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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羊)은 12지신 중 8번째며, 성질이 온순하고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지혜롭게 극복할 줄 안다. 부산스럽게 이름값 했던 청마의 해가 가고 양의 해, 을미년(乙未年) 새해가 왔다.

한 해를 더할수록 과학 문명은 발전하고, 사람이 누리는 삶은 더 윤택해 진다는데 실제로 그렇지만은 않은 듯하다. 자본의 지배 구조는 더욱 촘촘하게 짜이고, 세상은 등을 떠밀며 바쁜 일상을 재촉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세상은 우리에게 잊을만하면 "어떻게 살아야 잘사는 것이냐"고 화두를 던진다.

게다가 요즘은 '인생 100세 시대'란 말까지 얹어 묻는다. 그럼 어떻게 살아야 "참 잘 살았다"고 스스로 만족하고, 타인도 인정할 수 있을까. 유교에서는 인간이 잘 살기 위해선 오복을 타고 나야한다. 수(壽), 부(富), 강령(康寧), 유호덕(攸好德), 고종명(考終命) 순서다. 가장 중요한 것이 수(壽), 즉 '건강한 삶'임을 알 수 있다. 그럼 건강한 삶은 어떤 삶일까.

기자는 지난해 12월 31일 을미년을 맞아 충남 예산군내 최고령 양띠(1919년 기미생) 할머니 두 분을 만났다. 지금 세대들의 삶이 마치 목적지를 향해서 수로 속을 빠르게 흐르는 물 같다면, 두 분 어르신 앞을 지난 세월의 물결은 참 천천히 흐른 듯했다. 굽이굽이 돌며 여울도 만들고 도란도란 흘러온 개울 같은 삶이다. 그런데도 두 어르신은 아무렇지도 않게 "그냥 살았다"고 말한다. 삶의 부피가 전해지는 말이었다.

"그냥 다 좋았지" 충남 예산군 대술면 화천리 97세 백남순 할머니

백남순 할머니
 백남순 할머니
ⓒ 이재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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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순 할머니는 3·1운동이 일어난 역사적 해인 기미년(1919년)에 태어나 올해 아흔일곱이 되셨다. 대술면사무소 인근 할머니 댁을 물어물어 찾아 갔는데, 그냥 나왔다가 또다시 물어 확인하고 들어 갔다.

기자를 맞이한 할머니가 너무 젊어보여 집을 잘못 찾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사는 집이 이층인데도, 계단을 가볍게 오르는 할머니는 일흔 살 정도에서 나이가 멈춰 버린 듯 젊고 활력이 넘쳤다. 할아버지 근황을 묻자 "영감님은 읍내로 마실갔다"고 하신다. 검은 파마머리를 한 할머니는 말할 때마다 얼굴에 웃음이 떠나질 않는다.

친정이 수원인데 스물즈음 큰 며느리로 시집와 아들 다섯, 딸 셋 그렇게 8남매를 뒀다. 그리고 지금 위아래집에서 큰아들 이병각씨 내외와 큰손자 이건열씨 내외, 증손자 이재홍씨 그렇게 4대가 모여 살고 있다. "참 복있는 분이다"란 말이 절로 나온다. 원래 당진에서 살다 20여 년 전 대술로 왔고, 면소재지에서 손자가 건자재상을 운영한다.

할머니는 "너무 오래 살아서 미안하다"고 하시면서도 "크게 아프지 않으니 그게 돈을 벌어주는 거라고 자식들이 좋아한다. 더 오래 살라고 한다"며 활짝 웃으신다. 눈가에 잔물결이 가득 인다. 꼿꼿하게 허리를 펴고 앉는 자세와 장정같은 팔뚝, 군살없이 가벼운 몸이 할머니가 살아온 세월을 넌지시 일러준다. 그래도 할머니는 힘들던 때가 언제였냐는 물음에 그저 다 좋았다고 웃으신다.

"시집오니 시어머님, 시아버님도 좋았고 남편도 잘 만나 바랄 게 없이 살았지. 그냥 다 좋았어."

친정 부모님도 90세 이상 장수를 하셨단다. "우리 친정아버지가 언문(한글)을 깨쳐주면 시집가서 소설써 편지 보낸다고 안 가르쳤어." 함께 있던 사람들이 모두 웃음바다가 됐다. 영감님과도 정이 좋으시냐는 물음에는 "내가 예쁘지 않아도 밥 얻어야 하니까 자꾸 예쁘고, 최고라고 해. 골나면 서로 눈 흘기고 말지 싸울 게 뭐 있어." 할머니 유머가 보통 수준이 넘는다.

어려웠던 시절 얘기는 "그냥 다 좋았다"고 뭉뚱그리더니, 최고로 좋았던 때에 대해서는 주저없이 "자식, 손자들 키울 때"라고 하신다.

"일주일 간격으로 손자와 증손자를 한꺼번에 봤어. 그때는 정말로 덩실덩실 춤을 추고 다녔지."

또 빼놓을 수 없는 기쁨 중 하나가 '남의 식구(며느리, 사위) 잘 들어온 것'이라고 덧붙이신다. "내가 하는 얘기가 아니라 남들한테 들은 말이니 틀림없지 않냐"며 아들, 손자는 말할 것도 없고 며느리들도 효부라며 상도 받았다고 자랑이 한짐이다. 곧 설이면 서울, 인천, 부산에 흩어져 사는 자식들이 한자리에 모인다. 한 40명쯤 된다고 하니 푸짐도 하겠다. 할머니는 벌써 명절을 기다리는 어린 아이 같은 표정이 된다.

건강한 비결에 대해서는 "여태껏 살며 어떻하면 건강할까 그런 생각없이 그냥 살았다. 김치짠지하고, 삼시세끼 잘먹고 속썩이는 게 없으니 내 맘이 참 편했다. 요즘은 경로당에 모여 노는 게 그 중 재밌다" 하신다.

