기나 계란과 함께 기름에 달달 볶아 먹기도 하고 삶아서 야채에 곁들여 먹기도 한다. 발효되는 과정에서 국물이 흘러나오는데 이를 '뜩뜨라이'라고 부른다. 일종의 생선간장이다. 이웃나라 베트남에도 '늑맘'이라 불리는 비슷한 일종의 생선 소스가 있는데, '까껌'이라 불리는 바닷고기로 만들어 비린 맛은 같지만, 맛과 향은 조금 다르다.

가족이 함께 만들어 의미가 깊은 전통음식 '쁘라혹'

갓잡은 신선한 리엘의 무게를 재는 어부들
 갓잡은 신선한 리엘의 무게를 재는 어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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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은 포구 둔덕에 올라서면, 강에서 어부들이 그물로 리엘을 잡는 모습은 물론이고 사람들이 쁘라혹을 만드는 모습까지, 모든 과정을 한눈에 볼 수가 있다.

나룻배가 정박한 포구에서는 즉석에서 잡은 리엘 물고기의 무게를 재서 사고파는 풍경이 이른 아침부터 해질 무렵까지 이어진다. 1kg에 1500리엘, 우리 돈 350원이 채 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금년에는 가격이 많이 올라 비싼 편인데다, 씨알마저 작다"고 한 농민은 투덜거렸다. 예전에 비해 올해 어획량이 적은 이유에 대해 현지 전문가들은 올해 유독 강수면이 낮아 물에 잠긴 숲속까지 물고기들이 들어가 알을 낳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한편 적당히 흥정을 마친 현지인 가족은 땅바닥에 철퍼덕 앉아 갓 잡은 리엘을 한 가운데 수북이 쌓아놓고 작은 칼로 대가리를 잘라내느라 바쁘다. 옆에서 할아버지를 돕는 10살 남짓한 어린 손주들의 모습도 흔히 볼 수 있었다. 대가리를 잘라 한쪽 구석에 쌓아놓은 대신 내장은 따로 제거하지 않았다. 대가리는 따로 모아서 가축사료 등으로 쓴다.

간단하게 1차 손질을 끝낸 다음에는 대나무로 엮은 통에 리엘을 넣어 지게꾼에게 전달한다. 이 지게꾼은 곧바로 강 위에 임시로 설치된 좁은 나무다리를 뒤뚱거리며 걸어가 대기 중인 또 다른 인부에게 전달한다. 이들은 리엘이 가득 든 대나무통째 발로 짓눌러 고깃살을 부드럽게 만드는 작업을 시작한다.

리엘 물고기를 발로 짓누르는 모습이 마치 오래 전 포도주를 만들던 모습과도 비슷하다.
 리엘 물고기를 발로 짓누르는 모습이 마치 오래 전 포도주를 만들던 모습과도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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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뜻 보면 중세유럽 사람들이 포도주를 만들기 위해 발로 으깨는 방식을 연상케 하는 진풍경이다. 인부들의 빠르고 능숙한 발놀림에 물고기 내장이 빠져 나왔다. 1차 손질 당시 대가리만 잘라내고 내장을 굳이 제거하지 않은 이유를 그제야 알게 됐다. 그 사이 고깃살도 손으로 반죽을 만들어도 좋을 만큼 적당히 흐물흐물해져 있었다. 한쪽구석에선 물고기 뱃살에서 나온 기름이 모여 뽀얀 거품을 만들어지기도 했다. 현지인들의 말에 따르면, 강물에 둥둥 뜬 물고기 지방은 나중에 따로 모아 비누로 만든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흐르는 강물에 깨끗이 씻은 리엘을 다시 육지로 보내고, 대나무 바구니 위에 굵은 왕소금을 골고루 뿌린다. 리엘 양의 1/10정도 되는 분량의 소금을 친다고 한다. 이것으로 쁘라혹을 만드는 1차 작업이 대략 끝난 셈이다.

이제 집으로 가지고 가, 손으로 적당히 으깨질 정도로 반죽을 만든 후 소금을 더 추가해 하루나 이틀 정도 햇볕에 바싹 말려 곰삭힌 후 큰 황토항아리에 넣어 그늘 진 곳에서 한두 달 정도 보관해두면 발효가 되면서 캄보디아 전통음식인 쁘라혹이 완성된다. 하지만 쁘라혹이 제 맛을 갖추려면 최소 2~3년 정도는 숙성시켜야 한다고 현지인들은 귀띔한다. 우리네 음식으로 말하자면 '묵은지'처럼 오래 숙성되어야 깊은 맛이 난다는 것이다.