증손자인 재홍군이 대학교 1학년이라고 하니 고손을 보실 날도 얼마남지 않은 것 같다. 을미년 새해 백남순 할머님댁에 항상 건강과 행복이 넘치길 소망한다.

종가며느리 70여 년, 예산군 신양면 죽천리 97세 조병희 할머니

조병희 할머니
 조병희 할머니
ⓒ 이재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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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군 신양면 죽천2리 넓은 들이 뵈는 얕으막한 산 아래, 정자 옆 오래된 산수유나무가 해마다 붉은 열매를 매달고 연자방아가 쉼 없이 도는 골격갖춘 'ㅁ자'집.

이 곳, 8대째 가문을 이어온 윤씨네로 꽃보다 더 예쁜 20대 새댁이 시집 왔다. 그리고 지금껏 70년이 넘도록 기제사와 시제를 받들어 종가를 지켰다. 올해 아흔일곱 나신 기미년생 조병희 할머님 얘기다.

11년 전 남편(윤기태)을 떠나보낸 뒤로는 대처로 나갔던 아들 윤정식(72)씨와 며느리 정명희(66)씨가 낙향해 어머님과 함께 살고 있다. 높은 마루를 딛고 올라서 문풍지를 바른 문이 있는 옛날식 방에서 만난 할머니는 참 온화한 분위기의, 바라만 봐도 편안한 맘이 들게 했다. 손님을 맞는데 앉고 서는 모습이 가볍고, 얘기를 주고받는 내내 반듯한 자세가 흐트러짐이 없다.

"봄이면 나물을 캐러 다니실 정도로 건강하셔요. 귀가 어둬서 잘 못알아 들으셔서 그렇지."

나란히 앉은 며느리 정씨가 말한다. 할머니 친정은 대술 장복리 조판사네 집안이다. 초등교육을 마쳐 글자를 깨쳤고, 지금도 신문을 볼 정도로 정신이 좋다. 시집와 아들 하나와 큰딸 계영을 비롯해 딸만 다섯을 낳아 6남매를 뒀다.

문간방에 놓인 시집올 때 해온 농(옻칠한 반닫이)을 보니 격식을 갖춰 시집보낼 만큼 친정도 살만했음이 짐작된다. 종갓집 큰 며느리로 시집와서 산 70여 년의 세월은 어떠했을까. 시아버지, 시어머니, 시누이 층층시하에 고달픔도 컸을 텐데 할머니는 내색조차 않는다. 힘들었던 시절이 언제였냐는 물음에 "그런 적 없었다"며 고개를 가로저으시더니 "이제 그만 가야하는데 여러 사람한테 부끄럽다"고 하신다.

옆에 앉은 아들이 "시집와서 질쌈 못한다고 구박 받았다면서..."하고 큰 소리로 거들어도 "아니다"라며 웃기만 하신다. 8남매의 맏이여서 동생들 업어키우고 돌보느라 길쌈을 배우지 못하고 혼인해 시댁 식구들에게 꾸지람을 많이 들었다는 얘기다.

"우리 어머님 여기로 시집와 고생 참 많이 하셨어요. 아버님은 글만 읽으셨고 집안 큰 살림은 모두 어머님 몫이였죠. 사시사철 많을 때는 20~30명씩 일꾼들 밥해 멕이고 시도때도 없이 찾아오는 친척과, 시아버지 남편 손님 치르고... 손에 물기 마를 날 없었지요."

할머니는 가장 좋았던 때가 언제였냐는 물음에 "아들 낳고 며느리 들이고 손자 봤을 때지"라고 얼른 대답하신다. 외아들을 둔 서운함이 손자 셋(윤인섭, 대섭, 광섭)과 증손자를 본 것으로 풀렸다며 환하게 웃으신다.

일가를 이루어 산다는 것은 인간의 삶 중 빼놓을 수 없는 행복임이 분명하다. 할머니는 아직도 머리카락을 자르지 않고 쪽을 진다. 숱이 많지 않은 것 같아도 옥비녀를 붙들고 있을 만큼 머리카락은 아직도 성성하다. 아들 정식씨는 읍내 장날이 되면 가끔씩 머리기름을 사오라는 어머님 심부름을 한다.

"밖에 나가실 땐 언제나 머리를 매만지셔요. 평생을 그렇게 흐트러짐없이 사셨어요. 그리고 한 번도 남을 흔구(흉보는)하는 소리를 들어 본 적이 없어요. 우리들이 반드시 본받아야 할 점이지요."

며느리도 "시집와서 여지껏 어머님과 말다툼 한번 해본 적이 없어요"하고 말을 보탠다. 장수비결을 묻자 특별하지 않다고 한다. 음식 가리지 않고 때맞춰 잘 드시고, 한시도 그냥 앉아 있지 않고 몸을 움직이신다는 것이다. 또 토요일엔 TV에서 하는 민요 프로를 보는 것을 좋아하고 일요일에 하는 전국노래자랑은 빼먹지 않고 꼭 챙겨 보신다고 한다.

봄이 오고 마당에 산수유꽃이 노랗게 피면 헛간에서 호미를 들고 나물 캐러 나오시는 할머니 모습을 내년, 또 내년이 돼도 뵐 수 있기를... 할머니댁을 나서는데 벌써 해거름 때가 됐는지 마당가 키 큰 편백나무 속으로 비둘기 한 쌍이 깃을 접는다.

덧붙이는 글 | 충남 예산에서 발행되는 지역신문 <무한정보신문>과 인터넷신문 <예스무한>에도 실렸습니다.



태그:#장수, #양띠, #예산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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