오랜 시간 잘 숙성된 쁘라혹은 생선 비린내에 고약한 썩은 냄새가 진동한다. 시골동네를 가다보면 이 냄새가 배어있기도 하다. 현지에 사는 외국인들 중 쁘라혹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기는 하지만, 대체로 이 냄새 때문에 캄보디아 음식을 꺼린다. 유럽인들 중에는 프라혹을 가리켜 '캄보디아 치즈'라고 부르기도 한다. 또 다른 한 유럽 여행자는 쁘라혹을 가리켜 '악마의 냄새'라고 비하한 적도 있다. 하지만 젓갈음식에 익숙한 우리 입맛에는 그런대로 괜찮다.

"쁘라혹을 먹지 못하면 캄보디아 사람이 아니다"

어린 손주들과 함께 리엘을 손질하고 있는 노인의 모습.
 어린 손주들과 함께 리엘을 손질하고 있는 노인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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쁘라혹은 우리네 된장이나 고추장처럼 현지 가정에서는 절대로 빠질 수 없는 음식재료이며, 고기를 사먹기 힘든 가난한 캄보디아인들을 위한 소중한 비타민, 단백질 영양공급원이기도 하다. 쁘라혹은 캄보디아 이민자 출신이 많은 미국이나 호주, 유럽 등에 수출되기도 한다. 다만 이들 제품 대부분은 이웃나라 태국이나 베트남을 거쳐 메이드 인 타일랜드나 베트남 상표가 붙어 출시된다.

깜퐁스프 작은 시골에서 새벽에 출발해서 왔다는 중년 여성 리악(38)씨는 "쁘라혹은 캄보디아인들에게 매우 소중한 음식이다"라며 "쁘라혹을 먹지 못하면 캄보디아 사람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언젠가 많이 들어본 익숙한 말이었다.

캄보디아 톤레삽 호수주변에는 베트남계 주민 십 수 만 명이 살고 있다. 이들은 캄보디인들로부터 '유온'(베트남인을 멸시하는 표현)이라 불리며 차별 받고, 수십 년째 보트피플로 살아온 사람들이다. 그런데 내전이 끝난 이듬해인 1998년 총선이 다가오자 베트남 괴뢰정부의 수반을 지낸 훈센총리는 평소 자신을 지지해준 베트남계 주민들의 표가 절실히 필요했다.

그런 가운데 느닷없이 훈센총리 진영 장관이 나서 '쁘라혹을 먹을 수 있는 사람들은 모두 캄보디아 사람'이라는 다소 이상한 논리를 폈다. 다분히 정치적 계산이 깔린 주장이었다. 그런데 이 말이 먹혀들었는지, 상당수의 베트남인들이 총선을 앞두고 캄보디아인 신분증을 얻게 되었다. 예상대로 이들의 표심은 훈센총리에게 쏠렸다. 결국 훈센은 정권을 다시 쥐는데 성공했다.

소금에 절여진 리엘 물고기. 이것으로 쁘라혹을 만들기 위한 모든 준비가 끝난 셈이다.
 소금에 절여진 리엘 물고기. 이것으로 쁘라혹을 만들기 위한 모든 준비가 끝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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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쁘라혹을 먹을 수 있는 베트남계 거주자들에게만 투표권을 줬다는 말은 근거 없는 낭설일 뿐이다. 하지만 캄보디아국민들에게 쁘라혹이 갖는 의미가 어떠한 것인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 대표적인 에피소드로 지금까지 회자되고 있다.

이윽고 해가 중천을 지나 강가로 기울 무렵이 되자, 현지인들이 소금에 절인 리엘 포대를 오토바이와 경운기에 가득 실었다. 이날 52살 오운 비락씨는 리엘을 140kg이나 구입했다. 1년 동안 가족뿐만 아니라 이웃에게도 나눠주고 동네 스님들에게도 시주할 예정이라고 그는 말했다. 무거운 리엘 서너 포대를 경운기 뒷자리에 차곡차곡 쌓는 그의 표정에서는 한해 먹을거리를 다 만들었다는 안도와 뿌듯한 감정이 교차했다.

그는 덜덜거리는 낡은 경운기 시동을 걸더니 특유의 밝은 미소를 날리며 먼지 폴폴 날리는 비포장길을 따라 떠났다. 뒷자리 리엘 포대 옆에 앉은 딸로 보이는 어린 소녀도 기자에게 손을 흔들며 작별인사를 했다.     

쁘라혹 담그기를 마치고 집으로 향하는 현지인들
 쁘라혹 담그기를 마치고 집으로 향하는 현지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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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캄보디아, #쁘라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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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캄보디아 뉴스 편집인 겸 재외동포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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